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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사단 김일병 자살 사건,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삼가고인의... |2011.10.21 15:45
조회 2,678 |추천 19

 

 

 광주에서 16일 오전 7시 50분쯤에 한 중학교에서 군화끈으로 목을 매 자살한 김일병 사건을 아시나요?

휴가를 나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나서 헤어진 후에 부대복귀를 해야하자 "뺨맞는날" 이라는 쪽지 한장을 남긴채

20살의 어린 나이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http://news.kbs.co.kr/tvnews/news_8am/2011/10/21/2375664.html

 

긴 설명보다 이 뉴스영상 한번 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클릭조차 귀찮으신 분들을 위한 뉴스내용) - 스크롤도 귀찮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당신의 친구, 연인, 아들이라 생각하고 한번 읽어주세요.

 

 

숨진 이병의 몸에서 구타의 흔적이 확인됐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장례직후 시신을 조사한 결과, 가슴과 다리 등에서 다수의 멍이 발견됏는데요.

육군에서 이미 가혹행위를 시인한만큼, 숨진 김모 이병이 선임들의 상습적인 구타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건데요.

어제가 삼우제였습니다.

故 김 이병의 친구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리포트>

지난 20일 광주의 한 추모공원에서 육군 이병 김 모 씨의 삼우제가 치러졌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애달픈 눈물 속에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김 이병.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5일, 1박 2일 외박을 나와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던 김 이병의 얼굴은 유난히 어두웠습니다.

<인터뷰> 고건희(대학 동기) : "‘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얼마 안 남았다’ 이러는 거예요. 왜? 그러니까 ‘이제 곧 부대 들어가야 하잖아’ ‘아 들어가기 싫다 들어가기 싫다’ 계속 그러고 있는 거예요."

친구들과 헤어진지 4시간 후인 오전 7시 50분, 김 이병은 모교였던 광주 광산구의 중학교 숙직실 옆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군화 끈으로 목을 멘 김 이병의 시신 옆에는 “뺨 맞는 날”이라는 메모지가 유언처럼 남겨져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 이병 어머니 : "뺨 맞는 날 하고 (종이가) 두 장 있었어요 .(그 외 다른 내용은) 없었어요."

말수는 적지만 활달했고 믿음직스러웠던 대학생 김 모 씨는 입대 6개월 전부터 군대생활을 잘 해보겠다며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 이병 어머니 : "군대 가면 몸이 체력이 단련되야 하니까 헬스장도 다녔고요. 인상 좋게 한다고 쌍꺼풀 수술까지 했어요.걔가요 그런 애였어요 그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군대를 간 애예요."

해병대를 자원하고 싶어 할 만큼 남자답고 씩씩했습니다.

훈련병일 때만 해도 김 씨는 건강하고 의욕이 넘쳐보였습니다.

<인터뷰> 김 이병 어머니 : "(훈련소에 )25일 면회를 갔는데 얼굴이 너무 밝은 거예요. 엄마, 군대 생활 할 만한데 이정도면, 그러면서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지난 8월 26일,자대 배치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인터뷰> 김 이병 어머니 : "엄마 나 불꺼놓고 매 맞고 쉴 새없이 맞아 그러는 거에요 어이가 없는 거잖아요."

밤늦은 시간 어머니에게 전화해 선임병들이 심하게 때린다는 말을 한 것, ‘자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 이병 아버지 : "아빠 나 자살하고 싶어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선임병들이)CCTV 없는데 가서 때리고 상습적으로 때리는 거예요.계속 구타를 하는 거예요."

무엇보다 김 이병이 가장 괴로웠던 건 왜 맞는지,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터뷰> 오 00(고등학교 동창) : "그냥 쳐다본다고 맞거나 아니면 안 쳐다본다고 맞거나, 본다고 맞거나, 그냥 대답 안하거나 대답해도 맞고.(선임병들이) 인간쓰레기다 그런 식으로 표현 했어요."

김 이병은 외박을 나와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자세히 털어놨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범준(대학동기) : "철모에 소주를 부으면 세 병 반이 되는데 그걸 한 번에 마시게 하고 7병 먹은 상태에서 더 못 마시겠다니까, 그것도 못 마시냐고 맞고..."

