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평소 독도, 국사 등에 관심이 많은 학생입니다.
이게 '한국사 편지3' 이라는 책에 있는 내용인데, 써도 되나 모르겠내요;;
한국사 편지3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안용복
“독도는 일본 땅일까? 우리나라 땅일까?”
“당연히 우리 땅이지!”
“어째서?”
“......!?”
엄마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가를 둘러싸고 요즘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과의
영토 논쟁에서 세운이 처럼 우리가 감정이 먼저 앞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그렇게 감정만 앞세우다가는 상대편에게 지기 마련이야.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려면 확실한 근거를 대며서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단다.
독도를 둘러싼 영토 논쟁은 요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인 조선 시대에도 있었어. 1세기 말, 조선 숙종 때였지. 당시 일본은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단다. 그런데 이 영토 논쟁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사람은 이름난 학자도, 정치가도, 장군도 아닌, 경상도 동래에 사는 평범한 어무 안용복이었지. 자, 그럼 안용복의 활약을 살펴보자.
안용복은 1693년 봄, 다른 어부들과 함께 멀리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나갔어. 안용복은 어부이면서 동시에 조선 수군의 노군이었단다. 안용복은 일본말을 썩 잘했다고 해. 그의 고향인 동래에는 일본과 무역 교류를 하기 위해 설치한 왜관이 있어 늘 일본인들이 머물고 있었단다. 그래서 안용복은 일본 말을 배울 기회가 있었을 거야.
일본으로 간 안용복
울릉도에 도착한 안용복은 친구 박어둔과 고기를 잡다가 일본 어부들과 맞닥뜨렸단다. 일본 어부들도 울릉도까지 와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지. 일본 어부들은 안용복과 박어둔이 허락없이 고기잡이를 했다면서 일본의 오키 섬으로 데려갔어.
“내가 내 나라 땅에 마음대로 다니는데 어찌하여 붙들어 왔느냐?”
안용복은 거세게 항의를 했어. 그러자 안용복의 일을 알게 된 일본의 막부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주면서 안용복을 돌려 보냈단다.
안용복과 박어둔은 귀국길에 올라 대마도에 도착했어. 당시 일본은조선과 교류할 때 반드시 대마도를 통해야 했기 때문에 안용복도 대마도를 거쳐서 귀국해야 했지. 그런데 대마도 도주는 이번 기회에 울릉도를 아예 대마도의 영토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서, 안용복을 잡아 가두고 편지를 빼앗은 다음 조선 조정에 거짓말을 했어. 안용복이 일본 영토를 함부로 침입했다고 말야.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온 안용복은 동래 감옥에 갇혔다가 석 달 만에 겨우 풀려 났단다.
3년 뒤, 안용복은 일본인들이 여전히 울릉도와 독도에 와서 고기잡이를 한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일본으로 가서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어. 이번에는 순천 송광사의 뇌헌 스님, 학자 이인성, 안용복의 아내,l 열여섯 명의 다른 어부들과 함께 먼저 울릉도로 떠났어.
울릉도에 도착해 보니 역시 일본 어선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어. 안용복은 소리쳤단다.
“울릉도는 본래 우리 땅인데 왜놈들이 어찌 침범했는가?”
그러자 일본 어부들이 대답했어.
“우리는 본래 송도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가 나왔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송도로 돌아갈 것이다.”
“송도는 곧 우산도(독도의 다른 이름)인데, 그곳 역시 우리나라 땅이다. 너희들이 어찌 감히 송도에 산다 하느냐?”
다음날 새벽, 안용복은 독도에 가 보았어. 어제 만난 일본 어부들 가마솥을 걸고 임식을 만들고 있었어. 안용복은 막대기로 가마솥을 부숴 버렸지. 그러고는 도망치는 일본 어부들을 뒤쫒아 오키 섬까지 쫒아갔단다.
“몇 년 전, 내가 이곳에 와서 울릉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막부 장군의 문서를 받아 갔는데, 또다시 우리 땅을 침범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안용복은 오키 섬의 관리에게 이렇게 따졌어. 일본 관리는 자기 상관인 태수에게 보고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기이 없었어. 그래서 안용복은 직접 태수를 만나야 겠다고 결심했어.
