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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개샊기

ㅎㅎ |2011.08.01 22:10
조회 5,677 |추천 162

우왕 저 톡된거예요??

감사합니다ㅠㅜㅠㅡ

 

 

 

 

 

 

 

 

아ㅋ저톡써보는거첨이예요

오타있어도 양해바랍니다...;;

일본넘들하는짓보고진심빡쳐서이글올림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일본의침략 역사

 

 

1.임진왜란(1592년)

 

 

임진왜란의 원인: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일본인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릴려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또한 명나라를 정복할려는 야심도 있었던 걸로 보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씨벌롬)

 

임진왜란의 결과:

*문화재의 손실막심 예로 경복궁,창덕궁,창경궁 등..

*농민의 생활이 어려워짐

*인구감소 및 재산손실

*민심 이반

*신분 제도 붕괴

 

일본의 이익

1.도쿠가와 이에아스 정권: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패권을 다투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져 정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감

2.봉건제후 세력약화: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으며중앙집권제를 수립하는 계기가 됨.

3.조선백성들을 포로로끌고감:경작·노동에 종사시키고노예로 매매하기도 하였음.

4.도자기 기술 발전: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도자기 제조기술을 전수하여도자기기술에 큰 발전이 있었음.

5.활자기술 발전:조선의 활자기술을 약탈해 감.

 

중국의 이익

1.국가 재정문란:대군을 조선에 파견하여 국력을 소모

2.명나라 멸망의원인:조선 파병으로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서여진족의 일족인 건주위가 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줌.

3.청나라 건국의 계기:결국 건주위의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워후에 청나라가 되었으며 명나라가 멸망시킴.

 

 

 

 

 

관련된 인물들

- 선조 : 동인과 서인의 붕당으로 힘들어하던 왕. 동인의 말을 들어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명나라에 의존했던 왕이다.

 - 광해군 : 선조의 아들. 처음에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를 파악하고 청나라를 공격하지 않았으나, 중신들의 반대에 부딫쳐 결국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억울한 왕이다.

 - 율곡 이이 :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폈다.

 - 이순신 : 바다에서 거북선을 만들어서 일본인들을 많이 죽인 명장. 명량대첩, 한산도 대첩 등이 있다. 노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 권율 : 행주산성에서 일본인들을 무찌른 명장.

 - 원균 : 이순신을 모함하여 삼군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지만 패했다.

 - 논개 : 여자이지만 촉석루에서 잔치를 열 때, 관기로 참석하여 왜장을 유인하여 남강에 몸을 던진 여인.

 - 곽재우 : 홍의 장군 곽재우이며, 의병이다. 나라를 위해 왜군을 무찔렀다.

 - 정인홍 : 의병이였으나 광해군 때 부정부패를 일삼아 인조반정때 쫓겨났다.

 - 유성룡 : 선조가 피신할 때 어가(임금의 수레) 가 조선을 떠나면 안된다고 주장하여 훌륭한 신하였다

 

 

임진왜란의 해전

 

옥포 해전

1592년(선조 25)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경남 거제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이 해전은 이순신이 이룬 23전 23승 신화의 첫 승전이다.

 

선박대수

조선:91척 (판옥선 29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

왜군:44척 (옥포 26척, 합포 5척, 적진포 13척 )

 

합포 해전(合浦海戰)

옥포 해전이 벌어진 선조 25년 음력 5월 7일 당일 오후에 있었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아직 옥포 해전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왜군의 소함대(5척)를 전멸시켰다.

조선:전선91척

왜군:전선5척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

옥포 해전합포 해전이 있은 그 다음날인 선조 25년 음력 5월 8일에 발생했다. 전날의 여세를 몰아 조선 수군은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 중이던 왜군 함대를 공격하여 모두 11척을 격침시켰다. 이순신의 1차 출정은 적진포 해전으로 마감하고 다시 본영으로 복귀한다. 이때에는 아직 거북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선:91척

왜군:13척

 

사천 해전

1592년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8일)에 사천에서 왜수군 12척을 전멸시킨 해전으로, 이순신은 여기서 거북선을 처음으로 실전 투입했다.

 

조선:26척

왜군:13척

 

당포 해전(唐浦海戰)

1592년(선조 25년) 음력 6월 2일(양력 7월 13일) 전라좌수영 및 경상우수영의 연합함대가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해전이다.

조선:90척

왜군:21척

 

당항포 해전(唐項浦海戰)

1592년 음력 6월 5일(양력 7월 13일)에 이순신이 지휘하는 삼도수군 연합함대가 당항포에서 왜군을 격파한 해전. 유인작전으로 먼 바다로 끌어내어 싸웠다. 26척 격침 병력2720명전사시킴

조선;56척

왜군:26척

 

율포해전

1592년 음력 6월 7일 이순신이 이끄는 삼도수사(三道水使)의 연합함대가 거제도 율포만에서 부산으로 향하려던 왜군 함대(대선 5척, 소선 2척)를 발견하여, 대선 2척과 소선 1척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모두 붙잡은 해전이다.

