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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의 향기를 통해 연이의 소원을 듣다

꽃님이 |2011.10.03 19:26
조회 81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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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로 변화된 닉키 류의 인생
 

“한옥이 안동소주홍보관으로 변신했다? 류 사장님, 정말 아이디어 좋은데요?”

“궁금한 건 말이죠, 왜 패션디자이너가 옷과는 관련이 없을 전통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서울 중심가인 효자동에 안동소주홍보관이 문을 열던 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패션디자이너이자 의류업체를 경영하는 닉키 류를 응원했다. 한편으로 손님들은 짠돌이로 소문난 그가 어떻게 많은 돈을 들여가며 한복도 아닌 술 관련 홍보관을 만들게 됐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닉키 류는 스스로 생각해도 불과 1년 사이에 자신의 인생관이 180도 달라졌음에 놀랐다. 오직 일에만 파묻혀 억척스럽게 재산 증식에 탐닉하면서 살아온 삶 아니었던가. 중견 패션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쌓고 강남에 5층짜리 의상실도 마련했으며 후배 디자이너도 여럿 거느린 40대 중반의 남자, 닉키 류.

안동소주홍보관 개막식을 마치고, 내방객들과 안동소주에 기분 좋게 취해 아파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애인 권현희의 고운 얼굴을 떠올렸다.

 

누구든 작아지게 만드는 제비원 석불
 

안동이 고향인 권현희가 서울내기 닉키 류를 하회마을이며 낙동강변이며 제비원 석불 등으로 데리고 다닌 것은 그 밴댕이 속을 고래 뱃속처럼 크게 키워볼 요량이었다. 덕분에 닉키 류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낙동강 물길을 구경하고 안동 사투리를 들어봤으며 헛제사밥에, 건진국수에, 안동식혜에, 간고등어까지 두루 맛볼 수 있었다.

안동 여행 중 권현희가 3년 사귄 닉키 류와 크게 싸운 곳은 제비원 석불, 즉 이천동 석불 뒤편의 연미사 절 입구였다.

“우리 집안 어르신들은 이 연미사 중창을 위해 시주도 많이 했어요.”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진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닉키, 당신 사고방식이 매사에 그러니까, 나누고 베풀 줄 모르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고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노총각 하나 구제해주려고 나선 내가 바보지…….”

그날, 둘 사이의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두 사람은 제비원 석불 앞으로 내려갔다. 몸체를 이루는 거대한 바위와 이목구비가 뚜렷한 두상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겼다. 늘 자존심을 앞세워가며 후배들에게 잔소리만 해대던 닉키 류도 그 석불 앞에서는 오금이 저렸다.

     

                                   이천동석불상
 

     근엄함과 관대함을 동시에 품은 이천동 석불상의 저 얼굴을 보라.
            닉키 류처럼 기고만장한 사람도 금세 기가 죽을 만큼
                           그 위풍이 대단하지 않은가.



돌부처로 변한 연이 처녀 전설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을 깨뜨린 것은 문화관광해설사였다. 김씨 성을 가진 문화관광해설사는 안동 제비원 석불에 얽힌 연이 처녀의 전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때는 신라시대. 제비원에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이곳에서 심부름을 하며 살던 ‘연이’라는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예쁘고 착한 데다 불심도 깊어 모든 이들이 그녀를 사모했다. 한편 이웃마을에는 김씨 성을 가진, 남을 돕는 데는 극히 인색한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집 아들 역시 연이를 사모하던 중 비명횡사하여 저승에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김총각에게 제안을 했다.

“자네는 아직 저승에 올 때가 아닌데, 웬일이냐? 음,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질렀으니 당연한 게지. 다음에는 소로 태어나서 죽도록 일만 하게 만들어주지. 헌데 말야, 한 가지 살아갈 방법이 있긴 있어. 젊은 나이가 아까우니 내가 그걸 일러줄까? 이웃마을에 연이 처녀 있지? 그 아가씨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선행창고가 가득 찼거든. 거기 가서 선행물표를 얼마 정도 빌려 오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네.”

김 총각은 저승에서 연이 처녀 선행창고로 가서 선행표를 빌려 이승으로 돌아왔고, 이승으로 돌아와 연이에게 믿기 어려운 이 일들을 설명해줬다. 그리고 자신의 재물을 연이에게 나눠줬다.

큰 재물을 받은 연이는 부처님을 모실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5년의 세월이 흘러 마지막 기와를 법당 지붕에 얹던 날, 그만 기와기술자가 발을 헛디뎌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의 혼은 제비가 되어 날아갔으니 그때부터 이 절을 ‘제비사’ 또는 ‘연미사’라고 불렀으며 그 지역을 ‘제비원’ 또는 ‘연미원’이라고 부르게 됐다.

