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7 (月)
또 한주가 시작된다.
지금부터 남은 내 인생은 두명의 여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매일 매일 다짐한다.
헤여진 아내와 내딸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돈 앞에 무릅을 꿇고 말았지만,,,,
사랑도 돈이 없으니 계속 이어나갈 수가 없다는것을 책에서나 들었는데 그때 뼈져리게 체험했다.
충청도 소재 보육원에 부모 양육 포기각서를 쓰고 계룡학사보육원에 입소시키면서 회환의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초2,딸이 막 초등학교 입학 했을때였다.
내기 죽음이라는 열차를 탈까하는 생각을 했던 참담했던 시절이다.
김태원이도 현주가 준 1000원을 가지고 파고다 탑골공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바로 그앞, 지금은 없어진 파고다 극장에서 청운의꿈을 품고 [디엔드]팀으로 무대에 섰던때를...
나도 그때 녀석을 만나지 않았다면....이런 회한이 없었을텐데....
김태원 이지웅 이태윤 황태순 잊을 수없는 녀석들이다.
또 회상이 옆으로 샌다.
내 글이 이렇다.
뭔가는 쓰고 싶은데 연결이 안된다.
박완규는 내가 한번도 얼굴을 못 보았다.
그래도 내 새끼같은 존재감을느낀다.
최근에 남격활동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것을보니 기분이 좋다.
나처럼 이혼의 아픔과 목소리까지 잃어버린 고통속에서 또 새로운 부활의 날개를 펼치려한다.
너에게도 전 매니저 자격으로 박수를 보낸다.
한번 [부활]의 보컬은 영원한 내 자식의 개념이다.
괞챦지 태원아?
^&^
완규 뿐 아니라 이성욱 정단 지금 싱어 정동하까지 [부활]의 보컬은 다 훼미리 개념이다.
이것도 잘못일까?
그러고 보니 내가 훼밀리 프러덕션 매니져였구나.
드라마 락락락에 나오는 탈렌트 정영숙역의 이명순 사장님의 막강한 프러덕션 이였지...
아마 내가 그당시 막강한 연예기획자로 소뭄난것도 그 때문일거야...
그렇치?
그분은 대단하셨지?너희들이 할머니라고 불렀을 정도로,,,,
[부활] 록그룹역사상 가요 톱텐 1위에 오르지만 최초의 공중파 방송을 출영한것도 가요톱텐이다.
그리고 그 담당 피디는 시말서를 쓰지.
밴드가 머리도길고 불량스럽다고....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이런건 잘 모르거다.
어쨓든...
[부활]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난 그저 행복하다.
아직도 나는 [부활]의 매니저라는 착각속에서 사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부활]의 맹목적인 첫번째 매니아인가 보다..
잠시 잊고 살았던 흔적을 찿아보자
더 퇴색하기전에....
요즘 톱밴드 오디션을 보니까 너무 훌륭한 밴드들이 많다.
뜬금없지만 톡식의 우승을 축하한다.
나는 물렁겐 포를 응원했었다.
마치 포티셰드가 내 눈앞에 있는줄 알았다.
베이스의 이탈만 없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고 아쉬운 밴드는[ 브발]팀이다.
너무 의욕이 앞섰다.
그외 리카, 라이 밴드 주목할 톱밴드이다.
오늘도 주저리 주저리 횡설수설이다.
흔적!
누구나 흔적을 남긴다.
나는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흔적조차 없어진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흔적은 하나도 없었는가?
그럼 투쟁의 흔적이라도 찿아야겠다.
잃어버린 젊은날의 청춘의 흔적을 찿아보자.
참담했던 어려웠던 흔적을.....
**************************************************새벽 1시에/////
(이어쓰기)
1984년부터 1995년까지의 나의 연예기획자로의 이력은 그때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않더군요.
부끄럽지만 삶의 끈을 놓으려는 아주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으니까요.
2002년인가요? 네버엔딩 스토리로 상종가를 칠때 아마 내가 제일 기뻤던 사람중에 한사람일겁니다.
워커힐 라이브 컨서트때 무대에가지 올라가 꽃한송이 전해주고 내려왔으니까요.
그때 모든것은 정리 된줄 알았습니다.
1995년 이후에 근 7년만에 만남이엿습니다.
축하해주러 올라간것외엔 아무 생각없었습니다.
나역시 이젠 정말 잘되었구나 편히 아들과 골프에만 전념했으니까요.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생겨 티브이 시청도 하지만 라디오도 없이 새벽 부터 자정 넘게 돈능 벌어야 햇습니다.84년부터 95년 11년간의 기억은 어느정도 남아있지만 은퇴한 이후의 [부활]의 궤적은 저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시 잘되나 보다 그랬었는데...