조선:2척

왜군:7척

 

한산도 대첩(閑山島大捷)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1592년(선조 25)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쳤다.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

1592년(선조 25년) 7월 10일 조선 수군이 경남 진해에 있는 안골포에서 왜군을 격멸한 해전이다.

조선:56척

왜군:42척

 

부산포 해전(釜山浦 海戰)

1592년 9월 1일, 부산포에 정박한 왜군 함대를 기습하여 대파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하였고, 왜군은 100여 척의 함선을 잃었다. 이 전투 후 왜군은 더 이상 적극적인 해상 작전에 나서지 않았다.

 

조선:170척

왜군:470척(병력 7만명)

조선:6명전사 25명부상

왜군:128척격침 3800명 전사

 

제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음력 3월 4일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당항포 지역 인근의 왜군들을 몰아내기 위해 부하 어영담을 사령관으로 삼아 전라좌수영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이 연합하여 출전한 6차 연합함대 출전이자 이순신의 12번째 해전이다.

 

조선:124척

왜군:31척(31척전멸)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

칠천 해전은 1597년(선조 30년) 음력 7월 15일 칠천도 부근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조선:169척(조선군 157척격파(이순신 장군 감옥 원균지휘)조선군 대패

왜군:850척

 

어란포 해전

(1597년 음력 8월 27일)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후 치른 첫번째 전투였다.

칠천량 해전 패전 후 남은 13척의 판옥선을 수습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던 중, 8월에 왜선 8척이 남해 어란포(於蘭浦)에 출현하자 이를 격퇴하였다. 이 전투는 자신을 노출시켜 왜군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어란포 해전 후 본진을 진도의 벽파진으로 옮겼다.

조선:13척

왜군:8척

 

벽파진 해전

(1597년 음력 9월 7일, 양력 10월 16일)은 어란포 해전에 뒤이어 벽파진에서 왜군의 소규모 함대를 격파한 해전이다.

이 전투는 이순신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후 2번째 해전이다. 서쪽으로 이동하던 왜선 55척 중 호위 적선 13척이 나타나자, 한밤중에 이순신이 선두에서 지휘하여 벽파진(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적선을 격퇴시켰다.

이 전투로 왜군은 조선 수군이 확실히 13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순신의 복귀도 확인한다.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나중에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의 존재를 확인하나 첩보는 이미 보고받은 상태였다.

이 전투 역시 이순신이 왜군을 명량해협 쪽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조선:13척

왜군:13척

 

 

명량 해전(鳴梁海戰)

명량 대첩(鳴梁大捷)은 1597년(선조 30년)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5일) 정유재란조선 수군 13척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 133척을 쳐부순 해전이다.

 

조선:13척

왜군:333척 (병력22,000명)

 

전과

아군피해:전선피해없음 전사 2명 부상3명

왜군피해:31척격침 91척대파 병력 12,000명 전사

 

노량해전(露梁海戰)

임진왜란 당시 1598년(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이순신이 이끈 조선명나라의 연합 함대가 노량해협에서 일본의 함대와 싸워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서, 왜란의 마지막 해전이며, 이순신이 전사한 해전이기도 하다.

 

조선:전선 170척, 병력 1700명
명나라:전선 128척병력 2600명  총병력 전선 298척, 병력 4300명

왜군:512척 병력 55,000명

 

피해:

조선:이순신 외 장수 4명 전사, 10명 전사, 300명 부상

왜군:전선 450척 격침, 50척 도주, 4만 명 전사, 1만 3000명 부상

 

 

1.일제강점기(1910년)

와....이건진짜............대박임

 

정리하자면 이렇다....

 

자료가너무많으니사진으로 올리겠습니다....

 

 

 

 

 

 

 

1)유관순

1902년 충남 천안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1926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 학당 초등과 3학년에 입학하여 1919년 이화학당 고등과 2학년에 올라 갔습니다 .고종황제 장례식 대 학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앞장 섰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리고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 행렬을 지휘 하였고 그후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본군에게 총살당하였습니다 . 그 후 유관순은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다가 의자를 던져 법정 모독죄가 가산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끝내 열 아홉살의 꽃다운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 옥사하였습니다 .

 

2) 안중근

안중근은 일본인 기자로 변장하고 하얼빈 역에 숨어 들어가서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에서 내려 환영객들을 향해 나가는 순간 안중근은 3발의 권총을 쏘았습니다.

