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테고리가 부모님에 관한 곳은 없는 것 같아서 헤어짐의 종류는 조금 다르지만 이곳으로 왔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고...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이 곳에 씁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부모님과 헤어진 뒤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볼게요..
혹시나 암투병중이신 가족분이 있다면 꼭 읽어주세요.
저희 엄마는 제가 20살 때 처음 암수술을 받으시고..
제가 25살 되던 올 해 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떠난 빈자리는 상상해 볼 수 없던 것이라서..
정말로 떠나 버린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저와 제 동생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어요..
동생은 객지에서 학군단 생활을 하며 터질것 같은 슬픔을 간신히 눌려가며 생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가 남기고 간 빈집에서 하루종일 엄마를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저희 엄마는 밖에서 일을 하시느라 저희 남매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그 덕에 맏딸인 저는 철이 일찍 들었습니다.
엄마도 우리 딸은 철이 일찍 들었다며 은근히 자랑하시기도 했구요.
그런데 뒤늦게 고등학교 무렵부터사춘기를 겪으면서 점점 엄마에게 섭섭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짜증내는 날도 많았고... 그랬죠...
여느 평범한 가정의 엄마와 딸일 때도 있었고
너무나 심한 사춘기 딸의 모습으로 있을 때도 있었죠..
점점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고.. 일부러 더 못되게 굴기도 했어요.
저는 엄마랑 목욕가는 것도 어색했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가 졸업을 하고 대학생이 되던 가을 암수술을 받으셨어요.
우리엄마가 암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고,
암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병인지도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암에 걸린 엄마를 병원에만 의지한 채...
아니 병원에서 다 낫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무심했었네요..
아픈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 간호사, 약보단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이었을텐데 말이죠..
20살 가을 저희 엄마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어요.
직장, 신장, 자궁에 있는 혹을 제거 하는 수술이었죠.
병원에서는 항상 종양들을 제거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어째든 성공적이게 끝났어요.
21살 봄, 몰라보게 회복한 엄마의 모습에 안심하고 저는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6개월정도 엄마를 떠났어요. 그 사이 우리 엄마는 지방에서 서울까지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가끔씩 병원에 가셨습니다....
대장암수술을 하면 화장실가는 것을 컨트롤 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해요.
저희엄마도 그랬구요.. 제가 사는 곳에서 서울까지는 약 4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휴게소를 딱 한번 들리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슴아프네요. 기회가 될 때는 한번씩 따라가곤 했는데 젊은 저에게도 굉장히 체력을 요하는 길이었거든요..
22살 저는 인천에 취업을 하면서 또다시 엄마곁을 떠나요. 1년정도네요..
인천에 일하는 동안 엄마가 서울 응급실로 실려오신 적도 있어요.. 결국 23살 겨울 수술하기 매우 힘든 위치에 암이 재발을 했고, 저는 일을 그만두고 엄마간호를 했습니다.
간호도 아니에요. 그냥 엄마입원한 옆에 있을 뿐이었죠....
그때 받은 수술도 종양은 성공적으로 제거 했고, 재발방지를 위해 항암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텐이라는 항암제였고, 이 항암제는 혈압이 올라가는 무서운 현상이 있어요.
하지만 그 때 저와 제 동생은 병원에서 특별히 주의 받은 적도 없었고,
작은 팜플렛에 혈압주의라는 문구가 있긴 했지만, 담당주치의, 간호사로 부터 특별히 당부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어요.
결국 그해 여름, 혈압상승에 의한 뇌출혈로...... 갑자기 엄마가 쓰러졌어요.
정말 갑자기.........
그날도 저는 엄마에게 짜증냈었던 것 같네요...
포도 먹자고 포도를 들고 나오다가 갑자기 온몸이 마비가 되신 엄마...
병원에서는 마음을 준비를 하라는 말과 함께 수술을 했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중환자실에서 보름가량을..... 힘들게 보내셨어요..
서울에 원래 다니던 병원에선 주치의가 도대체 뭐한거냐며 뒤늦게 우리를 다그쳤어요.
