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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1 귀신이 보일만큼 어렸던 시절. -끝

눈동자 |2011.05.10 06:54
조회 307 |추천 1

제가 이곳에 적고자 하는 글은 100% 저 자신의 실화를통해 적은글입니다. 이를통해 좀더 극적인 공포감을 이끌어내려고 다소 과장되어진 표현들이 있을수있습니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적어도 최대한 많은사람이 나의 글을읽고 내가 처한상황에 공감및 내게 앞으로 끔찍한일이 닥친다면 지워질수없는 정보를 공유하는 이곳 인터넷에서라도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라는마음에서이다.

 

나는 10년째 거의 다크서클이 내눈에서 사라지지않는다.

아무리 수시간을 잠을청해도 내눈은 수척하고 피곤하며 거뭇거뭇하다.

난 내스스로 거울을 잘 보지못한다. 내가너무무섭다.

 

난어릴적부터 굉장히 안좋은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안좋은 일에만 휘둘려살았기때문에).

오늘은 내가 어린시절 겪었던 한가지 이야기를 하려고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려고한다.

우리집은 내가어린시절 시대의 흐름을타고 경기가좋을때(80년대후반~90년대초반) 단순히 시장안에서 작은 가게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부유하게살수있었다. 당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나이(30대초중반)임에도 불구하고 5억이상(당시에는 현재의 10억이상의가치)를 현금으로 가지고있었고 동네 여러집이 우리집소유의 집이었고 우리부모님께서는 젊으신나이에 재개발이될것이라는것을통해 '그집'마저도 구입하게된다.

 

여기서 잠깐, 나의 어린시절집은 30평정도의 그렇게 큰집은아니었다. 서울이었지만 서울스럽지않았다 나의어린시절은. 지금과는 사뭇다르다는걸 내글을통해 읽고계신 여러분또한 느끼실수있을것이다. 나의집은 초록색대문이고 철판으로되었고 손재주가 좋으신 나의 조부께서 직접 페인트칠을하려만든 문이었다. 우리집옆집은 아직도 연탄을 때시어 항상 노란빛갈의 파스텔톤의연탄이 가득쌓여있었고, 우리집앞은 용이 지나간흔적이있는것처럼 커다란 벽이있었다. 굉장히 언덕이었고 경사도 나름있었다. 우리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동네에 많은 옷을수선하거나 재작하는 공장이 많이있었고, 낮에 부모님들이 일을하러가시면 아이들은 대부분 길거리를헤매다가 나와 함께 뛰어놀기를하였다.

 

'그집'은 우리집의 대충짜여진 철판과는 다르게 매우 정교하게만들어진 대문이 있었고, 대문이있는 반대쪽에는 나치표가 있었다. 나치표란, 절표시.. 설명하기 까다로우니 네이버에 검색해보기바란다. 그렇게 정교하게 멋드러진 대문이었지만 집자체는 굉장히 허름해보였다 겉으로보기엔.. 마치.. 컨테이너라는표현이 더어울릴정도로 집같아보이진않았다. 하지만 우리부모님생각은 마치 어차피 허물어질집이고 아파트가 들어서게된다면 평수를 최대한많이가지고있는편이좋겠다하여 그집을 구매하고난후에는 단한번도 들여다보지도 않으셨다. 다만 그전부터 알고있는게 있다면 그집에는 항상 무당이 드나드는 그런곳이었다. 그무당은 머리에 항상 독수리 깃털처럼보이는 길고 커다란 털한가닥을 꼽고있는 중절모를 쓰고다녔다. 진한화장에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 등의.. 화려했다.

 

 

     내가 적을수있는 자세한 묘사및 기억력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나름 최대한 있는그대로적으려고 노력

 

하였다. 그집을 구매하고난후의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우리동네엔 이름인지 별명인지마저 헷갈

 

릴정도로 놀림을당하는 바보라는 사람이있었다. 우리는당시 7~8살이었기때문에 잘알지못했다. 그저 마을

 

의어른들도 그렇게부르기때문에 바보라고 놀리며 돌도 던져보고 욕도심하게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막상 바로앞에 나타나면 도망가기 일수였다. 그자는 마치 조선시대 돌쇠가 환생이라도한듯 굉장히 허름해

 

보이는옷을입었는데 그옷이 마치 몇백년은 되보이는옷이었다. 그 바보는 가끔 큰 차도쪽으로 나가는 골목

 

쯤에앉아서동양을했었던걸로 기억한다(깡통캔을 가지고있었음) 그런모습을보고는 그길을 지나가기 힘들

 

었지만, 난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을하며 무섭게빠져나온적이많았다 실제로.. 그러나 그자는 단한번도 우

 

리가 놀리는것에 대해 해코지나 나쁜짓을 저지르지는않았다. 우리집에서 그 무당이 드나들던집을 산이후

 

우리집 아랫집에서 큰불이났다. 다행인것이 인명피해는 전혀없었다. 다만 그연기가 너무 까맣고 커다래

 

내어린마음엔 그 검정색 연기가 우리를 잡아삼키기라도 할것처럼 무서웠다. 불은 119에의해 순식간에 진

 

압되었고, 그다음날 그무당이 우리집아래쪽에와서 굿을했다. 종소리와 타령비슷한 노래가 우리마을전체

 

에 울려퍼지는것같이 큰소리로 나의 휴식과 단잠을 방해했었다. 난그저 그소리에 매우짜증이나있었고 신

 

기하거나 두려움은 별로없던것같다. 내가.. 밖으로나가서 직접 보고 듣고 하기전까지는..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옆에 나의 누나도있었다. 누난 부들부들떠는것이 느껴졌다. 당시 엄마아빠는 그시간대에 일을하

 

고계셨고 우리와함께있던 할아버지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애들은이런것을 보는것이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계셨던것같다. 근데 그무당은 굿을멈추고 나와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고계셨다.

