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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정열의 땅, 이베리아 반도 여행 11. [알함브라가 있는 풍경, 그라나다 -2부]

행복나그네 |2011.10.09 17:58
조회 138 |추천 1

 

 

알함브라가 보이는 풍경, 알바이신 언덕

 

오전에 알함브라 궁전 관람을 마치고, 알함브라 궁전의 성벽을 따라 이어진 내리막길을 걸어 그라나다의 구시가지로 내려갔다. 구시가지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위치한 맥도널드에서 배낭여행자의 일용할 양식인 빅맥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구시가지 탐방에 나섰다. 그라나다의 구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라나다 시내에는 두 종류의 투어버스가 있는데, 하나는 그라나다 시내의 둘레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카테드랄과 같은 주요 명소마다 정차하는 2층 버스가 있고, 다른 하나는 10인승 정도의 미니 버스로서 알바이신 언덕의 좁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운행한다. 투어버스 1일권을 구입하면 이 두 노선의 버스를 하루 종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나는 투어버스 1일권을 구입하여 우선 2층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 시내를 크게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붕이 열린 2층 버스에 앉아 있으니, 도로 주변으로 그라나다 시내의 모습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이 곳이 어디인지, 저 곳이 어디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라나다 구시가지의 저택들은 제각각 독특하고 개성 있는 건축양식으로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라나다가 과거 이슬람과 카톨릭 세력 간의 최대 격전지 였기에 그 복합된 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건축양식과 문화가 마을의 곳곳에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지붕이 열린 2층 버스를 타고 달리니, 휘리릭 지나가는 주변 풍경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날라와 기분이 좋다. 다만, 가끔씩 좁은 도로를 지날 때면, 도로변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안면으로 급작스레 다가오는 경우가 있어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나뭇가지가 귀 끝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 후에는 정말 조심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했다. 오픈된 2층 버스를 탈 때는 도로변보다는 그 반대편 좌석으로 앉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층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카테드랄 근처에서 내렸다. 그라나다의 카테드랄 역시 세비야의 그것처럼 카톨릭 세력이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그라나다를 탈환한 이후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성당이다. 역시, 그 건축양식이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 양식과 무데하르 양식이 혼합되어 그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특히, 이 성당의 황금예배당은 그 화려함에 압도되어 저절로 신을 경배하게 되는 숙연함이 느껴진다. 옛부터 교회나 성당을 이렇게 화려하고 멋지게 짓는 이유는 신에 대한 경배와 존경심 때문이었으니, 그 건축물 앞에서 절로 숙연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리라.

 

이렇게 카테드랄을 구경하고나서, 이번에는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알바이신 언덕을 올라간다. 알바이신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의 반대편 언덕으로서, 아랍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과거 카톨릭 세력에 의해 그라나다가 함락되었을 때, 아랍세력이 격렬하게 저항했던 곳이라고 한다. 미니버스가 알바이신의 좁은 골목 언덕길을 올라 싼 니콜라스 광장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싼 니콜라스 광장은 알바이신 언덕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가장 멋지게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알바이신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광장에서 알함브라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광장에 오르니, 사람들이 언덕 끝의 담벼락 위에 나란히 걸터 앉아 알함브라를 감상하고 있다.

 

 

이 곳에 서 있으니, 반대편 알함브라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내 마음속에 정지되어 있다. 오후 햇볕에 그 오묘한 색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알함브라의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그 뒤편으로 희끗희끗 보일 듯 말 듯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능선... 그라나다에서 이 보다 멋진 풍경이 또 있을까?  나는,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알바이신 언덕에 서서 알함브라에 넋을 잃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미술관의 관람객들처럼 한 편의 명화가 되어 버린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망부석이 되어 버린 듯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그라나다에서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2가지가 있다면, 바로 알함브라 궁전 관람과 더불어 알바이신 언덕에 올라 알함브라 궁전 바라보기가 아닐까?  아마도 알함브라의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촬영된 것이리라.

 

싼 니콜라스 광장에서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한 동안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왔다. 아직 다음 버스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의 한 카페에 들어갔다. 알바이신 언덕의 깍아지른 듯한 절벽의 전망 좋은 곳에 만들어진 이 카페의 테라스에 앉으니, 알함브라가 바로 눈 앞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와, 이것은 마치 노블레스 영화관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아주 멋진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해 향이 좋은 달콤한 레드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이 있을까?

 

 

한참을 앉아 바라보는데,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알함브라의 빛깔이 햇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데, 그 풍경이 신비할 뿐만 아니라, 황홀한 오묘함마저 느껴진다. 이 멋진 풍경을 보고 있짜니, 여행을 오기 전 읽었떤 이희수 교수의 "지중해 문화기행"이라는 책에 나오는 어느 무명시인의 노래가 떠올랐다.

