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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시작되고 호주에서 끝난 사랑..(많이 깁니다.)

첫톡커 |2011.04.24 23:49
조회 346 |추천 1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이게 정말 사랑이었던건지 싶기도하고.. 아예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인연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쓰는 건.. 정말 제 얼굴에 가래침 뱉는 격이고, 호구라고 놀림받아도 할 말 없을만큼 창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건, 어찌보면 익명성이 주는 조금의 안도감과 이 일을 완전히 마음속에서 털어내버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제 입장에서, 제가 느낀점을 쓰는 글입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제가 나쁜놈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감안하고서라도 쓰겠습니다..

매우 긴 글이 될 것 같네요.

 

이야기는 1년 전, 필리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와 그녀는 필리핀의 작은도시의 한 영어학원에서 만났습니다.

도착 첫 날밤, 고르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두 시간여를 달려 새벽녘에야 도착한 학원.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수많은 별들이 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뭔가 좋은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하더라도 영어공부에 대한 굉장한 열망과 꿈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도 강했던 저였기에, 이곳에서 연애를 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결코 한눈팔지 않겠다고 또 다시 속으로 되뇌이며 마치 군대의 이등병때로 돌아간마냥 최선을 다해 꿈을향해 조금이라도 빨리 한걸음 더 내딛어보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거..

밀어낸다고 밀 수 있는게 아니라는걸 사랑을 해 보신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첫 오리엔테이션 날, 숯기가 전혀 없고 그 때문인지 무뚝뚝하기까지 한 저를 미소짓게 만드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곧 이어진 첫 레벨테스트 때, 저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한 수준 높은 레벨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주목받기 싫어하고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저에게 쏟아졌던 친구들의 관심은 한편으로는 낯설지만 우쭐한 기분도 들게 만들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난 주말 오후,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드립니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그녀가 문법책 한권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묻습니다.

 

"저기요, 저 영어 공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전 사람 낯을 많이 가리는편이고, 누가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먼저 다가가지 않고, 누군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도 밀어내버리는.. 말하자면 조금 답답한 스타일입니다.

그런저에게 단 둘이 쿠보(필리핀의 오두막같은)에 앉아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뭔가 핑계거리를 생각해보려 했지만 미처 그럴새도 없이 그녀는 먼저 저쪽 쿠보에 가 있겠다며 손가락으로 방 가까이 있던 쿠보를 가리킵니다.

상황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예.." 라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아.. 뭐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정신이 번뜩 들어 잽싸게 세안을 하고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전자사전을 낚아채 쿠보로 향했습니다.

그녀와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단둘이 있는 시간도 조금씩 많아져 갔습니다.

 

그렇게 2주일즈음 지났을 무렵, 같이 방을쓰던 형이 이번 주말이 그녀의 생일이라며, 모두들 같이 나가서 축하하자고 말합니다.

사실 그녀와 그 형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 형의 성격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했고, 그 형은 되려 그녀의 성격을 꼬집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 더.. 같은 날 왔던 여자애 중 한명(E 라고 하겠습니다.)이 그녀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는데, 겉으로 서로 내색은 잘 하지 않았지만 이 여자애 도 그녀와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여튼 이런 모든 사소한 앙금들을 뒤로한 채 그 주 주말에 우리는 모두 꽃단장들을 하고 도심으로 나갔습니다.

쇼핑몰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맥도날드를 발견하고는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들어갔습니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그녀가 귓속말로 맞은편에 앉은 E 의 험담을 조금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머지 시간을 모두 E에 대한 험담으로 보냈습니다.

일방적인 그녀의 말이었지만 그러려니 했었지요.

그렇게 다들 나가려는데, E 가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은 먼저 나가있어 달라고 하더군요.

 

영문을 모르던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 나와서 사진도 찍고, 10대 거지들이 경찰에게 반항하는 모습도 구경하며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갑자기 문이 왈칵 열리더니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채로 학원으로 돌아가겠다고 뛰쳐나왔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일단 생일인 사람을 이렇게 돌려보내는 건 말이 안되는 거였기에 택시를 타려는 그녀를 가까스로 돌려세웠습니다.

진정을 시키고는 무슨일인지 자초지종을 얘기해보라 했지만 둘 다 서로 자기입장만을 말 할 뿐..

