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1-10-04]
김경아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전동칫솔로 이를 닦는다. 사용한 접시는 식기세척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건물에 들어갈 때는 센서가 부착된 문이 저절로 열린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에 긴소매 옷을 입고 생활한다.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마트에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
월급날에 경아씨는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거의 모든 결제는 인터넷상에서 하고 있다. 손가락 끝만 움직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경아씨는 요즘은 톱스타 부부가 광고하는 ‘옷 전용’ 냉장고를 사려고 계획하고 있다. 32인치 TV를 보고 있지만 55인치 발광다이오드(LED) 3DTV로 바꾸고 싶다. 갤럭시S를 쓰고 있지만 아이폰5가 나온다는 소식에 환호한다. 55인치 TV를 사려면 32인치는 버려야 한다. 아이폰5가 나오면 산 지 1년도 안되는 갤럭시S를 버릴 것이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 대해 그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2008년 8월 ‘에너지의 날’을 기념해 ‘불 끄기’ 행사가 열린 서울시청 주변의 불 끄기 전(위쪽), 후의 대비가 명백하다. 다만 인근 90여개 빌딩 중 일부는 소등에 동참하지 않고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패션도 한철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이 유행이다. 멀쩡한 옷이 일회용 컵처럼 버려지는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기준 하루에 35만7861t의 쓰레기가 쌓였다. 2009년 현재 전국 쓰레기 매립지는 처리 가능량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부산물이다. 내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전면 실시된다. 절제 없는 욕망을 위해 장시간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고 번 돈으로 쓰레기를 사고 또 돈을 주고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악순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모은 물건이 에너지를 삼키기 때문이다.
더 큰 TV를 보려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에너지 소비 세계 8위로 에너지 소비 대국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세계 7위다.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프랑스나 영국, 일본을 능가한다. 그래서 지난해 1216억5000만달러어치의 에너지를 수입했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간 전력소비는 124%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의 증가율은 10% 안팎이다. 다른 나라보다 12배만큼 더 편리를 좇고, 소비에 탐닉하는 것이다. 김치냉장고 보급률은 80%를 넘어섰다. 외국인들은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한 가정당 냉장고를 평균 2대씩 갖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이런 사회에서 전력 공급이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지난 9월15일 이미 예습을 했다. 엘리베이터에 갇혀 1902건, 2905명이 긴급구조를 요청했다. 4588개 중소기업이 총 301억91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편리함을 좇아 쌓아올린 정보기술(IT) 왕국 역시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불안하다. 도시 곳곳에 무선 인터넷망이 깔리고 금융 네트워크 위에 설계된 IT 한국의 미래는 장밋빛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전이 되자 IT는 무용지물이었다.
지난 4월에는 농협 전산망 장애 사건으로 3000만명에 달하는 농협 고객들은 18일 동안 IT 디스토피아를 목격했다. 각종 포털사이트 해킹으로 빠져나간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량으로 매매되고 있다. 편리함에 중독될수록 불안과 공포의 크기도 커진다.
지난 3월12일. 결국 끝없는 욕망과 소비가 폭발했다. 지척인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때문에 위험에도 불구하고 원전 건설에 눈감은 결과였다.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 토대 위에서 불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욕망은 지구를 덥히는 탄소도 배출한다. 요즘 국내산 명태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대표적 한대성 어종인 명태가 한반도에서 거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수면의 온도는 1년에 약 0.6도씩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평균의 2배가량 빠른 속도다. 해수면 0.6도를 올리려면 핵폭탄 150만개가 터질 때 내뿜는 에너지양이 필요하다.
10년 후인 2021년쯤에는 한반도의 남해안과 동해안 지역이 모두 아열대 기후에 속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지난해 국내 사망자수는 통계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겨울에 닥친 이상한파로 폐렴, 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이 높아지면서 고령층의 사망률이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집중호우로 인명·재산피해는 물론 농작물이 타격을 받아 식품 물가가 치솟았다.
20년 전만 해도 아토피를 앓는 아이가 드물었다. 그러나 2009년 아토피, 천식 등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6분의 1이나 됐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은 사실 죽음을 무릅쓴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면 덜 편리하게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핵발전소 54기 중 43기가 운전 정지됐다. 그러나 정전은 없었다. 두 대가 운행되던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는 한 대만 움직였다. 공장들은 에너지 수요가 많은 평일을 피해 가동했다. 서울보다 훨씬 습하고 무더운 도쿄에서는 대학 교수들도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차가운 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담그고 러닝셔츠를 입고 있는 풍경이 일반화됐다. 소비를 조금 줄였지만 시스템은 충분히 돌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니혼대학의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는 원전 사고를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한다. 지금처럼 살면 그의 말대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삶의 태도를 조금만 바꿔보자. 가까운 지역에서 난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보자. 식재료가 생산, 운반, 소비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기름이 쓰이고 공해가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자.
제초제·살충제뿐 아니라 장거리 이동 시 발생하는 유해 약품처리는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밥을 먹은 후에는 ‘탄소발자국’을 살펴보자. 쌀밥 한 공기, 북엇국, 된장찌개, 쇠고기 장조림, 콩나물 무침, 배추김치를 아침밥으로 먹었다면? 승용차 1대가 11.9㎞를 달릴 때와 같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넘치게 만들고 버리는 일을 줄이면 된다.
플러그를 뽑자. 대기전력은 가정용 소비전력의 10.3%다. 전기제품이 동작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소비되는 전력이 전체의 10%를 넘는다는 말이다. 가족들이 비데를 사용하지 않는 한밤중에도 스위치는 켜져있다. 휴대전화의 충전이 끝나도 무심코 꽂아두는 충전기에서도 에너지는 빠져나가고 있다
더 효율적이고 편리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비만이나 성인병, 우울증, 자살은 더 늘어나고 있다. 편하게 살기는 결코 우리의 행복과 풍요를 보장하지 못한다. 건강, 안전한 사회,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소의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경향신문 김다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