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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7국지전(局地戰) ⑶

개마기사단 |2011.10.15 16:07
조회 172 |추천 0

● 연수영의 유배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이 연일 전란으로 어지러운 사이에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신라 사이에도 여러 차례 피 튀기는 접전이 벌어졌다. 647년 10월에 위사좌평(衛士佐平) 의직(義直)이 백제의 정예군 3천을 거느리고 신라의 감물성(甘勿城)과 동잠성(桐岑城)을 침공해 초전(初戰)에서 부산현령(夫山縣令) 조미압(租未押)을 비롯한 3백여명의 신라군을 생포하였다. 김유신(金庾信)이 1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의직과 맞섰지만, 세 갑절이나 많은 병력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신라군은 백제군과 교전하는 곳마다 크게 밀렸다.

 

1만명의 신라군이 3천명의 백제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싸울 때마다 패배하여 사상자만 많이 늘어나자 김유신의 비장(卑將)인 김문영(金文穎)이 말했다.

 

“이대로는 어렵겠습니다. 병부에 군사들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십시오.”

 

그러자 김유신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수효가 문제가 아니라 싸우기도 전에 달아나려는 우리 군사들의 사기가 심각하다. 부럽구나! 백제의 군사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저다지도 용맹하단 말인가!”

 

전세가 점점 백제군에게 유리해지자 의직은 신라군의 군영을 손가락질하며 크게 웃었다.

 

“김유신이 신라에서 자랑하는 맹장(猛將)이라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허명(虛名)에 불과하였구나! 1만의 병력으로도 아군 3천을 이기지 못하는 저따위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랴!”

 

김유신은 용맹스러운 백제 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짓밟히며 갈수록 인명피해만 커지는 신라 군사의 수준 낮은 전투력을 절감하고 술을 마시며 탄식을 늘어놓았다.

 

“1만의 군사로 3천의 적군을 격파하지 못한다면 이 김유신의 명성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아! 싸우는 실력이 형편없는 우리 군사들의 전의(戰意)를 어떻게 북돋아준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김유신의 부장 가운데 비령자(丕寧子)라는 사람이 김유신의 군막을 찾아왔다.

 

“내가 홀로 적진에 나아가 죽기를 각오하고 분전하여 우리 군사들의 마음에 전의를 심어 주겠습니다. 내 자식이 여기 같이 왔는데 이제 이 아비의 용맹을 아들에게 보여 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출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자 비령자는 자신을 따라온 종 합절(合節)을 가만히 불러 말했다.

 

“나는 오늘 국가를 위해 죽을 것이다. 그런데 거진(擧眞)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뜻이 장렬하여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면 반드시 따라 죽으려고 할 것이다. 만일 부자(父子)가 함께 죽는다면 남은 식솔들은 장차 누구를 의지하고 험한 세상을 살겠느냐? 너는 거진을 말렸다가 대장군이 적을 쓸어버린 뒤에 내 해골을 거두어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어미의 마음을 잘 위로하도록 해라.”

 

종에게 당부를 마친 비령자는 곧 말에 올라 장창(長槍)을 비껴 들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비령자는 마상에서 춤을 추듯 장창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적진 깊숙이 달려 들어갔다. 그에겐 돌아 나올 길이 없었으니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혼자 싸우기로 작정한 마당이나 옆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백제 군사 수십명이 비령자에게 달려들어 창검(槍劒)을 앞세우고 그를 에워쌌다. 그러나 비령자는 마치 장창을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익숙하게 놀리며 가로막는 적군을 무참히 베고 찔렀다. 비령자의 주위로 백제군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햇무리처럼 갈라졌다.

 

의직은 비령자의 무예가 보통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부장 세 명을 보내 비령자를 처치하도록 했다. 달솔(達率) 예사홍(芮沙弘)·은솔(恩率) 진총(眞寵)·표덕(漂德) 등 세 명의 백제 장수가 힘을 합쳐 신라의 편장(偏將) 비령자를 협공하니 아무리 마상창술(馬上槍術)이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비령자라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예사홍의 칼날에 옆구리를 베이며 부상을 입은 비령자는 진총의 칼부림에 목이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성루 위에서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신라 군사들 가운데 비령자의 아들 거진이 있었다. 거진은 아버지가 홀로 적진에 들어가 적군에게 에워싸여 맹렬하게 싸우다 죽는 모습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 손에 칼을 잡았다. 그런 거진을 합절이 황급히 붙잡았다.