제 삼자의 입장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를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결국 두 패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E 와 그 형은 학원으로 돌아가는것을 선택했고, 나머지는 그래도 생일인 사람을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으니 조금 더 구경하고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맥주를 한잔을 하면서 얼마동안 얘기를 했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원으로 향하려는데, 경비원이 말하길, 지금은 돌아가는 버스가 다 끊겼고 설령 운이좋아 가더라도 중간에 갈아타는 지점에는 버스가 없을것이라고 합니다.

중간지점에서 허무맹랑하게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조금이라도 번화한 곳에서 묵고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 더 싼 호텔을 찾는 쪽에서 전화를 주기로하고 두패로 나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먼저 저랑 같이 하겠다 말했고, 자연스레 두패가 나뉘게 되었습니다.

둘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저와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고, 그 날 처음 제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녀 이전엔 제대로 사랑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던 저였기에..

사랑에 빠지면 얼마나 미칠 수 있는지를 그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모든걸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여행도같이 가고싶었고, 남들이 하는 모든 거, 그 이상으로 잘 해주고 싶었습니다. 가진거 쥐뿔도 없으면서 뭐 해주고싶은 건 그리도 많은지.. 제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그러고 싶었기에, 정말 그렇게 해 주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기본 4시간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원 방침마저도 어겨가며, 제 수업시간을 2시간으로 줄이고 그녀의 공부를 도왔습니다.

뜨거운 필리핀 햇살아래 그녀의 피부가 조금이라도 상할까, 항상 우산을 들고다니며 그녀가 수업을 마치면 그곳으로 달려가 우산을 씌워주었고, 제가 가져 온 선크림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제 전자사전과 노트북도 동영상 강의를 보라며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 온 모기장도 그녀의 방안에 설치 해 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는 식판을 타고 올라온 개미들이 보일때마다 가서 식판을 바꿔와줬습니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모두 그녀에게 줬고, 그것도 모자라다면 몇번이고 한명한테 더 줄 수 없다던 식당아주머니들을 설득해가며 더 받아왔습니다.

제 수업시간을 전부 그녀의 수업시간에 맞춰 듣고 싶은 선생의 수업도 포기했습니다.

학원밥이 입에 잘 안맞는 것 같다던 그녀의 말에 거의 매주말만 되면 나가서 외식을 시켜줬습니다.

군대에서 다친 손 때문에 왼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하루에 두 세번 팔다리 마사지도 해 줬습니다.

학원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미쳤다는 말까지 합니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노예같다고..

세상에 너만큼 해주는 남자가 어딨냐고.. 여자들조차 혀를 내 둘렀습니다.

실장 사모님은 그녀에게 저를 꼭 붙잡으라고, 세상에 저같은남자 또 없다며 그녀에게 충고아닌 충고를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콧방귀를 뀌더군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반복되던 학원생활에 지루해하던 그녀를 위해 팔라완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망설였습니다.. 그도 그럴법 한 것이, 아무리 제가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으로 단 둘이 여행을 가자는 건 여자에겐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에, 그녀에게 부모님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절대 몸에 손대지 않겠다고.

진심이었습니다. 단지 지루한 일상을 탈출해서 휴양의 천국이라는 필리핀까지 왔으니 한번쯤은 보라카이나 팔라완같은곳에서 휴양을 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팔라완에 가기 전, 마닐라에 들러 하루를 묵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아침일찍 비행기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마닐라에 도착 했을 때, 그녀는 수영복이 필요하다는 얘길 했고, 저는 수영복을 찾아 사방팔방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꽤 늦은시간에 도착한터라, 많은 가게들이 이미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들어가는 수영복매장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수영복이 없다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다보니 밤 10시가 되었고, 결국 모든 매장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됐습니다.

그녀는 수영복도 없이 거기 가서 뭘 하겠냐며 그냥 다 취소하고 학원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붙잡았습니다. 비행기표 다 끊어놓고, 대실료, 액티비티비용까지 모두 지급했는데 수영복 하나 때문에 돌아가자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마련하고, 그 후로부터 계속해서 수영복을 찾아다니던 제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건지 알지도 못한채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그녀의 화를 보며 저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깟 수영복이 뭐길래 모든걸 무르자고 하면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건지.. 그녀의 언성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저도 조금은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자기한테 언성높이는 거냐며 저를 뿌리치고 가버리더군요..

몇번이고 뒤따라가서 그녀를 잡아세웠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럴때마다 그냥 헤어지자고, 괜히 사람들한테 사귀는거 티냈다며 인상을 쓰더군요.

