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류하혈전(碧流河血戰)
연수영을 몰아내고 수군 군주(軍主) 자리를 차지한 연정토는 여기서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연수영이 세웠던 전공(戰功)을 능가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슷한 전과는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난번 비사성 탈환작전처럼 죽을 쑨다면 앞으로 고구려군에서는 자기가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연수영을 내쫓아버리니 장수에서 말단 졸병까지 어느 놈 하나 고분고분한 놈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연정토는 함대를 이끌고 출전을 단행했다. 이때가 648년 9월 18일이었다. 더 늦기 전에 뭔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에서 비롯된 출전이었다. 그러니 그런 작전이 성공할 턱이 만무했다.
연정토는 군사 3만여명에 4백여척의 크고 작은 군선을 거느리고 발해만을 북상하여 신성도(神星島)의 협량곡(挾量谷)에서 당장(唐將) 정명진(程名振)과 우진달(于進達)이 거느린 군사 1만 5천명과 함선 1백 50척의 적군과 조우(遭遇)하였다. 그러나 연정토의 함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5천여명의 군사와 1백여척의 전함을 잃어버리는 참패를 당했다. 정명진과 우진달의 당나라 수군은 승세(勝勢)를 타고 퇴각하는 고구려 수군을 역산(逆山)까지 뒤쫓아 다시 한번 타격을 가하니, 고구려의 군사 4천여명이 전몰(戰歿)되고 2천여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160여척의 군선이 격침당하거나 나포되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연정토는 협량곡전투(挾量谷戰鬪)와 역산해전(逆山海戰)에서 변명도 통하지 않는 완패를 당하자 저 혼자 살 길을 찾아 군사들을 버린 채 비사성 북쪽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장운형과 고성운이 당군의 반격을 막아내며 필사적으로 분전했지만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형세가 불리하여 패퇴하고 말았다. ‘아, 난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는가 말이다!’ 연정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탄했다.
이로 인해 막강하던 고구려 수군은 하루아침에 궤멸되다시피 무너졌다. 한 번 패배하자 군사들은 뿔뿔이 배를 끌고 달아나거나 바닷가로, 또는 산길로 달아났다.
그렇게 연정토는 참패했는데, 정명진이 고구려 수군을 궤멸시켰다는 승전보(勝戰譜)를 들은 이세적은 크게 기뻐하여 당나라 육군을 이끌고 다시 요동 지역으로 건너와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협량곡전투와 역산해전의 참패로 사실상 고구려 수군을 해체시킨 연정토의 무능은 먼 뒷날 임진왜란(壬辰倭亂)·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이순신(李舜臣)을 모함하여 실각시키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으나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 참패로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원균(元均)과 다름없었다. 다른 점은 연정토는 원균과 달리 영영 사라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전황이 걷잡을 수 없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연개소문은 결단을 내렸다. 적시(適時)를 놓칠세라 도성 방어 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부여성에서 귀양살이하는 연수영을 즉시 재기용하여 수군 군주로 임명했다. 한편으로는 금군(禁軍)을 보내 낯 두꺼운 연정토를 붙잡아오게 하여 하옥시켰다. 당장 목을 치려고 했지만 보장태왕이 그의 목숨만은 살려주라고 통사정을 했다. 연정토와 선도해가 제거된다면 자신의 왕권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 두려워서였다.
복귀 명령을 받은 연수영은 부여성에서 길을 떠나 건안성을 경유하여 비사성으로 돌아왔다. 연수영은 유배형을 받은 이후로 제대로 끼니를 잇지 못하였고 무너진 수군을 재건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절박한 심정이 그녀의 지친 몸을 휘감아치고 있었다. 연수영을 보좌하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장수들은 이제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수군 전체가 무너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어째서 이리 힘 없이 방황하는 것이오?”
“군주(軍主)! 이 싸움은 승산이 없습니다. 군사 6천여명과 70여척의 군선이 지금 우리에게 남은 병력입니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당의 대군과 정면으로 승부를 건단 말입니까? 지금이라도 수군을 해체하고 건안성이나 안시성으로 가서 육군에 합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안고의 말에 연수영은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극도로 의욕을 상실하고 있는 부하 장수들에게 연수영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고도형이 입을 열었다.
“설사 이긴다고 쳐도 그 다음에 우리에게 무슨 대가가 돌아오겠습니까? 장군님도 그만 포기하십시오. 가망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장군께서 전공을 세우신다고 해도 대막리지와 조정의 중신들은 장군을 죄인 취급할 것입니다.”
