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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감식안

황상원 |2011.04.04 20:14
조회 31 |추천 0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한 가을은 수트를 입은 남자가 가장 빛나는 계절입니다. 한 여름의 땀으로부터 수트의 내부가 함께 젖을까 하는 염려가 없을 뿐더러, 한겨울의 극단적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코트로 섬세한 수트의 모습을 가려버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지요. 저명한 직함을 가진 명함이나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고급 자동차보다는 좋은 수트 차림새가 남자의 품위를 올바르게 세워주는 중요한 상징임을 이미 강조드린 바 있고, 그동안 올바른 정장 룩을 구성하는 세부 품목들, 이를테면 포멀이라는 관점에서 드레스셔츠의 선택방법이라든지 좋은 구두와 타이를 매는 방식 등에 대해서도 설명드렸습니다다. 하지만 남자의 수트에 관한 우리의 환경은 아직도 양적인 측면에 치우쳐,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 맞게 수트를 즐긴다기보다는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입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 용기를 가지고 고급 브랜드 수트에 투자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하게 소화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어이없는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요. 게다가 과연 가격이 비쌀수록 무조건 좋은 품질을 가진 수트라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요. 혹은 정말 놀랄만큼 가격이 비싼 수트가 있다면 도대체 그 한 벌의 옷 속에 어떤 역사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이제 그동안 설명드린 수트를 적절하게 입는 방식을 넘어, 세계의 글로벌 리더들이 입는 정말 좋은 클래식 수트가 어떤 것인지를 감식하는 안목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수트의 가격이 아니라 품질에 대한 차분한 관심으로 시작해서 그것의 역사와 디테일들에 대해서 알아가면, 시대를 넘어 모든 남자의 글로벌 스탠다드 복식으로 정립되어 온 수트의 비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까요. 미리 결론을 말씀드리면, 모든 논증의 전제는 이렇습니다. 수트는 수(數)의 문제가 아니라 질(質)의 문제라는 말씀!

 

 

수트의 품질

 

수트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한 기준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지만, 수트가 남자의 또다른 피부와 같아야 한다는 본질을 생각하면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의 종류나 가격표보다는 결국 얼마나 인체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가 우선 순위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저명하고 유서 깊은 브랜드라 하더라도 그것을 입어내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는 일이며, 백화점 명품관에서 당당한 위용을 뿜어내는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 브랜드라 하더라도 남자의 모든 체형에 만능인 것도 아니죠. 특히 여성들은 옷이나 엑세서리를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 브랜드의 네임 밸류가 가장 크다고 하지만, 남성들은 오히려 브랜드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한 브랜드가 제시하는 정형화된 실루엣보다는 자신의 신체 비율이나 체형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정장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만큼, 브랜드보다는 개개인의 체형에 맞는 수트를 고르는 것이 옷을 잘 입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트는 브랜드 네임이나 가격보다는 입체적인 인체와의 조화 여부, 즉, 옷의 구조가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지, 그러면서도 신체적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주는지에 따라서 그레이드가 정해집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만큼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대량생산 시스템에 치우친 기계 작업보다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놀랍도록 편안한 착용감을 보장하는 수작업을 얼마나 했는지, 그리고 정통 클래식 수트가 지켜야 하는 복식의 디테일들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는지 등과 같은 사항들은 수트의 품질을 결정하는 열쇳말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수트를 고집스레 만들어 온 장인들이 보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유명한 브랜드일지라도 실망스런 품질을 보여주는 수트들도 너무 많은 것입니다. 트렌드의 첨단을 달리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정통 클래식 수트를 만드는 공장에서 자신의 상품들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수트의 품질을 결정하는 기준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요.

 

 

가장 중요한 어깨
 

수트의 품질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뭐니뭐니해도 어깨입니다. 어깨의 맞음새는 수트를 입은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며, 옷을 입은 후 사람이 가장 빈번하게 움직이는 신체가 바로 어깨이기 때문에 수트의 착용감 역시 그곳에 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트의 어깨가 암홀(armhole ; 어깨와 소매가 닿는 곳의 폭과 넓이)과 만나는 부분은 특정한 수트 브랜드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즉, 잘 만들어진 수트의 어깨와 암홀은 기본적으로 기계 작업보다는 사람의 손으로 바느질을 하는 법이고, 그렇기에 수트를 입으면 입을수록 몸과 점점 더 잘 맞아갈 것입니다. 기계로 한 바느질은 겉으로는 단정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너무 튼튼해 보일 정도로 틈이 없기에 오히려 사람의 몸을 구속하는 수가 많지요. 따라서 수트를 사기 전에는 항상 어깨와 암홀을 올려보고 뒤집어 보셔야 합니다. 정교하게 만든 옷이라면 어깨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주름 하나 없이 부드럽게 만날 것이며, 어깨선 이음새 부분과 진동둘레를 포함한 어깨뼈 전체의 움직임도 자유로울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수트를 앞에 두고서 각각의 옷감들과 안감, 그리고 그것을 잇는 바느질의 형태를 감안하면서 서서히 옷을 걸쳐보면 좋은 어깨를 가진 클래식 수트와 무늬만 고가인 싸구려 양복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라펠(Lapel)의 가치
 