2발은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가슴에, 1발은 심장에 명중시켰습니다 . 이어 태극기를 꺼내 우렁찬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서 붙잡혔습니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안중근은 두 동생에게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내 시신을 국내로 옮기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리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유언을 했다.

모진 고문과 여러 차례의 재판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10시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하셨습니다.........

 

3) 윤봉길190년 고려시대 윤관 장군 27대손으로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은 1918년 덕산 보통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뒤,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919년 3 · 1운동으로 불붙은 덕산 장터의 독립운동을 지켜 보았고 1922년 배용순 여사와 혼인을 하였다. 1926년에는 농촌 계몽 운동을 시작하였고 1927년 <농민독본>을 만들어 농민들을 가르쳤으며 1929년 '월진회'라는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1930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두루 살펴 보았고 ...1931년에 상하이로 가서 김구선생을 만난 윤봉길은 홍커우 공원에 모인 일본 관리들을 향해 폭탄을 던진 윤봉길은 12월 9일, 사형을 선고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마루타란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일본 관동군 만주 제 731부대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등 전쟁포로 및 그 외 구속된 자로 약 3천여면이상의 마루타 즉 "통나무"란 뜻으로 생체 실험 대상자를 말한다. 마루타에게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_첫째, 마루타는 인간의 이름이 필요치 않다. 단지, 세자리의 번호로 구분되는 생체실험의 재료를 의미한다.

_둘째, 마루타에게는 최고의 식사가 제공된다. 매끼마다 영양만점의 음식에 디저트, 비타민제까지 곁들여 졌다.

_셋째, 마루타는 소약한 체력을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여 실험재료가 되기 위해 건강한 육체를 찾아야 한다.

 

 

 

 

여자

 

유두 고문: 유두를 바늘로 찔럿다

 

가슴고문:가슴에 인두 문지르기

(인두: 뜨거운 철을 같다대신다고보시면)

 

아래쪽은 모르겟네요..

 

남자

 

고자고문:아마 2개를 떠트렸다(소세지를 짤랏다)

 

??고문:얼굴의 뜨거운물을 부어 고통스러울때 항문에 애널

 

육체고문

 

상자고문:못박힌 상자의 사람을 넣고 막 흔들었다

 

손톱고문:손톱과 살 사이를 대나무로 찔렷다(손톱을 뽑아냈다)

 

??고문:고추가루 물을 입안에넣고 떼렸다

 

질식고문:천으로 얼굴을 감산뒤 물부어 질식사

 

화생방 고문:방독면 안주고 화생방 안에들어가기

 

수염 고문:수염과 머리털을 아프게 뽑았다네요...

 

관고문:관에 사람을 넣고 관에연결된 호스로 뜨거운물을 투입

 

 

고난도 고문

 

인채해부

 

장기밀수(장기를 세계의 팔아먹음)

 

뇌를 해부

 

임산부의 경우는 일단 임산부를 x자로 묶은뒤 배를 가름니다(그냥 칼로)

그럼 일본놈들은 안에아기가 여자다 남자다를 고르죠

그런뒤 확인합니다. 그렇게 맞춘사람은 진사람한테 술을 얻어먹죠

 

 

(아나ㅡㅡ..진심ㄱ개ㅅㅐ.....)

 

4.현재(2011년)

독도

 

와...하는짓보면 말이안나옴........오늘도 그지랄한다고울릉도옴니네가인간이냐??ㅡㅡ

개샊기들

정치 정치일반 신도 의원 한때 출국 거부
“독도는 일본의 영토” 우겨 [한겨레] 이승준 기자 기자메일 정남구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등록 : 20110801 20:42 텍스트크게 텍스트작게 스크랩하기 오류신고 프린트하기 이메일보내기 MSN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독도지킴이 회원 등 700여명 공항서 규탄대회 ‘맞불’

» 한 여고생이 1일 오전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을 위한 한국 입국 시도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든 채 입국장 출구를 막아선 경찰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입국을 시도한 1일 김포공항은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입국장 안에서는 신도 요시타카 의원 일행이 입국을 거부당하자 한때 해명을 요구하며 귀국을 거부했고, 입국장 밖에서는 이들의 입국 시도를 규탄하는 시위로 시끌벅적했다.

신도 의원 등은 이날 오전 11시께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은 이들이 입국심사대에 도착하기 전 이들을 대기실로 안내한 뒤 입국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의 입국 불허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대기실에 머문 채 한동안 출국을 거부했다.

신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독도에 대해 “일본 영토이다. 그래도 일-한 간에 의견차가 있기 때문에 입장 차이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국경 안전을 위해 입국을 거부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우리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무슨 근거로 국경 안전을 해친단 말인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앞서 이들은 이날 오전 일본 하네다공항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일본 힘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지지자 10여명의 환송을 받으며 김포공항행 전일본공수(ANA) 편에 올랐다.

