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20살 꽃같은 청춘을 독서실에서 15시간 보내는 재수생입니다.
재수생 주제에 이런 곳에서 글 쓰는게 한심하시겠지만 한번 봐주세요~ 공부는 질리도록 많이 하니까요.
쉬는김에 역사 복습도 하고....ㅋㅋ
오늘 판에 한번 들어와봤다가 일본인 친구에게 욕을 한 개념없는 한국인 4명에 대한 톡이 있더군요.
그 판을 읽는동안 저는 솔직히 통쾌했습니다.
댓글에는 그런 개념없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뒀냐는 댓글들이 다수였지만 전 솔직히 너무 통쾌했어요.
물론 그 사람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요.
전 사회탐구과목으로 국사, 근현대사를 배웁니다.
표점은 전체적으로 정말 안나오는 과목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라 원점수는 잘 나오거든요 ㅠㅠ
전 일본의 만행을 잊고있는 분들에게 일본이 얼마나 개 쓰레기 나라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겁니다. 뭐 역사 복습도 하고...ㅋㅋ 그냥 스크롤 내리지 마시고 차근차근 읽어보세요. 우리나라에 대한 얘기니까요.
(((((((저는 고등학교 역사과정을 토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배우는 걸요. 그러니 사실이 아닌 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전공하시는 분들은 알려주지 마세요 ㅠㅠ 제가 수능 보다가 고등학교 과정과 헷갈릴수도 있으니까요 ㅠㅠ 그럼 피같은 2점이 날아갑니다 !!!)))))))))
1. 임나일본부설
1) 광개토 대왕릉비 : 삼국시대에 광개토대왕이 북쪽으로 엄청난 영토를 확장했으며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운건 모두 아실겁니다. 일본은 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임나일본부설에 이용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중국의 농부가 발견했다고 하는데 발견당시 이끼가 많이 껴있고 해독 작업?에서 비문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비문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백제와 신라가 예부터 속민이었기 때문에 조공을 바치어 왔는데 그러나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가야와 신라를 격파하고 이들을 신민으로 삼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이 글은 문맥에 맞지도 않고 일본 육군 참모 본부가 비밀리에 해독 작업을 진행한 점, 비문이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3차의 석회도부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을 봤을 때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학자의 말에 의하면 이 부분의 원래 내용은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뒤 신묘년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백제, 왜구, 신라를 파해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해석이 됩니다.
일본은 한자 3글자를 위조해서 비문 내용을 꾸며낸 것입니다.
정말 쓰레기죠?
2)칠지도 : 칠지도는 현재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검의 모양은 인터넷에 쳐보세요^^ 익숙하실 겁니다. 어쨌든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왕이 왕자로 있을 때 일본왕에게 하사한 것입니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칠지도가 일본왕에게 봉헌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솔직히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칼을 선물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은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식칼이나 과도를 드리면서 선생님 선물입니다^^ 이러시나요?
일반적으로 칼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이 칠지도를 일본 왕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역사학자들도 인정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쓰레기 위조극으로 결론이 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
2. 여러 왜란과 임진왜란
세종 : 왜구의 약탈→쓰시마 정벌→계해 약조 :세견선 50척, 세사미두 200석
중종 : 삼포왜란→국교 단절→왜의 사정으로 임신 약조 체결.(계해약조의 1/2로 줄었음)
→사량진 왜변
명종 : 국교 단절→왜의 사정으로 정미 약조 체결→또 다시 을묘 왜변.
선조 : 임진왜란 →수많은 인명 상살과 기근, 질병으로 인구 급감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사라져 국가 재정 궁핍
→수많은 문화재 상실(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소실, 전주 사고만 남고 실록 모두소실, 불국사)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자기 기술자를 많이 붙잡아감. 우리나라의 기술자가 만든 도자기를 서양 열강에 팔아 근대화의 토대를 마련함.
일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말 뒤통수를 많이 때렸습니다. 정말 쓰레기죠?
3.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1875년 일본의 상선(말만 상선이지 신식 대포를 달고 완전 중무장한 군함과 마찬가지)이 강화도 영해에서 왔다갔다하며 포격을 유도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오페르트 도굴사건 등으로 인해 온나라가 반왜세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강화도에서 2차례 전투(전쟁?)가 벌어진 적이있어서 일본 상선에게 포격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포는 기술이 딸려 사정거리가 짧았고 운요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운요호는 우리나라가 선제사격을 했다고 하며 강화도 초지진과 영종도를 포격하여 군인과 민간인을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자기의 상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청과 조선의 종속 관계를 들어 책임을 먼저 청나라에게 묻고, 문제 확대를 꺼린 청나라가 민씨 정권에게 일본과의 조약을 권유합니다. 명성왕후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강화도 조약의 내용
1관)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청의 종주권 부인
7관) 조선국 연해의 도서와 암초를 조사하지 않아 매우 위험하다. 일본국 항해자가 자유로이 해안을 측량하도록 허가한다→연안 측량권은 심각한 주권 침해로 불평등
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 항구에서 죄를 지었거나 조선국 인민에게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일본국 관원이 심판한다.→치외법권 인정으로 불평등
12관) 위 11조관을 영원히 신의로써 준수하며 변경할 수 없다→ ㅡㅡ
4. 을미사변
이 사건은 일본인 야쿠자들과 우리나라의 친일파 부대인 훈련대가 우리나라의 국모인 명성왕후를 시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야쿠자들은 잡혔지만 위에서 말한 강화도 조약에서의 치외법권 조항때문에 일본으로 환송되어 재판을 받고 증거 불충분으로 전원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정말 쓰레기죠?
5. 간도 참변
독립군이 대승을 이끈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한인촌을 초토화 시킵니다.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3~4개월에 걸쳐서 한인을 사살합니다.
10월 9일~ 11월 5일까지 27일간 확인된 학살수만 해도 3,469명에 이릅니다. 적어도 수만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쓰레기죠?
6. 관동대학살
1923년 9월 1일에 일본의 관동 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도쿄의 60%, 요코하마의 80%가 파괴되고 40만명의 사상자를 낸 대지진이었습니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이를 구실로 계엄령을 선포, 이에 자극받은 일본인들이 수천명의 한국인을 학살했습니다.
정말 쓰레기죠?
7. 만보산 사건
이 사건은 요약해서 쓰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만보산으로 이주→황무지 개간하기 위하여 수로 공사 시작→중국인들이 농사에 방해가 된다며 한국인들과 충돌 했지만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음→만주로 침략할 구실을 찾던 일제는 국내에 이 사건을 한국인이 중국인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과장 보도→국내에서 화교에 대한 보복→중국내에서도 한국인에게 보복
일본에게 중국과 한국 모두 농락당했죠. 정말 쓰레기죠?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을 정말 편향적으로 썼지만 판단은 여러분 몫입니다.
저는 국사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도움이 된 경우를 정말정말정말 한 가지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정말 한 가지도 없더군요.
적어도 고교과정 내에서는 그랬습니다.
제가 모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죠. 아 혹시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말씀하시는 분들은 없으시겠죠...
역사를 배운다면 일본은 정말...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외에 여러 가지 사건이 있죠. 을사조약, 정미 7조약, 한일합병조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