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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를 배울 수 있는 곳 vol.5 국립4.19민주묘지

 

 

 

 

 

국립4.19민주묘지는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다 희생되신 선열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1960년 4월, 온 국민이 하나되어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불태웠던 그 시간들을 되돌아 보면서, 우리 모두 4월의 혼들이 외쳤던 나라사랑과 민주이념의 참뜻을 가슴속에 새기어 진정한 민주국가 발전에 이바지 할 때, 4.19혁명의 자랑스런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 민주정치를 위한 노력 -

1960. 02. 28.  대구학생시위

1960. 03. 15. 부정선거(정부통령 선거)

1960. 03. 15. 마산의거

1960. 04. 18. 고대시위

1960. 04. 19. 시민혁명 발발

1960. 04. 25. 교수단 시위

1960. 04. 26.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60. 08. 13. 제2공화국 탄생

 

 

국립4.19민주묘지 정문을 통해 민주묘지로 들어가게 되면 오른쪽에 4.19혁명기념관이 우뚝 서 있다. 4.19혁명기념관은 영원한 정의 4.19혁명, 꺼지지 않는 불로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은 여러 국민의 열정을 대변하는듯 하다.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불태웠던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모두 4월의 혼들이 외쳤던 애국충정과 민주이념의 참뜻을 가슴 속에 새기어 4.19혁명의 자랑스런 역사를 한 곳에 담아 그 정신을 발전, 계승하고자 민주묘지 내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전시관1층 기념전시공간은 전시관 안내를 하는 도입공간으로 혁명의 의미와 민주혁명 연표 등을 전시한 혁명전야 및 그 날이라는 공간과 각 지역의 시위현장과 민중의 분노, 4.19의 전개와 배경을 볼 수 있는 혁명 그 이후 공간이 있다. 전시관2층에 위치한 교육문화공간은 영상관이자 회의실이나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영상체험관과 다양한 체험활동 및 자료열람을 통해 4.19혁명을 바로 알고 갈 수 있는 4.19 체험교실, 4.19성역의 조망과 휴게공간과 다양한 기획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획전시실, 혁명당시의 유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혁명의 흔적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전시관3층 옥외전망대는 1, 2층 관람을 마치고 계단이나 엘레베이터를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4.19민주묘지의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데크와 천연잔디가 펼쳐진 옥상전망대가 있다.

 

 

     

 

 

관람료(괄호 안 단체 30인 이상) 및 관람시간

 - 무료

 - 개방시간 : 06:00~18:00

 - 입장료 무료 연중 무휴

 

 

찾아가는 방법

 - 지하철 : 4호선 수유역 하차

    6번출구 : 1119

    2번출구 : 강북01

 - 버스 : 104, 151, 1165

 

 

관련교과 및 연령

초등 3학년 도덕 - 나라사랑의 길

초등 4학년 도덕 - 공정한 생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초등 5학년 사회 - 우리 겨레의 생활과 문화

초등 6학년 사회 - 근대 사회로 가는 길,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우리나라의 민주정치

중등 3학년 사회 - 민주정치와 시민참여, 민주시민과 경제생활

중등 3학년 국사 - 대한민국의 발전

고등 2학년 근현대사 - 현대사회의 발전

 

 

추천관람순서

4.19혁명기념관 앞 -> 기념탑 참배 -> 조형물 설명 및 묘역순례 -> 유영봉안소 해설 및 참배 -> 4.19혁명기념관 관람 -> 감상문 작성

 

4.19민주묘지에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애국심 함양 중추기관으로 역할을 다하고자 나라사랑체험학교라는 초, 중, 고등학교 학생대상으로 현장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이나 일반인 개인이나 학교 단체가 봉사활동할 수 있는 방법도 있어 아래 내용을 참고하여 뜻깊은 방문이 되도록 하는 것도 좋을듯 하다.

