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영 친구들.
글빨 떨어진것 같다는 리플에 움찔해서 바로 들어와버린 아베말이야.
그래서 미안하지만, 왠지 오늘의 글은 길어질것 같은 느낌..
오늘도 잔소리 먼저 짧게던지고 시작할게.
첫째, 필자는 귀신같은거 볼줄도모르고 본적도 없는 그냥 겁많고 평범한 사람이야.
둘째, 필자는 상상력이 빈약하고 글재주도없어서 '재미있는글'은 쓰고싶어도 못쓰는관계로 이 글은 기껏해야 개인의 일기수준의 문장력을 벗어나지 못해. 고로, 수준떨어지는 재미없는글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그냥 뒤로가기 눌러주실것을 권장해.
셋째, 하루일과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그런거 없듯이 이 이야기들은 매번 뜬금없이시작했다가 밑도끝도없이 끝나게 될거야. 필자가 여지껏 살아서 글을 싸내고 있는 만큼, 결론도 언제나 '결국무사했음'이 될테고. '비극적결말'의 이야기를 원하시는분들도 '뒤로가기'해주시기를 바래.
넷째, 딱히 믿어달라고 쓰는글은 아니니깐, 본 글의 내용이 내키지 않으신 분들은 그냥 자작으로 치부하고 웃어넘겨주셔도 괜찮아.
그러면 오늘 이야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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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번째 기억. 섬마을.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필자가 고1이었을때,
여름방학에 친구들끼리 어떤 섬마을에 놀러 갔다가 겪었던 일이야.
늘 했던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부동산관련 물의를 빚고 싶지는 않으니깐, 가급적 자세한 지명은 생략할게 양해부탁해.
때는 Y2K 직후 많은 사람들이 지구멸망을 빗겨나간 충격으로 멍~하게 살아가고있던
2000년의 여름이었어.
부실한 몸뚱아리에 성깔만 더러운 캐릭터로서,
희대의 망나니 남자중학교에서 3년의 하드보일드한 생활을 마치고
갓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고1 초기에 그.. 남녀공학 특유의 산뜻한? 알콩달콩한? 그런 느낌에 도저히 적응할수가 없었어.
결국 의도치않게, 고교시절 첫 여름방학은
과거의 하드보일드 미들스쿨 친구들과 보낼수 밖에 없었더랬지.
'초록은 동색'이랬던가.
인문계의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던 막장 고등학교에 들어간 필자와 별 다름없이
함께놀던 중학교 친구들 역시, 거의 모두가 근처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더랬지.
(공고비하가 아니라, 지금과는 달리, 그당시 필자가 거주했던 지역의 분위기는
인문계고에 진학하기 어려운 성적이면 상/공고에 입학하는게 일반적이었어)
아무튼 거의 4개월 만에 만난 중학동창들은 여전히 대부분이 하드보일드했더랬지.
지금생각하면 웃기는 모양새지만, 꼴에 방학했다고 머리는 하나같이 쌔빨갛게(?)들 물들여놓고ㅋ
필자의 그.. 중학교 친구들중에는 사투리가 진~했던 남쪽지방출신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쩌다보니까 그 친구 J의 고향집에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더랬어.
그리고 이틀 후,
볼썽사나운 외모의 16세남자 5인은 새벽녘부터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모여
따뜻한 남쪽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었고.
그렇게 우리의 파란만장한(?) 여행은 시작되었어.
그날의 인원구성은, 나랑 같은 학교의 P, 근처 ㄱ공고의 바보투톱 A와 J,
운좋게 강남의 좋은 고교에 진학해 바닥 석차를 책임지고있던 G. 요렇게 5명이었지.
사실. 친구들끼리만 놀러가는 여행은 처음이었던 탓에
우리 5명은 무지무지 들떠 있었더랬어.
서울에서 출발해, 버스로만 3~4시간, 배로 갈아타고 1시간에, 또 갤로퍼택시로 갈아타고 한참을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었지.
역시 남쪽나라는 달랐어.
당시 그 섬에서는 일말의 관광인프라도 찾아볼수없었고, 제대로된 해수욕장하나 없었었지만,
뭐. 한창뛰어놀 나이의 16세 남자들 5명이서 뭘 한들 재미가 없겠어.
그냥 '해방감'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충분히 행복했더랬지.
J녀석이 초등학생시절까지 보냈다는 그 섬마을은,
한 동네에있는 집 대부분이 부두에 맞닿아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어.
