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우리나라 종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아십니까?(묻히면안되요ㅠㅠ)★

한반도에서... |2011.11.12 08:27
조회 1,658 |추천 14

한반도에 사는 흔녀 입니다..

얼마전 국사시간에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서 배웠거든요...

 

아..여기서 위안부(정신대,라고도 부른대요) 할머니란

 

‘정신대(挺身隊)’는 이름 그대로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의미로, 남성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까지 군수공장에 나가 일하게 한 노동대입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다른 것이죠. 그런데 일제 당시에나 현재까지도 한국에서는 정신대를 곧 ‘위안부’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당시 여성이 일제에게 끌려가는 것은 곧 순결을 잃는다라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자근로정신대로 간 여성 중에 일본군‘위안부’가 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일본군‘위안부’가 된 여성들을 가리켜 정신대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죄 없는 한국여성들이 일본의 성욕구를 위해서 강제로 일본인들의 성욕구 상대가 되는거죠

 

아..거두절미하고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일기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받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하루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그리고, 임신, 아직"쓸만 한데" 하는

생각에 자궁째 태아를 들어낸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8월 27일, 칼을 찬 군인이,"군인 백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하고 물었다,

그 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은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을 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은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 진 것 같았다, 라고 정씨는 표현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1933년 12월 1일에는 한 여성이 장교가 철봉을 자궁에 꽂아서 죽여버렸다,

다음해 2월 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 여성은 잔인하게,,,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다,

문신을 온몸에 걸쳐 새겨졌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자들에게 문신을 했다,

마차에 실려온 여성들을 들에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있던 중국인 남자가 일본인이

사라진 뒤 그나마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여자 두명을 옮겨 약 두달간 간호애 줬다,

정씨는 기적으로 살아 남았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하며 의자의 앉아 있는 내 팔

(기자) 을 꼭쥐며 울부짖듯 소리를 질렀다,눈 앞에 있는 일본인이 자신을 극한까지 학대한

일본병사와 겹쳐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동정하지마라, 

내 조국이 나를 버리던 그때부터 나는 누구의 동정 따위를 원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카메라를 비추지 마라, 내 육신이 비록 너널하지만 너희들이 아무 곳이나

들이대며 플래쉬를 터틀릴 그런 삶은 아니였다

고향이라고 찾아 왔건만 ,,마치 나의 의도한 죄인 처럼 바라 보는 주변 고향 사람들

내가 이꼴을 보여주려고 지금까지 살아 왔던가,,,,

-위안부 할머니의 일기 中에서

 

 

애야. 나는 너 같은 손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니가 나의 썩고 있는 육신을 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짱한 입술로


맹랑한 생각을 하였는지 몰라도,


난 그래도 너 같은 손녀라도 있었으면 좋겠단다.

 

 

 

한때 나도 너만큼이나 뽀얀 속살로 벌판을 누비며,


홍조 띈 얼굴로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면서 재잘거리던


너만큼이나 철없던 계집아이 시절이 있었단다.


부자집은 아니어도 건장한 청년 만나서


초가 삼간에 살아도 이쁜 아이 낳아 옥수수 심고


고추심어 나즈막하게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무서웠어. 조금 지나니 고통스럽더구나.


그래도 세월이라고 시간이 흐르고

 

차라리 죽을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여길 즈음

 

난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살아 있다는 것이 악몽이라는 걸 니가 지금 느끼느냐?


나는 수십년을 그렇게 지옥속에서 살았단다.


나는 나를 놓아 버린 것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나는 여자 였던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너는 마음만 먹으면 너처럼 고양이 눈을 하고 있는 딸아이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속에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땅이 없어.


그들이 다 파서 먹었으니...


수십명의 개 떼들에게 내 몸 하나 먹힌건 그래도 별거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향이라고 돌아와 발을 디딜 곳 하나 없이 만들어 놓고


개 떼들의 습격이 마치 내 의지였던 것처럼 나를 죄인 취급하던


내 사랑하는 조국이 나의 숨통을 더 조여왔던 것 같다.

 

 


내가 너를 미워한다면 그건 니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가 여자이기때문이다.


니가 나를 모른다고 말하지마라..


나는 그저 너를 대신하여 개 떼들에게 끌려간 것일 뿐이다.


너덜 너덜한 육신을 안고서 돌아와서..


온전한 햇볕 한번 못보고 살아온 내가


지금와서 너에게 사진의 모델이나 되라고 하니까


내 살아온 것이 오늘 이 꼴을 보려고 했던 것이구나.

 

 


나를 동정하지마라.


내 조국이 나를 버리던 그때부터,

 

나는 누구의 동정 따위를 원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카메라를 비추지마라.


내 육신이 비록 너덜 너덜하지만 너희들이 아무 곳에나 들이대며


플래쉬를 터트릴 그런 삶은 아니었다.

 

 


애야. 어떤 때에는 니가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다.


동물원 구경 오는 심정 이었을지도 모를 너에게


나를 고스란히 옮겨 놓으려는 니 욕심이 어리석은 것이라 여겼다.


너처럼 부푼 젖 가슴을 나도 가졌었단다.


너처럼 고운 등을 나도 가졌었단다.


개 한마리 세워놓고,

 

니가 얼굴에 숯을 바른다고 정녕 니가 내가 될 수 있겠느냐?


니가 그 고운 등을 들이대고, 풀어 헤친 저고리 고름 사이로


하얀 젖 가슴을 내민 것은 사치였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살아도 조국속에 묻힐 것이다.


아마도 내 눈감을 그날까지  나는 그저 개 떼들의 습격 속에서

 

다행히도 살아온 병들고 썩고 있는 늙은 할머니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워, 나 인것 처럼 하지마라.


정녕 너는 내가 아니다.

 

 


고양이 눈을 하고 있는 애야.


들끓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마라.


그들이 나였다.

 


 

왜 진심을 이해해주지 않냐고 원망 하지마라.


수십년을 소외된 채 사회와 단절된 나도 살아온 땅이다.


내가 언제 너에게 많은 것을 바랬던 적이 있었느냐.


내가 언제 너에게 손을 벌린 적이 있었느냐.


정녕 니가 내가 되기를 원한다면, 조용히 눈감고 기도해다오.


내 젊은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평안하게 잠들도록...

 

 


그리고


내 힘없는 조국을 안고 갈 수 있도록...

 

 

 

 

일기를 더 찾고싶은데 찾을수가 없네요...

 

생각할수록화나네요...

 

여러분 종군 위안부할머니를 잊지말아주세요

 

 

그당시사진

 

 

이 그림의 할머니들은 돈이 없어서 돈을벌로 갈 수있다는 일제의 말에 위안부로 갔던 분들입니다.하지만 일제는 할머니들은 사람이 아닌 것 처럼 다뤘습니다.50일동안 밥도 주지않구요.

그리고  밥을 줄때는 그중에서 죽은 여성의 머리를 넣어삶은 음식을 나무칼로 휘둘어 억지로 먹게했습니다.그리고 죽은 시체들은 더럽다고 이렇게 버려졌지요.

 

 

 

 

 

 

 

 

 

 

 

 


추천수14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