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0일 오전 6시 10분. 상당히 이른 시각. HAPPY MOVE 후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Jason Mraz의 I'm yours를 틀고 글을 쓰기 위한 분위기를 잡는다. 감상에 젖는다. 후기를 쓰기에 앞서 중국에서 찍었던 사진들과 동영상들을 둘러본다. 하나, 둘, 사진이 넘어간다. 불과 10일 전의 일인데 마치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립다. 다시 가고 싶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싶은 최고의 해외봉사 프로그램, HAPPY MOVE! 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이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고 이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고 호흡하고 공감하면서 나를 조금 더 확장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정말 감사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후기를 쓰려고 한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다.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역시 시간 순서대로 하는 것이 제일 만만하다. 그럼 서류를 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시작해 보겠다. Happy Move, GOGO!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난 항상 바쁘다. 항상 할 일이 많다. 없으면 만들어서 한다. Happy Move 서류를 넣어야 하는 시점에서도 그랬다. 바빴다. 중요한 과제를 끝내고 서류 마감 하루 전 날 밤부터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썼을까? 갑자기 졸렸다. 그래서 그냥 잤다. (난 졸리면 무조건 자는 스타일이다. 시험 전 날이라고 예외는 없다.) 일어나니 점심. Oh, MY GOD! 시간이 별로 없다. 미친 듯이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퇴고의 퇴고를 거듭했지만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이제 곧 마감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때가 5시, 3분 전이었다.
‘5시 전에 제출했는데 등록이 안 됐어요.ㅠ’ 게시판에서 이런 제목들의 글들을 읽으며 미소 짓고 난 후, 내가 제출한 서류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오타가 너무 많았다. 상당히 거슬렸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합격자 발표일을 기다릴 수밖에...
사실 서류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신이 많지는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봉사를 한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 봉사활동들은 모두 간단하거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봉사가 아닌 활동성 측면에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혼자서 한 1,800km 자전거 전국일주, BMX, Inline Skate X-Game 그리고 6년간의 흑인음악동아리 생활을 통한 수많은 무대와 수상경험. 개인적으로 예상한 서류 합격 가능성은 50%였다.
시간이 흘러 서류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왔다. 정해진 시각보다 일찍 문자가 날라 왔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NICE! 주변 친구들은 다 떨어졌다. 조금 미안했지만 나라도 끝까지 꼭 붙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류와 다르게 면접은 자신 있었다. 100초 Speech는 나의 특기인 랩으로 하면 되니까. 하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케치북 하나 들고 이야기를 풀어놓거나 개사한 노래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Happy Move를 주제로 Rap을 만들어 강렬한 인상을 면접관들의 뇌리에 새기고 올 것이다. 이때부터 벌써 면접이 기다려졌다.
컴퓨터에 있는 MR들 중에서 Happy Move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을 하나 골라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가사는 어렵지 않게 나왔고 이제부터는 외우기만 하면 됐다. 이와는 별도로 인터넷에서 Happy Move 면접 기출문제들을 찾아 문제은행을 만들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준비를 했다.
드디어 면접날. 난 첫 날의 첫 조였다. 늦지 않게 면접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대기실의 사람들 모두가 정장차림이었다. 당시 나는 파랑색 광나는 점퍼와 주황색 형광 가방을 메고 갔는데 보아하니 그곳에서 나만 양아치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됐다. 편안한 복장으로 입고 오라 하더니만 뻥이었단 말인가. OTL 그렇다고 어디 가서 옷을 구해올 수도 없는 일. 담담히 기출문제와 Rap 가사를 되뇌며 순서를 기다렸다.
우리 면접조는 나와 여자 4명을 포함해 5명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면접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조의 구호를 정했다. 구호는 다음과 같다.
‘워 아이 니’ 이 말은 중국어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저희들이 Happy Move에 뽑혀서 중국에 가게 된다면 열심히 봉사하여 중국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꼭 듣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유치하다. 하하.
면접장에 들어가서 어설프게 구호를 외치고 인사를 한 뒤, 본격적으로 면접이 시작했다. 먼저 100초 Speech. 나는 두 번째 타자였다. 첫 사람의 100초 Speech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됐다. 인쇄해 간 가사를 면접관들에게 나누어 주고 MP3에 휴대용 Speaker를 연결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Rap을 하기 시작했다. ‘OK, 내 소개를 할께 이름은 하태준, YO, 언제나 열정이 넘쳐, 행복의 나눔을 실천하는 Culture...Blah, Blah, Blah...'
결과는 대성공. 면접관 4분 중 2분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엄청 보수적이었는데 마치 면접장에서 Rap같은 것을 하면 때릴 정도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내 Rap이 끝났을 때, 웃음과 함께 박수를 치며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머지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ㅡㅡv
뒤 이어 나온 질문들은 그다지 난해하지 않았다. 전부 족보에서 나왔다. 다만 마지막 질문은 살짝 거슬렸다. ‘만약 최종합격한다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의향이 있습니까?’. 모두들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난 양보할 수 있다고 했다. 가식적인 대답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내가 뽑혔지만 나보다 봉사를 위해 더 적합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난 순순히 양보할 수 있다. 나는 경쟁적인 사람이지만 봉사만큼은 경쟁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이 Happy Move를 가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큰 지 알아 보려는 미끼였다면 난 낚인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결국 합격했다. 사후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면접조 5명 중에 붙은 사람은 단 2명이었다. 흠,
시간이 흘러 Orientation 날. 나름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 1시간이나 지각했다. 눈으로 인해 도로사정이 좋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그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경영학과 후배인 혜정이가 실시간으로 현지(양재동 본사) 상황을 중계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승덕이와 함께하는 발대식이 시작됐다. 그리고 끝났다. 허허.
