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엔 톡 많이도 즐겨 봤는데, 한번도 제가 글을 쓰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때문에 많은 경험을 하게 되네요.
이야기의 주는 그녀이지만, 두서없이 쓰면서 글이 길어질 듯 하네요.
끝까지 안읽으셔도, 한마디 안해주셔도 좋습니다.
단지 답답한 마음 어느 곳 하나 기댈곳이 없어 맘 속에 혼잣말 터놓고 싶네요.
살아온 이야기, 그녀와의 일들을 전부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 속 꽉막힌 무언가를 뚫고 싶습니다.
저는 평범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린시절 알코올 중독, 의처증,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 어머니와 저는 단둘이 의지하며 자랐습니다.
아직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를 8살, 못견디던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셨고,
일주일이나 어머니를 보지 못한 저는 무서운 아버지께 처음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어디 갔냐는, 언제 오냐는...'
본래 가정이 있었고, 어머니를 데리고 도망와 가정을 꾸려버린 아버지...
자식에 대한 애착이 없었지요...
일주일만에 한마디 꺼낸 저를 외할머니편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아니, 고아원으로 보낸걸 외할머니가 데려왔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그리움도 사랑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단지, 나 또한 그럴까봐...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서 나 또한 그렇게 될까 걱정이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영재, 천재, 주위의 모든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저였습니다.
8살엔 이미 5~6학년과 경쟁을 했고, 5~6학년이 되어선 중3 수학경시대회에 입상하며...
10살이 채 되기 전, 숫자에 관한 특별한 재능을 보여 단기 기억으로 17자리를 기억하는...
범죄의 확률을 보여, 특별 감시대상이 되었지요.
이 모든 것은, 어머니와 함께 살때의 저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8살 때 헤어져, 2년을 외가 친척들에게서 자랐습니다.
정말 또다시 버림받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항상 1등, 반장, 모든 대회를 휩쓸며, 이모들에게서 칭찬을 받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친척들에게서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의 성적은 기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일, 장사, 동생들 돌보기, 등 살림이 우선이 되었고, 어린 아이 숟가락 하나 조차도 버거웠었지요.
결국, 저는 어린 나이에 수없이 나쁜 생각을 했었고, 그 때마다 할머니께서 지켜주셨습니다.
그 뒤로, 어머니께서 다시 찾아와 둘만의 살림이 꾸려지게 되었지요.
쉽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어려운 가정환경에 배움이 없었고, 돈을 벌며 저를 가르쳐야 한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투정도 많이 부렸습니다.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하면, 초코파이 한조각에 두꺼운 양초가 꼽혀있고,
친구들 생일파티에 나오는 피자, 치킨들이아닌 미역국에 동치미가 전부인 생일 파티....
어린 마음에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제가 알게 될까바 일을 다녀오시는 어머니는 새벽까지 참고서야,
주전자를 들이키셨습니다...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것도 제가 알게 될까바....
저도 어머니도 서로만 의지한채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런 어머니께 불효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마보이' 말 그대로였습니다.
어머니만 바라보고, 어머니의 결정에 의해, 어머니의 행복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 제게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사춘기에 접어들며, 무조건적인 반항심리...
다행히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나쁜 생활을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음악'에 빠져버린 제게,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어머니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지요.
어릴적부터 운동을 좋아하는 저는 운동선수의 꿈을 접었고,
음악의 꿈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접게 되었습니다...
한창 공부할 시기에 음악에 빠져버린 저는, 대학에 갈 형편도 안되는 집에 지방대라는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말썽없이 자라준 제게 고맙다며, 남자는 4년제를 나와야한다며 지방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사치라고 생각하며 자라온 제게 한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3학년, 과임원을 하면서 받게된 신입생이었습니다.
자연대계열의 과가 대부분이 그렇듯, 많지않은 여자들중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쳐다보기에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행복한 캠퍼스 생활을 누리며, 그것을 가끔씩이나마 바라보는 저는 미소만 지었지요.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그녀를 만날수 있다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때문에 여자와의 만남에 겁부터 먹는 저였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은 그런 제게 많은 기회와 경험을 주었습니다.
여자와의 만남을 매번 거절하는 제게, 기회가 왔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이 있었던 그녀와, 연락을 자주 하게 되었고, 몇번의 만남도 가지게 되면서..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그녀를 향해 계속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반년만에 찾아온 기회, 4학년 2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2달 앞두고 비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지방대라는 이점이 잦은 만남을 갖게 하였고, 계속되는 구애 속에 썩 내키진 않지만 그녀도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알게 되면서 특히 제 주위에서 많은 축복을 해주더군요.
한번도 여자와 사랑을 해보지 못한 제게, 짝사랑을 하더라도 맘속 깊이 간직만 하는 제게,,,
정말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게되는 여자를 처음 만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는, 취업... 대학생활도 공부와는 인연이 없던 저는 쉽지 않을 길이었습니다.
지인들의 소개로 자리를 옮겨다니며, 어려운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2년...
그동안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고, 위기도 있었고, 많은 일들을 나열하진 못하지만...
그 분의 2년 남은 대학생활... 주말만은 항상 그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생활이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 눈에는 주말부부로 보였겠지요.
