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위에 까놓은 밤알 하나
안녕.
누가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내 이름을 한자로 쓰면 율도(栗島)야. 섬의 모양새가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거든. 나는 또한 가산(駕山)으로 불리기도 했어. 지금은 몸통이 줄어들었지만 한때 여의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율주로 불리던 호시절도 있었지.
서강대교가 몸을 가로지르는 곳.
철새들의 낙원으로 불리게 된 곳.
또 최근에는 영화 <김씨 표류기>를 촬영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어.
나는 누굴까? 정답은 바로 밤섬이야. 서울 서북쪽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어.
마포와 여의도의 중간 지점, 서울의 상징인 63빌딩과 멀리로는 관악산, 월드컵의 성지나 다름없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과도 가까운 곳이지. 정확히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한강의 하중도(河中島)로, 1999년 8월 10일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인간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기도 해. 섬에는 버드나무와 물쑥, 갈풀, 물억새 등 194종의 식물과 흰꼬리수리, 해오라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꿩, 붉은머리오목눈이, 까치 등 77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으로 천만 서울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사실 나는 아픔이 많은 몸이야. 고려시대에는 귀양자들의 섬이었고 개발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설움도 겪었으니까. 대대로 터를 이루며 살았던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섬을 떠났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지. 하지만 그 시간은 내게 재충전의 시간이었어. 자연은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 주었거든.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 서울. 그리고 그곳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은
사람과 문화가 한곳에 몰려드는 지표가 되어, 세계로 뻗어가는 물길의 수원지로 자리잡았다."
생명을 불러 모으는 밤섬
내 이야기 좀 더 들어줄래?
아마도 사람들은 나를 가벼운 모래섬이라고 생각할 거야. 매년 모래가 유입되어 섬의 면적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달라. 나는 단단한 암반층을 기반으로 생겨났거든. 개발 이전까지 나는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크고 작은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절벽을 품고 있었어. 심지어는 ‘작은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웠지.
1968년 2월, 지금도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해. 한강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나는 첫 희생물이 되었으니까. 공익적인 명분이 있었지만 마음이 아팠던 건 사실이야. 나의 형제 섬이기도 한 여의도가 집중 개발되면서 강물의 흐름을 좋게 하고 제방을 쌓는 데 필요한 잡석 채취를 위해 내가 폭파 해체되었거든. 그 결과 섬 중심부가 집중적으로 파헤쳐져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분리되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지. 620명의 주민들이 밤섬을 떠난 것도 그 즈음이었어.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형제 섬인 여의도가 금융 중심지로 발전하는 동안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어. 그런데 한 해, 한 해, 해가 갈수록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일들이 일어났어. 물에 잠겼던 딱딱한 암반층에 강물에 떠밀려온 흙이 쌓이며 생명들을 불러 모으게 된 거지. 폐허의 섬에 철새가 날아들고 온갖 곤충과 식물이 자라면서 도심 속 진정한 낙원으로 변모한 거야. 한강의 진정한 기적은 바로 내게서 일어났던 거지. 크기 또한 폭파 해체 뒤 4만7,490평이었던 것이 1985년에는 5만 3,630평, 1991년 6만170평, 1996년 7만1,630평, 2002년 7만 5,576평으로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기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
밤섬 뽕나무는 언제나 최상품
나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조선왕조실록에서 최초의 활자화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어. 태종1년인 1401년 기사에서 ‘부평부(富平府) 율도(栗島)의 돌이 저절로 6백 70척(尺)이나 옮겼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지. 1척이 대략 30센티미터니까 요즘의 미터법으로 치면 율도에 있던 돌 하나가 저절로 약 200미터 이상 움직였다는 기록이야. 태종 1년이면 조선이 막 태동했을 때니까, 백성들에게 상서로운 움직임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기록을 남겼던 것 같아.
율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듯 고려시대 후기라고 해. 죄인들이 귀양을 와 사람이 본격 정착한 뒤 이후 뽕나무 주산지로, 배 만드는 기술자들의 터전으로 거듭 변신을 하게 되지. 조선왕조실록에는 율도에 대한 기록이 수십 번도 더 등장하는데 대부분이 양잠에 대한 기사야. 토지가 비옥해서 뽕나무가 잘 자랐던 모양이지?
세종 5년인 1423년의 기사를 한 번 볼까?
‘잠실 별좌(蠶室別坐)인 대호군(大護軍) 이사흠(李士欽)과 전(前) 지군사(知郡事) 서계릉(徐係陵) 등이 계하기를, “경복궁(景福宮) 안의 뽕나무 3천 5백 90주(株)와 창덕궁(昌德宮) 안의 뽕나무 1천여 주와 밤섬[栗島]의 뽕나무 8천 2백 80주(株)로 누에 종자 2근 10냥을 먹일 수 있습니다.” 라고 하니, 명하여 경복궁•창덕궁의 두 잠실(蠶室)에 각기 누에 종자 21냥을 주게 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듯이 이미 조선시대 초기부터 밤섬에 뽕나무 심기가 장려되었다는 걸 알 수 있어. 1452년인 문종 1년의 기사에도 밤섬에 백성들의 개간을 금하고 뽕나무를 심게 하자는 상소가 있었고 성종7년인 1475년에도 율도에 뽕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지. 밤섬의 뽕나무는 잎이 크고 질이 좋아서 언제나 최상품으로 취급 받았다고 해.

"도심 속의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서울의 밤섬.