행사장을 나와 천안 연수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앞쪽에 자리를 잡고 자려고 폼을 잡았다. 전날 전우회에서 술을 많이 마셔서 피곤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떤 여자가 옆 자리에 앉더니 잠시 후, 인사를 한다. 이 여인은 바로 ‘이수진’이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 간다. 대화가 계속 될수록 계속 피곤하다. 사실 초면에 이렇게 말 걸고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상당히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좀 자고 싶었다. (수진아, 그렇다고 안 좋게 생각한 건 아니야. 넌 최고야! 하하v)
연수원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지루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팀별로 모여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팀은 총 22명이었다. 20명의 평민과 1명의 멘토님, 1명의 중국인 유학생으로 구성되었다. 뒤 이어 팀장을 뽑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난 팀장에 자원했고 팀장이 되었다.
팀장을 하면 할 일이 조금 늘어나 바쁘기는 하겠지만 나는 남이 차려주는 밥상보다 내가 차리는 밥상을 좋다. 물론 전적으로 내가 차리는 밥상은 아니지만 주도적인 위치에서 반찬 몇 개 정도는 얹고 싶었다. 흠, 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 뒤로 정말 엄청난 Orientation이 계속됐다. 너무 빡셌다. 대학교 강의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Orientation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강의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들이 엄청난 순발력과 창의력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연극을 짜는 데 15분, 집을 만드는 데 20분 등등, 순간적인 센스와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필요로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것들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꼭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Orientation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화했다. 이를 통해 봉사의 의미 새기고 중국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하나, 둘 넘어감에 따라 진짜 Happy Mover가 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Orientation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시간이 적었고 술을 마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있었더라면 팀원들과 더 가까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처음의 어색한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로써의 술은 상당히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2박 3일의 Orientation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 진짜 Happy Move의 시작이었다. 팀의 옷을 맞추고 연극을 위한 준비물을 마련하고 1 day before MT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팀장이어서 그런지 혼자 바빴다. 단체 문자도 최소 30번은 돌린 것 같다. 팀장들끼리 모이는 회의도 몇 번 참석하고 동대문 정찰대를 꾸려서 마크를 맞췄다. 깔깔이도 주문하고 모든 준비사항을 일일이 체크했다.
시간은 상당히 빨리 흘렀다. 어느새 1월 9일이 되었고 우리들은 송내역에 모여서 MT를 떠났다.
이날 나는 지각을 했다. 팀장이라면 누구보다 일찍 나와서 사람들을 맞았어야 하는데 오전에 병원에 가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었다. 그때 난 다리가 너무 아팠다. 며칠 전에 했던 마라톤이 화근이었다. MT 전날에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지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은 덕에 MT 당일에는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 증세가 심해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Happy Move를 망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팀장이라는 명함이 있었고 이 때문에 모범은 못 보이더라도 중간은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었다. 팀원들 앞에서는 절대로 아픈 척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모두 모이자 버스를 타고 을왕리로 GO.
1 day before MT는 즐거웠다. 연극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맛있는 밥도 만들어 먹고 술을 마시며 계속해서 게임을 했다. 여기서 나는 ‘태준이는 Blah Blah Blah'라는 멘트를 날렸다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됐다. 하하. 즐거운 인생이여!
아, 한 가지 빠트린 것이 있는데 박성규, 이 자식아! 바느질 잘 한다며? 죽을래!
농담이다. 모든 일은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또 얼마나 솔선수범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성규에게는 100점을 주고 싶다. 물론 바느질 실력은 -100점이다. 다음에 또 바느질을 하면 손가락을 부러트리겠어.^^
해가 지고 해가 떠서 Happy Move 출발 당일이 되었다. 아침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인원 체크를 하고 여권을 받고 별 다른 행사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잠시 후, 중간 경유지인 상하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멘토님을 만났다. 멘토님은 출발 당일 아침, 김해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김포로 온 다음 인천에서 우리와 함께 상하이로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좋지 못한 기상 상태로 인해 상하이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뒤늦게 상하이에서 합류해 우리와 같이 청두로 갈 수 있었다. 다행이다.
3시간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청두에 도착했다. 내려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의 Size가 예사롭지 않다. 역시 대륙인가 보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금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5 · 12 다리로 향했다. 상당한 규모의 다리가 세 동강 나 있었다. 하지만 지진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마 그 주변에 이미 많은 복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일터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아직도 복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조립식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일부의 주민들은 아직도 지진이 났을 당시의 집, 그러니까 딱 봤을 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상태가 정말 가관이었다. 벽과 지붕 곳곳에는 구멍이 있었고 시멘트 가루를 덮어놓은 듯 뽀얗게 집을 뒤덮은 먼지는 화산이 폭발할 때의 회색빛 재를 떠올리게 했다. 위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장비를 챙기고 간단한 Orientation을 받은 후,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한 일은 건물 주변을 따라 땅을 파는 일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 뒤 얼마 안 돼서, 난 누군가에게 이끌려 공사 중인 건물 내부로 끌려갔고 혼자 다른 일을 했다. 이곳의 일은 바깥쪽의 일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묵묵히 하는 수밖에...
일을 하면 할수록 다리에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계속 절뚝거리며 걸었다. 그래도 일에 방해 안 되게 최선을 다했다. 남자가 아프다고 쉬고 그러면 쪽팔리잖아?
