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벚꽃축제와 군항제를 다녀왔습니다!
꽃마차가 활짝 핀 벚꽃나무 사이로 뻗어나간 도로 위를 관광객을 싣고 시원하게 달린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느라 진해의 시가지는 온통 벚꽃의 향현(響絃)이었다. 마침 의장행렬이 시작되었는지, 군악대의 요란한 악기 소리가 들렸다.
고둥, 소라, 북, 장구, 피리, 소고의 요란한 전통악기소리와 함께 오색찬란한 깃발과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취타대의 행진을 시작으로 갑옷과 칼 그리고 창을 든 장군과 병사들이 거리의 양쪽에 구경나온 수많은 인파들의 사이로 보부도 당당하게 걸어간다. 그 뒤를 섹스폰, 클라리넷, 트럼펫, 호른 등 현대군악소리에 맞춰 한국군을 비롯한 네덜란드, 뉴질랜드, 프랑스, 스코트랜드 등 외국군대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들은 진해 중원로타리에서 공설운동장을 향해 행진을 했고, 수많은 구경꾼들도 그들을 따랐다.
진해공설운동장은 오후 6시 30분부터 <2011 진해 세계 군의장 개막식 및 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운동장의 입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개막식과 본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 인산인해(人山人海)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행사진행요원들이 그들을 통제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입장하실 분들은 저쪽에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쪽에서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행사진행요원들이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들을 향해 소리쳤다. 줄을 찾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저쪽이나 이쪽이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몰려 있었다. 기다림에 지치고 화가 난 사람들이 행사요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기에서 대책도 없이 기다린 사람들은 도대체 뭐요?”
자꾸만 뒤에서 사람들이 계속 밀고 들어와서, 나와 두 노인도 사람들과 함께 맥없이 앞으로 밀려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마치 우왕좌왕하며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큰 짐승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인파에 떠밀려, 두 노인이 자칫 넘어져서 다칠 것만 같아서 나는 가슴을 조렸다. 모처럼 나는 칠순이 가까운 노모와 작년에 이순 잔치를 치른 이모님에게 진해 벚꽃구경을 시켜 드리기 위해, 서울에서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진해를 찾은 것이다. 이름난 국내축제라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예상을 했지만, 벌써 올해로 49회를 맞이한 오랜 전통을 지닌 축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행사진행은 미숙하게만 보였다.
“볼 것도 없네. 조인성 뒤통수나 보려고 여긴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갑시다!”
본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중앙 무대의 뒷좌석에 앉게 된 수많은 사람들은 불평을 하며 자리를 뜨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설운동장으로 간신히 입장을 했지만, 진행요원들이 내외 귀빈을 위한 무대 중앙의 자리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축제 현장을 돌아다녔지만, 일반 입장객을 위한 무대의 배치와 좌석의 배치에 매우 큰 아쉬움이 있었다. 두 노인을 모시고, 나도 자리를 뜨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에 가세해야만 했다. 과도한 통제로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찍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만의 축제는 계속되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등뒤로 들렸다.
“카드는 안 됩니다. 현찰로 주세요!”
본 공연의 관람을 포기하고, 우리 일행이 숙소를 정하기 위해 찾은 모텔마다 주인들은 신용카드를 거부하고 현찰을 요구했다. 축제기간은 평소보다 숙박료도 비쌌다. 그나마도 빈 방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허름한 모텔을 숙소를 정했다. 원래 계획은 진해에서 하루 당일로 벚꽃구경을 할 생각이었지만, 예정보다 진해에 늦게 도착하여 벚꽃이 만개(滿開)한 해군진해기지사령부 소속 군항을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오전 8시 30분. 벚꽃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굳게 닫혀 있던 해군기지사령부 정문이 활짝 열렸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헌병들의 절도 있는 거수경계를 받고 경내를 들어서니, 흰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난 벚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우리 일행은 인간세계에서 신선이 살고 있는 별천지의 세계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젊은 병사들이 정성껏 심어 놓고 가꾸어 놓았을 각종 나무와 꽃 그리고 전시된 그들의 사진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이처럼 싸움과 다툼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줄 아는 그들의 젊은 손에 총과 칼이 아닌, 사진기와 꽃이 들려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언제 불편한 감정들이 있었냐는 듯 마음이 쇄락해졌다. 경내를 두 식경쯤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진해 벚꽃축제의 진수를 한껏 맛보았다. 다음 여정은 진해와 가까운 곳의 김해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가를 들리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