너무너무 허무했습니다.. 정말 수영복 하나가 이렇게까지 날 무안줄만큼 중요한건지, 수영복이 나보다 더 중요한건지..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짐을 쌌습니다. 학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저는 또다시 붙잡았습니다. 이 시간에 학원으로 돌아가는 버스도 없다고. 택시를 타고 가겠답니다.

버스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을 위험하기 짝이없는 택시를 혼자 타고 돌아가겠답니다.

저는 그냥 내가 밖에서 자던지, 다른방을 잡던지 할테니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라고 말했습니다.

싫답니다.. 같은 방을 쓰기도 싫고, 다른방을 잡아주는 것도 싫고, 같이 동행하는 것도 싫답니다.

그렇다고 이 시간에 택시를 여자혼자 태워보내는 건 더더욱 아니었기에, 문앞에서 다시 잡아서 끌다시피하여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는 평생 누구앞에 한번 꿇어본 적 없던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뭐가 미안한지도 모른채.

스스로가 너무너무 한심해보였지만, 그땐 사랑하는 사람위해 무릎꿇고 비는것정도 못할까 하는 마음이 더 컸었답니다.

2시간이 넘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이었는데도 땀이 비오듯 흐르더군요..

그제서야 그녀는 알겠다며, 일어나라고 말했고 화가 조금은 풀린 듯 보였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그녀는 이미 침대위에 골아떨어져 있었습니다.

전 괜히 오해를 사는게 아닐까 싶어 일부러 침대밑 바닥에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편의점으로 달려가 치약과 즉석 도시락, 빵, 치킨등을 사왔습니다.. 어젯밤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아침에 일어난 그녀는 화가 많이 풀려있었습니다.

그녀가 밝게 먹는 모습을 보니 어제의 일이 정말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팔라완으로 가던 비행기안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저에게 키스를 해 줬습니다.

특별한 곳에서 키스를 하고 싶었다더군요.. 그리고 제가 줄곧 요청 해 왔던 호주에 함께 가자던 것도 엷은 미소를 띄며 그러겠다고 약속 해 줬습니다. 기분이 정말 날아갈 듯 하더군요.

팔라완에서 정말 그녀의 몸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전 짐승이 아니었으니까요.. 친구에게 한번 말한적이 있는데 짐승만도 못한놈이라더군요 하하

팔라완에서의 시간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던 길.

그녀는 화장실에 가고싶다고했고, 주변에 화장실이 없는걸 확인 한 저는 어느 건물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잠깐 써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곳 사람들은 흔쾌히 어딘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녀가 볼일을 다 보고 손을 씻으려는 찰나에, 수도꼭지를 틀어주려고 들어가려다 그녀의 가방이 문틀에 살짝 닿았습니다. 긁힌게 아니라 그냥 닿았습니다..

왜 수도꼭지를 틀어주려고 들어가려했냐면요, 그녀는 정말 더러운걸 만지기도 싫어하고, 보기도 싫어합니다.. 한가지 예를들면, 공원벤치나 지하철 플랫폼에 설치된 벤치에는 절대로 앉지 않습니다. 더럽다고.. 제가 어디선가 신문을 구해오거나, 가지고 있던 종이를 깔아줘야지 그제서야 앉습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저는 녹이 슬어있는 수도꼭지를 틀어주려 들어가던 참이었었죠.

그러던 중 가방이 문에 닿았는데,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릅니다..

도대체 왜 들어오냐며... 미쳤냐며...

또 사과퍼레이드가 시작됐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서 수도꼭지를 대신 틀어주려고 했었다고 하니 그걸 왜 틀어주냐며, 자기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손이 없고 발이 없는 것 처럼 행동 해 오던 그녀가 그런말을 하니 조금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여튼 그렇게 또 비행기 시간이 다 되도록 미안하다고 손이 발이되도록 빌었습니다.

순간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즐길거 다 즐기고 이제 헤어지려는 건가..

진짜...... 평생 누구앞에서도 떨어 본 적 없는 애교를 그녀앞에서 떨어가며 화를 풀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웃습니다.

웃으면 지는거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그렇게 그녀는 또 다시 화를 조금 누그러뜨렸습니다.

 

마닐라 도착 후, 학원으로 돌아오던 길..

필리핀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도로도, 길거리도 매우더럽습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저는 그녀에게 택시를 탈 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거절했습니다. 버스타고 가면 된다고. 사람들이 버스타는곳을 알려주었지만 초행길인 저에게 그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또 가드들에게 수번을 물었지만 계속해서 엉뚱한 방향만을 알려주었습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정확한 지명까지 얘기하고선 데려가달라 얘기했지만 전혀 반대방향에 내려다 주더군요.. 그랬더니 그녀의 화가 또다시 폭발했습니다..