이틀째? 사흘째?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땅 속의 공룡 알 캐기’를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가 철사 돌리기를 했다. 너무 쉬운 일이었다. 대박. 하하. 철사 돌리기를 한 다음에는 철근 옮기고 구부리기, 쇠고리 만들기, 철근 구조물 제작 및 설치 등의 일을 했다. 일의 강도는 그렇게 세지 않았고 Semi-skilled work였기 때문에 누구나 금방 배워서 쉽게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기술도 없는 우리들이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이곳에는 백지 상태의 일꾼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다른 조들은 벽돌을 나르고 쌓기, 땅을 파고 메우기(오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메꾸기’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시멘트 만들기 등의 일을 했다. 흠, 일에 대해서는 특기할 만한 사항이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다리가 아팠기 때문에 살짝 힘들었을 뿐, 몸 상태가 좋았더라면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는 무난한 일들만 있었다. 그러나 여자 분들에게는 살짝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특히 공대여자들에게...하하v
Happy Move 후기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벌써 그리고 이렇게 짧게 끝냈다.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흠,
이제부터는 작업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Habitat 직원들도 포함.
우선 권혜영 간사님. 한국 Habitat의 직원으로서 Happy Move 4기 China 1차를 위해 많이 애쓰신 분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그녀가 구사하는 Communication Manner 속에서 Habitat와 같은 External Activity NGO의 직원임을 추측할 수 있게 했다. 매우 설득적이고 풀어서 설명하는 화법 때문에 매일 저녁 이루어지는 회의에서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관점의 차이니까 Pass.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채찍을 조금 더 적절하게 사용하셨으면 한다. 내가 경영학적 인간이라 그런가? 사람이 너무 부드러우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아래 사람을 다루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권혜영 간사님은 사람의 이름과 기타 신상명세를 기억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계신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China 1차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을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 가면 한번 뵙기로 했는데 그때 맛있는 밥을 얻어먹어야겠다. 그나저나 도대체 권혜영 간사님은 몇 살이시지? 출국하는 날 아침의 통화에서도 나이는 비밀에 부쳐졌다. 갑자기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연하? ㅇㅈㄹ.
다음은 Ben. 명함을 받기 전에는 계속 Ven인 줄 알았던 중국 Habitat의 대장님. 나와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9살? 연하의 예쁜 아내를 데리고 있는데 그녀와의 사랑 때문에 ‘청두’라는 도시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이로 봤을 때, 나에게는 아저씨뻘이 되지만 훈훈한 인상 때문인지 그냥 동네 형같이 느껴지는 사람.
사실 이것이 아니더라도 외국인을 상대할 때는 나이를 잊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들과의 소통에 쓰이는 영어라는 언어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가 나에게는 'YOU'이다.
다시 줄기로 돌아가자.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Ben에게 메일로 보냈는데 아직 보지 못했나 보다. 빨리 읽고 답장을 줬으면 좋겠다. Ben, 형아, 중국에서 고마웠어요!
이제는 Scotty. Happy Move의 모든 여자 분들이 좋아했던 귀여운 청년. 솔직히 잘 생기지는 않았다. 하하. Scotty도 비교적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하다 짬나는 시간에 나의 지난 봉사활동에 관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비롯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Scotty는 자주 나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었는데 그때 말은 못했지만, 너도 좋은 사람이야! Scotty에게 보낸 메일은 비교적 빨리 답장이 왔다. 그 메일 안에는 내가 떠난 뒤, 일터에서 Lihong과 같이 일하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Lihong이 누구냐고? Lihong 이야기는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Kevin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Kevin은 고슴도치처럼 생긴 중국 Habitat의 coordinator. 분명히 착한 것 같은데 말을 차갑게 한다. 따듯한 가슴을 지녔지만 반항하는 사춘기 중딩이라고나 할까?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한번은 내가 아픈 다리에 맨소레담을 바르고 찬물에 손을 씻는데 잘 안 씻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합 장소로 쓰이던 천막에 있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로 손을 씻었는데 지나가다 이것을 본 Kev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what are you doing with drinking water!' 느낌표를 붙인 것은 분명히 격양된 억양이었기 때문이다. 거친 반응이었다. 이것 말고도 마지막 날인가? 우리 팀원들에게 뭐라뭐라 기분 안 좋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데 이런 성격은 꼭 고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NGO 직원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떠나는 마지막 날, Ben과 Scotty는 공항에서 끝가지 환대 받으면 Happy Mover들과 작별을 시간을 가졌다. (헹가레를 높게 하기는 했지만) Kevin은 형식적인 인사를 남기고 먼저 그리고 쓸쓸히 공항 밖으로 사라졌다. I wish Kevin changes his character.
이제 Lihong!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낸 중국인 아저씨. 우리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일하는 내내 서로의 이름이 외쳤고 항상 같이 일했다. 마지막 날에는 띠띠, 꺼꺼? 이게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중국어로 형, 동생하고 부르면서 지내기도 했다. Lihong은 시골 사람이라 그런지 착하고 순수하며 정이 무척 많았다. 정말 좋은 사람이다. 이곳 리투아니아로 오기 전에 베이징에 있을 때, 그와 같이 찍은 사진을 현상해서 편지로 부쳤다. 잘 도착했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세계일주할 때, 꼭 다시 만날 것이다! 대구 시민 재훈이는 부정적인 의견이었지만 나중에 같이 사진 찍고 꼭 보여주겠어. 하하.
마지막으로 ShinLi. ShinLi는 우리 Work Place의 Captain이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이틀째부터 그 주도권을 Lihong에게 빼앗겼다. 그 이후로 ShinLi는 줄곧 구석진 곳에서 혼자 일하곤 했는데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전형적인 순박한 시골 청년. ShinLi에게도 편지를 보냈는데 잘 도착했을지 모르겠다. 너의 헬멧은 정말 매력적이야! 세계일주할 때, 꼭 다시 보자!
이렇게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교감을 하는 데 있어서 언어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상대방과 대화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약간의 적극적인 자세와 약간의 미소 그리고 약간의 얼굴에 깐 철판만 있다면 세상 그 어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Lihong은 한국어와 영어를 전혀 할 수 없었고 나는 중국인 배 속의 태아와 비슷한 수준의 중국어를 구사했지만 우리들은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다. 이것은 지난 여름의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숙식 이야기를 하겠다.