연수영은 부장들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성루에 올라 먼 바다의 달빛을 바라보았다.
‘이 바다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바다는 너무 고요하기만 하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운형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는 누각에 들어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풀이 죽은 장수들에게 소리쳤다.
“그대들이 그러고도 장수들인가? 연수영 군주께서는 아녀자의 몸으로 항상 앞장서서 적진으로 돌격하시고 가장 먼저 적병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용감무쌍하게 싸우시던 분이네. 그런데 그대들의 마음에는 일말의 양심도 없다는 건가? 창려에서 싸우던 일을 생각해보게. 그 때에 군주께서는 3천의 병력으로 적의 1만 대군을 격퇴하셨네. 장산도의 해전에서도 마찬가지였네. 우리 군사들이 당군과 싸워 여러 번 지기도 했지만 군주와 함께 한 고구려 수군은 단 한 차례도 당군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네. 그대들은 군주를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패배가 두려운 것인가?”
고도형이 장운형의 말을 받았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패배도 두렵고, 승리도 두렵고……, 모든 게 잘못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못난 자들 같으니라고… 우리는 치욕스럽게 패배하고 돌아왔지만 군주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고 계신데, 그대들은 정녕 한줄기의 양심도 없단 말인가!”
고구려 수군의 장수들은 거의 자신감을 상실했지만 장운형만큼은 연수영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모두가 희망을 버리고 있는데, 홀로 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해 싸워왔던가! 칼날로 바다를 아무리 그어낸다고 해도 결국 이 바다는 다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내가 가장 먼저 피를 뿌리고 죽는다 해도 나는 오직 칼 한 자루로 이 바다 위에서 적군을 맞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바다를 다시 고구려 백성들의 품으로 돌려줄 것이다. 내 스스로 치마를 벗어던지고 갑옷을 입을 때부터 나는 이미 여자가 아닌 무인(武人)이 되었다. 내 인생의 모든 끈을 이 바다에서 잘라낼 것이다.’
차가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상념에 잠기던 연수영은 이제 나약해진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연수영은 낭자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해변으로 군마(軍馬)를 타고 달렸다. 바닷가에 다다른 연수영은 추운 겨울날의 달빛 아래서 갑옷과 비의(緋衣)를 모두 벗고 실오라기 한 올도 걸치지 않은 나신(裸身)으로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갔다. 차디찬 물줄기가 그녀의 피부에 칼날처럼 예리하게 다가왔고, 가슴으로 조여드는 공기는 수십만대의 화살과도 같았다.
“이 바닷물을 내 무덤으로 하기에는 아주 딱이구나.”
도로 뭍으로 올라가 차가운 물기를 닦고 낭자군들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갖춰 입은 그녀는 다시 말에 올라 비사성의 누각으로 달려갔다. 장수들이 있는 누각 안으로 들어선 연수영의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결은 물기가 촘촘이 어려 있었다.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내가 이미 정보를 파악한 바로는 설만철이란 자가 청구도행군대총관으로 기용되어 요동 지역으로 출전했다고 합니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아직 요동의 각 성채에 전령의 보고가 당도하지 않았는데 연수영이 어떻게 벌써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지 놀라운 일이었다.
“살고 싶은 사람은 육군에 합류하시오. 나는 결코 말리지 않겠소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오직 한 자루의 칼에 의지해 전장에 나설 것입니다. 그대들의 말대로 이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도 결코 보상은 없을 것이며 심지어 목숨도 위협받을 지도 모르오. 그럼에도 나는 그대들과 함께 전장으로 나가길 소망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약조할 수 있는 건 내가 죽기 전에 그 누구도 같은 고구려인의 손에 죽지는 않는다는 것 한가지요. 그대들이 나를 방패로 삼고 내 시체를 적군에게 던져서라도 이 나라의 민초를 지켜낼 각오가 되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오. 그 누가 그대들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대들의 작은 이름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대들을 기억할 것이고 그대들을 위해 죽을 수 있소. 만약 나와 함께 전장으로 나서려는 자가 있다면 한 자락의 일심선(一心扇)에 그대들의 이름을 남기시오!”