안용복은 거짓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감세관이라고 칭하고, 관리들이 입는 푸를 철릭을 입고 갓을 쓰고 가죽신을 신고서 가마를 타고 갔어. 영낙없이 위엄이 넘치는 관리의 모습이었지. 일본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런거야.
“지난번 울릉도와 독도의 일로 막부 장군의 편지를 받았는데, 중간에 대마도 도주가 편지를 빼앗고 거짓을 꾀했으니 관백(일본 막부의 장군)에게 그 죄상을 나낱이 고하겠다.
그러자 더럭 겁이 난 태수는 약속했어.
“두 섬이 당신네 나라에 속한 이상 또다시 침범하거나 대마도 도주가 중간에서 거짓을 꾸미면 낱
낱이 고하겠다.”
안용복 일행은 무사히 귀국했어. 그로부터 2년 뒤인 1698년 3월, 조선 조정은 대마도에 편지를 보냈단다.
“울릉도가 우리 땅임은 증거가 분명하니 .......... 귀국이 사람들에게 고기잡이를 하지 않도록 한 것은 실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러자 대마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어.
“귀국의 뜻은 막부에 전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영토 논쟁은 막을 내렸다.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땅으로 확실하게 못 박게 된 것은 안용복의 대담한 행동 덕분이었어.
(안용복은 조정의 허락없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 들어갔으며, 관리가 아닌 자가 멋대로 관리인 체한 죄가 죽어 마땅하다며 사형을 시켜야한다고 했지만, 안용복의 행동의 사형은 지나치다고 말한 남구만과 윤지완의 말덕에 숙종은 그 말을 옿게 여겨 사형을 면하고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다시 시작된 독도 논쟁
안용복의 활약이 있은지 약 250년 뒤인 1952년 이승만 대통령였다. 250년 전의 논쟁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은 이번엔 울릉도가 아니라 독도가 표적이 되었다. 일본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증거로 1905년에 발표된
‘시마네 현 고시’를 내놓았어. 시마네 현 고시는 일본의 법령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아.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 섬에서 85해ㅣ에 있는 무익도는 다른 나라가 이를 점령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한 흔적이 없으므로 일본 영토로 삼아 다케시마(죽도)라고 하고, 시마네 현 소속 오키 도사의 소관으로 한다.”
그런데 시마네 현 고시가 발표된 1905년 당시, 우리나라는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단다. 사실을 알게 된 건 1년 뒤, 하지만 그땐 이미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게 뺏기고서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항의도 할 수 없었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일본의 주장은 독도는 주인 는 무인도였으며, 조선보다 일본이 먼저 알고 있었고, 무인도인 독도를 일본이 영토로 만들어 전 세계에 아렸으니 독도가 일본 땅인 것은 정당하며, 국제법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야. 현재 국제법은 주인 없는 땅을 먼저 차지할 권리를 인정해주거든.
그러니까 일본의 주장을 깨뜨리려면 독도가 무인도가 아니라 우리나라 영토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돼. ‘시마네 현 고시’가 발표되던 1905년 당시, 독도가 이미 우리 영토였다는 것을 국제법상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정거를 내놓아야 한단다.
독도가 옛날 신라 시대부터 우리 영토였다든지, 옛 지도에 우리 땅으로 표시되어 있다든지, 거리상으로 우리나라에 더 가깝다든지, 지질학상 백두산 줄기에 해당한다든지 하는 주장들은 국제법상으로 별로 인정받지 못해. 왜냐하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해 놓은 옛 기록이나 옛 지도도 많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거야.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어. 독도 문제는 벌써 50여 년 동안 계속되어 왔어. 유행처럼 한때 떠들썩 하다가도 곧 시들해져 버리기를 되풀이하면서 말야. 그동안 우리는 치밀하고 꾸준하게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 소홀했던 것 같아. 그에 비해 일본은 정치가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은 독도에 별로 관심이 없어.하지만 그 몇몇 사람들은 놀랄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단다.
국제 사회에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인정받으려면, 우린 좀더 차분하게 꾸준히 연구하고 준비해서 누가 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증거를 내놓아야 해.
세운이와 친구들이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서 한번 연구해 보는 건 어떨까?
다 쓰느라 고생했네요;; 책에 있는 내용이라 문제 되면 지울께요 .
네 읽으면서 정말 어처구니 없었고, 이래서 반일감정은 더 쌓여만 가고 =ㅂ=
요즘 아리랑이나 우리 문화와 관련되 중국도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