 

“도련님! 안됩니다. 대인께서 출장에 앞서 이 합절에게 특별히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남기셨느냐?”

 

합절은 비령자가 한 말을 고스란히 거진에게 옮겼다. 그러자 거진은 대꾸도 하지 않고 말에 올라탔다. 합절이 그런 거진의 다리를 양손으로 우악스레 붙잡고 눈물을 뿌리며 애원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분부를 저버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은 불효입니다. 제발 참으십시오!”

 

“놓아라, 이놈! 아버지가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도 참으란 게냐? 세상에 그런 자식이 어디 있느냐? 너는 그것이 효라고 생각하느냐?”

 

그래도 합절이 다리를 놓아주지 않자 거진은 칼로 합절의 팔을 내리치고 쏜살같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아버지가 죽은 자리로 달려갔다.

 

하지만 거진은 아직 스무 살이 채 안된 소년이었고 무예도 그다지 신통하지 않았다. 백제군은 고양이가 쥐새끼를 어르듯이 거진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거진의 몸을 동강내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엔 합절이 말에 올랐다.

 

“하늘이 무너졌는데 낸들 살아서 무엇하겠소!”

 

그는 만류하는 군사들에게 말했다. 이미 팔 하나가 잘렸음에도 성한 손에 병장기(兵仗器)를 쥔 채 달려나가서 주인 부자를 따라 장렬하게 전사하니 이를 지켜본 신라 군사들은 마침내 이를 갈고 눈에 불을 켰다.

 

“어린아이도 잔인하게 죽이는 백제군이다!”

 

“팔을 잃고도 주인을 따라간 합절을 보라! 성한 우리가 무엇을 겁낸단 말이냐?”

 

“우리 자식이 왔어도 저 꼴을 당했을 게 아닌가? 의로운 부자의 원수는 우리가 갚자!”

 

세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신라군의 사기는 일순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성루에선 군사들을 충동하는 북소리가 힘차게 울려댔다. 성문이 열리자 신라군은 함성을 지르며 차례를 다투어 앞으로 달려나갔다. 마지못해 떠밀려 나가던 어제의 군사들이 결코 아니었다. 비분강개한 김유신은 진두에 서서 직접 말을 몰며 백제군을 향해 돌진했다. 곧 비명이 난무하고 피비린내가 천지에 가득 찬 공방전(攻防戰)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기세를 회복한 신라군에게 수효가 적은 백제군은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한낮을 지나면서 이미 전세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한번 밀리기 시작하자 의직의 맹졸(猛卒)들은 급격히 기운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사람이 두세명을 상대해야 하는 백제군으로선 시간이 갈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가 죽으면 옆에 있던 사람은 당연히 대여섯을 상대해야 했다. 적은 숫자로 많은 군사를 상대할 경우엔 한쪽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퇴각하라! 무산성으로 퇴각하라!”

 

위기를 느낀 의직은 남은 군사를 불러들였지만 그마저도 일은 쉽지 않았다. 이미 김유신이 퇴로를 막아선 채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며칠간 교전에서 승리를 확신했던 의직은 갑자기 사정이 돌변해 패색이 짙어지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급기야 부하들을 챙길 겨를도 없이 혼자 도망가던 그는 협곡의 소로에서 김문영의 군사들을 만났으나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무산성을 포기하고 대야성 쪽으로 길을 바꾸어 달아났다.

 

백제는 이 싸움에서 3천의 군사를 모두 잃었다.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오직 의직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김유신은 싸움이 끝나자 비령자와 거진, 합절의 시체를 거두어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크게 슬퍼했다. 개선군이 돌아와 이 사실을 고하니 진덕여왕 또한 눈물을 흘리며 세 용사의 시신을 예를 갖춰 고향인 반지산(反知山)에 합장토록 하고, 나머지 식솔들과 구족(九族)에게도 은상(恩賞)을 후하게 주어 걱정 없이 살도록 배려하였다.

 

 

 

7월로 접어들었을 때 고구려 수군의 본진이 있는 비사성(卑沙城)에 평양성(平壤城)에서 보낸 태왕의 사자(使者)가 찾아와 성지(聖旨)를 전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가 막혔다.