그렇게 넓은 곳도아니었고, 대충 기억해보건데 많아봤자 20가구정도?
굉장히 옛날식 가옥들이 대부분이었고, 군데군데 신식양옥들도 보였던것 같아.
인상깊었던건, 집들 사이에는 스쿠터한대도 지나다니기 힘들만큼 좁은 길만 미로처럼 나있었다는거.
처음 그 곳에 발을 디딘 우리 일행을 맞아준 것은,
부두 위까지 기어올라와 있던
수백마리의 불가사리들과 바다의 온갖 괴생명체 들이었어.
특히 '강구벌레*'라고 불리우던 그것.
J를제외한 서울촌놈 4인 에게는 문화충격 그 자체였지.
(*바퀴벌레와 곱등이를 섞어놓은듯한 외모에 짧은다리가 여러개. 길이는 3~4cm정도. 많게는 천마리정도가 떼를지어 다님)
처음 그것을 보았을때,
당시 우리일행은 모두 '16년 인생동안 최대의 공포'였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었지만..
그것은,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의 서막에 지나지않았지.
J의 고향집은 그 마을에서도,
그나마 부두에서 먼.. 산을 등진 가장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흙으로 만들어진 벽에 대청마루가 있는.. 지리교과서에서나 볼수 있던 그런 집이었어.
그 집에는 어업에 종사하시는 J녀석의 노총각 삼촌과 고령의 조모님 두분만 살고 계셨고.
두 분 모두, 오랜만에 고향에 온 조카(손주)와 그 친구들을 분에 넘칠만큼 환대해 주시고 잘 돌봐주셨더랬지.
다만, 할머님께서는 가끔씩 영문모를 말씀을 하셨었는데,
나중에 J의 삼촌께서 말씀해 주시길,
"치매가 조금있으시다"고 하시더라고.
뭐. 당시에 우리는 '연세가 많으시니까 그럴수도 있지 뭐..' 그런 분위기였지.
그렇게 여행 첫날은, 모래사장있는 해변가는 다음날로 미뤄둔 채로,
하루종일 부둣가에서 줄에 낚시바늘만 달린 요상한 물건으로 물고기를 잡으면서 보냈더랬지.
그리고 그날저녁은 생뚱맞게, 어촌에서 기대도못했던 오리고기를 얻어먹었었고.
..한여름이었음에도, 섬마을의 해는 엄청 일찍 떨어지더라고.
그때가 대충 9시 전후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시간에는 이미 마을 전체가 어둠에 잠겨있었어.
바다 쪽으로는 멀리 등대랑 어선 불빛같은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섬 안에서는,
우리가 머물던 집을 제외하고는 불이켜진 집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더랬지.
밥 먹고, 방으로 기어들어와서
트럼프를 꺼내어 질릴만큼 원카드+포커+훌라를 하다가
"겨우 10신데 이제 뭐하지.." 하고 있던 그 때,
방 한구석에서 한녀석이 크게 지이익-소리를 내며 가방의 지퍼를 열어제꼈지.
필자와 같은 고교에 다니던, 무지 까불거리는 성격의 P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뇌와 비탄에 빠진 우리 일행에게 '한줄기 빛'이 아닌
'한병의 이슬'을 하사하셨더랬지.
이어서, 여기저기에서 무지몽매한 알콜 무경험자들의- 기대에부푼 탄성과,
서울産 안주거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
할머니와 삼촌이 주무시는데 방해가 될것같다는걸 걱정하면서도
순수무개념잉여고딩 5인은 그렇게 광란의 첫날밤을 시작했고.
멋모르고 머그잔으로 소주를 들이켜대던 골빈고딩 5인은
술이 두병도 채 비워지기 전에 전원 실신해버렸더랬지.
그날 밤이었을꺼야.
몇시정도 됐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귓가에 윙윙대는 모기 소리에 잠을 깼던것 같은데
그때 까지도 술기운에 취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수가 없었더랬지.
다만, 사방에서 울리는 코고는 소리로
근처에 친구들이 멋대로 늘어져서 자고있다는건 알수있었어.
어쩐지 다리가 안움직인다 했더니 게 중에 한놈은 내 다리를 베고 자고있었고.
오른쪽아래 대각선 방향으로 그냥 뻥 뚫려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왔더랬어.
다음날을 생각하면, 일어나서 모기향이라도 피워야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여전히 술기운에 몸이 무거워- 팔한쪽 움직이는것도 힘들었던 나머지, 그냥 포기한채로
창밖으로 보이는 처마 밑만 멀뚱멀뚱 쳐다보고있었더랬지.
