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판죽순이 팬더입니다.
일단 먼저 고우고우 합니다 읽어주시면 감사할것같습니다.
(엽호판에 안맞는다는것알지만, 많은분들이 읽어주시려면 이곳에 올리는게 나을것같아 올립니다)
한복의 역사( 길고 어려울수있어요 한눈에보시려면 조금만내려주세요)
고조선시대에 이미 초의생활에서 벗어나 칡과 삼으로 짠 옷감을 사용하고, 전잠과 직조의 기예가 늘어감에 따라 의류문화에 진전을 보여주었다. 그 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는 옛 사기나 고분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대체로 유 ·고와 상 ·포를 중심으로 한 복장이었으며, 여기에 관모 ·대 ·화 또는 이가 첨부되었다. 유는 저고리로서 상체의 옷이고, 고는 바지, 상은 치마로서 하체의 옷이며, 여기에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허리에는 대를 띠며, 발에는 화 또는 이를 신어 포피로서의 의복의 형태를 갖추는 동시에, 그 위에 두루마기로서의 포를 더함으로써 한대성 의복 곧 북방 호복 계통의 의복을 나타낸다. 이에 있어 유는 곧은 깃에 앞을 왼쪽으로 여몄으며, 소매
가 좁고,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것으로, 오늘날의 승복 ‘동방’과 비슷한 것이었으며, 허리에 띠를 둘렀는데, 특히 깃 ·도련 ·소맷부리에는 빛깔이 다른 천으로 선을 둘렀다.
이후 중국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중국복식의 영향을 받아 좌임이 우임으로 변하고 소매도 넓어지는데, 선은 오늘날에도 회장 ·끝동 등으로 남아 있다.
이 저고리를 신라에서는 위해라고 일컬었는데, 오늘날 저고리를 우티 ·우치라고 하는 방언도 이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고리라는 표현은 조선 세종 2년 원경왕후 선전의에 라는 말로 처음 나온다. 고는 용도에 따라 폭과 길이에 변화가 있었는데, 양복바지와 같이 폭이 좁은 궁고와 지금의 한복 바지와 같은 대구고가 있었고, 오늘날의 잠방이와 같은 가랑이가 짧은 곤이 있었다. 궁고는 곤과 더불어 민층의 하의였고, 대구고는 상류층의 하의였는데, 발목을 대님으로 묶기도 하였다. 이 바지를 신라에서는 가반 또는 가배라 하였는데, 지금 우리말의 고의 ·고쟁이도 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으며, 바지라는 표현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인지가 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이 호칭은 이미 널리 사용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당시는 여자도 바지를 입는 것이 기본 복제였기 때문이다.
상은 여자 전용의 하의로서, 고와 상을 혼용하였다. 형태는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땅에 끌릴 정도였으며, 허리 부분부터 치맛자락 끝까지 잔주름이 잡혔고, 다시 치맛자락 끝에 일종의 장식연, 곧 선을 둘러 조선시대의 스란치마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상을 치마로 표현한 첫 기록은 앞에서 든 원경왕후 선전의에 와 함께 나오는 로서, 한글로는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한중만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포는 표의를 뜻하는 것으로서, 당시에는 유와 고 위에 착용하여 양복의 외투와 형상이 비슷하였는데, 오늘날의 두루마기에서와 같이 직령 ·교임 ·중거형의 것이 아니고 직령 ·교임 ·직수형의 것이었으며, 여기에 띠를 둘렀다. 이 포를 당시에는 왕공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모두 보편적으로 착용하였다. 포를 가지고 두루마기라 한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옷의 폭을 쭉 돌아가면서 다 막았다는 데서 나온 순수한 우리말 표현이며, 주의라는 명칭은 이를 거꾸로 한자화한 것이다.
이러한 한복의 기본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관복에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습용함으로써 고려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제도를 준용하였다.