한편 이들이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독도지킴이범국민연합운동본부, 해병전우회 등 30여개 단체 회원 700여명은 김포공항 주차장에 집결해 ‘일본 독도만행 범국민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쓰인 머리띠를 매고 태극기를 흔들며 “일본은 독도에 대한 망발을 중지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일부 참가자들은 일본 의원들의 사진이 들어 있는 펼침막을 불태웠다.

청사 입국장 앞에도 50여명이 모여 ‘침략야욕, 자민당 의원 입국 결사반대’ 등이 쓰인 펼침막을 들고 “독도 수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승준 기자, 도쿄/정남구 특파원 gamja@hani.co.kr

 

이런미친개

 

 

울릉도 가겠다고 9시간이나 버틴 일본 의원들  2011년 08월 01일 (월) 21:37:17   장요한 기자 hani@newscj.com >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울릉도를 방문하기 위해 1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시민단체들이 국제선 입국장 앞에서 일장기를 찢는 등 격렬한 시위를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포공항 안팎서 고춧가루·카레 범벅 격렬 시위 벌어져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독도 영유권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속셈 속에 울릉도 방문을 강행하려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입국을 시도하며 9시간 가까이 버티다 출국했다.

일본 자민당 소속 신도 요시타카와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 의원이 1일 오전 8시 55분 하네다발 김포행 항공기에 탑승해 예정시간 보다 10분 빠른 11시 10분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이들은 우리 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국을 시도하다 공항 입국심사대에는 가보지 못하고 곧장 임시 입국 심사장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들은 김포공항 대기실에 머물려 출국을 거부했다. 우리 측 법무부와 공항 관계자, 주한 일본대사 등의 끈질긴 설득에 이들은 이날 일본행 마지막 비행기편으로 귀국했다.

일본 의원들의 이 같은 만행으로 김포공항 안팎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오전 일찍부터 시민단체들은 이들의 방한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했다.

150여 개 단체가 모인 독도지킴이 범국민운동본부는 김포공항 앞 주차장에서 회원 7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일본 독도 만행 범국민규탄대회’를 가졌다.

이들 단체는 “대한민국의 안방을 일본 의원들이 감시하려고 온다고 망언을 퍼붓고 있다”며 “천지가 두 번 개벽해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소극적인 자세는 분명 일본에 우리의 독도를 넘겨주는 우를 낳고 말 것”이라며 “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와 정치인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제선 입국장 앞에서는 독도아카데미 소속 대학생 50여 명이 일본 의원 방한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특히 이날 일본 의원들의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자 시위가 격렬해지기도 했다. 공항 주차장에서는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은 일본 의원들의 사진이 나와 있는 현수막을 불태웠다. 입국장 앞에서는 일장기를 찢고 고춧가루와 카레를 뿌리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쳤다.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가 형무소로 끌려가 고통을 당했다고 호소하던 노재동(82) 씨는 “한국말을 쓴다고 일본인들에게 대나무로 맞았다”며 “일본의 침탈 야욕을 지켜볼 수 없어 나왔다”고 분노했다.

입국장 앞 시위를 지켜보던 서병재(20, 광운대 1학년) 씨는 “격렬하긴 하지만 그동안 소극적인 대처 때문에 지금의 상황까지 왔다”며 “정부나 정치인들이 강력힌 대응을 해야지 일본이 함부로 못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범국민운동본부는 일본 의원들을 외환유치 예비·음모·선동·선전죄(형법 제92조, 101조) 및 출입국관리법위반죄(제11~12조, 제93조의 3)의 공범으로 고발했다.

 

 

 

나지금이거쓰면서토나올것같아욬

아진심일본쓰레기샊히

 

 

 

 

 

 

일본싫다 추천

일본은쓰레기다 추천

일본에게다갚아주겠다 추천

일본이북한보다심하다 추천

일본진짜진심으로정말로진짜진짜싫다 추천

 

저2시간동안 썻어요ㅜㅡㅜㅠ 손아퍼ㅓㅓ



 

 

 

 

 

 

 

 

 

 

 

 

 

 

 

 

 

추천수162
반대수3
베플ㅋㅋㅋㅋㅋ|2011.08.02 14:27
원숭국이잖아 호랑이한테 밟히고 싶나보지
베플181男|2011.08.02 16:56
냄새나 원숭이들아 ㅡㅡ 지진 해일나면 한국좀 오지마 니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한국으로 왜오는건데?

이미지확대보기

베플.|2011.08.02 17:02
오빠 일본 안간다 오빠 궁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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