호텔은 샤워실 동시 접속자 수가 많을 때, 빙하수가 나오는 것을 빼고는 전부 괜찮았다.
번외로 밤에 우리 팀원들이 내 방에서 놀고 나간 후, 초토화된 그 형상을 보면 가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다음 날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렁각시(House Keeper)가 깔끔히 청소를 해놓은 방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기도 했다.
문제는 음식. 사천음식은 정말 나에게 안 맞았다. 물론 잘 먹기는 했지만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배고파서 먹는 것이었다. 지난 몇 번의 해외경험을 통틀어 나한테 안 맞는 음식이 있는 곳은 여기가 처음! 그래서 인지 중간에 폭설주의보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사제를 먹고 폭설은 멈추었다. 약을 주신 권혜영 간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Appreciate!
숙식을 종합했을 때, 내가 내리는 평가는 ‘과하다’이다. ‘좋은 호텔에서 묵고 좋은 식당에서 먹는 저녁이 과연 해외봉사단에게 어울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물론 식당이나 호텔 선정의 문제에 있어 이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이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지의 문제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훨씬 더 해외봉사단에게 어울리는 그런 숙식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절약한 돈으로 피해 주민들에게 하나라도 더 베풀었다면 어땠을까? 모두들 서류에서 아니면 면접에서 중국에 갔을 때,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고 어떤 곳에서든 잘 수 있다고 한번쯤은 이야기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말보다는 실천이 되는 사회. 앞으로 Happy Move에 좋은(?)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Work Place에 관련된 마지막 이야기로 ‘문화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일을 시작한 지 4일째 됐을 때, 우리들은 팀별로 준비한 노래, 춤, 연극 등을 마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문화공연 시간을 가졌다. 우리 팀은 ‘흥부와 놀부’ 연극을 하였는데 중간에 방송사고가 있어서 잠깐 끊겨서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괜찮았던 것 같아 만족한다.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 그 대사. ‘뚜즈하오바오’.
모든 팀 중에서는 품바인가? 하여간 그 팀이 제일 잘한 것 같다. 신나는 노래와 역동적인 율동. Item Selection이 좋았다. 이에 비해 우리 팀은 상대적으로 난해한 Item을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잘했다. 수고했다.
어느새 7일에 걸친 봉사활동이 끝났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뒤를 보면 시간은 정말 빨리 흐른다.
수료식을 마치고 아쉬운 작별을 시간을 갖은 후, 우리는 염성으로 이동했다. 4시간?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염성의 5 stars 호텔. 정말 대박이었다. 최고급 시설. 별 5개 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에는 황홀한 조식을 즐겼다. 그 후에는 기아 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는데 나에게 이런 공장 견학은 처음이었다. 완전 깜놀. 자동차를 조립하는 로봇들이 너무 신기했다. 재호는 산업시찰을 많이 다녔는지 ‘시찰의 고수’다운 멘트를 날렸다. ‘역시 규모가 클 수록 멋있는 것 같아요’. 나도 조선소나 제철소에 가고 싶다!
공장견학을 마치고 최종 목적지인 상하이에 입성. 이곳에서는 관광의 시간을 가졌다. 첫 관광지에서 나의 군대 후임이자 친구인 짱꼴라, 강문구 씨를 만났는데 그 만남의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한 시간 정도 봤나? 나를 보기 위해 상하이의 구석진 상하이 교통대학교의 기숙사에서 한 시간을 넘게 달려왔는데 왕복 이동 시간의 반도 함께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So sorry!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꼴라도 점심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쁜 기상으로 비행기가 연착되어 나와 거의 같은 시간에 인천에 도착했고 그로 인해 우리들은 인천에서 한 번 더 상봉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상하이의 대표적인 명소 여러 곳을 방문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역시 Shanghai World Financial Center. 상하이의 성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101층의 마천루는 Happy Mover들을 압도했다.
여기서 잠깐, 이번 해외봉사를 통해 알게 된 중국은 내가 막연하게 (여병이가 이것을 보면 기분이 살짝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얕잡아 보던 그런 중국이 아니었다. 중국의 Software Power는 이미 각종 매체와 한국에서의 대학생활, 홍콩 탐방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Hardware Power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대한 건물, 교량, 도로 그리고 발전된 도시의 모습, 서울을 뛰어넘는 현대적인 분위기 등은 ‘내가 생각하던 중국은 어디에 있나?‘ 라는 의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도농격차는 역시 중국의 큰 문제!
G2라 불릴 정도의 Super Power로 성장한 중국. 인구 13억의 이 국가는 지구촌 곳곳에 China Town을 형성하고 있으며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지역에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의 절대적인 채권국가로서 이를 쥐락펴락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평가절상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나라이다.
그런데 중국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 5,000만의 작은 나라. 아무런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세계 굴지의 기업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며 현재 G20의 의장국으로써 세계 속에서 당당히 약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세계 수출 10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너무 국수주의 적인 시선인가? 어쨌든 I am proud of me as KOREAN.
너무 많이 갓길을 달렸나 보다. 다시 Be back.
마지막 날 밤에는 호텔에서 맥주와 함께 우리의 아름다운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한 번씩 돌아가며 장기자랑을 했었는데 멘토님의 ‘소녀시대’는 정말 잊지 못할 것같다. 다른 사람들의 장기자랑도 다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날, 비행기가 취소되어, 한때 집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거짓말처럼 너무 정시에 인천에 도착하고 말았다. 사실 그때 난 비행기가 취소되길 기도하고 있었다. Happy Move가 빨리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상하이에서 하루 더 머물며 좋은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공항에서 사진을 찍고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맞이했다. 차 시간이 다된 수민이부터, 하나, 둘씩 공항을 떠나갔다. 20, 19, 18, 17... 점점 남아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
나와 여병이, 성규, 우중이는 같이 수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가는 도중에 갑자기 띵 받은 우리들은 My home 근처 치킨 집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술자리를 끝내고 집이 가까운 우중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My home에 가서 뜨거운 밤(?)을 보냈다. 아마 승희한테 show를 했더랬지?