연이 처녀는 서른여덟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옆에 있던 큰 바위가 두 쪽으로 쪼개지고 그곳에서 석불이 나타났다. 훗날 세상 사람들은 이 돌부처야말로 연이의 혼이 환생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안동소주 맛에 눈을 뜨다

 

닉키 류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어깨를 움츠렸다. 애인의 잔소리에 짜증이 난 데다 제비원 석불 전설에 한껏 풀이 죽은 닉키 류를 살려낸 것은 한 병의 안동소주였다. 권현희는 닉키 류를 안동시내 웅부공원 옆의 전통 음식점으로 데려가 안동소주를 맛보게 했다.

불타는 듯한 목넘김 뒤에 찾아오는 뱃속의 카오스, 잠시 뒤 이어지는 머릿속의 평화. 이것이 안동소주의 맛인가? 몇 번을 자문하던 닉키 류는 권현희에게 안동소주 만드는 곳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민속주 중에서 가장 깊고 진한 향을 풍긴다는 안동소주가 빚어지는 현장을 직접 가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안동이 고향임을 늘 자랑스러워하는 권현희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권현희는 닉키 류를 안동의 고택 숙박지인 송암고택에 재웠다. 사랑채 대청에는 고색창연한 현판 하나가 걸려 있어, 이것이 술 취한 닉키의 눈에도 들어왔다. ‘위선최락(爲善最樂)’. ‘선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는 뜻의 그 귀한 말을 그는 건성으로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안동댐에서 전망한 낙동강의 넉넉한 정경.
             서울내기 닉키 류도 한 눈에 반해버린 안동소주의 깊고 진한 향기는 바로 이 물줄기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서서히 밝혀지는 안동소주의 비밀
 

이튿날 아침, 두 사람이 수상동에 위치한 안동소주박물관을 방문하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이자 전통식품 명인 제20호인 조옥화 여사와 그녀의 아들이자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김연박 선생이 환영하며 맞아주었다.

“현희가 여긴 웬일이냐? 함께 오신 분은 누구야? 애인 맞지?”

조옥화 여사가 조카딸을 보고 두 손을 잡으며 반겼다.

“그래, 죽어라 일에만 파묻혀서 일이랑 결혼하지 말고 남자랑 결혼해야지. 이 늙은이가 봐도 참 잘생긴 남자를 어디서 데려왔는가? 나이는 좀 먹었나보네. 여하튼 현희, 너. 기특도 하다.”

김연박 관장은 닉키 류를 박물관 이 구석 저 구석 데리고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 관장은 ‘제비원소주’ 코너 앞에서 말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에 안동에 제비원소주라는 것이 처음 등장했답니다. 전통 누룩 대신 일본식 흑국을 이용해서 소주를 생산해냈죠. 1930년대에 안동 제비원소주는 일본이나 만주에서까지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1965년에는 정부의 양곡 정책 때문에 쌀 대신 고구마를 이용해서 희석식 소주를 만들어냈습니다. 맛을 잃게 되니 소비자들도 잃어버렸죠. 결국 1975년 제비원소주의 후신인 경북소주마저 금복주에 합병되면서 안동 제비원소주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옛날의 제비원소주는 전통 안동소주가 아니라는 말인데 권현희는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것일까?’라는 의문이 닉키 류의 머리에 들어찼다.

그런 의심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권현희가 닉키 옆에 바짝 붙어 말을 거들었다. 뒤를 따라 오고 있는 조옥화 여사가 안동소주를 부활시킨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전통의 안동소주가 현대에 와서 부활된 때는 1987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중간 시기라고 권현희는 상기시켰다. 

 


                             "이곳이 바로 밴댕이 속도 고래 뱃속처럼 넉넉하게 넓혀준다는 안동의 하회마을.
                                          양반의 정취를 느끼고 안동의 별미도 맛볼 수 있다."


야시장에서의 한판, 안동소주의 역전승
 

이번에는 조옥화 여사가 길게 말문을 열었다.

“1986년의 일이야. 서울 등촌동 새마을운동본부에서 열흘간 야시장이 열렸지. 안동 여자들은 파전, 콩국수, 달기약수백숙 등을 팔았는데 1등을 못했어. 속이 엄청 상했지 뭐야. 다음날 가장 많이 돈을 번 경기도 광주부녀회 장터에 가봤더니 ‘광주동동주’도 팔고 있지 않겠니? 음식장사 1등 공신이 다름 아닌 술이렷다? 그게 내 전공 아니더냐?”

조옥화 여사는 신이 나서 이야기보따리를 줄줄 풀어나갔다. 안동에서는 누룩을 나르고 서울에서는 쌀을 사다 밥을 지었다. 안동부녀회 회원들은 그날부터 야시장이 끝나는 날까지 안주거리를 만들다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매출 1등상은 당연히 안동부녀회에게 돌아갔다. 조옥화 여사의 술 빚는 솜씨는 등촌동 야시장을 벗어나 안동의 공무원들에게까지 널리널리 퍼졌다.