 

“적군이 요동의 해안으로 침입하여 석성과 적리성을 유린하고 있었을 때 수군원수 연수영은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가! 짐은 그대가 과연 고구려의 수군을 총괄할 책임을 갖고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장수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노라. 짐은 직무유기(職務遺棄)를 행한 그대의 죄를 물어 수군원수의 직책에서 파직하고 수군의 신임 군주(軍主)로 연정토를 임명하겠다! 연수영은 부여성으로 유배형에 처한다.”

 

비사성은 삽시간에 당혹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군사와 백성 모두 하나같이 이 기막힌 현실에 넋을 놓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태왕과 대막리지가 갑자기 실성이라고 했단 말인가! 우리 연 원수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원수 자리에서 내쫓는단 말인가!”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찌하여 이토록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연수영을 단순히 상관이요 장수가 아니라 여왕처럼 공경하고 사모하던 장병들은 모두가 분노하여 울분을 토했다.

 

장운형은 탁자에 주먹을 내려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태왕이라고 해도 군사에 관련한 인사권한은 대막리지(大莫離支)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연수영 장군에 대한 파직과 유배형은 대막리지가 주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담열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대막리지는 통솔력과 지략을 갖추고 신중하며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각을 지닌 분이신데, 어째서 다대한 전공(戰功)을 세운 연수영 장군을 내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연정토에게 수군 총수직을 맡길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대막리지는 연수영 장군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견제하고 계시는 것이 틀림없네. 누이동생보다는 남자 아우인 연정토를 더 총애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하지만 연정토는 나라를 말아먹을 위인인데 그런 자에게 요동의 바다를 맡기다니…! 자기 가문의 일족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대막리지의 잘못된 처사가 이런 오판을 낳은 것일세.”

 

온사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연정토 대인은 지난 을사년(乙巳年)의 전란 때에 중요한 작전을 망쳐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던 어리석은 인물이오. 그런 자를 연수영 장군보다 더 신뢰하고 있다니 대막리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소! 나는 대막리지를 만나보고 직접 설명을 들어야겠소.”

 

쾌속선을 타고 평양성으로 달려간 온사문은 연개소문에게 항의하기 위해 거침없이 대막리지부로 발길을 옮겼다. 때마침 숙위(宿衛)를 보던 술탈(述脫)이 온사문을 알아보고 군례를 올렸다.

 

“온 장군께서 오랜만에 평양성에 오셨습니다. 여기는 무슨 일로…?” 

 

“대막리지를 뵈려고 왔네.”

 

온사문이 대막리지의 집무실로 걸어가려 하자 술탈이 그의 팔을 잡는다.

 

“지금 대막리지께서는 대대로(大對盧)이신 부기원(扶奇遠) 대감과 회담 중이십니다. 다음에 다시 오시지요.”

 

온사문이 버럭 화를 내며 술탈을 꾸짖었다.

 

“지금 요동의 바다가 당적에게 넘어가게 생겼는데 탁상에서 붓이나 굴리는 문신(文臣) 놈과 얘기하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장군! 대막리지부에서 이 무슨 무례한 언사이십니까? 억…!”

 

술탈은 갑자기 얼굴에 강한 충격을 받고 나동그라졌다. 온사문의 주먹에 가격당한 것이다.

 

온사문은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부기원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던 연개소문이 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부기원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연개소문과 온사문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대막리지(大莫離支) 합하(閤下)! 연수영 원수에 대한 파직 명령을 취소해 주십시오.”

 

“온사문 장군, 느닷없이 들어와서 이 무슨 행패요?”

 

“연 원수가 무슨 커다란 중죄를 저질렀다고 파직도 모자라 부여성으로 귀양까지 보낸단 말입니까? 그리고 연정토에게 수군의 총수를 맡기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연정토의 군사적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이미 합하께서도 충분히 보고 파악하셨지 않습니까? 정녕 요동의 바다를 당적들에게 내주어야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군인은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오. 이미 조정에서 결정된 인사이니만큼 불만이 있더라도 참고 따르시오.”

 

“합하,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합하께서 사람을 부리는 안목이 이렇게 좁으신 분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무엇이…?”

 

연개소문이 발끈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온사문은 눈을 부릅뜨고 환도(環刀)를 빼어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 부기원이 경악하여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저는 결코 연정토 휘하에서 수군의 참좌 노릇을 하지 않겠습니다! 연수영 원수에 대한 파직 명령을 거두시지 않으시겠다면 이 칼로 당장 소직의 목을 베십시오!”

