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의 개념으로 처음 호텔이 생겨난 것은 종교적인 성지순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1906년 십자군원정을 계기로 성지순례 여행이 성행하게 되면서 세계 각지의 교회와 사원들이 숙박시설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때의 교회와 사원들이 독립적인 숙박시설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숙박 개념의 호텔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현대 호텔 건축 양식의 시초가 되는 호텔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처음 지은 바디쉬 호프(der Badische Hof)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텔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이었죠.
바디쉬 호프는 19세기 중엽에 여인숙에서 근대 호텔로 발전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스위스를 비롯하여 유럽 여러 국가의 호텔산업에 큰 영향을 준 근대 호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바디쉬 호프 같은 19세기 호텔들은 이전의 단순한 숙박시설과는 다른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19세기에는 수많은 사상들이 공존하면서 많은 변혁이 일어났던 시기인데요.
그 영향으로 왕권과 귀족세력의 입지가 점진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죠.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궁정 안에서 이루어졌던 이때의 왕실이나 귀족 사이의 사교모임은 궁정 밖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시기의 호텔은 숙박시설뿐만 아니라 궁정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사교장으로써의 역할까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여행자를 숙박시키는 이전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개념의 호텔이 등장한 것이죠.
호텔에서의 사교모임은 오늘 날까지 이어져 오는데요. 현재는 단순히 놀고 먹는 문화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거나 기념적인 일을 축하하고 나누는 등 교양을 갖춘 문화로 자리매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로수길에는 이런 호텔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카페 겸 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1950 HOTEL’인데요. 이곳은 이름처럼 1950년대 유럽의 호텔양식을 그대로 재현해놓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곳이죠.
사실 이곳은 카페이기도 하지만 각종 촬영 스튜디오로 더 많이 쓰인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유니크하고 완벽한 인테리어가 갖춰져 있다는 말일 텐데요.
그래서 촬영을 하는 줄 모르고 찾아갔다가 허탕치는 분들이 많다더군요.
다행히 제가 간 날은 촬영이 끝난 뒤여서 마음껏 호텔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날은 호텔의 분위기에 취해 호텔 바에 온 것처럼 마티니를 주문했습니다.
이곳의 마티니는 쿠키 마티니, 초콜릿 마티니 등 마티니의 종류만 해도 대 여섯 가지가 되었는데요.
저는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골랐습니다.
이곳의 메뉴는 칵테일과 와인, 커피, 각종 유럽식 티 외에도 수제파이가 무척 유명합니다.
저 역시 그 맛이 궁금해 애플파이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에스프레소 마티니는 커피와 술을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깔루아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찐득찐득하고 느끼한 맛이 있는 깔루아와 달리 굉장히 담백하고 깔끔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오면 늘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먹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 입맛에 딱 맞더군요.
저는 ‘맛있다’와 ’달다’는 확연히 상반되는 맛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각종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 음료 등은 단순히 ‘단맛’에 재료만 다른 것 같아서 그닥 달가워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애플파이는 사뭇 달랐는데요. 베이커리는 언제나 단 것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사과 본연의 단맛이라고 느껴질 만큼 굉장히 담백하고 맛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내오는 파이기 때문에 각종 화학식품이 들어가지 않은 홈메이드식 파이를 맛 보았다고 할 수 있죠.
카페나 바에 가면 가만히 앉아 분위기를 즐기고 함께 간 사람과 생각을 나누거나,
홀로 책을 읽는 등 언제나 얌전히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요.
1950HOTEL에서는 이것 저것 신기한 맘으로 구경을 하고 카메라에 담느라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것 같네요.
이곳은 가구나 전체적인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소품들까지 굉장히 독특한데요.
알고 보니 가구와 인테리어를 전공하신 사장님이 직접 공수해와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물건들이었습니다.
1950HOTEL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겠더군요.
완벽함 아름다움은 쉽사리 나오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호텔 로비부터 라운지, 바, 룸까지 1950년대의 유럽의 고풍스러운 호텔의 모습을 무엇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재현해 놓은 1950HOTEL은 돈을 지불하고 커피나 칵테일을 즐기는 카페 이상의 공간이었는데요.
CHECK OUT을 하고 나오면서 음료 값 이외에 호텔 숙박비나 관람료를 지불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또 한동안은 가로수길에서 카페나 바를 갈 때 ‘1950HOTEL’만 찾을 것 같군요.
조향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배합을 시도하면서 조향 중에 향수가 완성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어떠한 향을 재현해내겠다는 생각으로 향수를 만들 때가 있습니다.
‘1950HOTEL’을 향수로 비유하자면 후자의 경우로 완성된 향수일 텐데요.
어느 경우든 어떠한 대상을 새로이 재현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현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원래의 대상이 지닌 가치뿐만 아니라 그것을 재현해냈을 때 갖는 의미 역시 남다르기 때문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1950HOTEL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곳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입니다.
공간 자체가 의미인 셈이죠.
마시기만 하고 먹기만 하는 곳 이상의 특별한 공간을 찾고 계시다면 1950HOTEL에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놀라우실 테니 당황하지 마시고 체크 인 후,
1950년대 유럽의 어느 사교모임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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