왜 더러운 길을 걷냐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 한복판에서 눈물이 그렁그렁거리는 얼굴로 비명을 지릅니다.. 저는 그녀에게 얘기했습니다.

저에게도 이번이 초행길이고, 모든 가드들, 사람들이 엉뚱한 길을 알려주고, 택시기사마저 완전 반대방향에 내려준 걸 나로써도 어찌할 길이 없었다고.. 그래서 그냥 가드가 있는 큰 서점앞에 그녀를 잠시 세워두고 혼자서 또다시 길을 찾아나섰습니다.

경찰에게도 물어봤지만 경찰들도 모르겠답니다.. 말도 잘 안통하고 정말 저도 답답해죽을 지경인데 그녀는 서점앞에서 무서운눈을하고선 저를 째려보고 있습니다.. 하..

그렇게 30여분을 헤메면서 배회하던 제 앞에 버스가 한대 멈춰섭니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어딜가려는 거냐며 버스기사가 묻더군요.

그래서 목적지를 얘기하니 시계를 쳐다보고서는 정확히 10분뒤에 이곳에 XXX 번 흰색 에어컨버스가 멈춰서는데 그걸 타면 된다고 얘기 해 주시더군요.

고맙다고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금방 버스가 온다고 얘기 했습니다.

그녀는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버스를 탔고,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던 중, 또 다시한번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중간지점에 환승을 위해 내렸는데 시간이 꽤 지난터라, 지프니(필리핀의 대중교통 중 하나)버스가 끊겼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물어봐도 가는 버스가 없답니다.

이젠 안봐도 그녀가 뒤에서 절 째려보고 있는게 느껴집니다..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거리도 위험해보여 조금 떨어져 정차중인 일반 차량에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디 태워주실 수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차비는 넉넉히 드리겠다고..

대뜸 저에게 Korean? or Japanese? 라고 묻습니다.

Korean 이라고 대답했더니 문을 열고 내리십니다. 차에 가족들이 다 타고 있는 상태라서 자리가 없어서 태워줄 순 없고, 버스를 기다리던 무리들에게 다가가 따갈로그어로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

그러던 중 어느 청년이 같은방향의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고하여, 그 청년과 함께 버스를 타면 될 것이라고 말해주셨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이런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했을 때, 또 다른 난관이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곳부터 학원까지는 걷기에는 꽤나 먼 거리였기에, 보통은 트라이시클이라는 교통수단을 사용해서 가는데.. 늦은시각이라 트라이시클이 한대도 없었던 것이죠.

학원에서 줄기차게 강조했던것이, 밤에 절대로 그 길을 걸어다니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강도도 많고 사나운 개들도 많아서 자칫하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핸드폰 배터리는 모두 나가서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저는 걷기로 했습니다.

모든 짐을 들고서는 그녀를 업었습니다..

나름 181에 75 로 왜소한 체격이 아니었던 저였음에도 일어나기조차 힘들더군요..

불빛하나 없는 그 골목길을 그렇게 걸어들어갔습니다.

개 짖는 소리, 혹시 강도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차라리 강도라면 다행이지요. 돈만 줘서 보내면 그만이니까.. 그게 아니라 정말 더 안좋은일이 일어나면 ..

모든 근심걱정을 안은 채 거리를 20분정도 걸어 내려가고 있던 중,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나타났습니다.

멈춰서있던 제 옆에 멈춰 라이트를 비춰보니 다행이도 인근 주민이었고, 트라이시클 운전자였습니다.

이 시간에 어딜가느냐며 묻길래 학원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얘기하니 얼른 타라고 합니다.. 정말 너무너무 위험하다며.. 트라이시클을 타고서도 꽤 오랜시간동안을 내려와서야 학원표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저씨에게 고맙다며 차비로 30페소를 주고서 학원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사이가 좀 더 단단해 졌다고 느꼈을 무렵, 그녀는 저에게 자기는 절 사랑할 자격이 없다며 또 한번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영문도 모른 채 몇번의 헤어짐을 통보받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얘기하는 그녀에게 왜 그러냐며 물어보니 자기가 전에 사겼던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조금 안좋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걸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는 없을거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짐작이 갔습니다..

유난히도 스스로 순결을 강조하던 그녀.. 그리고 토론수업때 주제로 나왔던 낙태의 찬반에 관한 그녀의 입장.. 그때 당시는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 했었는데.. 하하..