그때,
누워있던 내 왼쪽 어디선가에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사람 목소리같은게 들렸어.
나는 방 한쪽 구석에 머리를 대고 대각선으로 누워있었으니,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장지문 바깥쪽이라는 것만
그럭저럭 알 수 있었지.
슬슬 어둠이 눈에 익기 시작했을때,
한지를 발라놓은 방 문은,
바람에 열리지 않도록-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놓은게 어렴풋이 보였더랬어.
그리고, 문 바깥쪽에서 들리고 있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던 탓인지,
한지로 된 방 문 바로 앞 마루쪽에
사람이 앉아있는 듯한 실루엣이 흐릿느릿하게 비추어 보이는거야.
느낌상, J의 할머니 같더라고.
술김에도, 할머니가 한 밤중에 마루에 나와앉아 중얼중얼하시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앞서 치매끼가 있으시다는걸 들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누워있었지.
그런데, 한번 잠에서 깨어버렸더니 쉽게 다시 잠이오지는 않더라고.
머리는 아픈데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잠은 안오니깐 자연스레 밖에서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귀에들어오기 시작했어.
사투리도 섞여있었고, 발음도 그다지 정확하진 않으셨어서 다른건 못알아 들었는데,
말 중간중간에 반복적으로
"진숙아.."라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시는건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더랬지.
듣다보니깐, 혼잣말을 하시는게 아니라 꼭 옆에 누구를 앉혀놓고 대화를 하고 계신것처럼 들리더라고.
눈을 지긋이 뜨고 문 바깥쪽 실루엣을 자세히 보려했지만,
뭐.. 방 안팎이 다 깜깜하기도 했고, 집 밖에 제대로된 광원도 없던터라
내눈에 보이는 '밖에 할머니가 앉아계신' 실루엣조차도 진짜인지,
내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어.
그러다가 어느틈에 나는 다시 잠이 들었고,
눈을 뜬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 모두는 바닷가 모기의 공포를 체험할 수 있었지. ㅋㅋ
특히 문간이랑, 창가쪽에서 잔 A와 G는 반신이 회생불능의 상황이었어.
그렇게 여행 둘쨋날은
온몸에서 모기약&된장 냄새를 풍기며 쉴새없이 몸을 긁어대는 두명을 억지로 데리고 해변가로 향했지.
갈때에는 읍내에 일이 있으시다던 J의 삼촌이 트럭으로 태워다주셨지만,
"올때는 알아서 온나"라고 하셨더랬지. ㅋㅋ
아아. 확실히 바닷가는 남쪽이 좋더라고.
당시에는 관광이 그닥 활성화되지 않아서였는지, 가족여행 온 여행객 몇명 외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덕분에 바닷물도 바닥이 보일정도로 깨끗했더랬지.
뭐. 그렇게 우리는, 된장과 모기약 소스를 발라놓은 바보 두명을 바닷물에 데치면서 놀다가 동네 트럭을 히치하이킹해서 겨우겨우 집에 돌아왔었어.
동네에 있던 슈퍼..라기엔 뭣한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는,
딱 두가지. 라면이랑 부탄가스밖에 팔지않았던 관계로,
그나마 해수욕장 비슷한게 있던 해변가 근처 동네에서
겸사겸사 여행 둘쨋날 밤을 불태워 줄 알콜을 조달해오기도 했었더랬지.
딱봐도 고딩애기들일텐데 쿨하게 술도 내어주시고,
역시 시골인심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고.ㅋㅋ(음주는 만 19세 지나서부터 합시다)
그렇게 돌아온 두번째 밤..
우리는 갖추고있던 장비도, 정신상태도 전날과는 달랐지.
학습능력이 뛰어났던 잉여고딩 5인은,
머그컵으로 소주를 마시면 안된다는것도 깨달았고,
잔이 머그잔밖에 없을때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마시면 도수가 낮아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더랬어.ㅋ
그리고 또.. 되도않는 공고생 2인의 고교데뷔 무용담과 남녀공학 2인의 연애담을 안주삼아,
생애 두번째 술판을 시작했지.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하다가보니까..
..아무래도 여름이잖아? 무서운 이야기가 빠질수 없었지.
당시에는 기껏해야 '만득이 시리즈'(어린 친구들은 모르는 분들도 있을듯?)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5명이나 있다보니깐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었지.
