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필요한 지금
“최 작가, 스토리라인이 너무 약해. 요즘 시청자들은 자극적인 드라마에 중독이 되어 있다구. 수채화 같은 사랑 얘기 좋지. 그치만 쫌만 지루해봐. 바로 채널이 돌아가는 거 누구보다 최 작가가 더 잘 알잖아.”
“국장님, 지금 절더러 말초적인 막장 드라마에 합류하란 말씀인가요?”
“합류라니? 지난 번 조기 종영 겪더니 최 작가도 아주 까칠해졌구만. 내 말인 즉슨, 최 작가 특유의 멜로드라마에 강한 악센트를 좀 가미하면 금상첨화, 대작이 나온단 거지, 그게 뭐 어려워? 저쪽 방송국 송 작가 봐. 시아버지 친구와 연애하는 거, 누가 그런 얘기 상상이나 했겠어? 근데 시청률 빵빵 터지고 있잖아. 이게 요즘 방송현실이라구.”
희정은 드라마국 국장의 넋두리가 더 이어지기 전에 퇴짜 맞은 기획안을 집어 들었다. 그 다음 말은 안 들어도 뻔했다. ‘방송이란 재밌으면 어떤 얘기도 다 용서가 된다. 작품성? 그런 거 원한다면 산 속으로 들어가 혼자 소설이나 끌어안고 써라. 방송의 본질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줘야한다’는 게 그의 반복된 지론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텐데도 국장 앞에서 말 한 마디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장연수 피디의 발을 꽉 밟는 걸로 그녀는 스트레스를 일단 날려버렸다.
조연출시절에 만나 ‘한 작품이라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드라마를 만들어 보자’던 초발심의 의기투합은 간데없고 김빠진 맥주마냥 시청률 경쟁의 노예로 전락해가는 그가 그날따라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와 같이 호흡을 맞춘 지난 번 드라마는 타 방송의 막장 드라마와 같은 시간대에 붙으면서 시청률 참패로 이어졌으니……. 뒤늦게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차라도 한 잔하자는 그의 제안을 무시한 채 희정은 도망치듯 차를 몰았다. 그 순간 차 앞 유리에 뭔가가 부딪치는 걸 느꼈고 그녀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왕인박사유적지에서 내려다본 영암의 전경.
애틋한 사랑이야기의 배경이 된 영암은 남겨진 이의 기다림도 떠나는 이의 아쉬움도 모두 품은, 곳곳마다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
바람처럼 떠나고픈 마음
“정신이 좀 드세요?”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뜬 희정은 낯선 표정으로 자신의 방을 둘러봤다.
자신이 쓴 드라마 포스터가 더덕더덕 붙은 방이었다. 말쑥한 청년이 맑은 미소를 띄우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누구?”
“역시 몰라보시네요. 방송국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요.”
청년은 그저 빙긋 웃으며 자신의 이름이 병주라고 말했다. 커피 잔을 내미는 순간 남자답지 않게 말끔하고 수려한 손을 보자 희정은 불현듯 기억이 났다.
“아, 꿈을 찾기 위해 방송국에 왔다던 그 청년.”
“빙고. 그때 저한테 꿈을 이루려면 학교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죠?”
“내가 그랬나? 근데 그 꿈은?”
“아직요.”
전문대를 갓 졸업한 병주는 드라마 방송국에 들어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잔심부름을 했다. 그런 그를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곰살맞은 성격과 도시적인 외모 때문에 연예인이 되고자 안달이 난, 방송가를 무작정 떠도는 뜨내기라 여겼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방송국에 나오지 않자 아쉬움이 컸다. 장피디도 서운해 했지만 방송가에서는 그런 일이 다반사라 그냥 넘겨버렸다.
병주는 그 후로 깊은 방황의 늪에 빠졌다고 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쓰고 싶었으나 언제나 힘에 부쳤다. 그는 그간 국내를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했고 이제는 남미로 갈 계획이라 했다. 처음 방송국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눈빛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그 날도 자신의 꿈이 좌절됐던 방송가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다시 이곳에 서리라 다짐하는 순간 돌진해 오는 희정의 차와 부딪치게 되었고 오히려 정신을 잃은 것은 희정이었던 것이다.
“나도 병주 씨 나이라면 역시 어디론가 바람처럼 떠나고 싶다.”
희정은 신세한탄을 하듯 내뱉었다.
“나이 같은 게 무슨 상관이에요, 같이 떠나실래요?”
“……!”
갑작스런 제안에 희정은 크게 놀랐다.
어색해진 병주는 화제를 돌렸다.
“작가님, 조선시대에 유명했던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얘기 아세요?”
“알지. 그건 왜?”
“헤헤, 제 고향이 영산강변, 고죽시비가 있는 전남 영암이거든요. 제가 남미로 장기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오신다면 이 한 몸 아낌없이 바쳐서 가이드 해드릴 수 있는데.”
