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끽] 세계일주 212일차 -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시작되었다.
길었던 나이로비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시작되니
혼자 다니는 나를 걱정해 주시는 많은 분들로부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약하게, 텐트에서 잠을 자다 지나가는 코끼리에게 밟혀죽을 수도 있단다.
실제로 호숫가에서 캠핑을 하던 여행자들이 하마에게 밟혀 죽었단 얘기도 들었다.
어느 외국인 여행자는 캠핑을 하는데 하이에나가 자기 얼굴을 물었던 적이 있었단다.
..맙소사;;
하지만 괜찮다.
동물은 낮에만 달리고 내가 조심하면 피할 수 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다른 사고 중 하나는 로드킬이다.
탄자니아의 어느 동네는 얼마나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지 100m마다 사람이 서 있단다,
교통사고가 나면 그 사람의 소지품을 훔쳐가려고..;;
사람도 살지 않는 이 넓은 땅덩이 어느 구석에서 교통사고 한번 당하면 뭐..;;
하지만 괜찮다.
이것도 내가 주의하고 좁은 길은 걸어가면 된다.
역시 가장 무서운건 사람이다.
이곳에선 히치하이킹도 함부로 해선 안 된단다.
데려다주는 척 ‘얼씨구나~’ 하고 태우고선 오질게 때리고
팬티한장 입힌 체 사막어디 버리면 끝이란다.
뒤에서 덮치고 흉기로 위협하고 총 갖고 등장해 주시면 도리없다.
하지만 괜찮다.
그냥 다 주면 되지..
음.. 이거 생각보다 간단하구만!?
세상의 문제들은 문제보다 더 많은 고민을 유발한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한다.
이게 바로 문제,
어차피 할 거라면 사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저 내 삶이고 내 여행일 뿐이다.
미련 갖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하고 싶은 만큼 하자.
다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니 왠지 엄청 기분이 좋다 :)
형선이와 수정이가 만들어준 깃발도 무지 마음에 들고 ㅎ
깃발의 한쪽 면에는 ‘므징가 푼다(바보 당나귀) - 청춘만끽’이 적혀있고
다른 면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
나이로비를 빠져나가서 얼마간은 비포장 도로라 길이 불편했지만
이후에는 길도 잘 나있었고 사람들도 굉장히 친절했다.
지나가면 모두가 응원해 주고 인사도 굉장히 잘하고 잘 받아주었다.
나이로비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경찰이 이렇게 친절하게 느껴진것도 처음이었는데
자기네 나라를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동양인이 신기한 것 같았다.
풍경은 그저 황량하기만 하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며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 한번 있었는데
갈림길에서 오토바이 택시들에게 길을 물어봤을 때였다.
내가 길을 물어보자 정말 순~!식간에 열댓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길을 가르쳐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농담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없는 소리들을 해서
정신이 없는데 그들은 내 자전거에 실린 짐을 만지작거리더니
모자에도 손이가고 물도 빼가려고 하고 가방주머니에도 손을 쑥쑥 넣는다.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쳐도 이것들은 싱글벙글, 수십명이 모여 움직이지를 못하니
이건 정말 위험하단 생각에 등에선 식은땀도 흘렀다.
심지어 한 놈은 꽂혀있던 깃발도 뽑아가려 한다.
‘그거 가져가서 뭐하게!’
버럭 소리를 쳐도 웃으면서 못 가게 막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고 겁이 났는데.
그 순간!
히어로 등장!!
왠 아저씨 한분이 등장해 사람들을 물리치는게 아닌가!
“야! 저리비켜! 건드리지 마! 확!!”
좀 쎄보였던 이 아저씨는 내가 무사히 도로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친절히 길도 알려주셨다.
정말 감사하다며 진한 악수를 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는데 정말 걱정됐던 순간이었다.
조금 더 달리다 점심을 먹으려고 한적한 길가에 멈춰 섰다.
점심은 ‘떡!’ 출발하기 전날 옆집(?)에서 떡을 주셨는데 그게 든든한 점심이 되었다. :)
자전거의 페달이 부러졌다.;;
나는 엄청 싼 자전거를 샀기에 소모품은 오래 가지 못 할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하루만에 부러질 줄이야.. 다행히 달리는데는 지장없다.ㅎ
대부분의 케냐사람들은 정말 잘 응원해 주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는 차들도 다들 한번 씩 손을 흔들어주며 갔는데
내가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작은 트럭이 한 대 지나갔고 나는 늘 하던대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는데
그 트럭이 내가 가는 길 조금 앞에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Hello~ 무슨 문제있어?”
앗!! 이 착한 아저씨는 내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한줄 알고 멈춰선 것이다!
“No problem! 하지만.. 태워주신다면야..ㅎㅎ"
그렇게 나는 저녁이 되어가던 무렵 뜻하지 않게 히치를 하게 됐다. :)
이 친절한 할아버지의 이름은 ‘페트릭’
“어디가는 중이야?”
