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절차가 막판 초읽기에 들어간 듯하더니 또 정치논리 개입으로 난기류에 휘말리고 있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존립 자체가 흔들리자 오히려 선명성(鮮明性) 과시를 위해 강경 기조로 나가고 있고, 당초 28일 본회의 처리를 공언했던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보선 이후 패배주의에 빠져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7일 “여야 대치는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여권 내 분위기의 일단이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엄중한 사안을 놓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략에 몰두하고 있다.
한·미FTA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이제 부질없다. 미국 의회는 이미 지난 12일 이행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 서명함으로써 비준 절차를 완전히 끝냈다. 대한민국의 비준 시점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양국이 원하는 대로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되려면 이달 안에 반드시 대한민국 국회가 완료해야 한다. 지연되면 될수록 대한민국의 대외 신뢰도만 추락한다. 더 늦어지는 시간만큼 35만개 일자리 창출 등 한·미FTA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삭감되는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한·미FTA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상한 승부수이고, 이 점은 민주당이 세운 노무현 정권이 누차 강조했던 논리 아니었는가.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대미(對美) 수출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91.2%가 ‘FTA가 발효되면 미국시장 진출을 강화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미국의 비준 이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듯했던 민주당 기류는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급변했다. 손학규 대표는 27일 의원총회에서 “미국 눈치를 보기 위해 FTA를 처리하겠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많은 의원이 “몸을 던져서라도 막겠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른바 ‘10+2 재(再)재협상안’도 재등장했다. 민주당의 속내는 뻔하다. 서울시장 선거로 야권 연대의 득표력이 확인되자 민주노동당 등 좌파 진영의 주장에 영합하려는 것 아닌가. 26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가 연 ‘한미동맹의 신장’ 청문회에서 ‘한국 야당의 FTA 반대는 할리우드 액션’이란 발언이 터져나올 정도로 민주당의 얄팍한 처신은 국제적 조소(嘲笑)거리다. 미 의회에서도 실시한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굳이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막아섰던 민주당이다.
2007년 4월2일 한·미FTA가 타결되고도 4년반이나 비준이 늦춰지면서 한국경제는 이미 엄청난 기회비용을 허비했다. 더는 시간이 없다. 여건도 마련됐다. 1500분 간의 여·야·정 끝장토론도 거쳤다. 한나라당이 행동에 나설 때 아닌가. 홍준표 대표는 8월 처리를 약속했다가 아직까지 액션다운 액션 한 번 보여주지 못했다. 현 지도부가 책임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마지막 기회다. 늦어도 이달 31일까진 의회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표결 처리하고, 여의치 않으면 박희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