부동산일부터 전철 물건팔기 벽돌나르기...
겨울철 붕어빵 장사 !노점에서 쉰 평생 처음으로 붕어빵장사해서 아들의 골프 전지 훈련비를 마련한일이 떠오르네요.
^&^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추억이 되버렸네요.
그어느해 초 겨울 유난히 매서운 북풍이 불기시작했을대엿습니다.
(회상)
붕어빵 장사를 할려고 인터넷을 뒤져 황금잉어빵 회사를 찿아냇습니다.
결론은....해피엔딩
대박 났습니다.
단속을 피해가며 난생처음 장사인데 하늘의 운이 있어 정말 정말 무지하게 많이 팔았습니다.
아침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다리 아픈줄 모르고 팔았습니다.
일 평균 20만원 하루도 빠지지않고 월600만원 매출 순이익이 70%
약 400만원이 넘는 돈이였습니다.
운이 조았습니다.
당장에 필리핀 동계훈련 아카데미에전활해서...
훈련비를 분활 납부하는 조건으로 동계훈련을 보낼수있었습니다.
그때 는 정말 힘든줄 모르고 했습니다.
오히려 목표가 있다는게 즐겁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돈이면 전지훈련비가 마련된다는 생각에 단속이고 뭐고 아무 걸림돌이 될수없엇습니다.
그때를 회상해보며 당시 일기를 다시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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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붕어빵!
아니 정확히 잉어빵!
황금잉어빵을 처음굽던날!
땀을흘려가며 어쩔줄몰라하며 빵 다 태우며, 반죽흘려가며, 굽던날!
그때가 아마도 지금 이맘때 즈응 이였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고2짜리 골프하던 아들녀석이 운동을포기하려고 할때 기적적으로 잉어빵을 팔아 필리핀 전지훈련를 갈수있엇습니다.
-결심(생각보다실행이먼저)
수년전부터군밤이나 군고구마장사를하고싶은마음뿐 막상하려니 마차는 어디다보관하며 도무지어디서부터시작해야할지몰라 실행에옮길엄두도못내고잇다가 그래 먼저저질러보자는생각에 인터넷을처서 노점이라는 단어를 쳐보니 00싸이트가 젤맘에들었다.글구많은글들속에서 정보를 얻고 아이템으?붕어빵 그중에서도 황금잉어빵을 택했다(실제 소문난잉어 행복한잉어등 여러빵맛을보러 다닌중에결정)그런데 반죽재료를 공급해주는 재료상으로부터 노점경험있냐?는 질문을받았다 난 없다고했더니 며칠뜸을들이며 머뭇거리는것이다.
난 화를내며 첨하는사람 용길줄 생각은안하고 왜 머뭇거리냐고했더니 정말 각올 단단히 했냐는것이다 난 서슴없이 장난 아니다라고했고 그렇게해서 첫날장살 시작했다.
지금도 땀나는 이야기다
ㅎㅎ
-도전과 도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실행에 옮기기로 단단히 각올하고도 재료상에게 전화했다
나:여보세요?
재료상:말씀하세요
나:실은 수중에 돈도없지만....마차보다도 제일싼 트럭을 사서 장살 하려면 얼마나 있어야 합니까?
재료상:(잠시 말이 없다)첨하신다고했죠?
나:예
재료상:그럼 마차부터 하세요.첨부터 트럭으로해서 성공한사람 별로 보질못했읍니다.
난 지금도 그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다.
어쨓든 그렇게 리어카를 끌어다가 그동안 적당하다고 눈여겨 보았던 곳에 마찰대고 (아!그때 초도 경비가 가스통값2개하고 조정기 호스 설치비 운반비하고 등등 20여만원이소요됨)또다른 언더그라운드 생활에 도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도전은 거친세파의 강한 도전을 되받는다.
장사첫날이다.
오후5시쯤으로기억한다.()
반죽2개 팥2개
원가는 반죽5500팥3600합9100+9100=18200(지금은반죽7000팥4500임)
재료상은 설치와동시에 시범으로 빵1개딸랑구워주곤 다른 거래처배달가고 마치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 어린아이처럼 뭘어찌해야할지몰랐다.
드뎌 반죽을 온통흘려가며 태워가며 몇개의빵을구워넸을때였다.
'어머 언제생겼지'
하며 아줌마 한분이 다가온다.
겁부터 덜컥났다.
''얼마예요'
'아~그게 아그러니까,,아 세에~세개천원입니다.'
