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이프' 한가지에 열중해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만큼 폐인에 가까운 이들을 지칭한다. 책에서는 인터넷 중독,게임중독에 빠진 주인공을 일컫고 있다. 공상과학소설로 미래에 인터넷과 현실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어느날 갑자기 긴박한 액션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는 빅브라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은 프랑스 소설답게 곳곳에 언어유희(사실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언어유희라 주석없이는 무슨 내용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를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번역을 해준 임호경씨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소설이 소설에 그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결론은 '재미있다' 였다. 특히나 '노라이프' 라는 주제가 현세대의 문제점과 닮아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만든다.
인터넷 세상은 내 손안의 '휴대폰'이라는 매체로 들어와버렸다.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아이폰 제품 출시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눈에서는 항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싸이월드.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 수시로 확인하는 이메일등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 실제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인간적이다. 사람은 서로 만나서 부딛히고 감정에 상처도 받거나 때론 감정의 치유도 받기도 한다. 상호작용이라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숨쉬면서 눈을 마주보면서 손짓 발짓 해가면서 이야기를 할때 인간이라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노라이프'는 모든 것은 가상의 공간에서 해결하는 동안에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게 된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실제 커피를 한잔해도 카카오톡이나 이메일 확인, 페이스북 조회등 정작 만나고 있는 사람은 무시되고 스마트폰 매체안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메세지에 눈앞에 있는 만남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기분에 이제는 사람을 만나면 아예 휴대폰을 가방에 쳐넣어버리고 만다. 쳐넣어버릴만큼 위험하고 지금이라는 시간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가상의 기억을 실제처럼 믿고 살아온 시간들은 실제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처럼 매일 보는 네이버 뉴스, 기사, TV쇼의 스타들을 마치 자신의 친구처럼 여기거나 스타의 가쉽이 내 이야기의 주제가 되가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아날로그에 대한 회귀는 퇴보가 아니라 진보 이상의 진보라고 여기는 것도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 가까워야 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도데체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의 소중함을 간과하면서까지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내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통해서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가상공간에게 어떤 의미를 빼앗기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고 특히나 직접 마주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을 일도 적고, 감정이 왔다갔다 할 일도 피하는 겁쟁이가 되기보다 사람사이에서 때론 힘들어하더라도 그 힘겨움과 환희사이에서 무언가 배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문자하나 보내고 마음을 정리하는 겁쟁이가 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