그래도.. 그래도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였을까요? 대충 알면서도 니가 사람을 죽인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배아도 사람일 수 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낙태를 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평소같았으면 정말 더럽고 불결하다고 생각했을진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일을 겪고서 살아가는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녀의 이런 아픔을 내가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정말 멍청하게도.. 그래서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학원에 친구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같이 방을 쓰던 룸메이트 세명이나 방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3인 1실방을 독방으로 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죠..

그런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학원에 있기 싫다는 얘길 하기 시작했고, 두 개의 센터를 가지고 있던 학원에 다른센터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전 가기 싫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또다시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테고, 간다고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죠..

창피할 게 없고 나만 당당하다면 그냥 있는곳에 머무르는게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어떻게든 학원을 옮겨달라는 얘길했고, 저는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같이 학원을 옮겼습니다.. 떠나는 그 날 저녁, 모두가 저에게 와서 말렸습니다. 가지말라고.

자기네들은 저에겐 나쁜감정이 없다고.. 저도 그들에겐 전혀 나쁜감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제가 그녀를 너무 좋아했었지요.. 그렇게 저흰 다른 센터로 학원을 옮기게 됐습니다.. 

 

정말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너무 길어질 듯 하여 필리핀에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쓰고, 호주의 생활에 대해 써 볼까 합니다.

 

여자로써 저를 따라 호주에와서 같이 동거한다는 거..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둘 모두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동거로써 서로의 의사를 좀 더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호주에 와 달라 요청했고, 그녀도 그에 응했습니다.

그녀는 원래 한국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갖고 있던터라, 그 계획을 수정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모두 제가 부담했습니다.

가져갔던 돈 800만원 중, 필리핀에서 여행하고 외식하고 그녀와 함께 놀러다니는 데에 거의 모든돈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한심하지요.. 공부는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날.. 전 그녀에게 전자사전을 줬고, 워킹비자를 신청해줬으며, 인천에서 그녀가 사는 곳까지 기차표를 예매했고, 한달 후 호주로 오는 비행기표까지 예매를 해 줬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라 얼마 없었지만 20 만원 가량이 들어있던 카드를 쥐어주며 필리핀에서 입맛에 안맞는 음식때문에 고생 많았는데 먹고싶은 것 있으면 한국가서 사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호주의 생활이 제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너무나 힘들었습니다..(지금도 호주에 있습니다만..) 금전적인 면도.. 또 제 내성적인 성격덕에 일 구하는 것 또한 너무나 힘들었지요..

그때 당시 가지고 있던 돈 300 만원가량을 거의 다 쓸때까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다가 올 날이 다 됐고..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니가 여기와서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거 보기 싫으니, 내가 일자리 구할때까지만이라도 한국에 있다가 일자리 구하면, 그때 와 주면 안되겠냐고.

 

그녀는 싫다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 보고싶고, 거지같은 방에 살아도 좋고 못먹어도 좋으니 옆에 있고 싶다 말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너무 고맙기도 했고, 더욱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뒷일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오라고 말했습니다.

헌데, 거지같은 방에 살아도 좋다던 그녀의 말과는 달리 그녀는 화장실은 우리만 따로 써야되고, 외국인쉐어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더군요..

그렇게 시티쪽 꽤나 좋은집을 보러가게 됐고, 집도 깔끔하고 주인부부도 호주인, 한국인 부부라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가격도 그렇고.. 단지 화장실과 샤워실은 일본인 여대생한명과 공동으로 사용해야하는데, 공부밖에 안하는 학생이라 평일과 주말에는 거의 집에 없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하더군요.

좋은 조건이라 생각되어 나오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싫다네요..

일본인 여자가 같이 지낸다는 게 맘에 걸린답니다.

화장실과 샤워실 쉐어를 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당시 하루에 25불짜리 백팩에 묵고 있던 저에겐 하루빨리 쉐어를 구해서 정확한 주소지를 기재할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녀의 고집은 왠만해서 꺾이지 않더군요..

그렇게 그 백팩에서 3주를 보내고 나서야 터키인이 사는 외곽지역의 아파트쉐어를 구해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그 터키인이 모든 조건을 저희쪽에 맞춰주더군요.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도착했습니다.

2주에 420불(45만원정도)되는 방값을 일하지 않는 제가 감당하기 너무 벅차서 집에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기도 몇차례..

집에서는 이도저도 안될 것 같으면 그냥 들어오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계속해서 돈을 달라고 하는건 무리였지요.