 

 - 대상 : 청소년, 일반인, 학교, 단체 등

 - 신청방법 : 인터넷, 전화, 방문신청

 - 신청기간 : 봉사활동 예정일 1일전 17:00까지

 - 활동시간 : 오전 09:30~12:30, 오후 13:30~17:30

 - 활동내용 : 환경정화 활동

 - 주의사항 : 경겅한 참배분위기를 위해 슬리퍼, 짧은 치마 등의 복장은 삼가

 

 

     

 

 

 

민주화묘지를 가기 전에 세계의 독립혁명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자주독립의 과정과 그들의 국민성과 목적에 대해 알아보고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비교체험하는 것을 추천한다. 짧게 나마 영국, 미국, 프랑스의 민주혁명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영국의 혁명은 의회를 중심으로 왕권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프랑스의 혁명은 절대왕정을 타도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위의 3가지 혁명을 세계 3대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 영국명예혁명(1688~1689)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 혁명으로 국왕 찰스1세를 올리버 크롬웰이 의 사형집행하고 그뒤에 올리버 크롬웰은 스스로 호국경의 자리에 올라 무자비하고 엄한 청교도식 통치를 한다. 물론 왕은 없었고, 그의 엄한 청교도식 통치는 많은 불만을 야기했고, 그가 사망하자 마자 영국은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를 왕으로 옹립한다.

이후 그가 늙어서 후사가 없게 되자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제임스 2세를 왕으로 옹립하느냐에 대해 의회에서 격론이 벌어졌으나  찰스2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동생 제임스2세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카톨릭 교도로서, 당시 청교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회와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인다. 게다가 조금씩 전제군주적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의회는, 게다가 제임스 2세가 왕자를 얻는 바람에, 제임스 2세의 장녀가 시집가 있는 네덜란드 총독 윌리엄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요구한다. 이에 윌리엄은 제의를 수락하고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 군을 영국에 상륙시킨다.

가족과 의회, 국민에게 버림 받은 제임스2세는 국외로 망명을 하고 사위 윌리엄과 그의 딸 메리가 공동으로 왕위에 즉위한다.

윌리엄이 네덜란드 군을 이끌고 영국의 왕위를 차지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는 외국인이었고, 의회의 지지로 왕위에 즉위한 처지였다. 따라서 그는 왕권을 대폭 축소시킨 의회의 권리 장전을 승인하여 영국에 입헌 군주제와 의회정치의 기반이 마련하게 된다.

윌리엄이 군대를 동원해 제임스 2세를 축출했지만 이렇다할 충돌이 없어서 명예혁명이라 불리고 있다.

 

- 미국독립혁명(1776~1783)

영국의 가혹한 식민 통치에 맞서 아메리카 13개 식민지가 영국의 지배 체제에서 독립한 혁명이다.

혁명 이전 식민지 대표들은 대륙 회의를 개최하여 영국 정부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에 항의하였지만, 정작 영국은 묵살되었고. 이에 분노한 아메리카 거주인들이 일으킨 사건이 바로 보스턴 차 사건이었고, 이 일을계기로 영국과 무력 충돌, 즉 혁명의 도화선이 되게 됩니다. 무력 충돌이 발생한 후에 제2차 대륙회의에서 그 유명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여 독립을 발표하고, 이를 이끌 총사령관으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임명한다.  

처음에는 전세가 불리하였으나 에스파냐, 프랑스 등의 지원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요크타운에서 대승을 거두고 파리 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됨으로서 혁명이 성공리에 끝나게 되었고, 세계사에 미국이란 국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 프랑스대혁명(1789~1794)

프랑스혁명은 엄밀히 말해 1830년 7월혁명과 1848년 2월혁명을 함께 일컺는 말이지만 대개는 1789년의 혁명만을 가리킨다. 이때 1789년의 혁명을 다른 두 혁명과 비교하여 프랑스대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프랑스의 구제도인 앙시앵 레짐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평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켜 마침내 1789년에 봉기하게 하였다.

프랑스 혁명은 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렸지만 혁명 후 수립된 프랑스 공화정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쿠데타로 무너진 후 75년 동안 공화정, 제국, 군주제로 국가체제가 바뀌며 극도로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지속되었고, 이어진 두 차례의 혁명은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프랑스 혁명은 크게 보면 유럽 대륙의 역사에서 정치적인 힘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에서 시민에게 옮겨지는 역사적 과정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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