그렇게 4명이 이야기를 하나씩 하고, 마지막 차례는 J가 받게되었어.
그런데 J가 꺼내어놓은 이야기는..
불행히도 "빨간휴지파란휴지"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더랬지.
"그러면 내가 진짜 무서운 이야기 해줄까?" 로 시작한 녀석의 이야기는
듣는 16살짜리 고딩들 수준에도 맞지않았고,
당시의 정서에서도 완전 동떨어진 음울한 이야기..
"너네들 아까 부두쪽에서 올라올때 그 집 봤냐?" J가 말했어.
이 동네의 집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던 터라, 우리 나머지 넷은
"무슨 집?"이냐고 되물어 봤지.
"그 왜.. 부두에서 우리집 올라오는 골목 들어서면, 두집지나서 왼쪽으로 돌기 전에 오른쪽에 무너지다만 집 있잖냐"
..나는 기억이 잘 안나서 주위 녀석들의 반응을 봤지.
우습게도 우리 넷 중에 아무도 그런집을 본 녀석은 없는것 같았고.
아마도 다들 노는데에만 정신팔려서, 그런것까지 신경쓴 놈은 없는듯 했지.
..J녀석은 우리 반응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어.
"나 국민학교 다닐때까지만해도, 그 집은 사람이 살던 집이었는데.. 아마 나보다 두살 많았던 누나랑 엄마, 아빠 이렇게 한가족이 살고있었어."
우리 나머지 4명은 아무말 없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지.
"그 누나네 아빠는,
자기 배는 없고 다른 사람 배 일 도와주면서 품삯 받고 일하는 아저씨였는데..
그 아저씨가 탔던 배가 바다에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대나봐..
동네사람들은, 배가 풍랑을 만나서 사고라도 당했나 하고 안타까워했지만,
그 누나네 엄마는 부둣가에 나가서 물떠놓고 밤낮으로 기도를 했었다고하고..
끝끝내 그 아저씨가 탄 배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냥저냥 실종신고가 되어버렸었대.."
기대도 않던 무거운 분위기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우리의 반응을 봐가면서, J는 말을 이었어.
"..그게 내가 8살때 쯤이었다고 들었으니까, 그 누나는 10살 쯤 됐었을꺼야 아마..
아무튼, 그 누나네 엄마는 몇 달동안 부둣가에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어느날인가 보니까 그 집 딸이 안보이더래.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있을때 누군가,
혹시 전에 태풍올때 제 엄마따라서 부두에 갔다가 떠내려간거 아니냐는 말을 지나가는것처럼했고.
그때 근처를 걸어가던 그 누나네 엄마가 그 말을 듣고 잠깐 정신이 돌아왔었나봐.
그리고 그제서야 딸까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히 미쳐버려서 집에 틀어박혀버렸고..
내가 어렸을때는, 그 집 사람들이랑 우리 가족이랑 가깝게 지내서 자주 밥도 같이먹고 그랬었대.
그래서 처음엔 우리할머니랑 동네 사람들이, 말도 거의 안하게 된 그 집 아줌마를 잘 챙겨주고 그랬었는데, 어느날인가.. 그 아줌마가, 남편이 돌아왔다면서 헤죽헤죽 웃고다니면서 집에서도 막 혼잣말을 하고 그랬대나봐."
몰입해서 듣던 우리 중 누군가가 "그래서 정신병원이라도 갔어?" 라며 녀석의 말을 끊어버렸고.
J는 짤막하게,
"아니. 그러고 얼마 지나지않아서 그집에서 목을매고 돌아가셨대.
그리고 그 집은 그 이후로 쭉 비어있는 상태고.
사람이 살지않으니 몇년 되지도 않아서 그렇게 흉물처럼 거의 내려앉았지 뭐."
라고 말하고 이야기를 끝냈더랬어.
생각도 않던 갑작스런 비극이야기에 우리 일행은 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고.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P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한답시고,
"가자! 폐가체험!"
이딴 소리를 씨부려쌌더랬지.
그런데 이 생각없는 녀석들이, 어린 객기에
좋다고 너도나도 가자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더랬어.
이야기를 꺼냈던 J와, 나는 영 불편하다는 내색을 했지만
다섯 중 셋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방에서 후레쉬를 착! 꺼내더니 이리저리 출발할 채비를 해버렸던탓에
나와 J는 또 어쩔수 없이 따라가게되었지.
그렇게 길을 나선 우리 다섯명..
J의 집에서 부두쪽으로 나서는 골목.. 그다지 멀지 않은곳에
그 집은 있었어.