“국경도시 나망가요 :)”
“우리집은 나이로비랑 나망가 사이에 있는 카자도야,
이제 밤인데 우리집에서 자고가도 괜찮아:)”
“헛!! 감사합니다!”
이런 행운이!! 오늘밤 잠을 어떻게 잘까 무진장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일이!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려 할아버지가 사는 카자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싣고 온 저 나무는 뭐에요?”
“아~ 우리집 정원을 꾸밀거야 내가 손수작업하고 있지 - _-+”
할아버지는 이 마당을 사람들이 차도 마시고 모여서 회의도 할 수 있는 멋진 정원으로
만들 거라며 굉장히 즐거워 하셨다.
패트릭 할아버지네 집, 2층에서 살고 계셨다.
집이 지져분하다며 급히 치우시고는 근처에 딸이 사는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중엔 손자 에슐리가 찾아와 함께 놀았는데 내가 가진
물건들을 굉장히 신기해하고 사진찍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확인을 안했더니 내얼굴도 윤곽만 보이고 에슐리는 치아밖에 안보인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마을도 구경시켜 주셨는데 마을사람들의 인상도 좋고
참 조용하고 편안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페트릭 할아버지의 딸이자 에슐리의 엄마인 ‘나미’
찾아가 보니 할아버지가 전화를 해둬서 미리 저녁을 준비해 두셨다.
그들이 스와힐리어를 쓸 때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척봐도
효녀포스를 풀풀 풍기는 나미 아주머니 + _+
메뉴는 나이로비에서도 자주 먹던 우갈리와 소고기스튜, 카츔바리 였다.
“잠깐만 스푼 가져다 줄게”
“전 손으로 먹어도 괜찮아요 ^^”
“아, 그래?”
그리곤 손으로 우갈리를 쪼물딱 거리며 먹는데
그의 가족들은 스푼을 가져와 먹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뭔가..
우갈리는 다들 손으로 먹던데..?
덕분에 나만 원시인이 됐다.;; ㅋ
나미 아주머니집에서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페트릭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름달이 보였다.
아, 지구 저편에 있어도 달 모양은 똑같구나..
오늘은 추석이다.
나이로비에서 만났던 한국인 분들께선 추석을 함께 보내고 가라고 하셨었지만
평생 누군가와 함께 보낼 추석을 이번기회에 혼자서 한번 보내보고 싶었다.
페트릭 할아버지네 때문일까 왁자지껄한 추석은 아니지만
나는 충분히 따뜻하고 포근한 대보름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길을 나서는 나를 위해 할아버지가 아침을 준비해주셨다.
따뜻한 우유에 빵을 든든히 먹고 자전거 세팅~!
페트릭 할아버지는 아프리카가 많이 위험하다며 혹시 무슨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도 적어 주셨다.
“카자도마을 들어오고 Total주유소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우리집이야, 잊지말고 또와~”
“감사합니다! 다시 케냐에 오면 꼭 들를게요! 건강하세요. :)”
카자도를 벗어난 이날의 라이딩은 정말 평탄했다.
똑같은 풍경이 연속되다가 방목중인 소떼가 나타난다.
조금 더 가니 염소 떼도 나타나고
방황하는 당나귀도 나타난다.
아프리카 이곳저곳엔 방목하는 가축들이 굉장히 많았다.
마을을 들어서면 아쉽게도 거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전 처럼 할 일 없는 동네 총각들이 붙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 찍히는걸 싫어했고 나는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잘 달리고 있는데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아, 이 땡볕에 앉아 펑크를 떼우는건 생각만해도 기운이 빠졌기에 나는 바로 손을 흔들었고
정말 5분이 지나지 않아 차가 한 대 멈춰섰다.
“나망가요~!”
“타!”
오~ 쿨하다.
사실 아프리카의 도로는 한길로 이루어진게 대부분 이었기에
왠만하면 목적지는 같다. :)
이 친구의 이름은 ‘사이먼’
맨유의 ‘박’을 좋아했다.
박지성 선수는 정말 국가 인지도 상승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ㅎ
사이먼은 영어를 거의 못했기에 많은 대화를 할 순 없었지만 정말 친절했다.
헤어질 땐 무슨일이 생기면 전화하라며 연락처도 적어줬다.
현지인들이 보기에도 동양인 혼자서 자기네 나라를 여행하는 모습이
걱정이 되긴 하나보다 페트릭 아저씨도 사이먼도 모두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국경도시는 위험하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서 나망가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먼저 찾았다.
우리 돈으로 8000원 정도하는 로컬호텔이었는데 혼자서 쓰니 넓고 깨끗하고 좋았다.
짐을 풀고는 가장 먼저 펑크를 떼우고 마을을 둘러보러 나갔다.
환전을 하겠냐고 붙는 상인들과 국경을 오가는 트럭들은 좀 있었지만
생각보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 이었다.
일기 뚝딱쓰고 잠.
