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휑하다. 땅을 밟지 않은 몸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난 것에서부터 안정을 바라는 것은 생물의 본연한 법칙이다. 그럼에도 몇번이고 거스르고 하늘 위에 섰다. 차피 이 생이 끝나는 때까지 반복될 감각에, 이제와 몸사려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안다면 남은 선택지는 순응하는 것 뿐이라, 다시 바람에 몸을 방출한다. 바람날이 몸을 엔다.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고 몸을 노출했을 때 내가 얻은 것은 질병이었다. 공기를 있는대로 들이마시고 폐 속으로 넣었었다. 제 몸뚱이가 틈없이 비춰졌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들이대는 암컷 위에 올라탔을 때처럼 온전히 충동적이었다.
사냥개들에게 승냥이들에게 추적되지 않기 위해 몸을 끌며 숨어다녔다. 한개 버러지였다. 추함을 곱씹으며 더운 숨을 뱉어냈던 기억.
승냥이 꿈은 흉조라 했다. 승냥이를 잡으면 근심과 걱정이 날아간다 했다. 주워들은 낡은 말에 의지할 정도로 초통(楚痛)했다.
다행히 다음날 덜자란 짐승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 시야를 정면으로 향한다. 보이는 건 하늘이다. 이게 하늘이다.
재(灰)의 빛이 아닌 연기의 색. 드는 해는 없고 멀리 보이는 건 건물의 잔해. 구름과 높이 솟은 빌딩, 아래로 보이는 무언가들, 떠도는 공기까지 모두 회색이다. 내가 먼지가 되고서도 바뀌지 않을 광경이다. 시야를 인지했을 때부터 머리 한켠에 자리잡아온, 신들이 만든 땅. 피조물들이 다릴 벌리고 살점을 도려내고 사냥개들에게 청신경을 빨아먹히는 곳. 피와 콘크리트의 잔해가 거리의 전부인 곳. 의심할 여지없는 낙원(HEAVEN).
초점 맞추지 않는 눈을 고정한다. 곧바로 무너질 옛 더미 혹은 공기를 응시한다. 그리고 미(美)를 찾는다. 내게 질병을 선사했던 공기를 다시 온몸으로 맞으면서 미미하게 웃음을 띈다.
완벽한 무에 대해서만은 회색은 광휘였다. 흑도 백도 아니라서 더 튀었다.
das Schöne. 혹은 Ästhetische. 다리 잃은 승냥이 하나가 나를 볼 때마다 버릇처럼 종알거렸었다. 얼마 안 가 한창 패기오른 수컷 한마리가 그 심장을 굽으로 찼다.
비행선 쪽으로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이 이마에서 간질인다. 공기의 인지에 발밑이 뻥 뚫린 듯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가늘게 눈을 뜬다.
쿵.
떨어지는 느낌에 심장이 철렁한다. 그게 좋아 발을 움직인다. 워커가 틀어진다.
쿵.
한번 더 떨어진다. 심장이 다시 요동친다.
의성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살아있는 것의 소리에, 검을 움켜쥔다. 느껴지나? 맥박이 뛰고 있다. 저 아래 회색의 생물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때 버러지였던 나처럼.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직 이 때.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개체에 발 딛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모태이자 혹은 나의 모태였을 지 모를 땅덩어리 위가 아닌 고철 기계의 위에서만. 공기가 사방 갈래로 흩어지고 피가 흔약한다. 아득히 위에서 무언가 쏟아낼 듯 꿈틀거리는 수증기 덩어리처럼, ‥힐트를 욱쥔 손이 아프다.
승냥이떼를 태운 비행선은 가라앉아간다. 몇 번을 봐도 큰 차이점 없던 폐허에 짐승들을 풀어놓는다. 자, 물어라. 뜯어라. 네 송곳니를 시험할 것이다. 그 송곳니를 갈아 네새끼의 뼈를 취하는데 쓸 것이다.
한발자국 나아간다.
시험할테면 해봐라, 사냥개들. 너희 잡것들이 손대볼 수 있는 날도 머지 않았다.
태어난 인간이라면 무릇 품는 숙원은 하나다.
발이 기계바닥을 박찬다. 낙하하는 느낌과 심장이 끝도 없이 요동친다. 공기와 몸 표면이 사정없이 마찰한다. 땅이 가까워진다.
부서져버릴 것 같다. 부숴버릴 것 같다. 쇤(황량함)의 동일성 만큼이나 지겨울 법한 고동에 그저 비식 웃는다. 최대한 굽힌 무릎에 충격이 가해진다. 허벅지에 붙인 배에서 제 체온을 느끼며 가로로 틀어놓은 검집에서 쇳덩이를 빼낸다. 술은 진작에 빼 놨다.
-뇟속을 비워주는 소리가 난다.
지겨웠다면, 마주했겠는가.
지겨웠다면 만끽했겠는가.
시야에 보이는 첫번째의 목줄기를 노리며 그대로 도약한다.
새로웠다면 비웃었겠는가.
새로웠다면 오만히 깔아봤겠는가.
201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