이미 이틀동안 몇 번이나 지나다녔던 길인데 왜 아무도
저 집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었지.
'귀신나온다'는 '흉가'는 아니었어도,
우리 일행의 후레쉬 불빛이 닿는 곳곳엔 폐가 특유의 음습한 기운이 가득했어.
그.. 왜 있잖아.
오래된 집들은
그냥 이유도 없이 여기저기서 삐걱삐걱 소리나고 그런거..
다들 겉으로만 쎈척을하고 속으로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있었던 탓인지,
그 집 앞에 도착해서도, 문 앞에 선채로
아무도 선뜻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어.
우리 중 누군가 부엌으로 보이던 쪽에 후레쉬를 비췄을때,
쥐인지 고양인지 뭔가가 파박-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던탓에,
우리 5명은 숨소리도 내지않고 경직된 상태로 1분 정도를 그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더랬지.
그때, 그나마 까불거릴 정신이 남아있던 P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게 중에 가장 덩치큰 바보 A를 대문 안쪽으로 밀어넣었어.
A는 집으로 밀려 들어가자마자 발밑에 있던 화분인가 분무기인가를 밟고 나동그라졌고.
A의 갑작스런 살신성인 몸개그 덕분에 우리 일행은 단체로 웃음이 빵 터져서,
그제서야 분위기가 얼추 정상으로 돌아오는듯 했지.
그리고, 녀석들은 또 객기를 부리기 시작했어.
갑자기 한놈씩, 집 여기저기로 후레쉬를 비추며 흩어지는 거야.
원래 말도 겁도 없던 G는 오른쪽에 있던 작은방으로 슥 들어가버렸고,
J는 A의 뒤를 따라서 집 한쪽 구석에 있던, 반쯤 무너진 창고로 들어가고,
P는 혼자서 그 집주인 아줌마가 목을 맸다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더랬지.
나 혼자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으려니까 안방으로 들어간듯 했던 P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보며 씨익 웃더니 부엌쪽으로 가보라며 손짓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움직일때까지 그냥 보고있더라고.
아.. 이 빌어먹을 자존심..
별수없이 내키지않은 발걸음을 옮겼어.
혼자.
부엌쪽으로.
나는 속으로
'뭐가 나와봤자 개나 고양이 정도겠지'
라고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누그러뜨리면서
부엌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지.
뭐.
개도 고양이도 없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렇게 다시 뒤돌아서 나오려는데,
벽 건너편에서
쨍그랑-!! 하고,
무슨 유리 깨지는 소리 같은게 들리는거야.
정적을 깨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여기저기 흩어졌던 우리 일행은 동시에 마당으로 튀어나왔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A와 J,
그리고 여전히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수없는 평온한 얼굴의 G는 보였는데
P는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J가 A의 후레쉬를 빼았아들고 P가 있던 안방 쪽 마루로 뛰어올라가는데
그제서야 P가
"아 미안. 깜깜해서 무슨 도자기 같은거 깼다."
라고 말하면서,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걸어 나오더라고.
뭐.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했지.
그 다음엔 다같이 "별거 없네" 하면서 J의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또 늦게까지 남은 술병들 비우다가 잠이 들었지.
물론, 이번엔 제대로 모기장을 쳐놓고.
그런데,
그날 밤에도 나는 잠을 깼어.
우리 중 한녀석이, 방 한구석에서 우웩-거리면서 과하게 먹은 술과 안주를 게워내고 있었나봐.
이번엔 5명이 제대로 한줄로 쭉 누워서 자고 있었고 나는 안쪽에서 두번째에 누워있었는데,
그 웩-웩-거리던 녀석의 구토소리와는 별개로..
방 문 바깥 마루쪽에서
삐걱- 삐걱- 하는 소리가 들리는거야.
나는
'또 할머니가 나오셨나보다' 했지.
일정간격으로 계속 삐걱 삐걱 소리가 나길래,
'그 좁은 마루에서 걸어다니고 계신가'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곧 안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래서
'이제야 들어가시는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그게아니었어.
그때부터 할머니 말소리가 들리는거야.
"진숙이 왔누" 하고.
이어서, 한지를 발라놓은 방문 뒤쪽으로, 할머니가 마루에 걸터 앉으시는듯한 실루엣이 비췄어.
그리고 또 뭐라고 중얼중얼 혼잣말씀을 하시기 시작하는 거야.
