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로서는 잃을 게 없는 소송입니다.”
삼성전자에 싸움을 건 애플의 입장을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짤막하게 정리했다. 애플로서는 이번 소송전이 잃을 건 없지만 얻을 건 많은 소송이라는 뜻이다. 애플이 법정에서 이기면 삼성전자에 경제적 손실을 입힐 수 있고, 지더라도 삼성전자와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우성 변리사는 이공계 출신으로, 이번 삼성전자와 애플의 법정 공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용자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사건의 변화 추이를 지켜보며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허를 비즈니스와 접목해 경영에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삼성전자나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우성 변리사는 “IT 업체라면 이제 특허경영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를 둘러싼 소송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더 나아가 우리나라 IT 업계는 특허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 지 ‘특허전쟁’의 저자 정우성 변리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애플이 이 소송을 통해 잃을 게 없습니다. 특히 IT 기업의 글로벌 특허 소송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소송 당사자가 법원의 삼심제도를 이용해 최종판결까지 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소송 중간에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법원의 최종 판결로 끝맺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무엇보다 특허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술과 관련한 특허는 여러 기업에 분산돼 있는데다 그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느 한 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기술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다면 그 어떤 업체도 삼성전자에 싸움을 걸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업체에서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특허 소송이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두 번째는 IT 업계 특유의 기술 라이프 사이클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소송을 끝까지 끌고 갈 현실적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소송이 끝나고 나면, 10년 전 문제 삼은 기술은 이미 시장에서 도태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도 자극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결국, 두 업체는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협상 내용은 두 업체의 몫이다.
“애플의 목적 중 하나는 물론 삼성전자에 경제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이겠죠.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삼성전자의 제품이 일시적으로나마 판매 금지 판결을 받게 되면 그 이익은 고스란히 애플에 돌아갈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특허로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기술 특허를 모방하는 것은 IT 업계에선 으레 일어나는 일이다. 기술 특허의 종류도 많고, 당연히 이용해야 하는 표준특허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인 특허는 얘기가 다르다. 디자인 모방은 먼저 출시된 제품의 인기에 무임승차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략도 일종의 경영 전략으로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법정에서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판결이 나오면 업체가 받게 되는 이미지 손상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정우성 변리사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브랜드에 대해 이미지 타격을 입힐 계산이라는 해석이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매년 80억달러 규모 이상의 비즈니스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애플에 적극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애플의 전략을 다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애플의 이 같은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 지난 9월 독일 법원은 삼성전자 ‘갤럭시탭10.1′이 애플 제품의 외관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다. 삼성전자로선 ‘카피캣’ 오명을 쓴 동시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됐다.
“디자인 특허 침해 문제는 기술특허와 달리 눈에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을 갖고 싸우는 소송입니다. 판사 입장에선 소비자가 오인하고 혼동할 가능성이 있느냐가 기준이 되죠. 어떤 제품이 과연 카피캣이냐를 따질 때, 도덕적인 타격이 뒤따르게 됩니다. 기술특허와 비교해 브랜드 이미지가 받는 타격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특허 침해 문제를 따질 땐 특허 문헌과 기술을 비교할 뿐, 사용자는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디자인 특허 문제를 다룰 땐 사용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사용자가 두 제품을 봤을 때 혼동할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지기 때문이다. 디자인 특허의 관점은 출발 자체가 소비자의 눈에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기업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기업 도덕에 입는 타격은 브랜드 이미지로 직결된다.
물론 삼성전자의 반대 공세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본, 호주 등지에서 애플에 맞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전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애플은 이번 삼성전자와 소송에서 어떤 협상 카드를 제시하게 될까. 삼성전자에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한 애플이 제시하는 다음 카드가 궁금하다.
“삼성전자를 로열티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다는 게 애플의 카드로 보입니다. 애플은 기술특허 후발주자 처지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기술특허를 이용하려면 삼성전자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애플의 전략은 삼성전자가 원하는 로열티보다 더 낮은 금액을 주고 싶어하겠죠.”
