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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평해거사 황원갑 원작·정천 김재암 편작)6. 조양대전 ⑷

김종욱 |2011.10.24 22:00
조회 30 |추천 0

● 당군의 패주

 

태종이 친솔하는 당군은 안시성에서 포위를 풀고 퇴각하면서 전쟁 초기에 점령했었던 요동성·개모성·백암성 등지의 고구려 백성과 군사 7만여명을 중국 내륙으로 끌고 갔다. 이들을 요동 땅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후환이 되리라고 여겨 지금까지 보였던 너그러운 황제의 가면을 벗어던져 버렸던 것이다.

 

당군이 퇴각할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안시성에서 남쪽 건안성으로 내려가 요하 하구에서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 길을 택할 수는 없었다. 건안성주 고원부가 당군의 후미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구려 수군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는 지난 4월 이세적의 침공로를 되짚어 요동성 북쪽 신성에서 요하 중류를 건너 통정진과 회원진을 경유, 유성(柳城)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 북쪽 길도 고구려군이 신성을 중심으로 하여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태종이 선택한 마지막 길이 요동성에서 바로 요하를 건너고 요택(遼澤)을 거쳐 회원진으로 가는 길이었다. 거리상으로는 영주로 돌아가는 지름길이었으나 요택은 가도 가도 끝없는 죽음의 늪지대였다. 이 요택은 지난 5월 10일 태종이 친정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넜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때 태종은 자만심에 들뜬 나머지 요택을 건너기 위해 장작대장(將作大匠) 염입덕(閻立德)을 시켜서 만든 다리를 모조리 부수어버리지 않았던가? 이제 그 진창길로 패잔병을 거느리고 퇴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장면이『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렇게 묘사된다.

 

"황제[태종 이세민]는 요동이 일찍 추워져서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군사와 말이 오래 머물기 어렵고, 또 양식이 다 떨어져가므로 군사를 돌릴 것을 명령했다. 먼저 요주·개주 2주의 호구(戶口)를 뽑아 요수를 건너게 하고, 안시성 밑에서 군대의 위엄을 보이고 돌아갔다. 성 안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으나 성주[양만춘]가 성에 올라 절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황제는 그가 굳게 지킨 것을 가상하게 여겨 비단 1백필을 주면서 임금 섬기는 것을 격려했다.

 

이세적과 도종에게 명하여 보병과 기병 4만명을 거느리고 후군(後軍)이 되게 했다. 요동에 이르러 요수를 건너는데 요택이 진창이 되어 수레와 말이 지나갈 수 없으므로, 장손무기에게 명하여 1만명을 거느리고 풀을 베어 길을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에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했다. 황제가 말채찍 끈으로 섶을 묶어 일을 도왔다.

 

겨울 10월에 황제가 포구(蒲溝)에 이르러 말을 멈추고 길을 메우는 일을 독려했다. 여러 군대가 발착수(渤錯水)를 건너니 폭풍이 불고 눈이 내려서 사졸들이 얼어 죽는 자가 많았으므로, 명령을 내려 길에 불을 피워 맞이하게 했다."

 

『자치통감』은 송나라 때의 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역사서로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또 한편,『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이렇게 나온다.

 

"이전에 황제가 회군할 때 궁복(弓服)을 연개소문에게 하사했는데, 그는 이것을 받고도 사례하지 않았으며…"

 

『책부원귀』는 송나라 때의 관리였던 왕흠약(王欽若)·양억(楊億) 등이 편찬한 책으로 중국 고대부터 오대(五代)까지의 역사를 기록했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역사왜곡이요, 날조다. 삼척동자도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이다. 전쟁이 아이들 소꿉장난이란 말인가? 몇 만 명이 지키는 안시성 하나를 수십만 대군으로 포위하여 몇 달이나 공격해도 빼앗지 못했고, 성을 점령하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지 않았던가?