 

정말 무서웠다. 그눈은 마치 뱀아니라 악어의 눈과같았거나 그보다 더욱 매섭고 분명했으며, 내가 앞으로

 

어떤행동을할것인지 단지 1분 5분이아니라 내평생 겪게될 운명을 꾀뚫어보는것같았다. 난 눈물이났다. 무

 

당은 굿을 더이어하지않고 우리가족을 째려보더니 사라졌다. 나와 가족들은 대체 영문을 알수없었다. 나

 

에겐 그날이 마지막날이었던것 같다. 무당과 이마을을 빠져나가는 바보를 본것은.. 그날밤 난보지못했지

 

나의 누나는 그 바보와 무당을 꿈속에서 만났다. 그무당은 날 무릎꿇치고 이녀석은 당장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꾸짖기 시작했다. 누난 울면서 안된다고했고, 무당이 "그럼 니년의 배꼽을 지져버리겠다" 라는 말

 

도안되는 말을하고 누난 울면서 빌고 또빌었고 그날밤 누나는 그렇게 이해할수없는 

 

꿈을 꾸었다고한다. 당시 나의 누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누나는 상당히어렸고 지금생

 

각해 보아도 누나입에서는 도저히 나올수없는 어른들의 어투와 표현이 누나의 입을통해 그사람말을 대신

 

전하기라도 하듯 내뱉고잇었다. 그리고 난후 우리누나는 괴로운 복통에 시달리게되었다. 여러집을 수소문

 

해보아도 약효가없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병원만이 존재하는게아니라 이상한 한약방이 굉장히많았다.(야

 

매) 사슴뿔을 갈아서만든거라는둥 정말 지금은 있을수없는 이상한약들을 팔았다. 그런약들은 굉장히 소문

 

도 잘나있고 가격도비쌋다. 그런약들을 수소문해 굉장히많은약을 먹어도 누나의 복통은 낫질않았다. 그로

 

부터 이모든 이야기의 전황을 나에게 전해들은 어머니께서는 용한 병원이아니라 용한 무당을 찾아나섰다.

 

경기도 일대의 용한무당을 찾아갈때마다 듣는소리는 "썩! 꺼져"였다. 그들은 뭔가 서로짜고 놀리듯 우리에

 

게 기회한번 주지않고 우리를 괴롭히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엄마는 전라도 전주까지 내려가게된

 

다. 말한번 섞어주지않는무당들이 하도이상하여 시골 깊고깊은 산속에 무당을찾아가게된다. 그곳무당은

 

귀가들르지않는자엿다. 그러나 우리어머니가 하는말씀은 모두알아들었다고 한다. 그리곤 우리에게 앞으

 

로닥칠 안좋은일들과 그것들은 이미시작되어서 멈출수가없다고 하였다. "힘들고 어려운일이 있을때를 삼

 

재라 칭하고 이것만넘기면 행복이온다고 믿는 것이라 한다면, 너희가족들은 인생자체가 삼재이고 죽음으

 

로써 행복을 찾을수있을것이다" 라는 말을 들으시고는 저희어머니께선 울고불고 무당에게 빌며 잘못한것

 

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빌게되신다. 이것이 가능한일인가.. 어머니는 뭔지도모르고 다

 

짜고짜 사과부터했고, 가족을 위한 마음때문이었을까, 그 무당은 부적을 하나 써주게된다. 대게들 상상하

 

는것이 노란바탕의 빨간색으로되어진 부적이지만 어머니가 받아가지고 온것은 달랐다. 부적을 태운것이

 

었을까? 검정색 잿가루였다. 섬뜩했다. 귓가에는 "쳐다보지마"라고 누군가 소리치는것같았다. 엄마는 배

 

아픈 누나와 나에게 그부적인지 잿가루인지를 밥에지어 먹였다. 그이후 누나는 복통이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달쯤 지났을까? 나는 스스로 알고있던 사실인데.. 이제서야 깨닫게된다. 사실.. 동네 살던 그바

 

보아저씨는 누나를 통해 알게되었다... 누나를 통해 동네 사람들이 그바보를 바보라고 부른다는걸 알게되

 

었고, 우리엄마 아빠가 샀던 절표시가있던 집도 무당이 드나든것을 본건 누나뿐이고.. 우리집옆집에 불이

 

나고 몇일후에 무당이와서 굿을한것도... 그저.. 불이나서 사람들이 물건이나 집을 정리할때 도와준다고

 

몰려들었던것인데.. 무당과 바보를 볼수있는건 누나와 나뿐이었다. 지금도.. 그바보와 무당이 우리동네에

 

살았던것은 누나와 내입에서만 오르내리는 일중하나다.

 

우리가 샀던 절표시가있는집은.. 그둘의 영혼에게 필요한 영혼의 집같은 공간이 아니었을까.

 

 

처음으로 이런글을 적어보는데요 굉장히 시간이 오래걸리네요.. 곧 다음내용으로 이어쓰겠습니다.

많은주목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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