“할머니, 중간에 죄송한 말씀이지만 할머니가 만드신 것은 안동 동동주이지 안동소주가 아니죠?”

조옥화 여사가 눈을 흘겼다. 권현희는 불안한 마음에 닉키의 옆구리를 찔렀다.

“젊은이, 누가 뭐래? 안동소주 얘기는 지금부터니까 조바심 내지 말게나. 남자가 원 그리 성질머리가 급해서야 어디에 쓰겠는가?”

1986년 말, 안동시청의 공무원이 조옥화 여사를 찾아와 ‘국가에서 전통주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는데 안동 동동주는 어떨까요?’라고 묻자 그녀는 ‘그럴 바엔 안동소주를 빚어 안동의 전통주로 키워봅시다’고 답했다.

그날로 안동시 운암동이 친정이었던 조옥화 여사는 친정어머니와 친정할머니에게서 명절 때나 제사 때 배운 그대로 안동소주를 담그기 시작했다. 일본의 누룩이 아니라 집안 대대로 만들어온 밀누룩을 이용해서 소주를 만들어냈다.

알콜 도수 45도의 안동소주가 탄생하던 날 몇몇 사람들이 시음을 하러 모여들었다. 그들은 첫잔부터 마음을 빼앗겼고 극찬을 거듭 표했다. 진한 향기는 혼잡한 정신을 한 군데로 모으게 하고 독하면서 뜨거운 술맛은 세상의 진리를 터득케 했으며 불과 몇 잔 술로 이승과 저승을 왕래케 함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열락이었다.

마침내 조옥화 여사가 안동소주의 재현에 성공하자 행정 당국에서는 그녀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안동소주 기능보유자’로 지정했다. 그녀의 며느리 배경화씨(현 안동소주박물관 학예사)는 안동대학교 석사 논문 ‘안동소주의 전래 과정에 관한 문헌적 고찰’에서 조옥화 여사의 재현을‘30여 년 동안 단절된 안동소주를 부활시킨 게 아니라 한일합방 이후에 80여 년 동안 단절된 안동소주를 부활시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진한 술 향기는 깨달음을 남기고
 

전날 안동 소주의 깊은 맛에 반하고 박물관에 와서 전통을 살려낸 조옥화 여사까지 직접 만나자, 닉키 류는 지금까지 화려한 모델과 무대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아온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낙동강물이 원형으로 에워싼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용대. 닉키 류는 부용대 절벽에 앉아서 잔에 따른 안동 소주를 낙동강물에 뿌렸다. 나머지 술은 목을 축이는 정도로 길게 나눠 마셨다.

‘대가 센 안동 여자 권현희와의 사랑 싸움을 끝내기 위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 것이 나의 죄인가?’하고 자문했다.

좀처럼 돈을 쓰는 데 인색했던 닉키 류는 거금을 준비한 뒤 의상실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권현희는 홍보대행사 일을 사원들에게 맡긴 채 한 달간의 일정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 남아프리카에서 이집트까지, 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 원주민들의 토속주를 얻어마셨다. 옥수수, 고구마, 바나나, 사탕수수 등 재료는 제각각이었으나 시큼털털한 맛이며 술잔 속에 담긴 인정만큼은 모두 같았다. 세상을 사는 법을 새로이 배운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30일 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귀국한 뒤, 두어 달이 지나 일이 터졌다. 권현희가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는 증세를 보인 것이었다. 대학병원 검진 결과 말라리아에 감염되었음이 확인됐다.

마지막으로 병상에 누워 애인 닉키 류와 눈을 맞추던 날, 권현희는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제비원 석불로 환생한 연이처럼 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주세요.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불우한 이웃들을 많이 도와주세요.”

 

안동소주의 참맛, 그리고 참사랑
 

닉키 류는 권현희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다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젊은이, 일어나시게. 여기서 떨어지면 낙동강 물에 빠져 죽어. 당신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가. 나는 일찍이 연미사 법당을 지었던 몸. 젊은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 하나 남겨놓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에 권현희와 제비원 석불을 답사했을 때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들은 연이 처녀였다.

닉키 류는 정신을 차려 안동소주박물관의 조옥화 여사와 김연박 관장, 배경화 학예사를 만나러 갔다. 서울, 경복궁 옆 효자동에 한옥을 하나 얻어 그곳에 안동소주박물관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조금이라도 더 길게 추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 조카딸을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왜 하필 안동소주박물관이요?”

조옥화 여사가 물었다.

“안동소주의 참맛을 그녀가 알게 해주었으니 그에 대한 보답입니다. 물론 경제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녀를 위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일을 해야겠지요.”

 



<주변관광지>

* 도산서원 054840-6659
* 겸암정사 054-856-3013
* 이천동 석불상 054-841-4413
* 안동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054-854-3669
* 신세동 칠층석탑 054-856-3013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한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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