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11-10-13]
폴란드와의 연습경기, UAE와의 월드컵 지역예선전 두경기를 마치고 축구 대표팀이 뜻하지 않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대표선수 차출과 활용방식에 대한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UAE전이 끝난 후, 교체멤버로 짧은 시간 그라운드를 누볐던 이동국(32, 전북)과 손흥민(19, 함부르크SV)이 논란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동국은 11일 UAE와 치른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3차전(2-1 한국 승) 후반 35분 부상당한 박주영(26, 아스널)을 대신해 투입돼 10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손흥민도 UAE전 후반 28분 지동원(20, 선덜랜드)을 대신해 투입됐다. 두 선수는 모두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데 실패했다.
경기가 끝나고 논란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터졌다. 당사자가 아닌 해당 선수의 지인들에게서 연이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 것. 이동국의 소속팀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조광래 감독의 선수기용을 비판하며 "땜빵용으로 쓰려면 앞으로 이동국을 대표팀에 뽑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당초 이동국은 이번 UAE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뒤늦게 추가발탁되며 기존 선수들의 부상에 따른 '땜빵' 선발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씨도 UAE전 이후 폭탄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대표팀 차출을 자제해줬으면 한다"는 주장을 피력한 것. 손웅정씨는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중 "손흥민이 아직 대표팀에 선발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15분여 경기에 나서기 위해 30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을 견디며 먼 길을 오가는 것이 무리"라는 대목에서는 결국 대표팀에서의 기용에 불만이 있음을 드러냈다.
대표팀 내 최고참급인 이동국과 막내급인 손흥민. 입장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결국 출전시간과 비중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제대로 써주지 않을 거면 아예 부르지 말라'는 논리다.
제대로 써주지 않을 거면 아예 부르지 말라?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이 이동국의 대표팀 은퇴와 손흥민의 차출 거부 사태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선수 당사자는 물론이고, 향후 대표팀 감독의 권위에도 흠집을 남길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태극마크의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이동국과 손흥민을 아끼는 지인들의 마음은 십분 헤아릴 수 있다. 특히 이동국은 그동안 대표팀을 오가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상처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던 선수다. 손흥민은 앞으로 미래가 더 촉망되는 유망주다. 한국축구에 오랫동안 공헌해온 베테랑에겐 그에 걸맞은 예우가, 유망주에게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우선 기본적으로 중시되어야 할 것은 '선수 선발과 기용은 어디까지나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는 점이다. 이동국과 손흥민이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팀의 일원일 뿐이다. 대표팀 사령탑이 특정 선수의 기용에 얽매여 눈치를 보다보면 소신 있게 팀을 이끌어갈 수가 없다. 소속팀에서 잘했다고 해서 대표팀에서 모두 베스트멤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는 벤치멤버나 조커가 될 수도 있다.
일단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과 손흥민을 대표팀에서 활용하는 방식이 그렇게 불만을 자아낼 만큼 '상식에 어긋난 것인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현재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는 박주영과 지동원이다. 이들은 1년 전 조광래호 출범 때부터 부동의 주전 자리를 꿰차며 좋은 활약을 펼쳐왔다. 박주영은 최근 국가대표 경기에서 폴란드전 포함 4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진가를 발휘했다. 이동국과 손흥민이 최근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나서려면 이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조광래 감독이 그렇다고 이들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조광래 감독은 폴란드전에서 전반전에 이동국을 중심으로 하는 스리톱 전술을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잘되지는 않았지만 선수와 전술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나올 수도 있는 시행착오다. 대표팀에서 1년 넘게 공백기를 거친 이동국이 복귀하자마자 팀전술에 녹아들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이운재나 안정환은 1분도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선수 기용은 코칭스태프의 고유 권한... 월권 없어야
손흥민은 어떤가? 조광래 감독은 꾸준히 손흥민을 불러들여 테스트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 때 처음으로 대표팀에 승선했던 손흥민은 이후 부상으로 소집될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잠재력은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아직은 어린 유망주에 불과하다.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나 이천수(30, 오미야), 이영표(34, 알 힐랄) 등도 처음엔 모두 교체멤버에서부터 시작했다.
오히려 K리거들 중에서는 대표팀에 발탁되고도 실전에서 1분도 뛰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 면에서 어린 손흥민이 꾸준히 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교체멤버로라도 중용되는건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베스트11에 들지 못하거나 출전시간이 적다고 해서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예전에는 어린 선수들이 올림픽팀이나 청소년대표팀에도 무분별하게 중복차출되곤 했지만, 시대가 달라진 데다 유럽파인 손흥민에게는 그런 식의 혹사도 애당초 불가능하다. 현재 대표팀에 A매치 때마다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는 유럽파가 손흥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A대표팀에 소집되어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고 꾸준히 A매치에 나서는 자체가 손흥민에겐 유럽무대에서 뛰는 시간만큼 귀중한 경험이다. 더구나 UAE전은 단순한 평가전도 아닌 '월드컵예선'이라는 중요한 실전 무대였다. 당장의 한 경기가 아니라 손흥민이 장차 브라질월드컵 본선엔트리에 합류할 수 있는 중요한 평가지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파라는 이유로, 당장 쓰임새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표팀 감독에게 출장시간과 비중을 왈가왈부하는 자체가 도를 넘어선 특혜를 요구하는 격이다. 중고교 팀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에서, 그것도 당사자도 아닌 선수 부모가 이런 식의 주장으로 대표팀 운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비웃음을 살 만한 행동이다.
특정 선수를 '땜빵'으로 분류하든 '즉시전력감'으로 생각하든, 그 판단은 제3자가 임의로 내리는 게 아니라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게 룰이고 원칙이다. 또한 국가대표팀은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하고 하기 싫다면 마음대로 그만두는 놀이터가 아니다. 애제자와 친자식에 대한 빗나간 애정이 오히려 당사자들을 난처하게 하고, 태극마크의 가치와 국가대표팀 감독의 고유권한까지 침해하는 월권행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스포탈코리아 이준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