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일제의 잔재, 오타니컬렉션

정진영 |2011.09.04 20:46
조회 769 |추천 0

항상 톡 읽기만 하다가 쓰려니까 막막하네요

 

그래도 열심히 한번 써보겠습니다!

 

고고!짱

 

오타니고즈이

((大谷光瑞, 1876년 ~ 1948년)

 

 

일단 오타니컬렉션에 대하여 알기 전에

오타니고즈이에 대하여 알고 넘어가야합니다.

 

 

니시혼간지의 입구

 (東西本願寺)

 

오타니고즈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니시혼간지(東西本願寺) 의 22대 문주 입니다.

(여담으로 니시혼간지는 사찰로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세워진 사찰입니다.)

 

즉 승려라는 말입니다.

오타니고즈이는 불교 전래의 중요한 경로였던 서역 지방을 답사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서역지방의 탐험 조사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오타니 탐험대는 20대 승려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 전문적인 유물지식을 갖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다시 여담으로 서구 여러나라의 탐험이 국가나 박물관의 지원을 받았던 반면에  오타니고즈이의 탐험대는 개인적 의지로 이루어진 탐험 이었습니다.)

 

하지만 승려들이었기에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수준높은 불화들을 수집할 수는 있었지만, 서구 학자들이 남긴 것과 같은 상세한 고고학적 보고서를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오타니 탐험대는 1902년 9월부터 1914년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이들은 서구의 유물약탈자들이 저질렀던 방법 그대로 벽화를 뜯고, 무덤을 파헤치고, 소장 유물들을 톤 단위로 실어 본국으로 빼돌렸습니다.

그렇게 수집된 오타니 탐험대의 유물들을 오타니 컬렉션이라 부릅니다.

 

오타니 탐험대는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인 즉 오타니고즈이의 몰락이었습니다. 

 

3차 탐험이 진행되는 중간에 니시혼간지의 재무책임자가

형사상의 죄인으로 몰리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오타니 고즈이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14년 5월 니시혼간지의 주지직을 사임하게 되고, 그는 별장이 있는 중국 뤼순으로 떠나게 됩니다.

 

일본 고베에 있는 오타니 고즈이의 별장 니락소에는

오타니컬렉션의 일부가 보관돼 있었습니다.

3분의 1쯤은 오타니가 외유를 떠난 뤼순에 보내졌고

또 3분의 1쯤은 일본에 남았고, 나머지 3분의 1쯤은 니락소를 넘겨받은 재벌 구하라 후사노스케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이러던중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가 소실되게 됩니다.)

 

오타니컬렉션의 3분의 1이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도착한 것은 1916년 여름께로 추정됩니다. 구하라는 조선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조슈번(지역이름입니다.( 현재의 야마구치현) ) 동향이었습니다. 구하라가 조선의 광산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오타니의 서역 유물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오타니컬렉션의 일부 사진 

 

 

 

 

 

 

 

 

 

 

 

 

 

 

 

추천 얼마 안걸려요ㅜㅜ!

밑에 빨간버튼 꾸욱!

 

 

 

 

 

 

 

추천수0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