이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Happy Move는 막을 내렸다.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풀고 나니 왠지 서운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엉엉.
우리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나의 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과 Happy Move에 대한 내용이 남아 있다.
우선 사람에 대한 이야기부터. 멘토님과 여병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가, 나, 다 순서이다.
김동두 멘토님. 현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사과에 근무 중이시다. 엄청난 체구의 소유자이지만 그에 걸맞지 않는 소심함을 가지고 계신다. 성격이 조용하셔서 그런지 팀원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하신 것 같다. 팀장으로써 내가 조금 챙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죄송스런 마음뿐이다. 그나저나 청두 공항에서 만드신 여자 친구 분과는 자주 연락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하하. 나중에 울산 가면 맛있는 거 사주세요!
중국인 유학생 여병이.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코 밑에 있었던 흰색의 괴물들. 피부약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이 역시 그러지 못했다. 원래는 그저 그런 사이였다가 염성에서 같은 방을 쓰고 나서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병이는 남자 볼매인 것 같다. 이유는 글쎄. 같이 있어 보니까 알겠더라. 이상한 생각은 금물. 난 여자가 좋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 여병이가 청두 공항에서 징거버거를 먹는 사진이 있는데 정말 대박이다. 햄버거랑 싸울 기세다. 나중에 모델해도 되겠다. 하하. 한국 가면 징거버거 하나 사들고 여병이 자취방에 놀러가야겠다. 아, 그리고 최근에는 내 베이징 여행의 계획을 세우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줬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한 마디 하겠다. ciecie x 999999.
기흥이. 우리 팀의 기쁨조. 여자 분들이 Miniature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고 싶다고 난리를 치게 만든 장본인이다. 툭툭 던지는 말에 모두들 쓰러졌다. 전공은 철학과인데 역시 전공은 못 속인다고 개그와 개그 사이에서 던지는 말들을 유심히 들어보면 생각의 깊이가 묻어나는 멘트들이 조금씩 들어 있다. 외모는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을 닮았다. Do U agree?
다정이. 이대 다니는 여자. 외고 출신으로 젊은이(Germany)에 능하다. 맛집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안경을 벗는다. 청두에서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현재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다. 하루 빨리 좋은 결정을 내려서 탄탄대로를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정아, 잘 될거야, 파이팅! 근데 치아교정은 사기 당한 거 아닌가? witz!
인회. 살짝 어리버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일단은 하고 본다는 도전 정신(?)같은 것이 있고 또 열심히 한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 중에서 나를 가장 많이 챙겨줬다. 이래서 더 마음에 든다. 작게는 자기보다 윗사람, 크게는 주변 모두를 잘 챙기는 타입인 듯. 아닐 수도 있다. 인회야, 맞니?
춘강이 형님. 형님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형님. 우선 OT 때, 연장자임을 자처하며 Ice Cream을 쐈다. 또 MT 장소 예약 및 부직포 등을 준비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보여준 바람직한 연장자였다. 깎지 않은 수염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그가 부르는 노래는 더 매력적이다. 임창정 싸다구 500대는 때린 듯.
태은이. 대부분의 남자들이 인정한 햇빛타죠 공식 볼매. 나는 태은이에게 얼굴에 낙서를 한 이후에 볼매가 됐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해도 즐기는 태도와 낙천적인 사고, 순수함 + 어리버리함이 시너지를 일으켜 볼매가 된 듯하다. 추가로 웃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그냥 얼굴에 찍은 연지, 곤지 때문에 볼매가 됐다고 해야겠다. 일터에서는 통역사로서의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 점수를 매기자면 20점? 하하. 태은아, 이건 농담이고 그냥 30점 줄게!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하렴.
수현이. 공순이. 평촌에 산다. 평촌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곳을 촌이라고 놀렸지만 같은 안양 출신으로서 이곳을 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모두들 앞에서 평촌은 촌이 아님을 짚고 넘어 가겠다. 사실 평촌 사람들은 돈 좀 있다. 따라서 수현이도 돈이 좀 있다? 작업장에서 재훈이에게 쿠사리를 먹으면서 계속 불평했는데 그래도 할 일은 잘 하더라. 나와 같이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수현이는 그 목적지는 체코이다. 기회가 되면 유럽에서 한번 보려고 하는데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수현아, 교환학생, 알차게 잘 보내렴!
성규. 최악의 재봉사. 위에서도 말했지만 한번만 더 바느질하면 손가락을 부러트리겠어! 중국에 가기 전에는 일터에서 엄청난 삽질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조용하지만 허풍은 심한가? 하하. 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다. 성규는 정말 조용한 캐릭터이다. 나는 이런 성규를 activate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살짝 거칠게 다뤘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성규의 굴욕’. 물을 구하러 간 성규는 끝내 호창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완전 지못미. 갑자기 성규는 진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수원 citizen이니까 자주 만나면서 지내야겠다. 끝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키가 크고 싶어 틈만 나면 ‘키 컸으면’을 외치지만 키는 커지지 않는다는 것.