희정은 바닥을 드러낸 자신의 샘물이 다시 흐를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수라도 써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덜컥 승낙을 해버렸다.
" 곳곳에서 물 따라 길 따라
최경창과 홍랑의 이야기를 들은 개천들은
오늘도 소곤거리며 여울져 흘러간다."
새 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희정은 몇 해 전 조선 중기의 사랑이야기 한 편이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려진 것을 떠올렸다. 고죽 최경창이라는 선비와 관기 홍랑의 러브스토리가 가무악으로 엮어졌던 것이다.
홍랑은 조선조 선조 때 함경도 관아의 기생이었다. 미모가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가무와 풍류까지 즐길 줄 아는 그녀는 함경도 경성의 북도평사로 내려온 최경창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당시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던 최경창은 서른 네 살의 젊은 나이였고 홍랑은 꽃다운 열여섯 살이었다. 청렴한 선비였던 최경창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것은 홍랑의 아름다운 자태라기보다 그의 시를 이해하고 읊을 줄 아는 그녀의 예술적 재능이었다. 두 사람은 이내 최경창의 숙소에서 함께 기거하다시피 했다.
그런 그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최경창은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나 홍랑은 따라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양계의 금’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군사적 요충지인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이 다른 지방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고 특히 도성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했었다. 양계가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곳을 번성하게하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기생들은 ‘관물’이라 하여 관아에 속해 있는 노비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지방 관리와 기생의 사랑은 임기가 끝나면 그날로 이별이었다. 관리는 타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기생은 해당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경창과 홍랑도 이 비운의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최경창이 한양으로 떠나던 날, 쌍성의 함관령까지 따라나섰지만 더 이상 발길을 옮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홍랑. 그녀는 애가 끊어지는 아픔을 달래며 그에게 시 한수를 적어 보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그들은 그렇게 아픈 이별을 했다.
나를 위한 작은 일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최경창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병주가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혼자 남겨진 사람이 더 힘들지. 하긴, 아직 새파란 니가 이별이 뭔지나 알겠니?”
“작가님, 저 성인이에요. 홍랑이 최경창을 만난 것도 저보다 여덟 살 더 어린 나이였다구요.”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고 머리를 쥐어박으려던 희정은 주먹이 풀리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병주는 어느 모로 보나 듬직하고 건장한 남자였다. 일주일 후 영산강변 영암 땅에서 만나자며 신발을 꿰어 신는 그를 배웅하며 희정은 짧은 아쉬움을 느꼈고 혼자 남겨지자 집안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이 몰려왔다. ‘남겨진 자가 힘겹지’라고 혼잣말을 되뇌는데 문자가 도착했다.
‘떠나는 자 발길이 무거운데요. 병주’
병주를 만나기로 한 날까지의 일주일 동안 희정은 자기도 모르게 순간순간 이유 없는 흥분을 느꼈다.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이 그녀를 흥분시켰는지 아니면 병주와의 짧은 만남이 신선했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복잡한 일도 수월하게 넘겼다. 국장으로부터 거듭 걸려온 전화도 적당히 따돌릴 수 있었고 다시금 드라마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는 장 피디의 하소연에도 능청스레 웃어 넘겨버릴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랑의 굽힐 줄 모르는 사랑에 대한 생각도 진지하게 느껴졌고 병주와의 만남도 시간이 흐를수록 은근히 기다려졌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홍랑의 사랑
그녀는 영암으로 가기 전에 파주에 있는 홍랑의 묘를 찾기로 했다. 선배 드라마 작가로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겠다는 뜻을 밝힌 병주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일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아래에는 봉긋한 홍랑의 묘가 있었다. 한양으로 올라온 최경창은 이유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홍랑은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으로 올라와 최경창의 병수발을 한다. 홍랑이 잠도 안 자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병수발을 한 덕인가.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던 최경창은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그런 홍랑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엄격한 최 씨 문중에서도 홍랑의 정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조정의 당파 싸움은 서인 소속이었던 최경창에게도 덮쳤다.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은 도성에 출입할 수 없다는 당시의 ‘양계의 금’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기생이 양반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최경창의 생활에 대한 비난의 상소가 올려졌던 것이다. 결국 최경창은 파직을 당하게 된다. 도리없이 홍랑을 함경도 경성으로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는 최경창은 그의 애절한 심정을 시로 적어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함관령에서 이별할 때 홍랑에게서 받았던 시에 대한 답시였다.