활발한 성격에 대학교 인근에서도 자주 소식이 들려와 그녀의 대학 생활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그녀는 정말 일편단심이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첫만남과 티격태격하던 우리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잘어울리는 한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시 그녀와 멀어지는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멀어지고, 일이 많아져 자주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말만큼은 더욱 그녀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저는 부서이동과 함께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지쳐갔습니다. 회사생활에 지쳐가는 제게 그녀도 지쳐가고, 외로운 주말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차츰 만남이 줄어들고, 연락이 뜸하던 제게, 그녀는 자주 불만을 토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밉지는 않았습니다.
평생을 거짓웃음으로 남들에게 밑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온 제게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녀만이 내 마음을 웃게하고 울게하고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거짓으로 살지 않게 되고, 사람을 향해 진심을 말할 수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 집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아버님은 남자친구를 만나는거조차 허락이 안된다고 하는군요.
저는 처음인지라, 그리고 너무 자랑하고 싶었던지라, 처음부터 소개를 했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악영향을 끼칠줄 몰랐지만,,,
어머니, 친척들, 친구들...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전부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곤 그 사람들 전부가 저랑은 맞지 않는 환경에 어울릴 수 없다,,, 영원할 수 없다며....
헤어짐을 강조했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강요했지요...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많은 선자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괜찮은 회사를 오게 되면서부터 더욱 강요가 심해졌습니다.
2년여를 마다하고, 집안과도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할머니의 소원은 제가 가정을 꾸리는 걸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 다니시는 병원의 간호사...
가족들의 대부분 알고 있고, 좋아하는 여자였습니다.
계속되는 할머니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저는 만나서 정중히 거절할 것을 생각...
연락을 하며 계속 만남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선배의 결혼식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여자친구...
역시 이사람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야 된다니,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소개팅녀에게 다음주말에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락하던 것을 여자친구에게 걸려버린 것이었습니다.
미리 말을 하면 분명 서운해 할텐데...
믿고 있다고 해도 화가 날텐데....
그냥 정중히 거절을 한다면,,, 여자친구만 바라본다면...
선자리에 다녀와도 괜찮겟지라고 바보같은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전화로, 문자로, 이별을 통보 받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멍한 기분에... 변명도 핑계도 댈 수 없었습니다.
그냥 빌수밖에,,, 그냥 사실대로 터놓고 용서를 구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바보는,,, 결국 이별을 하게 되었고, 선자리에 다녀왔습니다.
이별을 하게 되면서 잘해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녀 생각에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는 기분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녀 생각에 더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애 첫사랑, 첫이별을 경험하게 해준 그녀를 생각하며....
바보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평상시에도... 모든 일들에 의욕이 없고, 정신이 없는 저는....
바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냥 그녀 생각뿐입니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친아버지의 삶에 같은 피를 가지고 있어도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자친구를 싫어하던 가족들에게 내가 원하는 행복....
세상에 태어나 가정을 꾸리고 평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일만 해야하는 남자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부의 축적, 명예, 다른 것들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행복임을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이별을 한지 이제 1달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점점 잊혀져 가야하는데...
점점 더 그녀 생각에 갈증이 납니다...
아무런... 의지가 없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녀와 함께 예쁜 가정을 꾸리고 싶다, 더 노력해야겠다....
삶의 목표가 전부가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죄를 짓지 못하는 저는...
주위의 권유에도 다른 여자와 같은 자리에도 있지 못합니다....
술에 취해 방안으로 다른 여자가 들어와도,,, 다른 어떤 만남으로든 여자들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 인데....
이세상에서 내가 태어난 것에 감사해주는 사람....
어머니,,, 할머니,,, 그녀..... 3명 뿐입니다.
어머니와는 그녀와의 이별에 한달째 안부도 없이 지내고 있고.....
할머니는 선자리 이후 정말 그애뿐이냐며 한번 보여달라 하시네요...
할머니께서 괜찮다면, 어머니를 설득하시겠다고.....
정작 내마음, 내생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어느 누가 봐도 부러워할 삶을 살길 바라고 있습니다...
집안 대 집안.... 결혼..... 가정환경.....
왜 결혼부터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지고....
왜 나만큼은 어머니에게 상처도 주면 안되고, 어머니 결정을 거스를 수 없게 태어났는지 원망스럽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한번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 불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잘 길러주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원망스럽습니다.
우린 아직 어리고 연애하고 싶을 뿐인데..... 그리고 이렇게 행복하다면,,,
그녀로 인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된다면, 이런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
괜찮은척해도 힘들겠지요.... 일방적인 이별 통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2년 반동안 만나면서 서로 상대방외에는 다른 남는 시간이 없을 생활을 했는데....
보고 싶습니다...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린 제 사랑이.....
이렇게까지 한번에 끝날만큼 그동안 잘해준게 없는 것인지....
정말 큰 잘못을 한것인지.... 이제 믿을 수 없다는 그말....
만나서 확인받고 싶습니다.... 아니 빌고 또 빌어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말.... 멍한 기분에 술로 지내지 않고는 못 버티겠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그녀에게로 달려갈 수 없는 나는....
바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