 

추위가 다가오고 군량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퇴각하는 주제에 무슨 겨를이 있어서 성 밑에서 군사들로 하여금 위세를 과시했단 말인가? 더군다나 성주가 성 위에 올라 작별인사를 하자 황제가 성을 잘 지켰다고 칭찬하면서 비단 1백필을 상으로 내렸다고? 이야말로 지나가던 개나 돼지도 웃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이세민 입장에서 천만 번 죽여도 시원치 않을 연개소문에게 궁복을 하사했다는 소리다. 연개소문이 이것을 받고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아서 매우 괘씸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세민이 패배하여 대국 황제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었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치욕을 조금이라도 숨기고 위신을 세우기 위해 이런 황당무계한 허위사실을 보탰던 것이다.『자치통감』과『책부원귀』등의 편찬자가 참조한 원전이나 마찬가지인『구당서(舊唐書)』를 편찬한 장본인이 바로 이세민의 처남이며 참전 주역의 한 사람인 장손무기였으니 사실을 사실대로 솔직하게 기록할 리가 있었겠는가?

 

그때 이세민은 허겁지겁 달아나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한시라도 더 급히 요하를 건너기에 바빴다. 공포의 마왕 연개소문이 철갑기병들을 거느리고 금세라도 쫓아와 뒷덜미를 나꿔챌 것만 같았던 것이다.

 

태종의 친정군이 요하를 건넜을 때는 9월 22일경이었다. 날씨가 추워져 눈보라가 요동 들판을 덮기 시작하더니 강물마저 얼어붙기 시작해 요하를 건너는 것은 매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찾아오는 요동의 추위는 추격군 못지않게 두려운 적이었다. 미처 동복(冬服)을 입지 못한 당나라 군사들은 너무나 매서운 추위에 모두 벌벌 떨면서 걸었다. 그러나 요택(遼澤)에 들어서자 당군의 행군 속도가 늦어졌다. 온통 진창과 잡초밭이라 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고, 군사도 말도 수레도 뻘밭에서 엉금엉금 기었다.

 

“아하, 이렇게 느려서야 어느 세월에 장안까지 돌아간단 말이냐!”

 

태종은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다가 눈알이 빠진 상처에 다시 통증이 느껴지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했다.

 

“여보게, 처남! 어찌해야 좋겠는가?”

 

장손무기는 튼튼한 군사 1만명을 공병대로 선발해 우거진 잡초를 베어 진창에 깔고 마른 흙을 날라 앞길을 메우게 했다. 진창이 얕은 곳은 그렇게 해서 전진할 수 있었지만 한 길이 넘는 수렁을 만나면 죽을 지경이었다. 군사들도 군마들도 하나같이 지쳐 쓰러져 마구 울부짖었다. 목숨과도 같이 귀중한 군량을 실은 수레도 헤아릴 수 없이 진창에 처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달아나기에 급급한 군사들은 쓰러진 군마와 수레를 밟고 그대로 진창을 넘어갔다. 심지어는 부상당한 전우들도 마구 밟고 타넘어 갔다.

 

“우리가 어떤 자라새끼 때문에 이 고생이냐?”

 

“강제로 끌고 와서 이렇게 죽게 만들면 황제가 아니라 자라새끼다!”

 

“이세민 그 늙은 자라 한 마리 때문에 이러다가 우리 사람들 집에 못 가고 다 죽게 생겼다!”

 

병사들 사이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장령들은 반란이 두려워서 들어도 못 들은 척했다.

 

태종은 부상을 입은 눈 부위의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가끔 수레에서 내려 솔선수범을 했다. 손수 말채찍으로 나뭇단을 묶어 진창을 메우기도 했다. 물론 군심을 얻어보자는 얄팍한 술수였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다 해가며 발착수에 도착한 것이 10월 1일.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졌다.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하더니 쌩쌩 부는 찬바람과 더불어 거센 눈보라로 변해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그때부터 얼어 죽고 굶어 죽는 병사가 속출했다. 하루에 수백 명씩 쓰러져 죽어버렸는데, 시체를 제대로 묻어줄 틈도 없었다.

 

주필산에서 항복한 고연수가 후회를 거듭하다가 울화가 터져 죽은 것이 그 무렵이었다. 그래도 고혜진은 명이 길어 장안성까지 태종을 따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레 바깥에서 친위대 장수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폐하! 고구려군이 나타났습니다.”

