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8일 화요일, 오후 4:36:22
배를 타기 위해선 신분증이 필요하다
평택항 부두에 정박해 있는 코델리아호
코델리아호. 왼쪽에 승선해 있는 트럭이 보인다
라운지
19시 4분.
언제 배가 움직일까, 라운지 창가에 앉아 보던 신문을 접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밤바다를 담고 있어 까맣기만 한 창문 아래쪽을 보니 새하얀 물결은 이미 일고 있었던 것 같다.
데스크에 가서 승무원에게 언제 배가 출항했냐, 물었더니 7시란다.
배는 진즉부터 움직이고 있었는데 워낙 거대한 배인지라 그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옆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던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꼬마들도 나처럼 언제 배가 출발하나, 저희들끼리 담화를 한다. 내가 배는 이미 출발했다고 말해주니 놀란다.
밤 8시 15분에 가수의 공연이 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홀로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듣는 트로트를 비롯한 대중가요도 괜찮다.
여행이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섦을 마주하는 것이니까.
그 마주함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다시 일상을 사는 힘을 얻는거니까.
그 마주함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거니까.
나의 이기심, 옹졸함을 터뜨려 새로운 나로 깨치게 하는 것이 여행이니까.
아까 대합실에서 본, 나보다 어려보이는 청년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숙소는 정했냐고 물었다. 나는 한라산 등반을 위해 ‘구 서귀포 버스 터미널’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싶은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일부터 제주올레걷기축제가 서귀포 부근의 올레에서 열려 게스트하우스마다 빈 자리가 없어 예약을 하지 못했다.
어린 청년과 합석을 하고 제주에서 일정을 물었다.
청년이 렌트카로 마라도에 갈 예정이라 하여 나도 비양도 대신에 따라갈까, 했더니 괜찮다 한다.
코델리아호 둘러보기
선상에서 본 바다, 불빛 하나와 물거품 뿐이다
나는 며칠 잠을 못자서 피곤한데도 괜스레 이 라운지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어린애 같았다.
하얗게 형광등이 켜있고, 배가 운항되고 있음을 알리듯 간간이 진동이 느껴지는 이 공간에 앉아 상념에 빠졌다.
아까 가수에게 신청곡을 전하느라, 몇 장 남지 않은 내 수첩을 두 장이나 뜯어간 뒷자리 아저씨가 또 ‘적을 종이’를 달라 하기에 투덜거렸더니 당신 연락처를 적어 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 한다. 제주도 사람이다. 내가 ‘구 서귀포 버스 터미널’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달라 했더니 당신 여동생 집이 그 근처라며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물론 나는 사양했다.
2등실 객실 모습
밤이 깊어 2등실 객실로 돌아와 누우니, 유럽 여행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밀라노로 가기 위해 탄 야간열차가 생각났다.
그 때 내 침대 건너편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흑인 남자가 있었다. 지금 이 배의 객실처럼 야간 열차에는 커튼이 없었다.
그 남자는 형제들을 위해 프라다 쇼핑을 위해 밀라노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편히 자지는 못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려고 눈을 떴는데 어두컴컴한 열차 객실에서 내 눈에 바로 들어 온 것은 건너편에 누운 흑인의 흰자위였다. 무서워서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남자는 왜 안 자는 것일까?
나는 화장실도 못 가고 중간에 몇 번 잠에서 깼다.
그 남자도 편히 자는 것 같지 않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아침이 되어 이탈리아 국경에서 열차가 멈춰 섰는데 나는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다. 그 때 스위스 경찰이 내가 탄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흑인더러 가방을 갖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내게 별 일 있겠냐, 하며 나는 그 와중에도 무심한 척 얼굴에 파우더만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경찰이 나더러 "너두 일행이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노우No! 노우No!" 했다. 마침 그 때 화장실에 간 인솔자 언니가 왔다.
언니가 경찰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자 스위스 경찰은 흑인만 데리고 내렸다.
그 흑인의 목적지는 밀라노였는데 국경에서 내렸다
왜지?
그리고 그 전에는 못 보았던, 그 남자가 갖고 내린, 침대 아래 바닥에서 꺼낸 묵직한 가방 안에는 뭐가 들어 있었을까? 우리는 그게 마약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던가?
2등실 객실 창에서 본 아침 바다
새벽녘부터 뒤척거리다 아침 7시가 넘어 일어나 일출도 못 봤다.
여객선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샤워를 했다.
전날 밤 여객선의 신기함에 구석구석 답사를 했음에도 발견 못했던 것을 그제서야 보게 되었다.
목욕탕 안쪽의 세 칸 창문으로 바로 바다가 한 눈에 아름답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 후, 갈아 신을 양말을 안 가져왔다는 것을 알았다. 등산 양말도 안 가져오고 등산화만 챙겨왔다.
배 타기 몇 시간 전 짐을 후다닥 꾸린 탓이다. 별 수 없이 어제 신었던 양말을 또 신었다.
생각보다는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2등실 객실 창에서 본 제주항
아침 9시, 잔뜩 흐린 제주연안여객터미널에 내렸다.
비행기에 비하면 여객선은 느리게, 천천히 가는 여행이다. 감수성을 높여주는 아날로그(Analogue) 여행 같은 것.
2011.11.8. 저녁부터~ 9.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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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까지는 평택역 전철을 타고 버스(8100번)로 환승을 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