외박을 나오기 직전 구타를 당했는지 김 이병의 몸 구석엔 상처가 있었다는데요

<인터뷰> 이범준(대학 동기) : "맞고 왔다는 부분을 보여줬거든요. 여기 이 부분 빨갛게 부어 있어요. 구타를 당하면 얼굴에 외상이 남아서는 안 된다 해 가지고 보이지 않는 이런 곳이나, 안쪽 몸 안쪽 부분을 만날 맞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지난 9월, 대학 여자 동기들이 면회를 다녀 간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는데요,

여학생들은 그때 당시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 00(대학 동기) : "(면회 가서) 기가 왜 이렇게 죽었냐고, 애가 말도 안하고 표정도 어둡고 뒤에 선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면회를 마치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김 이병이 전화를 걸어 평소 김 씨답지 않은 말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 00(대학 동기) : "선임이 여자를 소개시켜달라고 저희 둘 다해가지고..나중에 (김 이병이)00 언니랑 통화를 한번 더 했더라고요. (선임이) 잘 생겼다는 것 거짓말이라고 전화 통화 할 때도 옆에 선임이 시켜서 그랬다고, 듣는 거 다 듣고 그래서 좋게 말했다고..."

그 후 선임병들은 당장 자신의 여자 친구로 만들어 달라며 노골적으로 김 이병을 괴롭혔습니다.

<인터뷰> 오 00(고등학교 동창) : "여자 대학 동기 왔을 때 그 여자와 성관계를 갖고 싶다. 데려오라는 식으로, 왜 안 데려오냐고 하면서 또 구타하고 만날 여자에 대해 그런 말 했던 것 같아요."

김 이병의 부모님은 부대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돌아온 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인터뷰> 김 이병 아버지 : "이등병들도 다 맞는데 얘는 처음 신병이라서 약간의 구타가 있었다. 자기가 알아서 조사를 해준다고 그랬어요."

계속된 요청 끝에 김 이병은 부대 내 다른 중대로 전출됐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 이병 어머니 : "부대를 옮겼는데도 본부를 옮겼는데도, (선임병들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굴욕을 주고 멸시를 준거예요. 애한테 수치심을 주고"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막막했던 김 이병은 귀대 당일 새벽,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인터뷰> 김 이병 어머니 : "(친구들 만나기 전에) 엄마 노끈 없어? 그러는 거예요. 부대에서 노끈이 왜 필요하니? 가져가서 쓸 거라고 그런 다음에 나갈 때 쯤 ‘나 군화 좀 정리해야 되겠네’ 그러더라고요."

<인터뷰> 고건희(대학동기) : "마지막 까지 같이 있었는데 호주머니에서 군화 끈 하나 발견하지 못 했을까... 그거 하나 그렇게 어떻게 힌트라고 할 수 있는 걸 던졌는데, 그걸 이제 와서 알게 되고..."

<녹취> 김 이병 어머니 : "왜 그렇게 힘들었니..그렇게 힘이들었니..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너 혼자 얼마나 괴로웠니..."

<녹취> 김 이병 어머니 : "가지마 가지마 안돼... 00야 가지마 내가 더 억울해..."

장례 직후 검시한 결과 김 이병의 몸에서는 구타의 흔적이 발견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고 김 이병의 부모님이 원한 것은 딱 하나, 선임병들의 진심어린 사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 이병 아버지 : "아주 성의가 진짜 반성하는 기미가 하나도 없어요. 무조건 묻어 버리려고 하는 그런 것만 나왔어요."

<녹취> 육군 00 사단 정훈참모 : "지금은 수사 중이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저희는 현재 상태는 말씀드릴게 없고요 수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 해당 육군 사단 측은 선임병과 부대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 이병 아버지 : "사람이 죽어나고 오면 어느 부모가 군대를 보내겠습니까? 이것은 명백한 자기가 자살을 했지만 이건 엄연히 이것은 타살이예요..."

 

이렇게 운동하면서 군대 갈 준비도 미리 대비하고, 훈련소에서도 할만하다고 씩씩했던 청년이, 자대배치를 받으면서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물론 부대 내에서 어느정도의 폭행은 있습니다. 군기의 문제도 있고, 여러가지 적응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김 일병은 스스로가 왜 맞는지도 모를만큼 매일 맞고 또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병장들은 스스로 반성은 하지 않고 X됐다 이런 표정으로만 일관하고 있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다고 합니다.

 

 죽은 김 일병은 제 지인의 친구로, 성격도 좋아서 지인들도 많고 적응도 잘 하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군대가 심심하면 두들겨 패라고 후임들 모아둔 장소일까요? 다른 부대에서 정말 존경하며 , 존경받으며 군대생활 하신 군필자들은 이게 김일병이 나약했거나, 적응 딸려서 그런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둬야할건 이건 명백히 타살이고, 우리모두 자신의 아들, 친구, 연인이 군대 가서 건강하게 나라지키고 씩씩하게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시체로 싸늘하게 발견되는 것을 바래서

 군대에 보내는 것은 아니지않습니까.

 

 늘 그래왔듯이, 군대 자살이나 인사사고는 조금 들쑤시다가 소리없이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 사건에 대해 한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본다면, 싸지방에서 만약 이 글을 보는 선임이 있다면 조금은 이런 구타문화가 바뀔 수 있지않을까요.

 

 저는 김일병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인의 친구일뿐이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것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기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봅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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