그녀는 오페어라고, 일종의 베이비시터일을 하고싶다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그녀가 알아보고 다니는 동안 정말 어이가 없었던 건.. 영어수준은 유치원생만도 못하고 오페어 경력이라곤 쥐뿔도 없던 그녀가 요구조건을 적은 종이를 보니.. 하.. 주당 3, 400불 페이(주 400불이면 프로 내니-오페어보다 한단계 위의레벨- 정도의 페이입니다.), 휴대폰 지급, 교통카드 지급, 운전면허 취득비 지급, 유급휴가, 식사제공, 한국식재료 제공, 방과 화장실, 샤워실 따로 사용, 거리가 멀면 왕복 비행기표 제공등... 정말 프로 베이비시터들이나 요구할법한 조건들을 달아놨더군요..

그리고서 찾은 오페어 집안.. 인터뷰 때 제가 따라가서 최대한 호스트가족의 비위를 맞춰주었습니다..

결국 그녀를 트라이얼로 고용해 본 후 결정하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다음 날 그녀는 그 가정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오페어 맞춰진 시간이 끝나면 차고에 있는 컴퓨터실로 와서 저와 스카이프로 밤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그녀에게 가족들에게 신경을 더 써야하는게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가 보기 싫은거냐며, 오페어는 원래 자기 시간만 일하면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라고 상관없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런 그녀를 가족들이 좋아할리 만무했죠..

결국 간지 이틀만에 방출통보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엄청난 악담과 함께 굉장히 억울해 하더군요..

그녀를 다독여 줬습니다. 저라도 그녀의 편이 되어줘야 했기에..

 

그리고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당장 다음주 방값을 내야하는데, 지금당장 돈이 없으니까 가지고 온 돈이 있으면 조금만 보태주면 안되겠냐고.

남자로써 이런말을 여자에게 하는게 너무나 자존심상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갈수는 없던 상황이라 자존심 다 구기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초기에 그녀는 100만원정도를 들고왔다고 했었지요..

헌데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말은 "나 돈 없어" 였습니다.

100만원정도 들고 왔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거짓말이었다고 하더군요..

멍해져있던 것도 잠시, 다시 집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집도 많이 어려운걸 알았지만 그때당시로는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 갚게 될거라는 깨알같은 믿음 하나만 가지고..

 

그렇게 집으로부터 몇번의 송금을 더 받았습니다.. 아마 대략 300만원정도였던 것 같네요.

도저히 일이 구해지지 않자, 시티와는 동떨어진 시골외딴 지역의 호텔 하우스키핑일에 이력서를 집어넣었습니다.

운이 좋은건지, 이력서를 집어넣은 지 5시간도 채 안되어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당장 인터뷰를 보자고.. 사실 그때 이력서에 기재한 주소가 그 호텔이 있던 근처 주소지를 아무렇게나 기재 한 것이었습니다. 근처에 살면 아무래도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지요.

어쨌거나,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고, 지금은 잠시 시티에 나와있고 금요일즈음에 돌아갈 예정이니 인터뷰시간을 그때로 옮겨줄 수 있느냐 요청했습니다.

호텔측에서는 흔쾌히 알았다며 약속시간을 금요일 오후로 수정 해 주었지요.

정말 이게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이게 안된다면 제가 세웠던 모든 제 미래를 위한 계획에 차질이 생길것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말 그대로 벼랑끝에 몰려있었지요..

제가 있던 도시에서 호텔이 있던 시골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끊는데 두당 500불(58만원)을 지불했고, 총 1000불(115만원)정도에 편도행 비행기표 두장을 끊었습니다.

현금이 없었던터라, 부모님이 주셨던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습니다..

정말 호주에와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부모님의 카드..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결제를 했습니다.

 

첫날밤을 공항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그녀에게 정말정말 미안했습니다.. 공항 카페의 소파에 모기장을 다시 설치해주고 그녀를 거기서 재웠습니다.. 부디 이 악몽같은 시간이 끝나고, 일을 시작할 수 있길 바라면서.

다음날 인터뷰는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벼랑끝에 몰려서였을까요? 영어도 그다지 막힘없이 술술 나왔고, 면접보던 인사담당 매니저와 농담도 주고 받을 정도로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실제로 그 지역에 지낼곳이 없다는 걸 알게되자 매니저의 표정은 금새 굳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네들이 스탭들에게 지급하는 방이 지금 다 차서 없다며.. 방이 없으면 일을 주기는 곤란하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방학이 끝나는시점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인터뷰를 급히 끝냈습니다..

