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명성화후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요근래 저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됬어요.!!!!!!!!!!!!!!!
명성황우의 시해사건에서 .......차마 알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알아버려서 너무화가납니다.ㅠㅠ
일본에 대해서 평소 우호적인 측면을 가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일본어 공부를 하고있기에
그냥 잊고있었죠.!!
하지만 명성황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건최근. 노래를 찾다보니 그 노래속 주인공 명성황후에대해
조사를 하게되었는데요. 완전 충격적인.....너무 가슴아프고 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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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르시는분이 있을수도있으니 명성황후에 대한 지식백과^^
명성황후(1851~1895)는 조선시대사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독특한 행보를 보여준 왕비였다. 역사상 권력의 정점에 오른 왕비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들이 권력을 쥔 것은 지아비인 왕이 죽고 난 뒤, 아들이나 손자를 내세워 수렴청정하면서라던가, 아니면 명문가인 친정을 등에 업고 왕을 뒤에서 조종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명성황후는 이전의 왕비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지아비인 고종이 국정을 의논하는 가장 가까운 상대였으며, 외국의 세력들이 고종보다도 더 예의주시했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명문가 친정의 도움으로 왕비 자리에 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왕비가 되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친정세력을 키웠다. 살아 있는 왕보다도 더 주목받으면서 사실상 왕과 권력을 나눠 가졌다고도 보이는 명성황후의 존재는 당시 망국으로 치닫는 조선의 특수상황을 고려하고 생각하여도 매우 특이하고도 경이롭다.
을미사변때 명성황후가 시해될때 기록되었던 문서가 발견됬다고하네요.
" 에조보고서 "-에조라는 사람이 쓴 보고서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의 군인, 외교관, 언론인, 거류민, 낭인 등으로 구성된 암살단은 경복궁에서 조선 침략의 최대 걸림돌인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한 비밀작전 '여우사냥'을 수행하고 있었다.
광화문 등을 통해 궁내로 난입한 그들은 무단 침입을 꾸짖는 고종의 어깨에 무례하게 손을 얹어 주저앉혔으며, 세자의 상투를 잡아당겨 방바닥에 내팽개치고 칼등으로 목줄기를 후려치는 행패를 부렸다. 그들의 행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왕비를 참혹하게 살해한 뒤 기름을 부어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날 오전 9시 20분. 주한 일본공사관 수비대 소속 니이로(新納) 해군 소좌는 본국 대본영 육군참모부에 한 장의 전문(電文)을 보냈다. '극비(極秘)'라는 붉은 낙인이 찍힌 이 전문에는 '국왕무사 왕비살해(國王無事 王妃殺害)'라는 문구가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 라인을 통해 '여우사냥'의 성공을 알린 보고서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전모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별도의 새로운 문서가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별도의 새로운 문서'가 작성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895년 10월 9일.
▲ 에조의 보고서
일본은 독도와 우리나라와 현재 끝없이 갈등을 일으키고있습니다.
우호적인 관계가 절대로 될 수는 없는것인가.
물론 이자료가 아직 그때 정말 그랬는지는 100퍼센트 확신은 못합니다.
하지만 이자료도 또하나의 역사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저는
높게 보고있습니다.
이미 이 내용 아시는 분 있을지도모르지만
모르시는 분도 있을거라 이렇게 올리게됬습니다.
그리고 친일매국노가 110년이 흐른 2005년경쯤?
명성황후 후손들과 무덤 앞에서 사죄를 했다고하네요 ㅡㅡ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3730105
안하는 것만 못합니다. 전 그렇게생각해요.
그냥 이래저래 사과하느니 미안하느니 착한척하지좀 말고
원래 본성대로 가시길.
이상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모두들 즐거운 하루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