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유 민주주의’인가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에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를 놓고 교육 당국과 일부 관련 학자들 간에 벌어진 논란은 급기야 한국현대사를 보는 관점에 대한 학자들 사이의 이념 논쟁 성격으로 비화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개념에 있다. ‘자유’와 ‘민주’의 개념을 면밀히 살펴보면, 결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해 민주주의 논의에는 ‘자유’가 빠져선 안 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를 뺀 ‘민주주의’만으로 했을 경우 대한민국의 존립도 위협한다.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만 사용하는 사고방식은 나름대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 기술한 현상 중 하나가 당시 미국인들이 연원이나 의미가 전혀 다른 ‘자유’와 ‘민주주의’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인민의 이익과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민주주의의 본래 목적은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당시에 미국이 채택한 자유민주주의를 통해서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해 준다.
자유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처럼 매우 이질적인 유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절대선(絶對善)이라는 항간의 그릇된 믿음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은 ‘권위주의’이고, ‘자유주의’의 반대 개념은 ‘전체주의’다. 이들을 조합하면 네 가지 경우가 나온다.
첫 번째 결합인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와 일본의 경우다. 현 시점의 대한민국도 이에 해당한다. 대부분 국가가 번영과 윤택한 생활을 누리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 덕분이다. 두 번째 결합인 자유주의를 견지하면서 권위주의를 수용한 경우는 절대왕정 체제 속에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한 서구 근대국가와 1960~1980년대 대한민국, 과거 대만과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다소 비민주적인 방법론이 채용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한 이들 국가는 모두 성공했고, 나중에는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들이다.
권위주의적 전체주의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북한이나 과거 공산국가들이 표방하는 독재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모두 실패한 나라들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전체주의를 견지한 것이 인민민주주의이다. 이론상으로 인민의 참여를 강조하고, 자유의 의미를 추상적이고 집합적인 것으로 치환하며, 경제적으로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시장과 교역을 인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권위주의적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공산주의 국가 체제가 표방하는 ‘민주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향후 번영을 지속적으로 구가하고자 한다면 놓쳐서는 안 될 정치적 가치가 ‘자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는 민주주의 체제가 존중해야 할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외형상 유사한 참여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이 유형은 차별과 권위 철폐를 주장하며 개인의 직접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인 대의제도를 부정하거나 무력화시킨다. 구체적으로 좌파정부 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주장이나 각종 위원회 남설(濫設)을 들 수 있다. 또 ‘의사표현의 자유’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지나친 참여를 주장하거나 좌파 교육감들이 만들어 놓은 ‘학생참여위원회’도 교권과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매우 우려스러운 경우다.
[김정래/부산교대 교수 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