 

중간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별 일이 없었으니.

 

이곳에서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남아있던 100만원과, 그녀가 동생에게 빌린 100만원으로 차를 구입했습니다.

일 지원하기도 한결 편해졌고, 숙소가 없어 걱정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차에서 자면 됐으니까요..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은 더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 운이좋게 다른 호텔에서 일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시급은 25불.. 하우스키핑일이었는데, 하루 8시간씩 주 6일을 일했고, 돈이 필요했기에 투잡을 뛰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저는 한주에 버는돈이 각각 1500불(175만원)가량 되었습니다.. 굉장히 큰 돈이었죠.

이제 여태 빌린돈들 갚고, 저축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은 주당 300불(34만원)이었는데.. 제가 방값은 반씩 나눠서 내자고 얘기했고, 그녀는 자기가 130불을 낼테니 저더러 170불을 내라고 했습니다.

뭐, 그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성깔이 또 한몫을 합니다.

같이 일하던 하우스키핑 여자들과 마찰이 생긴 것이죠.. 결국 일을 시작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서 일을 때려치우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서 방값을 내야 했고, 차에 기름을 넣어야했고, 먹을걸 사야 했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넌 왜 같이 그만두겠다는 배짱섞인 말 한마디 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더군요..

어이가 없었지만 공연히 싸우기 싫어 또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어르고 달랬습니다.

 

그후로부터 2개월동안 그녀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와 있을 시간을 만들기 위해 투잡 중 하나를 그만두고, 호텔일만을 했지요.

주당 900불정도.. 방값 300불에 기름값 50불, 식재료비 100불, 핸드폰요금 충전 50불.. 그외에 잡다한 필요한것들 사다보니 주당 손에 쥐는돈은 많아봐야 250불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일은 힘들게 하는데 정작 돈은 모이지 않고.. 제가 호주에 온 건 그녀를 뒷바라지 하러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개월가량이 흐르고, 그녀에게 한국에 가 있어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녀는 그녀대로 쓸쓸하고 힘들고, 시골이라 혼자 나다닐 수도 없는 상태였고, 저는 저대로 돈은 새어나가고 모이지 않아 또 힘들었고..

그녀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한국에 돌아가서 영어학원 다니면서 영어실력을 좀 더 쌓는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가기 전, 그녀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어서 사전이 있으면 좋겠다던 그녀에게 아이팟터치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줬고, 기차표를 예매해 주었습니다..

한국에 핸드폰이 없다던 그녀를 위해 한국에서 제가 쓰던 핸드폰을 그녀에게 택배로 부쳐줬고, 학원 2달치를 먼저 끊어줬습니다..

그녀는 저를 슬쩍 떠 보더군요.. 신용카드를 자기가 가지면 안되겠냐고..

무슨얘기냐고 했더니 자기를 사랑하면 신용카드는 자기가 일단은 돈이 없으니 한국에 들어가서 조금 쓰면 안되겠냐고 그러더군요.

조금 찝찝했지만 제가 쓰던 신용카드를 그녀에게 쥐어주면서 필요한거 있으면 사서 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제게 종이쪽지를 내밀었습니다.

편지가 아니더군요.. 그동안 자기가 벌었던돈과 차를 사는데 보탰던 돈을 적어놓은 종이었습니다..

차 사는데 보탠 돈 900불과 그간 일해서 번 돈 3500불 정도..

총 4500불정도에서 한화로 환전하면 플러스 되는 차액은 제가 가지고 450만원만 달라고 하더군요..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돈을 떠나 생각할래야 할 수가 없겠더군요..

처음 우리가 만난 날부터 호주에서 떠나던 그 날까지, 그녀가 쓴 돈은 0원이었습니다.. 제가 두 사람몫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아둥바둥 거리며 쓴 돈이 1천만원이 훌쩍 넘는 동안, 그녀가 쓴 돈은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때, 저에게 모자란 공항세 내라며 1000페소(2만 5천원가량)를 준 게 다였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일단은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에도 전 그녀가 공부에 전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온라인으로 책상과 LED 스탠드, 듀오백 의자와 외장하드등 80여만원을 더 결제해서 보내주었습니다... 글로 적으며 느끼는건데 정말 미쳤었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 1주년이 코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녀는 커플링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커플링은 싫다고 합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티파니와 불가리반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모두 개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반지들이지요.. 그리고 쓰던 구찌지갑을 동생이 잃어버렸다며 은근슬쩍 지갑 얘기도 꺼냈습니다. 예전에 가지고 싶다며 루이비통 지갑얘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건, 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였습니다..

