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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고 싶다

nulpurn |2003.12.15 17:30
조회 8,981 |추천 0

청바지를 입고 싶다.
청바지가 입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은 옷장 깊숙이 쳐 박혀 내 손길만을 기다리며 날 원망하고 있는, 재작년 봄에 산 청바지가...
그 위에 간편한 티셔츠 하나 걸치고 싶다.
언젠가 거리를 걷다가 가게에 진열된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있는 돈 다 털고 산 티를...

 

다른 회사처럼 정장을 고집하지 않는, 오히려 꺼리는 신문사라 그런 대로 입사 후 몇 년 간은 말 그대로 청바지에 티 하나 입고서 편안한 복장에 출퇴근을 했었다.
늦잠을 잔 날에도 대충 걸쳐 입고 나올 수 있었으며, 매일같이 와이셔츠를 다리는 일도 없이 빨래 줄에 걸어 놓은 옷 하나 툴툴 털며 바로 입기도 했었다.
더운 여름날에도 정장을 입어야만 하는 일반 기업체에 비해 이거 하나만은 좋았다.
남들 노는 법정 공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기는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찾아왔다.
나이에 맞는 옷차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동안인 얼굴에 학생처럼 청바지에 남방이나 티를 입고 보니 나이에 맞는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뭐 좋지 아니하냐는 생각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사회 생활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부대끼는 현장이고 보면 제 나이에 맞게 대접받는 것이 좋다.
또한 그러다 보니 근무하는 자세가 흐트러지곤 한다.
더불어 아무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도 옆에서는 어디 놀러 온 것 같다는 소리를 해댄다.

 

해서...
이제는 평일이면 구두에 넥타이를 맨 정장을 하고 다닌다.
하얀색 와이셔츠, 잘 다리워진 뽀송뽀송한 그 눈부심이 좋고, 거기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맨 거울 속의 나를 보면 기분은 좋다.
정장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말끔하며, 품위있어 보인다는 것일 게다.
어릴 적, 아마도 사춘기 시절이지 싶다.
그렇게 정장을 입어 보고 싶었다.
있어 보이고, 정말 멋있어 보였으니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아마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나 보다.
해서 고등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를 졸라 한 벌 빼 입고 식장에 들어간 기억이 난다.(이 옷은 지금도 내 옷장에 소중히 걸려 있다)

 

그런데...
몇 번 입다 보니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었다.
조심도 해야 하며(청바지나 면바지야 어딜 안든, 뒹굴던, 뛰든...) 조금만 오래 입으면 금방 지저분해지고, 싫증도 금방 나고, 또 목을 죄는 넥타이가 꼭 손 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작년 말부터 다시 정장을 입기 시작했다.
뭐 휴일이면, 또는 법정 공휴일이면 지금도 간편한 복장을 하고서는 근무를 하곤 하지만...
그런데...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며, 하루 이틀 입다 보니 이제는 청바지가 어색해지기까지 한다.
어느 날은 출근을 하며 티에 청바지를 걸쳤다가 도로 정장을 집어든 경우도 있었다.

 

왜 그럴까?
위의 이유에서일까?
아니면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현상에서일까?
그도 아니면...
나도 이제는 형식에 얽매이고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불길한 징조일까?

 

찢어진 청바지는 아니더라도 잘 길들인 청바지에 깔끔한 티 하나 입어 보고 싶다.
헐렁한 티를 바지 밖으로 빼고선 양 손 다 주머니에 집어넣고 휘파람 불어가며 거리를 거닐고도 싶다.
남들 의식 안 하며 편안한 복장에 편안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도 싶다.
정장을 입고서 껄렁거린다는 것은 못할 짓이지 싶다.
살아가면서 다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이러한 생활을 하며, 내 삶에 작은 활력을 넣어 보고싶다.
지금...
내 목을 죄는 넥타이가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다.

 

'그래? 어디 한번 입어 보시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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