연수영은 티없이 하얀 종이 위에 사리나무의 살이 부드럽게 드러나 있던 부채를 꺼내 펼쳐놓았다. 그러자 장운형과 안고·담열·고성운·승염 등이 부채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고도형·좌윤·부사해·전엽 등 부채에 이름을 쓰지 않은 10여명의 장수들은 연수영이 해명장(解明章)을 써서 박작성이나 오골성 및 국내성으로 이동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때 당나라에서는 다시 청구도행군대총관(靑丘道行軍大摠管)으로 임명된 설만철이 부총관인 배행방·우진달·이해안 등과 더불어 군사 4만 5천명, 전함 6백척의 수군을 이끌고 요동반도 해안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당군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압록수 유역에 이르러 상륙해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지점에 군영을 설치하고 노략질을 시작했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열고 나와 당군과 싸웠으나 병력의 열세로 초전에는 불리했다. 다시 성안으로 들어간 소부손은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박작성은 뒤로 산에 의지하고, 앞은 강으로 둘러싸인 천험의 요충이므로 공격하기 어려운 성이었다.
급보를 받은 연개소문은 국내성주 고문(高文)으로 하여금 오골성과 안시성의 군사 3만여명을 차출하여 박작성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박작성 외곽에 당도한 고구려의 응원군은 소부손의 박작성 군사들과 함께 안팎에서 당군을 협공했다. 견디지 못한 설만철은 급히 영채를 걷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벽류하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벽류하는 비사성과 석성도의 중간 지점, 석성 본성과 오고성의 들머리였다. 적군이 이리 상륙한다면 이번에는 건안성·안시성·요동성의 배후가 위험해지게 되는 것이다.
척후대를 통해 당나라 수군이 비사성과 석성도의 중간 지점, 석성 본성과 오고성의 들머리인 벽류하 쪽으로 뱃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적정을 보고받은 연수영은 전투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연수영에게 남은 것은 6천여명의 병사와 군선 70여척이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군량과 무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여덟 배의 적군과 맞서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태는 너무나도 심각했다. 지난 5년 동안 숱한 악조건 아래서도 적군과 싸워봤지만 이번처럼 전력 차이가 많이 나기는 처음이었다. 장산군도해전에서도 1천 2백여척의 전함에 병사 10만여명의 당군과 맞서 싸운 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연수영이 사기가 높고 전투력도 강한 군사 2만여명과 전함 3백여척의 고구려 수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비록 머릿수로는 비교도 되지 않은 열세였지만 그 무렵 연수영 함대의 사기가 최고조였던 것은 해전마다 연전연승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해전은 그게 아닌 것이다. 무능하기 그지없는 졸장 연정토 탓에 참패를 당한데다, 병사도 군선도 턱없이 모자라고, 게다가 군량마저 바닥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 싸움에서 진다면 지금까지 흘린 피와 땀이 모두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 이번 해전에서 패배한다면 이 바다의 제해권은 영영 당 수군에게 넘어가고, 승세를 탄 태종 이세민은 다시 수십만 대군을 일으켜 쳐들어올 것이 뻔하지 않은가?
따라서 무슨 수를 쓰든지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패배는 곧 죽음으로 직결된다. 나의 죽음, 군사들의 죽음, 나아가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연수영은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정 안 되면 내가 다시 선봉에 서겠다! 내 목숨을 방패삼아 군사들의 앞에 나서리라!’
“군주님! 이 벽류하는 함대를 숨길만한 섬조차 없거니와 방법은 이자방진을 펴서 적의 예봉을 막는 것뿐이지만 문제는 우리의 병력이 너무 적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장운형이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연수영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고심하던 연수영은 문득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만일 적장 설만철이라면… 검날과 같이 추행진(錐行陣)을 펴고 정면에서 이자방진(二字方陳)을 편 함대를 틀어막는 동시에 양면으로 장사진(長蛇陣)이나 방원진(防圓陳)을 치면서 겹겹이 에워싸고 들어올 것이다. 또한 후방을 안정시킬 함대를 일자진으로 구성하게 해서 봉합할 것이니……. 그 정도의 병력과 함대라면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전략과 전술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정면과 양면의 적군을 막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도우심이니…….”
연수영은 쾌속선을 타고 벽류하의 여러 강폭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밤이 되자 키를 잡는 대첨수(大僉手)가 뛰어와 연수영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 지금 여기서 배를 계속 강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면 큰일납니다. 강물과 바닷물은 서로 성질이 달라서 날이 어두워지면 심한 회류(回流)와 역류(逆流)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밤이 되면 강물과 바닷물이 부딪쳐서 회류와 역류가 일어난다고?”
