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나무던 자작 냄새던 그건 알아서 판단하고
밑에 지리 로드뷰 일단 올릴거임
그리고 내일 새벽 첫차로 고향집 내려가는데 그 옛날에 개발좀 되기전 사진(필름 사진)
있으니 그거 올릴거임... 울 어무니가 말씀해주신거임 글쓴이 시점이 어떤건 간에
일이 있던 시기에 나님은 반바지만한 4~5살이었음 지금은 그 반바지도 못입는 9척 장신이지만...;;
어떤 분이 시체 파는 얘기 쓴거 보고 어릴적에 일어났던 일화가 생각나서 적어볼라함
(사실 4살인가 5살때가 잘 기억은 안남)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시작할거임
때는 나님 대충 4살 5살때니가.. 92년이나 93년 국민학교가 있던 시절임
우리집은 생각보다 많은 부지를 소요한 집이였고 조모부 님 모시고 삼대가 살던 집이였음
큰아부지들이 울 아부지한테 모든걸 떠넘겼음.. 대신 집과 땅을 받으심
암튼 우리집은 농사를 짓던 집이였는데 아부지는 당시 힘든 노동일을 하고 계시고
귀가하시면 농사를 돕고 새벽에 나가는 거의 기계의 몸을 갖고 계심.. 지금도 무적임ㅋ
암튼 그때는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이었음 지금에 비하면 선선한 느낌도 드는
기분 좋은 여름... 이긴 개뿔;; 암튼 여름이었고 지금 서해안 고속도로가 이어지는
길목 근처에 한적한 1차선 왕복 국도였고 40분 간격으로 버스가 오는 그런 곳이였음
울 어무니와 아부지는 주말이여선지 귀향길이나 오가는 관광객
(해나루라는 해뜨는 마을이란곳도 있고 지금 유명하다고 하는 안면도 대천
암튼 거기 가려면 들르는 길목이였음
여기는 차가 막히는 일이란 명절 이외엔 늘 널널한 교통 상황이였고
아~주 가끔 사고도 발생하곤 하던 지역이었음
사주골이라고 귀신 나오는 골목이라고도 부름
지금 이 자리엔 장례식장이 들어와있음
이 이야기를 기억하게된건 5학년 어느 가을 오토바이와 승용차의 추돌 사고를 보면서
다시 선명해졌다
여름하면 수박.. 더운날에 수박
경운기에 수박을 싣고 사주골 앞 버스정류장(정류장 이름 : 도암고개) 앞에서
경운기를 세워두고 파라솔을 세우고 앉아 수박을 팔기 시작했다
막 흥정을 하던 중 충돌 사고가 근처에서 발생 되었다
꽤 출혈이 있던 사고였던지 앰뷸도 오고 파란 경찰차(지금은 백차?)도 왔었고
사고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 수습이 거의다 마치고 있던중인지 근처에 우리 아부지는 잠시 트럭을 끌고
다른데를 가셨고 울 어무니와 나와 둘이 있었다고 한다
옆에 주유소와 편의점이 있던 상당히 개방된 곳이다
경찰 한명이 무언가를 들고 어무니께 다가왔었고
경찰은 말했다고 했다
"이거 고아 드시면 몸에 되게 좋으실거에요"
하면서 핏물이 흐르는 고깃 덩이를 권하고 있었다고 했다
어무니는 소스라치게 놀라 거절하고 가라고 윽박 지르셨다고 했고
경찰은 유유히 사건 현장으로 가서 뒷수습을 마친후 떠났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던 며칠이 지나고 남은 수박을 팔기 위해 계셨던 어무니는
어느 경찰인지 형사인지 다가와서 잠시 묻고 가더랬다
"얼마전에 이 근방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사망한 시신의 일부가
없어졌다 혹시 의구심 가는 사람의 행색을 보지 못하였느냐"
라고 하셨다는 거다... 어무니는 얽히지 싫어선지 아니면 무슨 뜻인지 이해못한듯
모른다고 하셨다고 하셨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나병(몸이 썩어가는 병)과 언청이가 꽤 많았더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얼굴을 보고 수족 개수를 세어보고 멀쩡히 태어나면 무척 감사했었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런 시신 일부가 실종되었다는 일화를
한두번은 더 들은듯 하다...
그때 어무니가 만났던 그 경찰은 과연 누구였을까...
어쩌면 그 형사도 형사가 아니였을지도..
얼마전 예비군 작계를 받으러 고향을 내려갔고 그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소집이 되었다
어릴적에 어무니 손을 잡고 버스를 타러 걸어다닐적에 두돈반(군 트럭)에 앉아있던 군인들이
내게 건빵을 던졌던게 기억난다... 어릴적 생각을 하다보면 참...
희안한 일들이 많았던듯하다
암튼 이 일화는 내가 4~5살때라 기억이 당연히 안난다
경운기의 달달달 거리는 소리와 수박이 쌓여있던건 기억이 나는데...
암튼 사주골과 버스정류장 옛날 사진
우리집 옛날 사진도 아마 사진첩에 다 있을거임
카메라 가방 들고 내려갈려니 벌써부터 짜증나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