버튼의 숫자가 유행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수트 복장을 구성하는 현실이지만, 목까지 모두 잠그는 군복의 버튼이 점점 줄어들면서 진화된 수트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왜 유럽인들이 대부 대부분 3버튼 수트를 선호하는 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2버튼 수트를 즐기는 미국식 복식이든 3버튼을 고집하는 유럽식 복식이든 결국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중요한 것은 3버튼 수트가 복식사에서 먼저 탄생했고, 그것이 클래식 수트의 본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클래식 복식에서 인정하는 품질이 좋은 3버튼 수트라면 3 개의 버튼 중에서 특히 중간 버튼만 잠그면서 입는 것이 정석이고, 첫번째 버튼을 둘러싼 부분의 라펠은 자연스럽게 휘어져서 마치 멀리서 보면 2버튼 수트를 입은 듯이 보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휘는 그러면서도 재킷에 안정되게 부착되는 라펠을 만들기 위해서는 효율에 포커스를 맞춘 기계작업보다는 숙련된 작업자들의 정교한 손다림질이 필수이기에 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한가지 덧붙이면 왼쪽 라펠에 달려있는 아주 작은 구멍 구멍은 그곳에 카네이션을 고정시키던 전통적인 복식의 자취를 보여주는데, 이곳이 실제로 뚫려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뒤집었을 때도 그 안에는 꽃을 고정하기 위한 고리, 즉 토로베타가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전통을 지키는 것은 클래식 복식의 기본이니까요. 

 

 

버튼(Button), 그리고 버튼홀(Button hole)

 

수트에 스며들어 있는 장인정신을 확인하기 위한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장치로 단추만한 것도 없습니다. 요점을 말하면 좋은 수트의 단추는 물소나 사슴의 천연 뿔 혹은 천연 뿔과 레진(Resin; 수지(樹脂). 고분자량의 일정한 녹는점을 갖지 않는 천연이나 합성 고체, 반고체상 유기생성물의 총칭)을 혼합해서 만듭니다. 한마디로 플라스틱 버튼이 달린 수트라면 그것이 아무리 비싸다고 하더라도 좋은 수트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죠. 물론 플라스틱 버튼과 천연 뿔 버튼을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천연 뿔로 만든 버튼은 색상이 균일하지 않고, 대리석처럼 독특한 무늬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그 다음에는 이렇게 신중하게 확인한 버튼이 실제로 달려있는 수트 상의의 소매에 관심을 두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수트 소매에는 4개 혹은 3개의 버튼이 달려있는데, 아무리 고가의 브랜드를 취급하는 명품 숍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에 왜 버튼이 달려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수트의 모든 부분에 허투루 존재하는 곳이 없는 것처럼, 상의 소매 부분에 버튼이 달려있는 것도 역사와 특별한 기능이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예전 서양의 의사들은 진료하거나 수술할 때도 현대적 의미의 가운 대신 수트를 입었지만, 서양 문화속에서 수트나 재킷의 상의를 벗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습니다. (셔츠는 속옷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수트의 버튼홀은 의사들이 수술을 할 때 소매를 걷어 올리기 위해 고안된 디테일이었습니다. 즉, 재킷을 벗지 않고도 팔을 편하게 걷고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모양으로만 버튼이 달려있지 않고, 실제로 열리고 닫히도록 단춧구멍을 뚫어 만들어야 했는데, 이를 리얼 버튼홀(real button hole)이라고 한다. 수트의 역사와 디테일이 최초의 모습에서 거의 변화 없이 현대까지 이어지듯, 사실 클래식 복식에서 이 리얼 버튼홀은 옵션이 아닌 필수이며, 리얼버튼홀이 아닌 수트는 좋은 클래식 수트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리얼 버튼홀을 제대로 만들고 설명하는 수트라면 신뢰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지요. 
 
 

수트는 평생 우정을 쌓으며 입어야 하는 친구 같은 옷이라 믿습니다. 친구와의 우정을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처럼, 남자의 품위와 기품을 표현하는 수트는 공산품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그림이나 와인 같은 문화적 성격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돈을 투자하거나 몇가지 지침을 암기한다고 해서 갑자기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도 다행스럽게 수트를 가격이나 브랜드보다는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소수의 선각자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 의미있는 일이고, 그런 분들이 주시는 가르침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옷차림의 업그레이드란 그것을 입는 사람의 노력과 함께, 어느 정도의 사회적 시간과 문화적 성숙이 동반되어야 함을 감안한다면, 수트를 제대로 보는 감식안에 대한 관심과 토론과 담론들은 대한민국 수트 비즈니스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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