누군가를 혼내시는 듯도하고 얼르시는듯도 한게
사실, 나는 그때
밖에 정말 누가 와있는건지, 할머니가 혼잣말을 하시는건지 알수가없었어.
목소리는 분명 할머니 목소리밖에 안들리는데,
방 바깥쪽으로는 애매하게 두명분의 인기척이 느껴지는것 같더라고.
그러다 한순간,
할머니께서 우리가있는 방문 쪽에 등을 대고
쿵! 소리나게 앉으시더니
"안된다! 몬들어간다!"고 소리치셨어.
그리고 마루의 나무가 뒤틀리는 듯,
시끄럽게 삐걱삐걱거리는 소리와
할머니의 격앙된듯한 목소리가 뒤섞인 소음이 얼마간 이어졌고.
새벽녘에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도 알수없는 대화를 훔쳐듣고 있던 탓에
나는 숨소리도 내지않고, 잔뜩 긴장한채로 두근두근거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어쩌다보니까 나는 또 잠이 들었더랬지.
그날 밤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 중에 얼핏 요강이란 말을 들은것 같다고 생각하고있었는데
이 단어는
다음날 우리 일행을 패닉으로 몰아넣었어.
다음날 아침에 밥먹기 직전에 삼촌이 할머니께
"요강은 또 어디다 두셨어요"라고 물어보시는걸 들었거든?
그리고 나는, 밥상머리에서 채 잠이 덜깬 친구녀석들을 앞에 두고
어제 내가 본(들었던) 이야기를 해줬지.
"어제 우리 다 잠들고 새벽녘에 누가 와서 할머니랑 이야기하는거 같았는데,
그때 할머니가 요강이 어떻다고 하셨던것 같다"고..
내 말을 듣고, 삼촌은 할머니께 재차 요강 어쩌셨냐고 여쭤봤지만, 할머니는 동문서답을 하고 계셨고.
내 친구들은 "야 그 새벽에 누가 와.." 하면서 농담삼아서 "귀신아니냐ㅋㅋ" 거렸더랬지.
중간에 A가, "딴건 모르겠는데 나도 어제 쓰레기통에 토하고 드러눕자마자 얼핏 마루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난건 들은것 같다"고 했고.
그때 J도 웃으면서, P에게
"야 니가 어제 진숙이 누나네서 도자기깨서 그런거 아니냐?"라고 말했지.
P는 과장되게 놀라는시늉을하면서,
당시 유행했던 영화 '링'의 사다코가 기어다니는 흉내를 내서 분위기를 띄워놓으려했지만..
나는 J가 무심코 뱉은 그 익숙한 이름에 경악할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J에게 물었지.
"그 집 살았다던 누나 이름이 진숙이야? ..그 누나네 엄마이름은?"
J는 대답했어.
"어.. 아줌마 이름은 모르겠는데?
..할머니는 아줌마한테도 그냥 '진숙애미야' '진숙아' 이렇게 불렀고.
원래 애엄마한테는 그냥 애이름으로 부르잖아 어른들은.." 라고.
그 3일째 되던 날 아침.
원래대로라면 우리일행은 그날 돌아왔어야했지만,
갑작스러운 호우로 배편이 끊겼던탓에,
우리 5명은 여분의 속옷도없이 그 집에 묶여있어야했어.
겁없는척 했던 녀석들이었지만,
내가 들었던 할머니와 "진숙"이라고 불리는 분의 대화를 이야기해준 후에는
한시라도 빨리 섬을 떠나고싶어 했었더랬지.
결국 J의 집에서 억지로 하루를 더 보낸후에야 우리는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고.
부두에서 트럭을 얻어타기전, 마지막으로 그 골목길을 지나오던길에
모두 의식적으로 그 집에 눈길이 닿는걸 피하려고했지만,
나는 힐끗 봤어.
그날밤 P가 들어갔었던 그 폐가.. 안방 쪽 마루위에
우리가 갔을때는 없었던 타원형의 놋쇠단지가 놓여 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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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기까지.
확실히 한동안 글쓰는걸 좀 쉬었더니 왠지 좀 마음같지가 않네 ㅋ
매번 댓글 남겨주시고 추천까지 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
이제는 확실히 익숙한 닉네임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ㅋ
특히
이햐 님이랑, 스마트한내알람시계 님이랑, 이주아 님이랑, 너굽 님 지속적인 관심 고마워요 ㅋㅋ
굳이 기분나쁜일 안생겨도 빠른시일내에 글 한개 더 싸러 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