 

“무, 무엇이라고? 개소문이 벌써 쫓아왔단 말이냐?”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의 철갑기병 선봉대가 당군의 후미를 잡은 것이었다.

 

“연개소문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올랐다. 당나라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연개소문은 어느덧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각되어 있었다.

 

철갑기병대의 선두에서 달려오는 장수는 은빛 갑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등에는 백호도(白虎刀)와 주작도(朱雀刀)를 매고 오른쪽 허리춤에는 청룡검(靑龍劒), 왼쪽 허리춤에는 현무검(玄武劍)을 각각 찼으며 또 왼쪽 허벅지에는 짧은 단도(短刀)를 동여매고 두 손에는 여섯자 길이의 현월도(弦月刀)를 잡고 있었다.

 

“당괴(唐傀) 이세민(李世民)은 어서 목을 늘여라! 이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요택에서 너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연개소문은 고각함성과 더불어 군마(軍馬)를 몰아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달려들었다.

 

고구려군의 선봉장인 고돌발과 술탈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요택의 무성한 풀섶에 불을 놓았다. 바싹 마른 갈대가 오죽 잘 타겠는가? 느닷없는 화공(火攻)에 당군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달아나는 데는 장수도 졸병도 가릴 것이 없었다. 수십만 대군이 개미떼처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고 어느새 태종의 본군 주변에는 장손무기·설인귀·위지경덕·계필하력 등 장수 수십 명과 황제의 친위대 수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뭣들 하느냐? 폐하를 보호하라!”

 

위지경덕이 당황하는 군사들에게 외쳤다. 그러는 사이 계필하력(契苾何力)이 대부월(大斧鉞)을 앞세우고 연개소문의 앞을 가로막는다.

 

“개소문아! 우리 황상(皇上)을 건드리지 마라!”

 

계필하력의 손에서 대부월이 춤을 추면서 바람소리를 내었다. 연개소문은 현월도를 전방으로 내뻗으며 계필하력의 선제공격을 막아냈다. 두 장수의 결투가 10여합을 넘길 무렵 갑자기 설인귀(薛仁貴)가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더니 계필하력을 도와 연개소문을 협공한다. 한꺼번에 두 명의 적장을 상대하게 됐지만 연개소문은 오히려 여유롭게 현월도를 휘두르며 접전(接戰)을 벌였다.

 

계필하력과 설인귀가 있는 힘을 다해 연개소문을 저지하는 동안 위지경덕(尉遲敬德)은 집실사력(執失思力)·장근공(奬根恭) 등과 더불어 태종을 호위하면서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연개소문과 고돌발·술탈 등이 기습해온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고구려의 정예군이 나타나자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두방루(豆方婁)와 온사문(溫沙門)이 군사 6만여명을 거느리고 당군의 후방을 급습한 것이었다.

 

“당주(唐主)는 살고 싶거든 당장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온사문이 장창(長槍)을 허공에 내두르며 당군을 위협했다. 중랑장 마문거(馬文擧)가 친위대장인 위지경덕(尉遲敬德)에게 말했다.

 

“저 놈은 내가 막을 것이니 장군께서는 어서 폐하를 모시고 여기를 빠져나가십시오!”

 

마문거는 칼을 세워 들고 고구려군을 향해 달려나갔다. 온사문이 말고삐를 잡아 끌며 마주 나가 마문거를 가로막았다. 두 장수가 서로 접전을 벌이는 동안 두방루는 군사를 이끌고 당병(唐兵)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군의 무자비한 살육전(殺戮戰)으로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이 요택(遼澤)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폐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저를 따르십시오.”

 

위지경덕이 태종의 말고삐를 잡고 움직이려 할 때 저만치서 당나라의 병사 1천여명이 고구려군의 포위망을 헤치며 달려왔다. 장손무기와 이세적이 거느린 병력이었다.

 

“폐하, 소신들이 폐하를 뫼시겠습니다!”

 

“오, 그대들이 아직 살아 있었군! 참으로 다행이오.”