기술특허 후발주자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해소하는 방법은 특허권자와 직접 협상하는 방법이다. 로열티를 지불하고 떳떳이 특허권자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도 애플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특허권자는 비싼 로열티를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애플은 이를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도다.
애플은 삼성전자에 비해 기술특허에 약점을 갖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애플에 대해 디자인 특허에서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약점을 이용해 공격적인 협상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네덜란드 법정에서 애플에 패배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이용하는 삼성전자의 기술특허에 대해 기술 하나당 2.4달러를 로열티로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무 비싸다는 게 이유였다. 이로써 애플은 더 싼 가격에 삼성전자의 기술 특허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정우성 변리사는 “애플이 삼성전자에 로열티를 지불하게 됐으니, 애플이 소송에서 진 것이라는 시각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로열티는 원래 지불하려는 의도였으나 그 로열티를 얼마나 깎게 되느냐가 이번 소송의 변수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애플은 삼성전자에 지불하는 로열티를 삼성전자가 원하는 액수보다 낮은 수준에서 협상할 수 있었다.
이렇듯 지금까지는 애플이 이기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애플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 8월부터 삼성전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본, 호주 등에서 애플에 강공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도 전략을 완전히 바꿔 “강하게 대응하겠다”라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나섰다.
정우성 변리사는 최근 삼성전자의 공세 전환에 대해 “좋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애플에 불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방대한 특허 풀을 이용해 애플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또 한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일이다. 이미 한 번 ‘카피캣’으로 법정에서 패배한 전력이 있는 삼성전자가 가장 고심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대로 소송이 협상이 마무리되면 안 됩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브랜드에 이미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삼성전자는 ‘애플도 이번 소송에서 위험했다’라는 인식을 대중에 심어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은 이미 협상 테이블에 갔다고 봅니다. 삼성전자는 브랜드 이미지가 더 이상 타격을 받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일 테고요. 그러면 이제부터는 특허 소송이 쇼에 가깝죠. 삼성전자의 공세 전략은 매우 적절합니다.”
특허 소송전이 ‘쇼’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정우성 변리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애플과 삼성이 특허권을 이용해 장기적인 비즈니스 경영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특허 비즈니스는 삼성전자나 애플과 같은 대형 업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우성 변리사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이번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적재산권 문제가 이전까지는 하드웨어 기술특허에 집중된 반면, 이번 사건은 지적재산권 분쟁이 상표권과 부정경쟁행위, 디자인에까지 폭넓게 걸쳐 있다는 거죠. 이제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업계 전반에 걸쳐 생각할 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특허 제도는 기술과 법률, 그리고 업체의 경영 전략까지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분야다. 지금까지 국내 업계는 준법과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만 했지, 이를 경영 전략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특허권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 같은 관점은 중소기업에도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 특허를 예로 들어보자. 애플이 갖고 있는 특허의 대부분은 사용자 영역에 있는 기술이다. 디자인이나 UI 등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특허는 기술이나 산업적 요소가 강하다. 이번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전에서는 애플이 갖고 있는 사용자 영역의 특허가 강한 힘을 발휘했다.
중소기업은 기술적인 면에서 대형 업체에 밀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용자 영역에 있는 특허, 이를테면 디자인과 UI와 관련된 특허는 창의력이 핵심인 특허 분야다. 기술에서 밀리는 중소기업도 충분히 대형 업체 못지않은 강력한 특허를 보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결국 국내 중소기업의 창의성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창의성을 낳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 창의적인 에너지를 특허 비즈니스를 통해 배출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허는 두 개의 옷을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제품이라는 옷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언어라는 옷입니다.”
특허가 두 개의 옷을 입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특허가 입는 제품이라는 옷은 특허가 실제 제품에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언어의 옷은 특허를 통한 업체의 비즈니스를 의미한다. 특허를 잘 가꾸고 포장해 비즈니스에 이용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특허를 제품에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특허에 언어라는 좋은 옷을 입혀 비즈니스로 이용하는 전략도 중요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