중국과 한국은 정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양국의 복식도 서로 영향을 끼쳤는데, 신라의 경우는 반비 ·배당을 비롯하여 여자 포제로서의 활수의 ·색사대가 그것이다. 고려 때에는 제25대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부용국이 되면서 복식 풍습도 몽골풍을 많이 따랐는데, 질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으며, 제31대 공민왕 때 원나라가 쇠망하고 한족의 명나라가 다시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몽골풍은 사라졌다. 그러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 것은 몽골 복식의 영향이며, 이로 말미암아 띠가 없어지고 대신 고름을 달게 되었다. 또 여자 화관이 당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라고 하면, 족두리는 몽골인의 고고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 ·병자의 두 국란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자각심이 일기 시작하여 민족 복식을 형성한다. 이에서 두드러진 것은 남자의 포제와 입제이며, 여자의 예복과 친의류이다.
남자의 포제는 포의 기본형에서 고려의 백저포를 거쳐 직령→ 도포 → 창의에서 조선 말기의 주의로 발전하며, 입제는 평량자 → 초립 ·흑립으로 발전한다. 여자의 예복은 중국의 활수의 ·색사대에 속한 적의 ·대삼 등이 원삼 ·활옷 ·당의 등으로 국속화되었고, 친의류는 단속곳 ·바지 또는 고쟁이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 등으로 다양해진다. 그리고 조선 말 개화기에는 양복 ·양장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한복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졌다.
뭔가 슬픈역사네요... 점점 한복의 인식이 희박해지다니 ㅠㅠ...흑흑
하지만 우리는알고잇습니다. 어니나가도 꿇리지않는 아름답고 곱디고운 옷이라는것을!!
그럼 보기쉽게 통일신라부터 정리한글 (퍼옴..) 보여드리겠습니다.
*통일신라부터 개화기 이후까지의 한복의변형
통일신라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예복인 활옷, 원삼, 당의를 입기 시작하였다.
기본적으로 호복계통인 고유복식의 구조위에 삼국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며, 관모에 있어서는
복두가, 의복에 있어서는 반비, 배당, 그리고 표가 예이다.
신라의 기본복식 구조에 문화교류를 통해 새로운 당나라의 복식제도의 일부가 합쳐져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고려시대
고려후기에는 몽고풍이 상류층에 유행하였으며, 서민층은 기본 복식을 고수하였으며, 화관과 족두리가 들어왔다.
고려의 복식은 신라시대의 것을 계승하면서 당, 송, 원나라 등의 문화를 흡수 발전하였다
왕복을 비롯하여 백관복에 이르기까지 관복은 송, 원, 명나라의 제도를 받아 들이지만,
일반서민의 복장인 우리고유의 복식은 서민층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여성복식은 공경대부에서
사민의 처, 기생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는 없다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남자는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저고리의 기본형이 서민복으로 내려왔다.
저고리의 길이가 길고 여유있는 형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작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 웅장한 머리모양등
하후상박의 전통 한복미가 나타났고, 신분과 권력에 따른 복식이 특색있게 발전하는등 복식 발전기이다
조선시대는 유교윤리를 받들던 때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후기에는 실학사상을 거치면서 복식도
변화하여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로 정착 되었다.
개화기 이후
개화기에 우리의 복식은 중국과 서양, 그리고 고유의 복식이 융향된 복식의 변천을 보인다.
남자복식은 의복의 개혁에 따라 관복의 변천과 사복의 변천, 그리고 양복의 착용에서 복식의 변화를
알수 있으며, 여자복식의 변천은 한복의 개량과 양장의 착용을 들 수 있다
복식의 기본형태는 유지하면서도 저고리 길이에 변화가 많았으며, 고름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통치마를 입기도 했다
*한복의 종류 한복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은데요. 간단명료..? 하게 정리합니다.
1.조복
조복은 임금께 하례드릴 때나 국경일에 문무백관이 착용한 조복으로 정일품에서 9품까지 옷모양이 동일하면서 계급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2.원삼
조선 중기와 후기에 여자의 혼례복으로 많이 사용한 민간의 원삼이다. 원삼은 혼례 뿐 아니라 크고 작은 의식에 여자들이 입는 옷으로 녹색의 비단이나 항라에 홍색으로 안을 넣은 겹옷이다. 모양은 뒷길이 길고 앞길이 짧으며 양 옆 겨드랑이 밑까지 트이고 소매가 넓고 길다. 왕실의 원삼과는 달리 소매 끝에는 적, 황, 청, 녹, 분홍 등 오방색의 색동과 흰색의 한삼이 길게 달려 있으며 깃은 배자 깃의 모양을 하고 있다.