 

태종이 장손무기와 이세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세적이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그때 온사문은 장창으로 마문거의 가슴을 찔러 마하(馬下)에 떨어뜨렸으며, 두방루는 태종을 잡기 위해 무자비하게 당군 친위대 병사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쳐 죽이고 있었다. 장손무기와 집실사력·장근공 등이 황제를 모시고 달아나는 동안 이세적·위지경덕과 절충장군(折衝將軍) 조삼량(曺三亮)은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온사문과 두방루의 군사들을 맞아 싸웠다.

 

“당괴 이세민을 사로잡아라!”

 

연개소문이 철갑기병 수백명과 더불어 성난 사자처럼 당병들을 짓밟고 태종 일행이 달아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조삼량이 연개소문을 막기 위해 용감하게 덤벼들었지만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싸움이 채 5합도 되지 않아 조삼량은 연개소문의 현월도에 베이며 목이 달아났다. 이세적과 위지경덕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사지(死地)를 벗어나 도주하고 있었다.

 

전군(煎軍)의 선봉장 유홍기(劉弘基)가 수천 기의 기병을 이끌고 달려와 태종을 호위하면서 연개소문의 추격을 저지했다. 유홍기의 군사들이 뒤를 막고 혈전을 벌이는 사이에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난 태종과 장손무기·이세적·위지경덕·집실사력 등 당군의 지휘부는 가까스로 요택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열흘 동안 쉬지 않고 퇴각에 퇴각을 거듭해 마침내 영주에 다다랐다. 이때가 10월 11일이었다.

 

거기서 다시 열흘 동안 끙끙 앓던 태종은 태자 이치(李治)가 자신을 마중하기 위해 임유관(臨裕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간신히 아픈 몸을 추스리고 장수들에게 남은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군사들이 얼마나 돌아왔는가?”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10만명도 못 돌아왔사옵니다!”

 

“뭐, 뭣이라고? 50만 대군이 10만으로 줄었다고?”

 

“하늘이 대당제국을 돕지 않았사옵니다.”

 

“하늘이 어찌하여 이리도 무심하단 말인가! 짐이 곧 천자이거늘……”

 

“폐하! 자고로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어찌 기회가 이번뿐이겠사옵니까? 너무 심려치 마시옵고 환후부터 다스리소서!”

 

“이놈, 개소문!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이 원수를 어찌 갚아야 좋을꼬?……대총관, 설인귀와 계필하력 장군은 어떻게 됐는가?”

 

“다행히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오, 그래? 지금 당장 두 장군을 부르게.”

 

설인귀와 계필하력이 이세적의 호출을 받고 태종 앞으로 달려와 부복했다.

 

“내 비록 연개소문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지만 용맹스러운 두 장수를 잃지 않고 이렇게 내 곁에 두게 된 것을 불행 가운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들이 아니었으면 어찌 짐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겠는가?”

 

태종은 반가운 얼굴로 두 장수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폐하, 소장들은 신하로써 임금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다했을 뿐이옵니다. 그러나 폐하의 용안(龍顔)에 난 깊은 상처를 보니 폐하를 온전히 보필하지 못한 소장들의 죄가 매우 무겁게 느껴질 따름이옵니다.”

 

“어찌 그대들에게 죄가 있겠는가? 정말 죄가 있는 놈은 따로 있거늘…, 대총관!”

 

“네, 폐하!”

 

“지금 즉시 장문간이란 놈을 잡아들여 하옥하라!”

 

태종은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수군이 비사성에서 패전하지만 않았어도 발해만의 제해권을 확보하여 좀 더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을 것을 장문간이 다 망쳐 놓았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소환령에 장문간은 발해를 건너와서 바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곧 목 없는 귀신이 되었다. 패전의 최고 책임자는 친정(親征)을 한 황제 자신이었지만 어차피 희생양이 필요했다. 장문간도 전에 안시성에서 효수된 부복애의 꼴이 됐던 것이다.

 

태종은 요동 정벌에 실패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여 이렇게 탄식했다.

 

“아, 위징(魏徵)이 살아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 짐의 친정을 말렸을 것이야! 그랬다면 짐이 이렇게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투덜대며 태종은 남은 군사들을 끌어 모아 고구려군이 당나라의 국경 가까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비하게 하였다. 연개소문이 추격을 멈추지 않고 여전히 뒤쫓아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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