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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조직률 50%로

개마기사단 |2011.10.10 17:41
조회 109 |추천 0

[경향신문 2011-10-05]

 

단지 노동조합이 싫었다. 지난 3월 구로공단의 ㄱ업체가 일주일 사이 두 차례나 공장을 옮긴 이유다. 이 업체의 전 직원 5명이 지난 1월 노조를 설립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사장은 사상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도 정리해고를 진행하는 한편 임금을 30% 깎자고 요구했다. 이런 행태에 반발해 직원들이 나선 것이다.

노조 설립 두 달 만에 직원들은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 다음날 회사는 인천 남동공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직원들은 인천 사무실 앞에 집회신고를 냈다.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일주일 만에 회사는 경기 안산 시화공단으로 다시 이전했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노조만 탈퇴하면 다시 구로동으로 가겠다. 급여도 인상해 주겠다”고 했다. 그 사이 노조에 가입했던 직원 5명은 모두 징계나 해고를 당했다. 이런 모습은 “구로공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노조 관계자들의 말이다.

“노조는 소상공 사업자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다, 루저양산 집단이다.” ㄱ업체 사장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가 좀 더 특별한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기업인들의 일반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아직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조 조직률은 1989년 19.8%까지 올랐으나 2000년 12%에서 2009년 10.1%로 지속적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은 물론 단체협약 적용률도 낮은 기형적 노사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묵살당하고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조 하면 사회적 역할보다는 파업과 투쟁, 생산차질과 경제적 손해, 시민 불편 등을 떠올린다. 이런 사회적 비용은 온전히 노조가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노조 조직률이 70%에 가까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나라들은 좀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노조 조직률은 산업계의 큰 자산”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산업별 노사 간 협약이 지켜지고 이것이 경제 문제를 예측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노조 또한 강한 힘에 비례해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

비단 ㄱ업체뿐만 아니라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협상에 나서지 않는 사용자를 끌어내기 위해 고공 크레인 농성을 택해야 할 만큼 일방적인 힘에 짓눌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노조의 극단적인 선택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정서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노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온 부메랑이다.

모든 부분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면서 정작 우리는 노사관계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무엇인지 자문해 보지 않았다. 프랑스는 노조조직률이 우리보다 낮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이 90%를 넘는다. 이는 최저임금제처럼 산별·지역별 노조와 사용자의 단체협약이 비조합원을 포함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노조조직률이 낮더라도 노동자 권익 보호가 가능한 이유다. 우리는 노조가입률, 단체협약적용률 모두가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OECD 수준의 국가 중에서 이런 나라는 한국, 일본, 미국밖에 없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교사들도 종종 파업을 벌인다. 서비스노동조합(SEIU)에는 의사도 4만명이 가입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150년 전에 시작된 노조 조직운동이 없었다면 중산층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고 했다. 이 말은 오래된 미국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테네시 강 개발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만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할 수 있게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수익이 골고루 분배되고 임금이 올라가면서 부유층과 노동자의 차이는 급격히 줄었고 중산층 중심 사회가 탄생했다. 실질 소득이 증가하면서 구매력이 늘었고 경제는 안정화됐다. 말 그대로 사회적인 ‘새로운 합의’(New Deal)를 이끌어낸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그 반대다.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은 ㄱ업체처럼 아예 협상 테이블 자체에서 배제되는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했다. 특히 비정규직은 중소영세사업장에 집중됐다. 1~4인 사업장의 83.5%가 비정규직이다. 인력파견업체를 중심으로 한 간접고용은 대세로 굳어졌다. 이들은 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임금은 월 평균 150만원을 넘지 못하고 있고, 계약기간은 1년 이하가 대부분이다. 간접고용을 통해 불법파견을 일삼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금융업에 빗대 ‘노융(勞融)’업자라고 부르며 중간 이윤을 챙기고 있다.

일하는 이들 스스로 노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다. 노조 없는 기업에 익숙해진 결과이다.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1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지만 2009년 현재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조직률은 0.2%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미미한 한국은 흔히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조직된 노동자의 힘은 일한 만큼의 소득을 보장할 뿐 아니라 복지 사회도 촉진한다.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다양한 세력의 균형 위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너무 치우친 사회이다. 치우친 사회는 자연히 상당수의 일하는 시민, 즉 노동자를 배제하게 되고, 이들의 목소리가 없는 사회는 톱니 빠진 시계처럼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없다. 노조가 더 많아지고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조, 조합원들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담당한 몫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정의에 관한 문제이자 이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고 사회의 지속성을 위한 일이다.

노조가 사회적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개별 기업 단위의 노조 체제를 지역·산업별 노조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대다수의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조로는 한계가 많다. 노조가 조합원만을 대표할 수 있게 돼 있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고쳐야 이것이 가능하다. 이런 초기업적 노조가 사용자 집단과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전 노동자들에게 확장되도록 한다면 적어도 낮은 노조조직률을 극복할 수 있다.

일부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기업단위 노사관계에 집착하고 있는 노조의 인식도 바꿔야 한다. 전국교직원노조가 학원강사를, 대학노조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어깨를 겯는다면 초기업적 노조가 가능하다. 내 노동의 대가를 단순히 임금으로서가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함께 확보하는 일, 그 속에 새로운 사회의 미래가 담겨있다.

<경향신문 황경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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