말없이 마주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루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마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의 모습은,
기다리면서도 늘 한결 같았던 홍랑의 마음과 닮았다. "
그 후 이제나저제나 님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홍랑에게 최경창이 객사했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기생스캔들에 휘말렸던 최경창은 그 후 복직이 되었지만 변방의 한직으로 떠돌았다. 1583년 방어사의 종사관에 임명되어 한양으로 상경하던 중 그는 안타깝게도 객사를 하고 만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 다섯이었다. 청렴한 성격과 타고난 문재가 아까운 사람이었다.
뜻밖의 비보를 접한 홍랑은 그 길로 최경창이 묻힌 파주의 묘로 달려갔다. 이제는 살아서는 볼 수 없는 님을 향해 몇 번을 울부짖다 까무러쳤을까. 그녀는 정신을 차린 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의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혼자 무덤가에서 사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었을까? 한강변의 겨울 추위는 살을 에는 듯했고 지나가던 남정네들 추근거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급기야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는가 하면 칼로 생채기까지 내어 흉한 모습으로 만들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뒤 홍랑은 최경창이 남긴 유품을 정리하여 경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7년이라는 세월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떠돌다가 결국 해주최씨의 문중을 찾아간 홍랑은 가슴에 꼭 품고 다녔던 최경창의 유작을 전해주고 숨을 거둔다. 문중에서는 그녀의 공을 인정, 최경창의 부부 합장묘 바로 아래에 홍랑의 묘를 마련해주었다.
마음을 움직인 옛 사랑의 이야기
엄격했던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홍랑의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백성들 앞에 다시 떠올랐다. 서예가 위창 오세창의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서첩에서 홍랑의 시가 발견된 것이다. 그 후 가람 이병기가 <국문학전사>에 홍랑의 시조를 수록,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홍랑의 시조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고 지금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외웠을 연애시조로 사랑받았다.
21세기가 개막된 2000년 11월에는 고죽과 홍랑의 시 원본이 공개되어 또 한 번 그들의 초월적 사랑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희정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한 것 외에는 그 누구를 절절하게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이 공중파 방송국에서 멜로드라마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을 향한 짝사랑을 그렸던 첫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것도 자신의 진실한 체험담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세계의 설화나 신화, 심지어는 잡지책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드라마 소재 찾기에 골몰했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정작 가슴 설레는 사랑 한 번 해본 적도, 베갯잇을 적셔가며 이별의 눈물을 흘려 본 적도 없었기에 이번과 같은 슬럼프에 빠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남겨진 마음, 떠나는 아쉬움
영암읍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병주가 차를 갖고 마중 나왔다. 일주일 만에 보는 얼굴인데 병주에게서 남자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지루하진 않으셨어요? 안 오실까 봐 무지 걱정했어요.”
병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오지 말아야 했나? 영화에서도 한 쪽이 꼭 안 나오잖아.”
“아니죠. 시간이 엇갈리긴 하지만 두 사람, 꼭 나와요. 그건 제 말이 맞아요.”
병주는 희정에게 이곳 영암 구림마을이 2,2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마을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죽관. 이 마을 해주최씨 문중에서 건립한 고죽관은 조선시대 삼당시인 또는 팔문장으로 유명한 고죽 최경창을 기리는 곳. 고죽관 뜰 한 켠에는 최경창과 홍랑의 시가 나란히 담긴 고죽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고죽관 뜰에서 병주는 ‘사실 최희정 작가의 첫 드라마 팬이었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이번에 해외에 나가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돌아와 최 작가님 앞에 다시 서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병주와 희정은 월출산 자락의 도갑사, 왕인박사유적지, 차밭 등을 두루 다녀보고 독천리의 낙지촌에 가서 세발낙지도 맛보았다. 그 날, 희정은 구림마을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뒤꼍 대숲에서 바람이 일었다. 때로 그 소리는 최경창과 홍랑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처럼 들렸다.
이튿날 영암읍내 버스 터미널에서 두 사람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희정이 탄 서울행 버스가 병주를 남겨둔 채 먼저 출발했다. 희정은 마음이 아파왔다. 병주의 앞날에 힘든 일들이 끼어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진심이었다. 자신이 아닌 그 누구를 위해 진심으로 빌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그때 병주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남겨진 마음이 더 아픈 것 맞네요.”
“떠나는 마음도 만만치 않거든.”
희정은 거침없이 답을 했다.
짧게 주고받은 메시지였지만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뒤이어 또 다른 문자가 희정의 휴대전화를 두드렸다.
“최 작가, 지금 어디야?”
국장의 호출이었다.
희정은 느긋한 마음으로 답신을 보냈다.
“국장님, 대박 터질 작품 하나 찾았습니다. 홍랑과 최경창의 러브스토리,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주변관광지>
* 영암 구림전통한옥마을 061-472-0939
* 월출산 기찬랜드 061-470-2294
* 전라남도 농업박물관 061-462-2796~9
* 도갑사 061-473-5122
* 영암도기박물관 061-470-2764
* 왕인박사 유적지 061-470-2559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영산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