성현이. 첫 인상은 강렬한 바지 색깔. 나처럼 원색 계통의 칼라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나는 주로 포인트를 가방이나 상의에 맞추는 편인데 이놈은 바지에 맞춘다. 홍콩 지오다노에서 샀다는 바지는 꽤 예뻤다. 흠, 누군가 그랬다. 입만 안 열면 멋있다고. 나도 그 말에 동의. 하하. 말투가 특이해서 그런가? 입만 열면 바로 하한가다. 그리고 노래. 와,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고 노래 좀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아스피린. 아무래도 노래가 아니라 실제 약을 구매해서 100정 정도 한 번에 먹어야겠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윤정이에게 꼬리쳤는데, 오래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워낙 장거리 연애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말했지만 금방 깨지면 성현이를 죽여야겠다. 무조건 남자 책임. 근데 너네 그때 밤에 사라져서 뭐했냐? 설마? 헐. 정말? Oh, MY GOD. 어떻게 그런 일은? 부끄러워라. >< 끝으로 좋은 말 한 마디만 해야겠다. 그것은 성현이의 솔선수범에 대한 것. MT날 설거지 머신이었을 뿐 아니라 그 후 다양한 일에 앞장 섰다. 하지만 이것도 윤정이와 버스에 같이 앉으면서 바로 끝났지.
석정이. 부팀장. 애석하게도 OT 끝나는 날,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쳐 Happy Move에 참가하지 못했다. 정말 아쉽다. 왕언니여서 부팀장이 됐었는데 상당히 연약한 캐릭터였다. 또 항상 일찍 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뭘 쓰나. 미안.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에 코멘트가 길어지지는 못하겠지만 따스함이 묻어나는 좋은 친구였다. 현재 우리 클럽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데 누군가 석정이에게 연락해서 클럽에 가입하게 했으면 한다. 한번 햇빛타죠는 영원한 햇빛타죠다.
재훈이. 대구. 나와 같이 가장 일을 많이 한 녀석. 내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이놈의 첫인상은 좋았다. 하지만 MT 때, 한 번 좀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잠깐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었는데 어찌저찌하다 보니 그냥 넘어갔다. 회비를 ‘5,000원 걷나 10,000원 걷나’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는데, 재훈이가 선두가 되어 10,000원을 걷기 시작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그때 어디 나갔다가 숙소에 막 도착했는데 갑자기 10,000원을 내라는 것이다. 솔직히 좀 어이없었다. 아마 공론이 그랬기 때문에 10,000원을 거두었을 수도 있는데 만약 의견을 모아 10,000을 거두기로 했다면 최소한 나(팀장)에게 통지 정도는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나랑 동갑이고 군대를 갔다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일처리를 이렇게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사소한 일에 대해서 너무 크게 썼나. Anyway 이 사건을 제외하고는 다 좋았다. 재훈이도 기흥이 재호와 함께 분위기 Making을 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는데 1류는 아니고 2류이다. 하하. 태어날 때부터 놀부인 녀석. 나와 여자친구를 헤어지게 했고 세계일주에서 나의 앞날을 예견했다.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이놈 때문에 대구는 한번 놀러 가고 싶은 도시가 됐다.
우중이. 봉사하는 기간 동안의 룸메. 인회에 버금갈 정도로 나를 잘 챙겨줬다. 나와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을 텐데 잘 참아줘서 고맙고 또 그것 때문에 조금 미안하다. 여기서 잠깐, 분위기 Making에 있어 재훈이가 2류라면 우중이는 완전 3류다. 가끔 가다 던지는 멘트는 새싹이 올라오는 따스한 날씨를 순식간에 빙하기로 만들었고 아니 땐 굴뚝에 까마귀가 날게 했다. 하하. 교환학생을 가기 전날 전화를 해서 나한테 저녁밥을 사주겠다고 한 녀석. 나중에 한국 가면 내가 사줘야겠다. 너무 고맙다. 끝으로 한 마디. 사람 엿 먹이기에 은근히 능하다. 더 이상 노 코멘트.
수민이. 만화 캐릭터같이 생겼다. 다개국어에 능하고 얇고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살짝 ㅇㅌㅋ의 냄새도 난다. 수민아, 나쁜 의미로 말한 거 아니야! 방어를 하나 하자면 사실 일본에서 ㅇㅌㅋ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허허;; 수민이는 약해 보이지만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데 있어서는 매우 강하다. 고집도 좀 있는 듯. 지금의 지식 흡수 시스템을 어느 한 곳으로 집중해서 두껍고 좁은 분야에 전념한다면 대성할 것 같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 한번 시작하면 뽕을 뽑는다. 아, 수민이는 Happy Move 준비에 있어 많은 도움을 줬다. 쌩유!
다애. 서울대생. 과학고 조기 졸업 외에 전해들은 기타 경력 사항을 종합할 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엘리트이다. 사실 다애의 첫인상은 좋았지만 그 뒤로의 인상은 좋지 않았다. Happy Move를 준비하는 기간에 문자 씹기 1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칙으로 다애에게는 깃대 가져오기 Mission을 내렸다. 그 뒤, MT날 밤에 후발대 마중을 나갔다가 깃대를 가방에 꽂고 합류하는데 다애의 모습을 보았다. 난 탐험가가 온줄 알았다. 다애야, 미안해! 허허, 이 일을 제외하고는, 아, 아니구나, 마지막 날 공항에서 정모랑 한번 또 그랬더랬지? 하여간 나머지는 다 괜찮았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서울대생의 소녀시대.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면 어쩌라는 거지? 난 개인적으로 사람은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에 다음에 다애를 만나면 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하하. 나와 같은 노트북을 샀는데 잘 굴러가고 있는지 항상 걱정이다. 그리고 다애야, 동영상 편집 파이팅! 너무 큰 짐을 맡긴 것 같아 미안하구나.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우리 무조건 1등 하자!!!!!!!!!!!!!!!!!!!!!!!!
