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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그 날을 기억하며

나미진 |2011.08.02 00:51
조회 49 |추천 0

6∙25, 그 날을 기억하며

“오늘 6∙25다.”

“응?”

괜히 낯선 말 같으면서도 생각해보면 이 말을 매년 6월 25일이면 한번쯤은 꼭 들었었던 것 같다. 6월 25일, 누군가에게는 평소와 같은 하루일 테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가슴 시리고 쓰라린 기억으로 다가오는 날일 것이다.

6∙25. 얼마나 알고 있니?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이날 이후 우리 민족은 동족상잔의 가혹하고 잔인한 비극을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아래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미국과 소련의 손이 뻗쳤다. 두 세력의 힘겨루기 속에서 남과 북에는 이념을 달리하는 두 정부가 세워졌다. 이렇게 분단 아닌 분단 상태에 놓인 남한과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도발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전쟁은 휴전하기까지 소련군, UN군과 중공군 모두를 불러들였고 한반도 내에 피 비린내를 진동케 했다. 전쟁은 지속되어 1953년 7월 27일, 전쟁 발발 3년 후에야 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종전이 아니라 당시의 전선을 휴전선으로 정하여 휴전이 성립되었다. 6∙25 전쟁은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건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낳았으며 경제적인 손실 또한 막대했다. 하지만 가장 큰 손실은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말미암아 민족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남북대립이 굳어져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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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61주년. 매년 오늘이면 TV에서 6∙25 전쟁, 분단, 남과 북 등 ‘그 날의 아픈 기억’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올 해도 마찬가지인가보다. TV를 켰는데 학도병을 소재로 한 영화 ‘포화 속으로’가 나온다. 늘 아픈 기억으로만 생각했기에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뭐지? 이런 영화가 몇이나 될까? 난 이런 영화를 몇 편이나 봤을까? 이런 궁금증이 마구마구 솟구치는 데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봤다. 6∙25 전쟁과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먼저, 가장 흥행했던 영화들을 소개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의 홍보 문구에 무게를 두고 본다면 이 영화는 ‘형제간의 우애’가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6∙25 전쟁이라는 영화 속 배경에 초점을 맞추면 전쟁으로 인한 두 형제의, 더 나아가 가족의,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비극’이 잘 드러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형,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따 눈 뜨면 우리 집 안방이고 난 아침 먹으면서 형한테 얘기할거야. 정말 진짜 같은 이상한 꿈을 꿨다고. 우린 반드시 살아서 돌아 가야해!" - 젊은 진석(원빈)의 마지막 대사

포화 속으로

영화 ‘포화 속으로’는 71명의 학도병의 6∙25 전쟁 실화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학도병이라고 부르는 것마저 어색할 정도로 전쟁을 견뎌내기엔 아직 어린 학도병들. 훈련이라고는 총알 한번씩 쏴본 것이 전부인 그들은 앞날이 캄캄한 전쟁터에 남겨져 사지로 내몰린다. 처음엔 전쟁을 장난스럽게 생각하다가, 두려움에 몸서리치다가, 결국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쟁에 임하는 학도병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쓰리다.

이 영화는 최근 참전을 하고도 국가로부터 국가유공자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학도병들의 처우 개선 문제와 맞물려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빠, 엄마, 형... 이순간만큼은 말하고 싶다. 평생 가슴 속에 담아뒀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요. 사랑합니다." – 죽을 위기에 놓인 장범(TOP)의 마음 속에서

웰컴 투 동막골

전쟁이 나도 전~혀 모르는 곳이 있을까? 여기, 동막골 사람들은 전쟁이 나도 아~무 것도 모른다. 아이처럼 막 살라고 동막골. 이 영화에는 동막골이라는 외진 마을에 우연히 오게 된 남과 북의 군인들과 마을의 이름처럼 아이 같이 때묻지 않은 주민들의 웃음 빵빵 터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념의 차이로 인해 둘로 나뉘어 서로를 경계하던 남과 북의 군인들이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합동 작전을 벌이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감독은 남과 북의 화합을 염원하지 않았을까. ‘웰컴 투 동막골’은 씬~!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비극을 숨겨 둔,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영화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실미도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에 관련된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이다.

영문도 모른 채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은 오직 적의 수장을 사살하라는 목적 아래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아무도 이 훈련병들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지켜주지 않는다. ‘반공’을 외쳐대던 그 시절, 인간보다는 이념이 우선시되던 그 때에 이들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닌, 잘못된 이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대우를 받는다.

이 영화에서는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훈련병들과 이에 반해 분명한 목적이 대조되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분명한 목적을 위해 서서히 철저히 수단이 되어가는 훈련병들의 모습에서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인간을 이용하는 인간의 잔혹한 이중성과 비인간적인 면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걸고 응답한 청년 기간병들과 분단 조국이 내몰았던 사지의 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으며 죽어간 서른 한 명 훈련병들의 영혼 앞에 이 영화를 바칩니다. - 영화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

분단 상황에서 ‘인간’에 초점을 둔 영화이다. 겉보기엔 서로를 견제하고 대치상태에 놓여 있는 듯한 남북한의 군인 넷은 지하벙커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는다. 그들은 이 곳에 아지트를 만들어 서로 공기놀이이나 닭싸움을 하거나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우정을 쌓는다. 훗날 이 벙커가 발각되었을 때 ‘결국 우리는 적이었다’는 한마디와 함께 다시 총을 겨누는 사이가 되는 남북한의 군인들을 보고 오랜 시간 지속된 이념적인 대립과 갈등 속에서 그들의 우정은 더 아름답고 슬프게만 느껴진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가 분단의 현실을 초월한 우정을 나타낸 영화라면 ‘쉬리’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끝나버려야 하는 사랑을 나타낸 영화이다. 특수비밀요원과 간첩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분단 상황에서는 사랑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 보는 내내 가슴저리게 만든다.

"혹시 히드라를 아십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여섯 달린 여신이에요. 몸은 하나인데 전혀 다른 인격을 갖고 있어요. 이방희와 이명현은 엄연히 다른 존재죠. 이 시대가 낳은 히드라. 오늘 분단 현실이 그녀를 히드라로 만들었어요." -중원(한석규)의 대사

이 외에도 전쟁과 남북분단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6∙25 전쟁과 남북분단은 한국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재로 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다뤄졌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전쟁 상황, 전쟁 직후를 묘사하거나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전개로 전쟁의 참상을 보이는 등 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다.

어린 시절, 바른 생활 시간에 이 아픈 날에 대해서 처음 배웠고, 매년 이맘때쯤이면 아침 조회 시간에 묵념을 했고 통일에 관련된 그림을 그리거나 글짓기를 했었던 것 같다. 좀 자라서는 국사 시간에 6∙25 전쟁에 대해 더 깊이 배웠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6∙25 전쟁과 남북 분단에 대한 토론과 과제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남과 북’은 생각하면 생각사로 가슴이 미어지는, 통일 이전, 통일 후에도 우리 민족에게 큰 이슈거리이다. 이렇게 평생 가슴 아프지만 중요한 사건으로 남을 6∙25.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만큼은 위 영화들을 보며 이 날을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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