 

온사문과 연개소문은 서로 상대를 노려보며 무거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부기원이 조심스럽게 온사문에게 말을 걸었다.

 

“온 장군, 연수영 원수에 대한 파직과 유배형은 태왕 폐하의 어명으로 내려진 것이오. 대막리지도 엄연히 태왕 폐하의 신하이거늘 어찌 어명을 어기고 마음대로 연수영 원수를 사면(赦免)한단 말이오? 부디 자중하시고 이 칼을 거두시오.”

 

그러나 온사문은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대막리지 합하께서는 이 나라의 군사와 외교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분이십니다. 따라서 군(軍)에 대한 인사권 역시 합하께 있는 것이지요. 태왕 폐하와 조정의 중신들은 내정만 살펴보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군사에 관한 일을 어찌하여 폐하와 중신들이 간섭한단 말입니까?”

 

“온 장군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내 비록 군사와 외교를 관장하는 대막리지의 직책에 있다고 하나 나 역시 엄연히 이 나라 고구려의 관리요, 태왕 폐하의 신하이거늘 어찌 폐하의 재가도 없이 내 마음대로 군의 인사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오늘 일은 더는 문제삼지 않을 것이니 연정토를 상관으로 모시기 싫다면 그대를 회원진(懷遠鎭) 방면으로 전출시킬 것이오.”

 

연개소문은 더 이상 온사문과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이 잘라 말하고 태위군 병사들을 불러 온사문을 대막리지 밖으로 끌어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수군에서 육군으로 되돌아간 온사문은 회원진 일대를 수비하는 서북계진무사(西北界鎭務使)로 임명되어 요동 지역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러면 연수영이 수군원수(水軍元帥) 태대사자(太大使者)에서 실각했는데, 그 자리를 차지한 연정토는 어찌하여 원수가 아닌 그 아래 계급인 군주(軍主)로 임명된 것일까? 그것은 연정토와 선도해, 부기원과 계진(桂振) 등 간신들이 조정에서 연수영이 요동의 수군을 자기 사병화(私兵化)했다느니, 장차 전쟁이 끝나면 그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느니 하면서 끈질기게 음해하고 참소하는 바람에 수군의 위상이 격하되어 버린 결과였다. 그래서 수군 최고지휘관의 계급이 원수에서 군주로 격하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중에 연수영이 재기용될 때에도 전의 계급인 원수가 아니라 군주로 임명된 것이었다.

 

온사문은 평양성에 가서 이번 사태가 대막리지의 독재권으로도 연정토의 임명을 막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무리 연개소문이라고 해도 자신의 누이동생이 잠재적 역적으로 지목되는 데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변호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는 모두 연개소문이 조정을 비우고 요서 방면으로 출전한 사이에 연정토가 선도해·부기원·계진 등 간신들과 배가 맞아서 만들어낸 일이었다. 이들 네 사람은 심약한 태왕을 주무르는 한편, 온건파 대신들을 회유하여 하나의 새로운 당파를 형성했다. 연정토는 제 입으로는 형에게 백번 천번 간청해봤자 씨도 안 먹히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태왕과 온건파 대신들을 움직인 것이었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당나라와 화친하지 않으면 우리 나라 고구려는 모두 굶어 죽게 생겼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한번만 더 군사를 주면 요동에 가서 이기고, 이를 바탕으로 당과 유리한 평화 공존 협상을 벌이겠다면서 아래위를 설득했던 것이다.

 

사실 보장태왕도 연정토의 볼품없는 군사적 능력과 전력(前歷)을 잘 아는지라 그의 허풍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연개소문의 독재를 견제해야 한다는 목표였다. 그래야만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만만히 당하지 않는다는 공통의 이해관계였다. 그래서 연개소문의 잠재적 대항마로 연정토를 내세웠던 것이다.