정모. 다리가 길다. 어린 나이에 안 어울리게 윗사람들을 챙길 줄 안다. 딱 봤을 때, 손질할 부분이 많은 전형적인, 아니 그보다 살짝 더 철든 불타는 청춘. 열정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싶은 캐릭터. 하지만 우선 군대부터 가라. 아마 네가 군대를 갔다 전역을 할 때쯤이면 나는 세계일주를 마쳤을 거야. 아마 엄청난 내공이 쌓여 있겠지. 무언가를 전수하기에 정말로 좋은 타이밍이군. 그때 많이 가르쳐 줄게! (정확히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정모는 카메라를 시작했다. 좋은 사진 많이 찍기를. 음, 근데 정모에게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다애와 사귀었을 것 같다. 정작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얼레리꼴레리.
수진이. OT 가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그녀. 원래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항상 앞장서서 하는데 이상하게 Happy Move에서는 할 일이 없다며 불평을 해서 문방구에 갔다 오게 했던 수진이. 평소에 멍을 잘 때린다고 해야 하나? 뭔가에 골똘히 생각 또는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엉뚱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교환학생 오기 전에 나와 더 친해지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는데 한국 가면 엄청 친하게 지내야겠다! 너가 귀찮아할 정도로. 하하.
승희. 고대녀. 구수한 입담의 소유자. 난 이런 언변의 소유자가 너무 좋다. 뭔가 진솔한 사람의 냄새가 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난 ‘공공의 적’에 ‘강철중’같은, ‘거북이 달린다’의 ‘김윤석‘ 같은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 승희는 알게 모르게 멘토님을 가장 많이 챙겼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고맙다. 그런데 이것은 의식적이었다기보다는 원래 승희는 서슴없이 모든 사람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인 것 같다. Good. 이제 햇빛타죠의 계주로 자리 매김하였는데 앞으로의 수고를 위해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윤정이. 홍대 미대 다니는 여자. 햇빛타죠의 Happy Move 준비를 위해 가장 열심이었던 일꾼. 진심으로 고맙다. 또 윤정이는 일터에서 유일한 여자 Group장으로 수고하였는데 사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모르겠다. 하하하. 완전 조크임. 특이사항으로는 사진 많이 찍혀 봤음. 이게 아니라면 타고난 모델. 근데 도대체 무슨 모델을 해야 하나? 온몸을 붕대로 감은 미이라 모델밖에는 할 게 없는 것 같다. 조크 2탄. 하하.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이 장난 아니다. 정말 살아있다. 애들이 윤정이에게 클럽 자주 가냐고 물어보면 거의 안 간다고 했는데 왠지 클럽 가면 쉽게 만날 것 같다. 하하. 제주도에서 똥돼지 비계 좀 씹은 윤정아, 멋진 예술가가 되렴.
수아. 우리 총무님. 똑 부러질 것 같은 인상 때문에 총무를 하게 됐지만 정작 셈에 있어서 약했다. 하지만 이건 어려운 것이 아니니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끝까지 총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 수아에게 비트박스를 날린다. 북치기박치기. 아픈 내 다리를 위해 파스 한 봉다리를 쾌척했는데 덕분에 다리가 덜 아팠던 것 같다. 수아야, 고마워! 나중에 생일선물로 맨소레담, 물파스, 케토톱, 트라스트 사줄게.^^ 수아는 남자친구랑 사이가 완전 좋다. 좋은 결실이 있기를 I wish.
마지막으로 재호. 재호는 내가 아는 몇 명의 부산 사나이들보다 훨씬 더 부산Tic하다. 기흥이와 함께 우리 팀의 분위기 Making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기흥이가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현재 싸이월드 클럽에 이름이 ‘힘재호’로 등록이 되어 있을 정도로 힘이 센데 개인적으로 확인은 못 했다. 근데 왠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재호는 햇빛타죠 부산 모임의 중심축이 될 인물. 그 회원은 2명? 3명? 남자답고 의리가 느껴지는 캐릭터 재호.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것 같다.
이렇게 햇빛타죠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번외편으로 5명만 더 하겠다.
우선 기내식 친구 준현이. 인천에서 청두로 가는 두 번의 비행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이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나만 일방적으로 한 것인가? 어쨌든 나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이 조금 있었나 보다. 준현이는 전형적으로 대학교 입학 후, 신나게 논 케이스인데, 사실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들춰보면 뭔가 열심히 해놓은 구석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 녀석이다. 준현이는 나를 보면서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나의 작은 변화는 25살이 되는 겨울방학부터 시작됐다. 준현이도 딱 그 시점에 있다.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사실 25살이든 26살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중심이 있는 자아는 급속도로 팽창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발산의 속도는 자신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울 수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나이에 신경을 쓰는 것은 자체가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 이것은 한국인 모두가 탈피해야 한다. 외국에는 할머니 flight attendant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의 생활이 나이 때문에 신경 쓰인다면 외국으로 나가면 되지 않는가? 넓은 세상에는 좁은 한국보다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이 있다. 하여간 준현이에게 좋은 앞날이 있기를 빌어본다.
다음은 밥친구들.
석정이를 제외한 우리 팀은 21명이다. 그런데 봉사하는 기간 동안에 밥을 먹을 때는 10명씩 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팀장이니까 팀원들을 생각해서 자청하여 혼자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Outsider들의 테이블. 처음에는 혼자 반찬이랑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었는데 며칠 뒤 부터는 오히려 그곳에 간 것이 잘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좋은 밥친구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밥친구들은 준현이와 같은 A팀 출신인 문다희, 박미희, 유은지 이렇게 3명이다. 가, 나, 다 순서대로 고고.
다희. 내가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애와 이름이 같다. 외모는 전혀 다르다.^^ 중국어학과 학생으로 중국어에 능통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훨씬 더 능통한 말빨을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언어의 융단 폭격을 선사하는데 그래서 처음에 조우했을 때, ‘애는, 뭥미’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좋은 아이였다. 개그맨이 어울리는 캐릭터지만 자신은 연극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고등학교 그리고 현재의 대학교에서 연극동아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이어트와 편입을 준비 중이라는데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다희야, 파이팅! 그리고 너 밥 많이 먹어! 밥을 안 먹으면 힘을 못 쓰더랑께!