 

불운의 왕이여!

죽을 용기가 없어 그라나다를 떠나는 못난 왕이여!

남아 있는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할진대

그까짓 왕관 하나 벗어던지지 못하고

그라나다를 떠나가느뇨...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예로부터 이슬람과 카톨릭 문화가 교차하는 곳으로 두 문명 간의 충돌이 잦았던 곳이다. 이슬람 점령 시기에는 카테드랄을 허문 자리에 이슬람 모스크를 세웠고, 반대로 카톨릭 점령기에는 이슬람 모스크를 허문 자리에 카테드랄을 다시 세웠다. 다시 세울 때마다 이전 곳보다 더 크고 웅장한 카테드랄이나 이슬람 모스크를 세웠고, 그 건축양식은 계속 혼합되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갔다.

 

 

그러던 중,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던 해에 이슬람의 술탄 보아브딜은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패하면서 알함브라를 내주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쫒겨간다. 이를 두고, 어느 무명시인은 그까짓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할진대, 이 멋진 알함브라를 버리고 도망갔느냐며, 이슬람 술탄의 비애를 노래한 것이다.

 

모로코로 도망간 이슬람의 술탄, 보아브딜은 페즈에 정착한 뒤에도 알함브라를 잊지 못해 페즈에 궁전을 하나 지었는데,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보다는 초라하지만, 알함브라를 모방한 궁전을 지었다고 하니, 보아브딜의 알함브라에 대한 애틋함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불운한 왕, 죽을 용기가 없어 그라나다를 떠난 못난 왕" 용기가 있었다면, 그라나다를 떠나는 대신 죽음을 택할 수 있을 만큼,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는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오죽하면, 알함브라를 그라나다라는 에메랄드에 오리엔트산 진주가 박힌 인류 최고의 보석이라고 했을까?

 

 

밤의 알바이신 언덕, 그리고 동굴 플라멩고

 

알바이신 언덕의 카페에서 알함브라를  충분히 감상한 후에 우리는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라나다에서의 일정을 끝내기가 아쉬워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호텔 로비에서 알바이신 야경과 플라멩고 공연을 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여 이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투어는 밤 8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데, 관광버스 안에 이미 사람들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여러 호텔을 경유하여 관광객들을 모아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버스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이미 깜깜해진 알바이신 언덕으로 올라갔다. 어둠이 내린 알바이신의 골목길은 음산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알바이신의 외진 골목길에서는 소매치기나 강도는 물론이고, 살인 사건도 종종 발생하는 위험한 곳이니, 혼자 어두운 골목길을 다니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알바이신의 어두운 골목이 더욱 음산해 보이고, 어두운 골목에서 나타나는 낯선 사람들의 눈빛이 웬지 날카로워 보인다. 

 

 

아무튼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그룹을 지어 안전하게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알바이신의 싼 니콜라스 광장을 다시 찾았다. 낮에 보았던 그 알함브라 궁전이 환하게 불을 밝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언덕 저 편의 알함브라는 깜깜한 하늘 위의 은하수처럼 반짝 반짝 아름다운 빛으로 어둠을 밝혀준다. 가이드는 우리들을 알바이신 언덕의 구석 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뭐라 뭐라 설명해주었으나, 나는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함브라의 아름다운 야경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알바이신 야경 투어를 마치고,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그라나다에 오면 필수코스라는 동굴 플라멩고 공연장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동굴처럼 생긴 방마다 의자가 쭉 놓여있고, 우리는 각자 한 자리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무용수들이 등장하고, 무대도 없이 바로 우리 앞에서 플라멩고 공연을 시작한다. "짝짝, 짝짝짝!!!" 처음 듣는 리듬과 박자가 어찌나 익숙하고 흥겨운지 우리들 모두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며 흥겨워했다. 이에 더하여 공연 중에 무용수들이 관람객들을 한 명씩 불러 한데 어울어지는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모두들 흥에 겨워 버스 안에서 플라멩고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며 즐거워하니, 다들 플라멩고를 안 보았으면 정말 후회했을 사람들이다. 플라멩고는 원래 집시들의 전통 춤인데,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삶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몸짓이다. 몸치인 나조차도 흥겨워 몸을 들썩 들썩하고, 장단에 리듬을 맞추게 되니, 플라멩고의 매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플라멩고 공연을 끝으로 그라나다에서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그라나다에서 "사장의 중정"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라나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버렸다.

 

"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이제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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