“그렇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겨울바람이 차서 바닷물이 종종 강물로 역류되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특히 한밤중에 더 심하지요….”
“아, 그렇구나! 그걸 이용하면 되겠어.”
근심에 가득찬 연수영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더니 갑자기 대첨수를 얼싸안았다.
“참으로 고맙네. 자네는 천재야! 이번 싸움이 끝나면 자네에게 상을 주겠네.”
대첨수는 느닷없이 연수영이 자신을 칭찬하자 영문을 모른 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연수영은 장운형과 고성운 등 부하 장수들을 데리고 문제의 그 현상이 일어나는 벽류하의 하구 쪽으로 갔다. 그것은 바로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 겨울철의 강한 풍화가 바닷물을 강물로 역류시켜 강한 회류가 벌어지게 하는 종류의 자연현상이었다. 그런 현상은 이미 바다에 대해 많이 겪고 알 만큼 알고 있던 연수영조차도 처음 듣고 보는 것이라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장운형은 마침내 승리에 확신을 갖고 입을 열었다.
“만약 당군이 돛을 제대로 여러 개를 구비하지 않고, 무리하게 이쪽으로 한밤중에 대규모 함선을 몰아 몰려들 경우 역으로 아군의 화공에 당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 하구 쪽으로 들어오면 당군은 진형을 오므려서 선박을 밀착해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자방진이 아니라 활진(闊陳)을 펴서 화공을 펼쳐야 하겠지요.“
연수영이 장운형의 말을 받았다. 장수들은 실날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 하여 하나같이 미소를 띠었다.
이어 연수영은 제장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좋소! 한밤중 이경(二更)이 되면 적군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도록 합시다. 적군을 어느 장소에, 어떤 시각에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을 것이오.”
고대나 현대나 전쟁에서 시각과 장소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는 군사작전은 분명히 실패하게 된다. 연수영은 이경을 대접전의 시각으로 정했으며 그렇게 하자면 초저녁부터 적군과 교전을 벌여 벽류하의 하구로 유인해야 했다. 연수영은 60척의 군선을 주력함대로 편성하고 나머지 10척은 교소선(敎紹船)으로 꾸렸으며, 어선들까지 모아 적군의 주력함대를 저지하도록 하였다.
648년 11월 20일, 마침내 설만철과 배행방이 이끄는 당나라의 대수군이 벽류하 하구로 다가왔다. 역시 당 수군은 연수영의 예상대로 추행진과 방원진 등을 삼면에서 치면서 조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연수영의 병력 규모가 고작 군사 6천여명에 함선 70여척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4만이 넘는 대군의 함성은 출렁이는 물살과 바람보다도 더 거칠게 들려왔다. 마침내 연수영은 패검(佩劍)을 뽑아 적진을 향해 내뻗으며 군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방포하라! 적선을 모조리 불태워라.”
명령이 떨어지자 고구려 수군 병사들은 모두 포노에 철전과 화토병을 쟁이고 방포를 개시하였다. 어둠 속을 가파르게 가로지르며 한 대, 두 대씩 떨어지는 철전과 화토병은 적선을 매섭게 가격했다. 선두대열에서 진군해오던 당 수군 병사들은 즉시 방패로 틀어막고 필사적으로 고구려 수군을 치기 위해 돌격을 시작하였다. 연수영의 눈빛에서는 이제 긴장감이 사라졌고 오직 나라와 겨레를 지키겠다는 일념만이 격랑을 치고 있었다.
“궁수들은 수사(水射)를 개시하라!”
명령에 따라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겨 불화살을 날렸다. 당 수군 병사들은 목줄에 화살이 박혀 피를 뿌리며 뒤로 넘어갔다. 고구려 수군이 쏘아대는 시석과 철전은 당병들의 머리를 박살내어 그 피로 그들의 배를 붉게 적시게 했다. 이렇게 고구려 수군은 맹렬하게 싸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과부적(衆寡不敵)의 형세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따금씩 당나라의 군선이 고구려군의 선박에 맞붙여져 당병들이 도선(渡船)을 시도하는 바람에 궁수들이 활을 버리고 칼을 빼어 싸우는 난타전(亂打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대의 수효는 많고 그 전력이 강하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수영은 패검을 휘두르며 당군의 선봉함대에서 뛰어올라오는 적병들을 닥치는 대로 베고 찔렀다. 해란봉·고정림·부경화 등 낭자군 7명도 칼을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주군을 따라 용감하게 싸웠다. 그렇게 목숨을 건 결사항전을 세 시진(時辰)쯤 벌이다가 마침내 고구려 수군은 연수영의 퇴각 명령에 따라 깊어가는 밤중에 전속력으로 배를 틀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분위기에 크게 휩쓸린 설만철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고구려 수군을 추격해왔다.