다음날 아침일찍 나망가에서 탄자니아로 국경을 넘어갔다.
아프리카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는건 처음이었는데 이미그레이션의
직원들이 친절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 ㅎ
큰 산이 하나 지나가고,
여전히 똑같은 풍경이다.
한참을 가도 사람도 없고 나는 다시 히치하이킹을 했다!
히치하이킹은 다양한 ‘착한’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사실 편하다.ㅋ
풍경이 좀 더 멋지고 그늘이 많았다면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빈 버스를 얻어 탔었는데 나를 태우고 조금가더니 히치하이킹 중(?)인
경찰들도 태워갔다.
결찰이라기에 아프리카에 부정부패를 일삼는 못된 경찰들이 떠올랐었지만
조금 얘기를 나눠보니 굉장히 순박해보였다.
한 사람일지라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전혀 다른사람이다.
버스의 목적지였던 ‘아루샤’에 도착하자 그들은 자전거 내리는 것도 도와주고
떠나는 길도 친절히 가르쳐주며 배웅해 줬다.
아루샤를 빠져나가서 나는 또!
히치하이킹을 했다. 아주 그냥 재미들였다.ㅋ
이번에 만나게 된 친구들은 ‘프랑키’와 ‘나소로’
이들은 각 도시를 돌며 빈병을 수거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려고하는 ‘모시’를거쳐
‘다르에스살람’까지 가는 길이라 중간에 나를 내려주기로 했다.
내가 가진 바나나를 나눠주며 친해졌는데 확실히 탄자니아 사람들이
케냐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하지만 나도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누구하나가 잘하는 것 보단 둘 다 영어를 못 하는게 더 의사소통이 잘된다.:)ㅎ
둘은 번갈아가며 잠을 자고 운전을 했는데 당시 운전을 하고 있던 나소로보다
프랑키가 좀 더 영어를 잘해서 서로서로 쪼가리 영어를 나눠가며 열심히 놀았다.
“다르에스살람은 안가?”
“거기도 갈건데 지금은 모시부터 들러야 돼, 킬리만자로를 등반할 거거든”
“오~ 킬리만자로는 멋진 산이지 아프리카 최고봉이야.”
“맞아ㅎㅎ, 난 산을 좋아하거든 꼭 오르고 싶어”
가다가 차가서면 화장실도 다녀오고 2~3시간 정도 달리자 모시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자 프랑키와 나소로가 모시사람들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충고해줬다.
“하지만 너도 탄자니아 사람이고 착하잖아”
“음 하지만 모시는 달라, 조심해!”
“걱정마 정말 고마워!! :)”
자기네들이 보기에도 아프리카가 위험하긴 한가보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헤어지는
사람마다 모두들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충고를 해준다.
모시 도착!
역시 가장먼저 숙소를 찾고 짐을 풀었다.
시원한 음료수도 하나 사마시고
땀이 홍건해진 옷도 갈아입고 빨래도 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킬리만자로가 있는 탄자니아 모시까지!
자전거 보다는 거의 히치하이킹을 해서 삼일만에 도착했다. ㅎㅎ
나는 모시에서 형선이(케냐에서 만난 친구)를 만나 함께 킬리만자로를 등반할 예정이었기에
모시에 도착하기 전날 연락을 했고 하루를 기다려 형선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케냐에서 생활할 때 사용했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프리카를 장기 여행할 계획이라면 핸드폰을 하나쯤 장만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약 3만원 정도면 기계와 유심카드와 한달정도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도 충전할 수 있고
아프리카대륙에서는 다른나라에 가도 유심카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사용 할 수 있다.
유심과 크레딧은 꽤 싸다. :)
저녁엔 맥주도 한잔,
모시에서 마셔서 그런가 역시 킬리만자로가 가장 맛있다 ㅎㅎ
다음날은 자전거를 수리하러 갔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내릴 때 자전거가 트럭에 박았는지 뒷바퀴 기어의 롤이 빠져버렸던 것이다.
어려운건 아니었지만 부품이 없었기에 자전거샵을 찾아 갈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싼 중고를 산걸까? 잔고장도 많이 나는 것 같다.;;
자전거 수리를 끝내고는 킬리만자로 등반을 위해 여행사를 찾아다녔다.
몇군데 비교 후 선택!!
네고하면 다른 곳도 가격과 조건은 비슷했지만 처음부터 솔직한 가격을 말해줬던
샤넬아저씨네 여행사에서 킬리만자로 등반을 준비하기로 했다.
샤넬아저씨는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가이드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고 조금 후
우리의 친구 ‘웨마’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장보고입니다. 물 많이 마셔~ 천천히~ 빨리빨리 안돼~”
숙련된(?) 가이드 웨마는 한국인 손님을 많이 만나봤는지 우리말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가이드도 왠지 재미있는 친구 같아 등반이 더 기대됐다.
이제 곧,
내 생애 잊지 못할 킬리만자로 등반이 시작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