저희엄마는 이 모든 시련을 다 이겨내시고
열심히 운동하고 식이요법했어요. 그리고 공기가 좋은 절에 들어가셨죠..
그 산골짜기 작은 절에 엄마혼자 보낸 것을 지금도 후회합니다...
그 땐 몰랐어요. 엄마가 외로울 거란 것을 ........
같이 갈것을 그랬어요....
자꾸 원인없는 통증에 혹시나 해서
수시로 서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면 담당주치의는
엄마의 통증은 암과는 관계없는 거라고 딱 잘라 말했어요.
...........
그러기를 수개월......
엄마가 아파하면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애써 외면했어요.....
아파? 진통제는? ........ ......... 점점 무뎌져 가는 저.......
그러더니 그 주치의 몇개월뒤엔 말을 바꿉니다..
이제 1년 남았다구요. 방법이 없지만 항암제를 써보는게 마지막이라며....
그렇게 24살 되던 작년 저는 또 객지에서 일을 해서 엄마와 떨어져있었답니다.
이번에는 작은 병원에서 관리를 받으며 항암치료를 했지만
암덩이는 항암제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엄마의 온몸에 퍼졌습니다.
1년이란 시간은...... 단 몇개월로 바뀌었고.....
그렇게 엄마는 올해 봄 떠났습니다...
암이란 것이 이렇게 무섭더라구요..
그리고 암환자의 가족이란 것이 이렇게 지치는 것이더라구요..
그리고 특히 저처럼
엄마에게 못했던 딸은 후회가 더욱크고
슬픔뿐만 아니라 죄책감으로 가득합니다..
옆에 있는 엄마에게
많이 표현하시구... 효도하세요....
저같은 후회는 하지마시구요..
엄마가 암에 걸리고 나서 일을 그만두시면서
그나마 저와 시간 많이 보낼 수 있었는데
제가 계속 객지로 나갔었네요..
세상의 모든 딸들이 엄마와 많은 시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엄마에게...
엄마... 잘지내고 있어?
하늘에서 보고 있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긴 한걸까?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러잖아.
하늘에서, 마음속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항상 함께하는거라고..
근데 나는 잘 모르겠어..
엄마가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인지..
그저 남은 사람들이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같아..
엄마가 떠난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네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점점 짙어져만 가...
우습지? 옆에 있을 때는 그렇게 엄마 마음 아프게 했으면서 말이야..
눈물이 난다 엄마..
매일 매일 눈물이 난다...
항상 엄마에게 좋은 딸이고 싶었는데
마음에 있는 말 솔직하게 표현 못하고 삐딱하게 말하고
엄마에게 상처줘서 미안해..
엄마의 아픔 외면하려 해서 미안해...
엄마가 울 때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늘 우리엄마는 다 이겨냈으니까
이렇게 떠날 줄 몰랐어...
엄마말처럼 나 매일매일 너무너무 많이 울면서 지내..
엄마가고 나면 어쩔려고 엄마한테 그렇게 하냐고... 그랬던 엄마말이 생각난다...
그래... 있을 때 잘 할걸.. 이렇게 매일 울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인데 말이야..
이번 달 엄마 생일에 갈게..
엄마가 좋아하던 프리지아는 요즘 나오는지 모르겠다..
코스모스는 한창이던데 말이지......
이렇게 엄마이야기 써보니까
우리 엄마 진짜 너무 불쌍했네...
혼자서 너무많이 불쌍했네....
엄마의 작은 몸에 얼마나 많은 주사바늘이 들어가고
얼마나 많은 마약진통제가 들어가고..
................. 엄마 너무 불쌍해...
엄마.....
나 진짜 엄마대신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밖에 없었네..
지금도 그렇구.......
엄마 그 곳에서는 아프지말구..
정말 미안해... 나 같은 딸.... 다 잊어버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엄마 너무 보고 싶다.
49번째 생일 너무 축하해..
우리엄마는 영원히 48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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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일때도 너무너무 곱고 이뻤던 엄마...
사랑해..
살아 있을 때 많이 이야기 못해서 미안해...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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