 

태왕이 여러 차례 불러서 연정토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간청하다시피 하자 연개소문도 끝내 거부할 수 없었다. 천번 만번 죽이고 싶지만 어쨌거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연정토는 연개소문의 동생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형제간에 화목하지 않고 불화하고, 상생하지 않고 상쟁하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세민을 비롯한 당나라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마왕, 고구려 백성들에게도 무서운 독재자로 머릿속 깊이 각인된 연개소문이지만 불치의 약점처럼 심약한 국석이 있었다. 특히 자식들에 대한 애정, 혈육에 대한 애착이 거의 병적이었다. 이러한 약점이 나중에는 고구려 멸망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이야 그때 연개소문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후안무치하고 몰염치하고 파렴치하며 용렬하기 그지없는 부적격자 연정토는 수군 군주라는 매우 과분한 감투를 쓰고 다시 한번 군사권을 잡게 됐던 것이다.

 

장운형·고성운·안고·담열 등 오래도록 고락을 함께 해온 심복 장수들은 울화를 참지 못해 신병을 칭하고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장수들은 물론 군사와 백성 모두 억울하게 쫓겨나 귀양 가는 연수영을 애석해하고 그 자리를 빼앗아 거들먹거리며 오는 연정토를 욕했다. 그래도 낯 두꺼운 연정토는 생해(生偕)·옥우겸(玉于鉗)·고흠(高欽) 등 심복 부하들과 친위병들을 거느리고 비사성으로 와서 본영을 접수했다.

 

연수영은 호송하는 군사들을 따라 부여성으로 유형길을 떠났다. 해란봉과 부경화·원신영·전혜원·고정림·연미경·장혜경 등 12낭자군에서 남은 7명이 연수영을 호위하며 뒤따랐다. 연수영은 뱃전에서 점점 멀어지는 비사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결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석성 도사로 임명된 이후 백성과 군사들과 더불어 5년 동안 울고 웃던 바다였다. 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았던가?

 

그 해에 연수영의 나이 서른세살이었다.

 

비사성에서 해로로 건안성까지 간 다음, 거기서부터 말을 타고 육로로 부여성으로 올라갔다. 연수영은 가는 길에 건안성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같이 했던 고원부의 아내 주순지(周純至)가 먼저 자러 가고, 낭자군들도 모두 물러갔다. 낭자군까지 한명도 남지 않고 모두 자리를 피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모두가 미리 짜고 벌이는 것처럼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침소에도 고원부가 안내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연수영과 고원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연 장군, 여자의 몸으로 군대에 있으면서 그 수많은 고초를 어찌 다 겪으셨소?”

 

반주로 마신 독주 탓인지 붉그레진 얼굴로 고원부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번도 나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바다를 사랑했을뿐이고 칼 한자루에 의지해 우리의 바다에 들어오는 당적을 막기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지냈지요. 하지만 성주님께서도 건안성을 지키면서 당적들과 싸우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무슨 소리를… 사실 내가 세운 전공(戰功)은 매우 작아 남에게 자랑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연 장군이 세운 전공이야말로 우리 고구려가 저 을사년에 이세민의 침략군을 격퇴하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결정적인 수훈이었소.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기가 막힌 꼴을 당하다니…”

 

“과찬이십니다. 누구의 공로가 더 큰가 작은가 따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요동 땅에서 당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연 장군은 평범한 아녀자들처럼 인자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을 두고 가정을 이루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소?”

 

“왜 없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전 이름 없는 산골짜기나 갯가의 아낙네가 되어 아이 기르며 조용히 살고픈 마음이에요. 하지만……. 서토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연수영이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지는 않았겠지요? 이 나라는 태왕과 조정의 중신들, 그리고 귀족들만의 것이 아니랍니다. 외적에게 나라가 먹히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선량한 백성들이지요. 남자들은 노예가 되어 혹사당하고 여자들은 당적들에게 육체적 쾌락의 도구로 전락하고 아이들은 당나라 황족들의 시종이 되겠지요. 그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저는 요동의 바다를 지키려고 군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연모해왔소. 당신을 마음에 두고 사는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고원부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목소리도 약간 떨렸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술기운 때문은 아닌 듯했다.

 

“성주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을사년에 건안성을 방문한 그대를 처음 본 이후로 나는 늘 그대를 생각했소. 그대를 향한 마음을 멈출 수 없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 마음을 멈추지 못하겠소.”

 

고원부가 더욱 다까이 다가오더니 연수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 성주님……”

 

“제발 부탁이오. 내 마음을 거부하지 마시오! 그대를 꼭 내 여자로 만들고 싶소. 오늘 당신을 갖고 싶소.”