한강을 가로지르는 서강대교를 지날 때면 이야기 들려주는
작고 수다스러운 섬, 밤섬을 만날 수 있다."
강물과 섬의 풍치가 잘 어우러진 곳
옛 기록을 좀 더 뒤져볼까?
고종 때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국여지비고>에는 이런 기록도 있어.
‘율주(栗洲)는 일명 율도(栗島)라고도 하고, 일명 가산(駕山)이라고도 한다. 길이가 7리인데, 경성의 서남쪽 10리 지점에 있으니, 곧 마포(麻浦) 남쪽이다. 상림(桑林)이 있는데 곧 공상(公桑)이며, 약전(藥田)은 지금 내의원(內醫院)에 속하였다. 전의감(典醫監)에 속하였다고도 한다. 모래 섬 중에 늙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전하기를, 고려의 김주(金澍)가 손수 심은 것이라 한다.
섬에는 희귀 성씨인 마씨, 인씨, 석씨, 선씨 등이 많이 살았어. 인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탓에 특히 섬사람들의 대부분은 배 만드는 기술자였지. 아낙들은 뽕나무를 관리하고 남자들은 배를 만들거나 수리해서 삼시세끼 굶지 않고 살았다고해. 일제시대에 배 만드는 기술자로 강제 징용된 청년의 수만 17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지.
한강 주변엔 배 짓는 곳이 많았는데 그 중 밤섬 기술자들의 실력이 단연 으뜸이었어. 솜씨가 좋아 강화도나 서해는 물론 멀리 단양, 영월에서도 주문이 들어왔을 정도니까. 만든 배의 종류도 열 개가 넘었다고 해. 길이가 18미터에 이르는 짐배로부터 15미터의 조깃배, 강 상류로 이동이 용이한 12미터짜리 늘배, 비슷한 길이의 황포돛배도 단골 주문배였지. 강을 건널 때 사람이나 짐을 싣는 9미터짜리 나룻배도 제조했고 기생을 싣고 다녔던 놀이배를 만들어 주기도 했어.
배를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선박 수리도 중요한 일이었는데 마포나루에 새우젓과 조기, 쌀 등을 부려놓은 지방 배들은 내려가기 전 밤섬에 배를 대고 수리를 맡겼다가 서강 쪽 공소태에서 얼음을 싣고 나갔어. 뱃사람들은 밤섬에서 술을 마시며 기다리곤 했는데 이 때문에 술을 만들어 파는 주막들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 배 만드는 일이 한창일 때는 서강 쪽 넘은둥개에 노상 수십 척의 배들이 정박했다고 해. 정말 사람 냄새 나던 시절이었지.
<대동지지>는 율도가 서강 남쪽에 있는 섬으로 전체가 수십 리 모래로 되어 있으며 거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 편이었다고 기록했어. 특히 경치가 아름다워 선비들은 밤섬을 마포팔경의 하나인 ‘율도명사(栗島明沙)'라 불렀지. 율도명사란 모래가 연달아 있어 강물과 섬의 풍치가 잘 어우러진 곳이라는 뜻이야. 정조 13년(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밤섬은 한성부 서강방 율도계로 불렸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의도와 함께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가 되었어. 1933년 말 자료에 의하면 여율리에는 일본인이 사는 집이 한 채, 한국인 거주 호수는 101가구였지. 사람이 가장 많이 거주했던 시기가 이 즈음이었을 거야.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건 전조등 불빛마저 찬란하게 받아들이는 강물 때문이다.
소근대는 이야기가 수 놓여 반짝이는 한강의 물결 때문이다.
강안개 피어 오르는 밤섬의 우경
외부와 단절되었던 탓에 재미있는 일화도 많아. 밤섬과 조금 떨어진 곳, 즉 밤섬과 마포 사이에 잉화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는데 이곳엔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어. 궁중에 고기를 대던 사축서의 관원들이 섬에 집을 짓고 살면서 돼지와 양 등을 길렀던 거지. 그런데 오랫동안 외부와 고립돼 살다 보니 근친혼이 성행하여 명종 11년 임금이 명을 내려서 섬에는 남자만 남게 하고 여자의 출입을 금지했다는 웃지 못할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해.
신앙 또한 마찬가지야. 외부와 고립된 밤섬에선 부군신과 삼불제석님, 군웅 등 세 신을 모시며 신당을 만들어 해마다 제사를 지냈어. 섬이 해체되자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강 건너 와우산 자락으로 옮겨갔는데 신당을 이전하여 창전동동부군당을 짓고 해마다 음력 1월2일에 동제를 지내오고 있자. 91년부터는 한국전쟁 때 사라진 마포나루굿을 재현하는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밤섬의 구군당굿은 2004년부터 서울시 무형문화재 35호로 등록되기도 했어.
내가 보고 싶거든 언제든 서강대교 인근으로 달려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면 금상첨화겠지?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운치가 있을 거야. 강물을 거슬러온 안개가 한 마리 늙은 용처럼 몸을 뒤틀며 천천히 교각을 감싸고 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더 재수가 좋은 날엔 서강대교 북단, 와우산 기슭에 걸려 있는 쌍무지개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이제 이야기를 끝마칠 시간이야.
다시 보게 될 때까지 안녕.
<주변관광지>
* 서울 63빌딩 02-789-5663
* 한강유람선 02-3271-6900
*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여의도한강공원) 02-37800561
* 서울월드컵경기장 02-2128-2000
* 여의도공원 02-761-4078
* 한강 밤섬 02-3780-0574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한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