저보다 잘나면 잘났지, 못나지 않은 친구와, 피아노 학원원장을 한다는 친구의 여자친구 얘기였습니다.

1주년 이 되던 날, 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커플링을 해 주고 싶다고 했을 때, 여자친구는 사랑하는마음만 있으면 되지, 커플링따윈 됐다고. 어차피 결혼하면 끼게 될 반지인데 뭐하러 돈들여가며 지금끼냐며 차라리 그 돈으로 결혼자금에 보태자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저에게 주구장창 해 오던 얘기가 바로 결혼얘기였습니다..

자기는 나이가 있으니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며 하루에도 몇번이고 결혼에 대해 다짐받길 원했었죠..

그런데 저 고가의 반지들과, 명품지갑얘길 듣는 순간, 정말 이 여자가 나와 결혼을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친구의 얘기가 모든걸 정리해주었습니다..

이미 사준것과, 쓴 돈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간 내가 사랑해서 쓴 돈이고, 내가 사랑해서 사줬던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그녀는 울며불며 자기한테 그런거 다 안해줘도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한번 마음이 돌아서니 다시는 정이 가지 않더군요.. 저는 제 마음을 다시한번 그녀에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녀는 어느정도 수긍을 하는 눈치였지요..

그리고는 다음날 전화에서 자기 동생핑계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일전에 얘기했던 450만원을 빨리 붙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 중 6천불을 한국계좌로 송금하여 카드값을 결제하고나니 440만원 가량이 남았습니다.

일일 이체한도가 100만원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날로부터 5일에 걸쳐, 100만원씩 4번, 40만원 한번을 붙였습니다.

돈을 조금 더 송금한 후 10만원을 마저 붙이겠다고 했더니 됐다고 합니다.. 제가 여태 해준게 있으니 10만원은 그냥 받지 않겠답니다.

더 이상 연락하길 원치 않았기에 그럼 알았다고 말하고는 내 카드와 핸드폰은 집으로 돌려보내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핸드폰은 자기가 일하려면 연락받을곳이 필요하니, 한달정도만 더 쓰게 해 달라 부탁하길래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계좌를 확인 해 봤습니다..

이럴수가...........................

그녀에게 줬던 신용카드, 초기에 발급받은 카드라 한도가 250만원이었고, 결제 예정금액이 대략 60만원정도였는데.. 그녀는 그 당일 하루만에 165 만원을 긁었습니다.. 한도가 초과되어 더 이상 결제가 안되도록 긁었더군요..  

사용 내역을보니 루이비통 지갑 105만원, 학원 등록금 37만원과 교재비등등..

하...... 당장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그녀의 대답은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화가나서 그랬다고..

한도가 더 높은 다른 카드를 줬다면 도대체 얼마나 긁었을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440만원.. 받을 거 다 받고나자마자 다음날 바로 한도가 초과될때까지 긁어댄 그녀를 보니 정말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 자극해봐야 좋을게 없다고 생각되어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몇시간의 설득 끝에, 그녀는 다음날 가서 결제한것들을 취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카드를 쥐어줬고, 제가 비밀번호를 알려줬으니 어느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 당연한일을 고맙다고까지 말해야했습니다..

 

다음날, 그녀는 대부분의 것을 취소했지만 루이비통지갑은 사용흔적이 있어 환불이 안된다고 하더군요.

105만원.. 100일때도, 200일때도 제대로 뭐 해준 것 없었고 1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저도 참 나쁜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으로 주는 내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몇주가 지난 후..

제 핸드폰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가 주지 않았던 그 10만원.. 그거 그냥 핸드폰결제로 필요한거 사는데 썼다고..

하...... 정말 끝까지 이 여자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정말 이 여자와 관련된 모든걸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핸드폰? 그거 그냥 가지던지 버리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잔금결제하고 바로 해지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몇일 후에는 메일로 인간쓰레기라느니 양아치라느니 하는 메일이 날아왔더군요.. 

 

이젠 무섭기까지 합니다..

연애 경험이 없어서 그간 퍼줬던 모든것에 대해 다시금 후회가 들기도하고, 정말 다시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내 꿈 이루기 전까지 여자는 쳐다도 보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 내 마음에 들어와 자리잡을까.. 이번엔 밀어낼 수 있을까 이젠 정말 무섭기까지 하네요...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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