 

고원부는 막혔던 물길이 한꺼번에 뚫린 듯, 폭포수가 힘차게 쏟아지듯 뜨거운 열정을 쏟아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귀양 가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서글퍼 연수영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 범벅이 되었다. 고원부의 품에 안긴 연수영은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그래요. 내 모든 것을 성주님께 드릴께요. 오늘밤 저의 외롭고 쓸쓸한 이 마음을 성주님께서 달래주세요.”

 

어두워진 침상에서 두 남녀가 일신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전라(全裸) 상태로 뒤엉켜 있었다. 고원부의 뜨거운 입술이 연수영의 달콤한 입술을 덮쳐눌렀다. 그의 손이 연수영의 가는 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두 남녀는 한점의 가식도 없이 원초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고무공같이 탄력적이면서 주체할 수 없을 지경으로 탐스러운 연수영의 젖가슴이 사내의 손아귀에 가득 잡혔다. 고원부는 열기 어린 신음을 토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고원부의 거친 손길에 자신의 유방(乳房)이 일그러지자 연수영은 아미(蛾眉)를 찡그리며 짧은 신음을 뱉었다.

 

연수영은 온몸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한곳으로 시선을 내렸다. 사내의 하체 중심부에 우거진 수림을 궤뚫고 천년거목인 양 우뚝 솟아 있는 큼직한 활화산이 보였다. 힘줄마저 굵게 튀어오른 그것은 흉측해 보이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연수영은 가만히 손을 뻗어 고원부의 남근(男根)을 움켜쥐었다. 음경(陰莖)에 전해지는 간지러운 느낌과 강렬한 압박감에 고원부는 절로 신음을 흘렸다.

 

이윽고 연수영은 남근을 잡은 손을 가볍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고원부의 입에서는 묵직한 비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여인의 얼굴이 서서히 사내의 하체로 파묻혀 갔다. 순간 고원부는 하체의 일부가 가득히 조여지며 압박되는 희열에 허리를 살짝 흔들며 신음했다.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머리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폭포수처럼 머리카락을 일렁이며 상하로 움직이는 여인, 간간이 머리결 사이로 흘러나오는 여인의 비음만으로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되리라.

 

“으음… 수영, 당신은 진정 당돌한 여자… 허억!”

 

고원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뻗었다.

 

순간 여인의 봉긋한 젖가슴이 손안에 가득 잡혀들었다. 이어서 그의 또 다른 손은 여인의 허벅지를 잡아끌었다. 일순 여인의 교구가 사내의 몸 위로 돌려지고, 여인의 둔부(臀部)는 사내의 얼굴 위로 겹쳐 있었다.

 

엎어진 채로 허벅지를 벌리고, 부드러운 초지로 덮인 신비의 언덕과 깨어진 석류처럼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로 연수영은 그렇게 고원부의 몸 위에 자신의 나신을 올려놓았다.

 

고원부는 여인의 만월 같은 둔부를 움켜쥐며 전율에 몸을 떨었다. 일순, 연수영은 심연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교성을 뱉었다. 사내의 입은 여인의 신비림을 헤치고, 부드러운 혀는 저 깊숙한 동굴을 영사처럼 헤집고 있었다.

 

여인의 엉덩이가 경련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녀는 혼절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내밀한 곳에서 번져오르는 미증유의 희열, 신비로운 동굴 내부를 샅샅이 스며드는 부드러운 이물질은 여인으로서는 초유로 느끼는 희열이었다.

 

사내의 손길은 자유로웠다. 허벅지를 쓸고 둔부의 풍만한 감촉을 마음껏 유린하고, 전신을 전류처럼 스쳐 가는 희열의 폭풍에 여인은 고개를 치켜 올리며 교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어느 한순간 그들의 자세가 바뀌고 사내의 상징은 그 태초의 신비동굴로 침습해 들었다. 그리고 고원부는 그녀의 만월 같은 둔부를 두 손으로 잡아 자신에게로 당겨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악! 아아……”

 

비로소 연수영의 입술에서는 고통스러운 비음이 흘러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대로 둔부를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난 그대의 여자……”

 

연이어 전해지는 아픔, 그러나 연수영은 두 손으로 고원부의 가슴을 짓누르며 하체를 움직였다. 그날 밤만큼은 외로움도 뜨거움도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었기에……, 그녀는 뜨거운 정열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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