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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장수 중, CEO들이 가장 많이 뽑은 롤모델 1위.

허광빈 |2011.10.06 21:10
조회 23 |추천 0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삼국지 장수 중, CEO들이 가장 많이 뽑은 롤모델 1위

 




학식과 재능

조조는 어린 시절 꾀가 많고 멋대로 놀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면서도 무예와 학문을 닦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법가와 병가의 서적을 탐독하여 학식을 쌓고 무공을 연마하였다.
조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문학적 재능도 남달랐다.
수십 권에 달하는 병서를 정리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실력이나 학문을 좋아하는 바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조정의 대권을 장악하고 건국의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총명과 책략이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으로 비범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


조조는 철저한 자기 계발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조는 자신이 목표로 삼는 일에 매진하는 젊은이였고, 하고 싶은 일은 서슴없이 하는 재기 넘치는 젊은 시절을 보낸 듯하다.



이상적인 리더

조조는 하남에서 황건 반란군을 소탕한 공으로 제남의 상이 되었다.
조조는 부임하자 즉시 탐관오리들을 파면하였다.
또한 백성들의 곡식을 빼앗아 사치생활을 하는 제사를 폐하였다.
오랫동안 피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조조는 기다려 마지않던 이상적인 리더였다.



준엄한 태도

조조가 낙양북부위가 됐을 때의 일이다.
위(尉)는 지금의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도적을 잡는 일은 물론 법령을 지키게 하고 어기면 형벌을 주는 권한까지 있었다.


조조는 북부위에 취임하자 즉시 성문을 정비하고
성문 좌우편에 10여 개의 오색(五色) 몽둥이를 걸어 놓았다.
그리고 누구든 지위를 막론하고 성문 출입의 법규를 어기면 태형을 치라고 명령했다.


어느 날 영제의 총애를 받는 실력자 환관 건석의 숙부가 늦은 시각에 성문을 통과하겠다고 소란을 피우자 조조는 즉시 쳐 죽이라고 명령했다.


조조는 "건석의 숙부라고 해도 법을 어긴 것은 틀림없다" 라고 말하며 규정대로 법을 집행했다.
이후부터 성문 출입의 법규는 완벽하게 시행되었다.
이렇게 조조는 권세에 굴하지 않고 준엄한 태도로 법규를 시행했다.



사회적 안정 실현

조조는 식량부족을 해결하고 군량미 확보를 위해 둔전제를 실시하였다.
이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전반에 걸친 괄목할 만한 정책이었다.
피폐해진 농촌 경제를 구하고, 혼란 상태의 사회를 안정으로 이끄는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둔전제의 성공으로 생활이 윤택해진 농민과 병사들은 조조 정권의 시책과 법규를 믿고 따랐다.
이로써 민생의 안정과 사회 질서 회복을 이루었다.



각종 민생 우선 정책

관리임용제도를 개선하여 탐관오리들이 발붙일 수 있는 풍토를 없애고 능력을 우선시하는 기용방침을 정하여 일반 백성들 가운데서도 인재를 구하고 임용된 관리라 할지라도 능력을 다하여 일하지 않으면 추방해 버렸다.


교육제도를 확립하여 백성들이 학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군이나 국에서 우선 교육기관을 설치하게 하고각 현에는 500호마다 교관을 한 사람씩 배치하여 우수한 청소년을 골라 교육시키도록 하였다. 사회질서의 회복을 위한 조치로 사적인 복수와 사치스러운 예식이나 장례를 금했고 간음하는 자, 남을 폭행하는 자, 미풍양속을 해치는 자는 엄벌로 다스렸다.


또한 세금제도를 명확하게 하여 부자들이 숨긴 재산을 조사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고 들이고 가난한 백성에게는 세금을 과감히 삭감하였다.



인재 경영술

조조의 인재 경영술은 무엇보다
능력 위주의 발탁과 적재적소의 배치, 소신 있게 일할 수 있게 하는 환경조성이 핵심이었다.
효도와 청렴의 덕목을 우선으로 하는 한나라의 인재등용제도는 추천제의 약점으로 지방호족이나 소수 유력자들의 세력 확장에 이용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조조는 관리임용제도를 개선했다.
특히 매관매직제도를 혐오하고 있었기에 관리들의 능력을 우선하고 실력을 발휘하게 하는 구조적 개선책을 실시했다. 조조가 55세가 되었을 때 구현령을 발령하여 인재를 찾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능력 위주라고 해도 덕망이나 인간 됨됨이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공은 부하에게

조조는 인재등용에 열심인 이상으로 공로가 있는 막료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끊임없이 칭찬하거나 포상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하위직 벼슬에 있는 부하들의 충성을 높이 샀고 자신의 성공 뒤에는 이름 없는 병사들의 노고와 피가 배어있음을 잊지 않았다.
조조는 자기에게 주어진 물품이나 봉읍의 조세를 휘하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점령지로부터 거두어들인 물건과 사방으로부터 들어오는 공물들도 흔쾌히 부하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지도자로서의 면모

잔혹한 결단력, 법에 대한 엄정한 태도, 일군의 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통솔력, 변화무쌍한 임기응변의 재치 등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조조라는 인물의 풍부한 개성과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검소와 절약의 솔선수범

조조는 통치자로서 법질서의 엄격한 집행을 비롯하여 초토 위에 선 민중의 삶을 돌보고 다스리기 위해 세금을 줄이고 원호사업을 펼쳤다. 그리고 자신부터 검소와 절약을 솔선수범했다.
조조는 보통 옷 한 벌을 10년 이상 입었으며 해마다 세탁을 하고 꿰매 입었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도 검소와 절약을 실천하는 모습은 지도자로서 존경심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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