3.활옷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들이 혼례를 치르고 난 뒤 신랑 신부가 사당에 고유제를 지낼 때 입는 예복이다. 활옷은 홍색 비단에 가득히 수를 놓은 옷으로 그 내용은 장수와 다복, 부귀 등을 상징한 것이다. 옷의 모양은 원삼과 같이 뒷길이 길고 앞길이 짧으며 소매가 넓고 소매 끝에는 홍, 황, 청 삼색의 색동과 흰 한삼이 달려있다. 왕가나 귀족만이 입었던 이 할옷은 그러나 서민들이 일생에 단 한번 입을 수 있는 혼례 때 예복으로 착복되기도 했다.
4.상례복
조선시대의 유교 사회에서 효를 바탕으로 한 유교적 이념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대표적인 의복이 바로 상례복이다. 상례복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보수성이 강한 옷으로 죽은이를 위한 수의와 남은이를 위한 상복으로 구별된다. 의는 대개 생시의 각 신분별 최고 지위복으로 입히는 것이 관례이며, 관직이 있는 자는 재직 최고의 지위복으로, 관직이 없는 자는 혼례복으로 입혔으며, 여자의 경우도 혼례복으로 착용되었다.
5.무복
무당의 복색은 굿거리마다 다르며 보통 남색 치마를 신의 치마라고 하여 굿청에 들 때 남색 홑치마에 옥색 저고리를 예복으로 입었으며, 이 위에 장옷을 입는다. 이 무복은 녹색과 홍색의 양 소매와 흑색으로 배색된 구군복으로 굿거리 중 별상거리를 할 때 입는다.
자 보셨나요? 한복을 입는방법과 , 한복의 역사입니다.
유래보다는 역사를 알아야 한복을 알수있을것같아서요!!^^
그럼 입는방법을 알아볼까요?!
그럼 이젠 우리나라의 멋스러운 한복사진을 풀겠습니다.
이건 한복과 어울리는 우리나라 전통장신구들입니다^^
정독하셨나요? 정독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우리한복을 자랑스럽게여기고, 잠시라도 우리한복에대해 생각해보셨다면,
그걸로도 글쓴이는 뿌듯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올린자료들은 흔하디흔한 네이버에 "한복" 이라고만치면,
알아볼수는있는 글들을 퍼와서 정리한것입니다.
글올리면서 글쓴이도 다시한번 한복에대해서 생각할수있는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신글 올립니다.
글쓴이는 저번 엽호판에 기모노의유래를 올린글쓴이입니다.
기모노의 유래가 성관계를 위해 만들어진것이라고 하는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일단 인터넷에서 조사한것에따르면..
기모노의 오비는 한번에 풀어지지않는다는것을 알수잇었는데,
엽호판에서 많이들 그렇게 아시는것같아, 잘못된정보(?)를 알수도 잇다는 안타까운생각에
올렸던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분들이 읽어주심에도 불구하고 글이 너무길어,
정독을 바라진 않았습니다만은 글쓴이의 의도와는다르게, 다른분들께서
그냥생각하시고 요약하셔서 댓글을 너무 많이 다셨더라구요.. 자료열심히 찾아본글쓴이는 너무 슬펏습니다...
그리고 쪽바리라니요 엄연히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역사를 배우고 알고지내는 대한민국사람입니다.
처음에 글쓴것처럼 , 사실저는 반일감정이 없는것도 아니구요.
그런데.. 악플은좀..ㅠㅠ 안구에 습기가 찻더입니다...;;
아무튼 ,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리구!!
대한민국이 짱입니다.
평소 애국자라고 할수는 없으나 ,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으익 마무리가 안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