미희. 나와 가까운 병점에 사는 화장품 파는 아줌마. 문화공연 때, 소녀시대로 남성 Mover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예쁘장하고 살짝 날카롭게 생긴 외모가 도도할 것 같고 콧대도 높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전혀 아니다. 완전 푼수다. 말괄량이가 더 어울리려나? 정말 외모와 다르게 남자도 두 번밖에 안 사귀어 봤다고 하고 나이트에는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했다. 흠, 하지만 너무 안 어울리기 때문에 주변인의 공증을 받은 지금에 와서도 믿기 힘들다. 미희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교환학생을 가는 나에게 선물을 줬다. 그것은 Lip Protector. 그래서 지금은 기존에 쓰던 NIVEA for men을 구석에 처박아 두고 미희의 Present를 쓰고 있다. 미희야, 고마워. 여기서 한국 갈 때, 꼭 선물 사갈게!
은지. Happy Move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서울대생. 현재 농경제학과에 재학 중인데 내 생각에는 그냥 농부가 될 것 같다. 하하. Joke. 나와 인연이 있는(어릴 때 살았었던) 거제도 출신이지만 현재는 나와 인연(I LIKE 곱창)이 있는 신림동에 산다. 은지는 아직도 나를 살짝 어려워하는 듯. 조금 더 친해지면 괜찮아 지겠지? 내 홈페이지에 보면 기아 자동차 공장에서 우중이와 함께 찍은 JUMP SHOT이 있는데, 그 사진을 찍을 당시 사진 오른쪽 저 멀리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서운 세상이다. 현재는 인도 배낭여행 중인 은지. 출국 전날 밥친구 모임에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빨리 한국 가서 은지랑 밥 먹어야겠다.
이렇게 밥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다.
다음은 강은희 과장님. Happy Move 4기, China 1차를 위해 가장 많이 애쓰신 분. 초기 Outsider 테이블에서 4차례 정도 밥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풍기는 대로 엄청 섬세하신 분이시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셨다. 그런데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무엇을 하셨을까 궁금하다. 모두들 팀원들끼리 모여 재미있게 노느라 정신이 없었을 때, 혼자서 적적하시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육포를 가지고 오셨을 때, 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좀 죄송하다. 아, 외로운 관리자의 운명이여. 한국에 돌아가면 밥 사주신다고 했는데 그때 말씀하신 양재동의 유명한 ‘베이징 덕’ 집에 가서 얻어먹어야겠다. 난 베이징에서 베이징 덕을 먹지 못했으니까.
나를 제외한 사람 이야기는 여기까지.
팀원들 중에 누군가가 나를 보고 한국 가면 바로 쌩 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난 보기보다(?) 인간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친한 사람들과는 자주 연락하고 항상 인간관계의 통로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반장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반창회 회장이고 전우회 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Happy Move를 통해 만난 많은 소중한 사람들. 앞으로 내 인생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 보아요!
사람 이야기의 마지막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쯤에 오니 길고 긴 글이 곧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팀장으로 참여한 이번 Happy Move에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기자면 70점 정도를 주고 싶다. 다른 팀원들은 과연 나에게 몇 점이나 줄까? 개인적인 평가에서 대부분의 실점은 지각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우선 MT 가는 날, 병원 가느라 지각을 했고 청두 호텔에서 아침에 우중이와 세상 모르고 자다가 지각을 했다. 이 뒤에도 몇 차례 짜잘한 지각을 더 했다. 시간을 잘 안 지키는 것은 나의 큰 문제이다. 40분 뒤면 시작될 수업에는 절대 늦지 말아야겠다.
이와 반대로 다리가 아픔에도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진짜 아팠지만 진짜 열심히 일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그다지 섬세하지 못하다. Micro보다는 Macro에 가까운 인간형. 그래서 부족한 점이 많았을 텐데 치열한 선발과정을 거쳐 뽑힌 우수한 인재들이라 그런지 모두들 잘 따라주었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Happy Move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 팀원들 너무 고맙다!
대학생 최고의 해외봉사 프로그램 Happy Move. 현대, 기아차라는 대기업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걸맞게 지원이 빵빵하고 그 계획 및 구성이 매우 긴밀하며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정말 놀란 것은 OT 때 받은 명찰 뒤에 써져 있던 승차할 버스의 번호. Macro적인 나에게는 매우 세밀한 작업이었다.
반면 아쉬운 점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봉사기간이 더 길었으면 한다는 것. 또 조금 조촐하지만 조금 더 남을 위해서 우리가 가진 자원을 쓸 수 있는 그런 해외봉사단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텐트도 괜찮아요, 관광이 없어도 괜찮아요. 우리는 Happy Mover니까요. 흠, 이건 좀 오바군. 지송.
Jason Mraz의 노래를 끄고 Happy Move, Happy Groove를 틀었다. 꼭 과제가 아니더라도 Happy Move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려고 했던 노래. 과제로 올라간다고 해서 평소보다 녹음도 더 신경 썼다. 좋은 곡이 나와서 다행이다. 하하. ㅡㅡv 10박 11일 간의 모든 일정을 단 4분 안에 압축한 향수의 노래. 아무리 들어도 노래가 정말 신이 난다. 앞으로 우리 모두의 인생도 이렇게 신이 났으면 좋겠다. 활기차고 따듯하고 열정이 있는 Bravo Our Life! 햇빛타죠, 파이팅! Happy Move,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
2010년의 첫 장을 장식한 Happy Move 후기는 이렇게 끝내려고 한다. 다음 장은 무엇으로 장식할까? 오늘도 신나는 일 찾아서 JUMP! 그럼 진짜 이만. 다음에 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