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시늑약 한일병합은 일제가 고종을 협박하고,대신들을 감금해 회담장을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로 에워싸게 한뒤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 일본 정치인.지식인들 망언 사례
한일병합조약은 메이지일왕을 비롯 일본내각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각본에 의해 이루어졌고
총칼로 조선을 위협하여 강압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졌기에 이 조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무효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은 일제가 조작한 그 당시 자료를 토대로 한일병합은 한국인들이
원해서 된것이다란 망언을 그치지 않고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지사
한일병합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한것이며 일본은 절대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조선이 분열해 러시아 중국 일본으로 할지 생각하다가 근대화가 발전된 일본의 도움을 받으려고 스스로 합의했다.
그때 다른 나라들도 모두 이를 받아들였는데 만약 그걸로 탓을 한다면 다 조선의 탓이다.
중국으로부터 조선을 해방시켜준것도 일본이고 일본의 식민지배는 선진화되어 조선을 인간적으로 대했다.
그 외
한국인등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르며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
dna(한국인,중국인)가 나쁘다.중국을 쪼개야한다
북한은 중국에 통합되는게 낫다.
위안부을 강제로 데려갔다는 사실이 어디 있느냐? 없다......
※ 극우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지는 80%를 넘으며 일본내에서 이시하라 신드롬을 일으켰고
현재도 일본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아소 다로 총리
창씨개명은 한국인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것이다.
야스쿠니 참배를 문제 삼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일본은 한글 보급에 공헌했다
옳은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게 좋다.
6.25 전쟁은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
▶65년 다카스기 韓.日회담대표
일본은 조선을 지배했으나 조선을 보다 좋게 하려고 한일이다.
일본의 노력은 전쟁으로 좌절됐으나 20년쯤 더 조선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타당한 말이 아니며 일본은 조선에 공장, 가옥, 살림등을 모두 그냥 두고 있다.
창씨개명만 해도 조선인을 동화해 일본인과 같이 취급하려고 취해진 조치였으며 나쁜 짓이었다고 만은 할수 없다.
▶82년 마쓰노 유키야스 국토청장관
한국의 역사교과서에도 오류가 있다.
한일 병합의 경우도 한국에서는 일본이 침략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 국내정세등도 있어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는 알수 없다.
▶89년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과거 전쟁의 성격이 침략전쟁이었는지 여부는 추후 역사가 평가할 문제이다.
▶ 일본 새역사왜곡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 간지
조선은 법도 없고 공산주의체제 같은 비인간적인 나라였다.그래서 조선인들 스스로 일본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게 낫다 생각해
백만명(날조된 숫자)의 일진회(친일단체)조선인들이 일본에 합방을 요청해 한것으로 조선인들도 일본과의 합방에 환영했다.
일본제국군인이 되고자 하는 조선인들도 많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시하라가 말했던 모든것이 사실이다.
한국인들이 이런 자기들 역사를 뒤돌아 보지 않으려는것은 죄고 악이다.
▶94년 일본 도쿄대학 후지오카 노부가츠교수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은 다 조선이 무능했던 결과이며 조선인은 스스로 설 의지도 능력도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이 아시아 침략전쟁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자학사관이며 일본은 이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원로의원 격인 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
1995년 - 일본은 조선 식민지배때 좋은 일도 했다.
2003년 - 한일 강제병합은 양국의 합의하에 세계가 승인한것이라 식민 지배가 아니다.
여태 일본총리가 과거역사에 대해 머리를 숙였지만 그건 일본인 스스로를 모욕하는
짓으로 식민지였던 나라는 종주국에 사죄를 요구할수 없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배할때 사탕과 채찍을 썼지만 좋은 일도 했다.
미국도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왜 일본만 반성해야 하느냐.
중국 난징대학살도 희생자가 30만명이란것도 다 날조된 거짓말이다.
또 책을 발간하여
일본은 왜 계속 사과만 해야 하는가.
다른나라는 식민지배를 감사해하는데 조선은 왜 그런가.
일본은 조선을 위해 철도를 놓고 도로를 닦고 항구를 만들고 나무를 심어주고 기타 등등 해왔는데
조선인들은 일본의 은혜를 모른다 등등.........
일본의 과거 침략사를 미화했다.
(에토는 2007년 베트남 호치민의 한 호텔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일본 대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
역사를 왜곡하면 그 나라(한국)는 망한다.....
1970년 발간소설 구름위의 언덕에서 러일전쟁을 오로지 조선을 보호하고 일본을 방어한전쟁이었단식으로 서술.
마치 명성황후 살해 또는 조선어 금지 창씨개명.위안부 강제징용 등등의 식민지배시의 만행을 조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늬앙스의 주장을 펼쳤다.
이 책은 천만부나 팔렸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시바는 일본의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1953년 한일수교 3차 회담 일본측 대표 구보타 간이치로
일본에 의한 36년 간의 한국통치는 일본이 은혜를 베푼것이다.피해보상이 다 뭐냐.
일본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일본은 조선의 산에 나무를 심어주고
철도를 건설하고 많은 이익과 근대화를 조선에게 주었다.
조선이 일본에 점령당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배되어 더 비참해졌을것이다.
▶1961년 아라키 마스오마 전 문부대신.
일본인은 아프리카 토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란 자부심을 가져야된다.
▶64년 오노 반보쿠 자민당 부총재
日.韓은 부모와 자식관계이다.
