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1994년 12월 31일까지 충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1955년 통영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諡號)를 따 개칭한 것이다. 천혜의 군사요충지였던 이곳은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을 이룬 곳이자 쓰시마 섬 정벌의 본진이었다. 그런 통영에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北에 억류된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와 그들에게 월북을 강요한 윤이상과 그 아내인 이수자 씨 때문이다.

이수자씨의 자서전‘나의 독백’에 실린 이씨의 평양 교외 주택(왼쪽). 사진 속의 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이수자씨. 김일성이 윤이상 부부에게 내준 이 집은 평양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있으며, 잔디가 깔린 넓은 뜰에 온갖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오른쪽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신숙자씨와 오혜원-규원 모녀. 1991년 윤이상은 오길남씨에게 북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며 가족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와 이 사진을 건넸다.
통영 출신으로 이곳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윤이상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와 함께 통영 사람들의 자부심과 닿아 있다. 윤 씨의 뜻을 기려 매년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의 순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기량을 겨루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가 2003년 생겼다. 하지만 올해는 '통영의 딸' 신숙자 씨(69) 문제로 음악회 개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이상 씨의 말에 넘어가 월북한 '경남 통영(예전 충무)의 딸' 신숙자 씨(남편 오길남) 가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콩쿠르 중단 요구까지 나온다.
남북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윤 씨의 부인 이수자 씨(84)는 北에서 최고 귀빈급 대우를 받는다. 평양 교외의 집을 김일성에게 선물 받은 이수자 씨는 김일성 사망 5주기를 맞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대를 이으신 장군님께서 한 치의 빈틈없이 나라 다스리심을 수령님께서 보고 계실 것입니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영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를 북괴에 넘긴 골수좌익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씨는 北 당국의 특혜를 받아 지금도 평양 중심가에서 상점도 운영한다. 윤이상과 이수자가 공작해 입북시킨 통영의 딸 신숙자씨는 지금도 금지구역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이수자와 그의 딸은 남북을 오가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통영의 윤이상 딸의 집 28일 경남 통영시 용남면에 위치한
윤이상(1995년 사망)의 딸 윤정(61)씨 소유의 주택. 문 앞에 벤츠 차량이 세워져 있다.
이수자 씨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윤이상)이 한번은 저한테 '수령님(김일성)께서 꼭 형님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뼛속 깊숙이 종북인사가 됐다는 고백이다. 이런 사람이 통영에 오면 바닷가에 잘지은 호화로운 별장에 묵는다니 이 씨와 신 씨의 처지가 대비된다. 기아와 고문이 일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통영의 딸, 신숙자 씨 모녀가 겪고 있을 고초가 안타깝다.
통영의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이제는 정신을 차리시고 '윤이상 음악제' 폐지, 이수자씨 소유의 바닷가 별장도 옮기거나 폐쇄하도록 앞장서는 게 옳겠다. 충무공 이순신의 넋이 살아있는 통영이 동족을 팔아먹은 자들의 땅이란 오명을 쓰게 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골수좌익 윤이상의 흔적을 지우는데 통영시민들께선 당연히 나서야 옳으며 北 당국에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귀환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신숙자 모녀가 올 겨울을 무사히 넘기길 기원한다.
2011. 11. 1
차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