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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여, 돌 맞고 싶은가?

떢복이좋아 |2011.11.07 08:58
조회 260 |추천 2

 

“도올 김용옥 돌 맞고 싶은가?”

김두한을 일개 쌈꾼 정도로 폄하,도올 정체가 붉음을 자백.

도올이여, 돌 맞고 싶은가?

 

필자(筆者)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 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일본군 2000여 병력을 궤멸시킨 장대한 승리는 전투에 참여했던 우리 독립군을 비롯하여, 청산리 일대에서 전투에 도움을 준, 모든 애국지사들까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남는다.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보천보 전투를 엄청난 전투처럼 포장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하여 항일영웅처럼 위장하는 것에 비하면, 청산리 대첩은 수백 배의 위엄과 찬란한 역사로 기억된다. 김일성이 공격한 보천보는 말 그대로 보, 10여명의 분대 병력이 지키는 작은 초소에 불과하였다. 겨울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공격하기 쉽고 병력이 약한 보천보를 공격한 것이 김일성 역사의 위대한 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 전투의 김일성이 항일영웅이라면, 김좌진 장군과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순수(純粹) 애국의 상징 홍범도 장군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일 것이다.

 

철기 이범석 장군은 그의 자서전 ‘우등불’에서 김좌진 장군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 분은 구리를 먹으면서 차력을 익혔다. 그런데 그때 먹은 구리로 인해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앉아 쉬노라면 구리가 다리로 몰려 아프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달리거나 걷는 것은 가능해도, 앉아서 쉬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워 하셨다.”

 

무기와 장비가 열악한 독립군은 일본군보다 수십 배를 달려야 했을 것이다. 김좌진 장군은 바로 그러한 분이었다. 구리를 먹으면서 차력을 익혀 자신의 두 다리를 그렇게 단련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우신 분이었다. 그러나 그 분이 그토록 사랑하던 민족의 후손 중에는 도올 김용옥 같은 자가 있었다. 도올은 EBS강좌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1. “김두한은 개성에서 자라난 부모를 모르는 고아이며 선천적으로 재능을 부여받은 쌈꾼인데, 서울로 올라와서 거지왕초에게 붙들리어 거지소굴에서 컸다. 다리 밑 거지에서 조선일대를 제패하는 깡패두목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가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픽션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그 외에 어떠한 논리도 가식이다”

 

2. “감옥은 사람을 키운다. 그리고 상상의 기회를 준다. 김두한에게 감방살이는 그의 삶에 정치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단언컨대, 김좌진의 신화는 일제하의 김두한의 성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김좌진의 신화가 신화로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오로지 해방 후 그의 애국심이 잘못 전도된 반공투쟁의 행각과 더불어 시작된 것임을 못박아 둔다”

 

김두한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다. 그 김두한도 부친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심장 종로를 지키면서 일본 주먹들과 자웅을 겨룬다. 그리고 대한민국 주먹의 위대한 존경을 일구어낸다. 친일파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던 그 김두한은 일본을 원수로 알았고, 일본군의 폭약저장고를 폭파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은 이 김두한을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도올의 치졸한 시각은 그의 언어 마지막 부분에 드러난다.

 

‘김좌진의 신화가 신화로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오로지 해방 후 그의 애국심이 잘못 전도된 반공투쟁의 행각과 더불어 시작된 것임을 못박아 둔다.’

 

한마디로 김두한이 반공투쟁을 하였기에 그의 애국심은 잘못 전도된 것이라는 비아냥이다. 왜 반공투쟁에 앞장섰느냐는 비판인 것이다. 그래서 의적 김두한을 일개 쌈꾼 정도로 폄하하였다. 이로써 도올은 그의 정체가 붉은 레드(Red)였음을 자백한 셈이다. 그 김좌진 장군이 공산당원 2인에게 암살된 것을 도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청산리 전투 패배 후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청산리 주변의 조선인을 대량 학살하였다. 그 여파로 김두한의 어머니는 일본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였고, 일본경찰의 감시가 극심해지자, 김두한은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 거지들과 함께 산다. 그러나 김좌진 장군의 아들인 동시에 안동김씨 집안이라는 자긍심은 어린 김두한의 머리 깊이 새겨진다.

 

그리고 부친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되었음을 알고 반공전선에 뛰어든다. 당시 일본경찰의 기록과 퍼진 소문으로 국내의 식자(識者)들과 문인(文人)들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후일 김두한을 깨우쳐 준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진정한 비극은 공산주의자들의 동족상잔(同族相殘)에 있다. 그러나 도올은 그 역사적인 이념의 오류를 바로잡을 위인이 아니다. 그 스스로가 비극을 저지른 가해자와 같은 붉은 이념의 부류이기 때문이다.

 

혹자(或者)는 도올 김용옥을 ‘배운 무식자’라 평가한다. 그러나 필자(筆者)는 도올을 ‘돌 맞아 죽을 자’라고 단정한다. 공자만큼 학식이 높은 위인을 여럿 배출하였다는 광산(光山)김씨 집안에 뜻밖에 남의 영광스런 가계(家系)와 혈통을 부정하는 패륜(悖倫)악덕(惡德)의 인물이 성장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 딸도 돼지우리에서 여러 돼지들과 누드를 찍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도올의 언행과 딸의 기행(奇行)을 모아보면, 가히 돼지가족 집안의 행적이라 할 것이다.

 

그런 도올 김용옥이 스스로 철학자이며 사상가라 칭하고 있다. 참으로 집안 망신이요 철학의 망신이다. 도올의 준말은 ‘돌’이다. 난 이제부터 도올의 얼굴에 던질 돌이나 찾아다녀야겠다. 아마도 철면피 얼굴에 흔적이라도 남기려면, 냇가에 닳고 닳아져 금강석 강도(强度)로 석영빛 빛나는 하얀 짱돌이 맞춤하리라.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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