▶1997년 아베 신조 전총리
한국에는 기생집이 많아서 (위안부 활동이)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실제 있지 않은 허구다.
▶2008년 나카야마 도시오 전 일본 항공막료장
일본이 침략국가라는 것은 억울하다.
일본은 장제스에 의해 중일전쟁에 휘말린 피해자다.
일본이 노력해서 현지의 사람들도 해방시키고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좋아졌다.
주변국으로부터 일본은 침략국가라는 말을 듣고도 침묵하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것이다.
▶94년 前법무장관 나가노 시게토
일본의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살기위해 방어한것 뿐으로 침략전쟁이란말은 잘못된것이다.
일본은 아시아를 해방하고 대동아공영권을 확립을 생각한것이다.
중국 남경대학살은 날조된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공창이었다.일본만 나쁘다고 하는것은 가혹하다.
▶가지야마 세이로쿠 일본관방장관
공창이 존재했으므로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은 실제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매춘부 생활을 했을것이다.
전쟁시 공창이 있는것은 당연한 것인데 일본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는것은 희안하다.
▶1997년 니시무라 신고 중의원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할 당시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장관의 발언은 올바른 것이다.
위안부도 공창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란 말은 없었다는 가지야마 장관의말도 사실이므로
한국에 사과할 필요 없다.
▶1995년 시마무라 요시노부 문부상
서로 남의 것을 뺏기 위해 침략하는 것이 전쟁이다
우열승패로 인해 이긴 사람이 상대방을 침략했다고 말해지는 것이 전쟁이다.
일본만 그런게 아니고 다른 많은 국가들도 침략했는데 언제까지 일본만 물고 늘어질거냐.
▶94년 前환경청장관 사쿠라이 신
태평양전쟁은 침략하고자 한 전쟁이 아니었으며 아시아제국에 폐를 끼쳤지만 덕분에
독립할수 있었고 교육도 보급됐기때문에 유럽의 지배를 받은 아프리카국가보다 훨씬
문자해독률이 높았다.
▶95년 前부총리 겸 외무장관 와타나베 미치오
한일 병합은 양측의 합의하에 원만히 체결된것으로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지배란 단어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등
공식문서 어디에도 없다. 한일 합방은 무력으로 한것이 아니다.
▶前총리 하시모토 류타로(사망)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게 아니라서 침략전쟁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일본새역사교과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타국의 비판에 흔들릴 필요는 없으며 국가별로 역사관(?)이 다를수밖에 없다.
▶일본 학습원대학의 사카모토 다카오 교수
위안부의 역사는 화장실 역사와 마찬가지다.
▶88년 오쿠노 세이스케前 법무상
위안부는 장사를 한것이다 (직업적인 매춘부들 아니냐...는 뜻)
(태평양전쟁에 관해) 일본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당시 백색인종이 아시아를 식민지로 하고 있었다.
일본은 침략국가가 아니며 전쟁재판을 통해 침략국가로 낙인찍혀 있는게 유감이다.
▶1996년 이타가키 다다시 자민당 의원.
위안부 강제동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6월 한국 위안부 피해자를 면전에 두고 당시 돈을 받지 않았느냐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자 믿을수 없다고 대답.
강제로 끌려갔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해라.
▶前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한일병합은 정당했다.
태평양전쟁(아시아침략)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구미열강으로부터 아시아을 구하기 위한
전쟁으로 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쟁이고, 숭고한 전쟁이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 장관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할 수 있었지만 중국이나 조선반도(한국)는 근대화를 할 수 없었다
일본은 식민지를 넓혀가는 쪽이었고 중국이나 조선반도는 식민지로서 침략당하는 쪽이 된 것은 필연이었다
↑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먹는건 당연한거니 원망하지 말라는 뜻.
▶항공 자위대 각료장
일본이 침략국가였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시모노세키 교육장
한일합병은 식민지 지배가 아니라 대등하게 이뤄졌다
▶51년 요시다 시게루 총리 (A급전범 이타가키 세이시로의 아들)
이번 한일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국적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민족인 소수민족은 뱃속의 벌레로 일본이 이것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회담의 목적이다.
▶ 야마모토 이치타 의원(오세훈 서울시장과 오랜 친구)
일본 총리가 전쟁 전범들을 어떻게 추도하고 참배(야스쿠니)하든 타국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어쩌고...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무상
일본의 교과서만큼 중립적이고 공정한 것은 없다
야스쿠니 참배는 타국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
난징 대학살도 실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다.
일본은 독일보다 더 많이 사죄했다.
▶ 2005 년 문부성 시모무라 하쿠분 정무관
위안부 문제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한게 아니라 조선인들이 딸을 팔았다고 본다.
일본 교과서에서 위안부 내용을 삭제해야한다.
▶1997년 나카가와 쇼우이치 경제 산업상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 시킨것이 아니다.
일본교과서중 인정할수 없는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위안부 부분이다.
▶ 2004년 나카야마 나리아키 일본 문부과학상
일본 중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교과서는 일본이 과거 만행만 저질렀다는 극단적 자학적표현들이 들어 있다.
일본의 모든 행동이 잘못된것이라는 자학적 역사교육을 시켜선 안된다.
독도.센카쿠열도.쿠릴열도 모두 일본의 땅으로 가르쳐야된다.
위안부 문제도 불법이나 인권침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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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나라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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