'아그래요 3000원에 한개더주나요'
'엤엤~네네드립니다드려요~'
순간 땀이 등줄기를 타고내림을 느꼈다.
어떻게굽는지 왜그리 빵이 더디구워지는것같은지..
'그런데 아쩌씨 첨이세요'
'아~예 오 오,,오늘 처,,처 첨입니다'
'대단하시네요 넥타이도 메시고...'
'아~예,,예'
그렇게 첫손님보내고,,,
두번째 아줌마다.
'얼마예요'
'예~~처 천 원에 세,,세갭니다'
''어머 뭐가 비싸'
쌀쌀하게 돌아선다.
아차 !이거 몇개에 천원을 받아야하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천원 사간 아줌마가 다시또오고..
그뒤 손님이 정신없이 들이닥친것이다.
소위 노점 대박 난것이다.
그때 잉어빵가격을 난 몰르고 팔았던것이다 그저 내가생각해서 적당한가격이라고 생각했을뿐이다...
5시10분에 불피고 두봉지판시간이 7시반쯤끝났다.
총매출이 약칠만원이였다.
18200빼고도..약50000원이 수중에남았다.
신기하고도 믿기질않았다.
그런데 이상한사람들이다가왓다.
해병마크를단 사람들이였다..
속으로생각하기를 ,,,,
(깡팬?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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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들국화의 노래가 떠오른다
행진/
나의과거는어두웠지만나의미래는 항상밝을수는없겠지만
그러나나의과거를 사랑할수있다면내가추억의그림을그릴수만있다면....
사람들은 모두저마다의 사연을안고살아가고있다.
하지만 이젠 추억저편의 일 한땐 극단적인 생각을 한적이있다.이 험한세상에서 영원히도망치려고....그때 잠든아이들 얼굴을보고차마그럴수가없어 다시행진을시작한거이다.벌판에핀 들국화처럼,,,,
( 또...서론이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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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장사하면안되는데요'
'왜요'
나도지지않으려고퉁명스레답했다.
'민원이들어왓습니다'
'무슨민원요?당신들뭔데?'
'구청에서나왓습니다'
'신분증좀봅시다'
나도 악으로버텼다.첨부터기가죽으면 약세를보고더할것같아 세게대항키로맘먹었다.한사람이어이없는지웃는다.
'저쪽건너편에서하세요'
그사람이넌지시알려준다.
그땐몰랏는ㄷㅔ 그사람들이 소위용역이였고 날 신고한넘이 건너편에서트럭으로장사하던 노점연합회원였던것이다 당연히 난 떳다방 신세가된것이다.
다행히 내가하는행동이 어이가 없어보였는지 이곳은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오는곳이니 자리를옮겨서하라는것이다.여기는 사진을찍고 다시와서 옮기지 않았으면 실어간다는것이다.
할수없이그때부터 7~800미터 도로를 약 100미터간격으로지그재그로옮기는 가여운 유랑의행진을하게된것이다.
7전8기/
장사2일째
내가있는곳에2개의마트가있다.
5거리의a마트가크고장사가잘되고 3거리쪽의b마트가좀작은규모다.
그거리가 900미터쯤된다.
(결국 그 도로를 지그재그 칠 팔번 옮겨다니며 단단히실전체험을하게된다)
이틑날 가랑비가 약간 내린다.
용역과크게부딯쳐봐야졸것같지도않고해서 마차에 찍찍이탠트를 3면으로치고건너편외환은행쪽으로옮겼다
오늘은 반죽3개팥3개시켰다.
시간은 오후4시반쯤이다.
한참팔고있는데 경비원이오더니 치우라고한다.
동네이다보니 조용한게상수다싶어 오늘하루만하고 낼부턴다른곳으로가겠다고하고서 그날도 무사히 다팔았다.시간은 8시가채못된것으로기억된다
총매출이 11만원이넘었다
재료비27300원빼고도 팔마넌이넘는돈이다
(어라!장난이아니네....)
이고 골프싸이트에서야 잉어빵 아니붕어빵 파신분들은 없겠지만 4개5개팔아가지곤 5키로 한포에2마넌남기기힘들다.
하지만 멋모르고 처넌에3개판 나로서는돈이좀된것이다.
본의 아니게 폭리?를 취한셈이다
그것도 엄청 반죽을흘려가면서...
그런데 마찰정리하고 들어가려는데 또한무리의사람들이 다가온다.
( 어라 빵다팔았는데...)
'
노점연합회에서나왔읍니다'
'무슨회요?'
'
전노련입니다'
'뭔련?'
속으로
(이건 또 웬놈들이여!!)
***********************************새벽 3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