당 수군을 유인하는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침내 이경에 이르자 연수영은 급히 함대를 돌리고 화공을 준비하였다.
“전 함대는 활진(闊陳)하라! 신속히 화공을 전개하라!”
고구려 수군은 갑자기 방향전환을 하고 장사진을 펼쳐 포노와 발석기를 발사하였다. 게다가 시간이 이경으로 넘어가면서 바닷물이 강물 쪽으로 강하게 역류하고 강한 풍화가 심한 회류마저 일으키며 당 수군의 군선들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여기는 바다가 아니고 강인데 왜 파도가 이리 심하게 치는 게야?”
설만철은 크게 당황하여 미친 듯이 소리질렀다. 고구려 군사들은 기름 항아리를 적선에 던지고 화토병과 불화살을 쇠뇌에 장전하여 매섭게 쏘아댔다. 격한 회류에 서로 부딪치던 당 수군의 선박들은 쏟아지는 불더미에 휩싸여 침몰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협수로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설만철의 대함대는 고구려 수군의 화공에 수많은 함선이 불타고 아우성을 치다가 불길에 갇혀 타죽는 병사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이번 싸움에서 당군은 1백여척의 전함을 잃었고 전사자만 해도 1만명이 넘었다. 거의 열 배의 대군으로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대패를 당한 것이었다.
당군 수뇌부가 남은 전함들을 수습하여 도주하려는 순간, 연수영은 결사특공대를 이끌고 날쌔게 당군의 누선에 도선했다. 치열한 육박전이 벌어져 당병 수백명을 참살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적장 이해안과 우진달을 처치한 것이었다. 이해안은 연수영의 칼에 목이 날아갔고, 우진달은 해란봉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두 적장의 수급(首級)을 자신의 대장선으로 보낸 연수영은 다시 설만철이 탑승한 누선을 노리고 맹렬히 추격했다. 그런 와중에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고, 다리에는 자상(刺傷)을 입어 적선의 갑판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장군님!”
“주군, 괜찮으십니까?”
해란봉을 비롯한 낭자군들이 재빨리 연수영을 빙 둘러싸고 다른 공격을 막았다. 방패로 사방을 가리는 사이에 장운형과 고성운이 급히 이쪽 배로 타 넘어왔다.
“빨리 옮기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장운형이 소리치는 순간, 고성운이 연수영을 번쩍 들어 어깨에 둘러맸다.
“앞길을 뚫어라!”
특공대원들이 도끼와 장창을 휘두르며 앞길을 열었다. 그 좌우로 방패수들이, 그 뒤로 낭자군들이 연수영을 호송하여 아군 대장선으로 후송했다. 비록 출혈은 심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전투는? 전투는 끝났는가?”
자신의 배로 돌아온 직후 연수영이 해란봉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승입니다! 잔적(殘敵)들이 패주하고 있습니다!”
“적장들의 목을 매달아라!”
그러고 나서 연수영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장운형이 징을 울려 함대를 불러 모았다. 군사들은 대장선 큰 돛대에 높이 매달린 적장들의 머리를 보고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우렁차게 만세를 합창했다. 참으로 힘겨운 싸움이었다. 글자 그대로 악전고투(惡戰苦鬪)요, 혈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값진 승리였다.
그 이튿날 비사성 본영으로 돌아가자마자 신당(神堂)에 제단을 차리고 우진달과 이해안의 수급을 제물로 삼아 고대수·모청호·강철우·양희봉·전혜원 등 죽은 전우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연수영은 그대로 병상에 누워 보름 동안이나 호되게 앓았다. 나이 서른이 넘으니 몸이 전 같지 않았다.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달라졌다. 더군다나 그때 연수영은 홀몸이 아니었다. 고원부의 아이를 배어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벽류하전투의 값진 승리로 연수영은 군주(軍主)에서 다시 원수(元帥)로 복귀했다.
한편, 구사일생으로 달아나 본국으로 돌아간 설만철과 배행방은 태종의 분노를 사서 파직된 뒤 변경인 상주로 유배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고구려 수군의 원수가 된 연수영은 병상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수군 재건에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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