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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햄냥 |2011.06.11 13:28
조회 23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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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도 더 전에 보던 에반게리온을 이제와 다시 복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 이건 진심일까 아니면 그냥 쓸데없이 이것도 저것도 하고싶은 마음의 일부일까. 으아, 그런데 지금 TV 시리즈부터 정주행 하고 싶어서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잠시 진정) 

 

이 책은 오타쿠 문화를 통해 일본 및 다른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포스트모던적 사고와 그에 의한 문화소비행태의 변화를 분석한 문화비평서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비평가이자 좌파지식인으로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있다는 아즈마 히로키는, 이 책을 통해 오타쿠라는 말의 어원으로부터 시작해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일본의 문화적 흐름, 세계적인 포스트모던적 사고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그리고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서브컬처(오타쿠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그의 분석과 비평의 틀에 이들 요소를 테트리스 조각처럼 적절하게 끼워넣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비약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없지않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잊게 만들 정도로 명석한 도식을 제시하고 있고, 그것을 독자가 읽기에 흥미롭도록 풀어놓는 글과 말의 재주 또한 뛰어나다. 가히 천재라고 불러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아즈마 히로키가 일본의 오타쿠 3세대를 가르는 기점으로 에반게리온을 꼽았듯 한국형 오타쿠인 일빠들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에반게리온임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는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한 가지 꼭 반박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15년 전에 탄생한 에반게리온이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시뮬라르크를 재생산 (혹은 복제) 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단순히 포스트모던적 소비행태와 맞물려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세계관과 철학이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으로 어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에반게리온이라는 상품의 소비자를 오타쿠로 한정하지 않았을 때 그건 명백하다. 팬들이 공유하는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 및 이론화 시킨다는 점이 오타쿠 문화 속에 있지 않은 그의 평론의 단 한가지 한계가 아닐까. 그러나 내가 소비하는 개별 작품이나 시리즈 하나하나가 사실은 시뮬라르크일 뿐이라고 한다면, 나 역시도 그가 말하는 3세대 오타쿠의 분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애초에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한 가지, 과연 나는 오타쿠인가 아닌가.

 

......그건 그렇고, 중학교 때 내가 애지중지하던 플러그수트 입은 레이 피규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지......

 

내가 미쳤지. 미쳤어. 미쳤구나. 오타쿠에 관한 문화비평서를 읽다가 오타쿠로 회귀하게 생긴 듯. 그러나 복잡한 생각과 걱정은 개에게나 줘버린 채, 내 외장하드로는 지금 사도신생과 E.O.E, 서(序), 파(破)가 들어오고 계신다. 쿠힝힝. TV판은 리뉴얼로 받아서 7월에는 에바 복습해야지. 올 연말까지 Q가 나와 주시면 대박인듸. 쿄쿄.

 

(정신 수습)

 

절대 스스로를 일빠라고 생각 해 본 적 없는 나 조차도 이 책에 나오는 작품과 개념들 중 주석의 도움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 일본문화의 엄청난 장악력과 침투력에 혀를 내둘렀다. 요즈음 한류가 거세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인 루트 없이도 지난 사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시장을 잠식 해 왔던 일본문화의 파급력에 비할 수 있을까. 하여, 특별히 일본문화에 관심있다는 사람이 아니어도 건담과 에반게리온, 세일러문과 디지캐럿 등의 이름에 익숙하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단, 그 상품화 된 문화 자체가 아닌 그것들을 도구로 하여 이면의 사상과 구조를 읽어내는 내용이므로 여기에 관심이 없다면 2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책을 집어던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과 사회학적 소양이 쥐꼬리만큼만 있다면 당신은 이 책에 열광할 것임을 확신한다. 말랑말랑한 소설과 에세이, 뻔한소리 반복하는 자기계발서에 머리가 굳었다면 당신의 뇌를 확실히 깨워 줄 책.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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