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슬픔을 관통하는 생애만이 주어져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욕과 멸시로 얼룩진 삶. 나는 모든 사람의 곁에 있는 그런 존재였지만 늘 눈에 띄어 비웃음을 당하였다. 무시당하고 비웃음 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살아나가야 하는 그것이야 말로 하늘이 내게 내려준 가장 가혹한 벌이었다. 정말로 고약한 것은 이 고통이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기에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가 없었다. 아니, 호소할 수 있는 방법도 주어져 있지 않았다. 말을 하기 때문에 조롱과 무시를 당했다. 오래 전에 이미 제대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에 내 말은 답답하고 지루하게 들릴 뿐이었다. 힘을 내어 눈을 부라리면서 이야기를 해봐도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더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이제야 이런 사실을 깨닫고 죽어라 노력하지 않았지만 틈나는 대로 힘껏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였다. 눈에 띄는 진척은 없었지만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말은 할 줄 알지만 진짜 제대로 된 말한 마디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래도 세상의 풍파에 덜 상처 받고 묵묵히 참아낼 줄 아는 인내심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왕따였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도 잠을 잘 때면 밤잠을 설친다. 내가 겪어왔던 괴롭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가학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다만 외면과 무시 차가운 비웃음뿐이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손을 놓고 당해왔다. 나는 아무에게도 호소할 수 없었기에 묵묵히 참아왔다. 어쩔 때는 혼자 부르짖었지만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제발 그만둬 달라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따져야 했었는데 하고 후회가 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나서 괴롭히지 않았을테니까.
이런 내가 제일 한심한건 말도 못하는데 글도 잘 못써서 이 고통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고 나는 위로받았다. 더 많은 위로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책을 읽지 않는다. 좀 더 손쉽고 좀 더 즐거운 위로를 받고 있다. 컴퓨터에게 내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던 그 순간부터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더 큰 외로움과 허무함에 시달려야만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나는 진정한 외톨이가 되어 점점 자기 만에 세계에 고립되어 갔고 운동부족으로 몸에도 부쩍 살이 쪄가기 시작했다. 살이 쪄가면서 외모에 자신이 없게 되었고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애초에 사교성이 많은 아이도 아니 여서 친구도 별로 없었던 나에게는 밖에 나가는 이유가 없었고 방학 때는 채 열 번도 밖에 나가 지 않았다. 나는 세상과 지독히도 단절되어 있었다. 이런 나를 부모도 신경써주지 않았다. 동생들은 집에만 틀어박혀 컴퓨터 티비에 빠져있는 나를 혐오하고 질색했다. 가장 심하게 상처받은 것은 막내 동생이 날 쳐다볼 때 마치 날 쓰레기 보듯 하던 것이었다. 집안에서 조차 이렇게 겉도는 나는 고등학교 때야 제대로 숨을 쉬면서 살게 되었다. 그 속에서도 몇몇 아이들에게 무시를 많이 받았지만 그 정도면 중학교 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이였다. 반전체가 날 무시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 생애를 걸쳐 나를 괴롭히는 비정상적이고 이상하다는 소리는 아직까지도 듣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과거에 매여 끊을 수 없는 자신의 업보를 매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고칠려고 해봐도 고칠수 없는 것. 내 무언의 몸짓과 말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나를 정상적인 일반사람들과 다르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알 수 없다. 끊임없이 타인에게 상쳐받아야만 비로소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더 상처를 받아야만 일반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까. 나는 오늘도 집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며 말도안되는 글로 내 마음을 위로해본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어. 웃는 날도 많았어. 그래 보기 싫은 선배의 얼굴을 지금 당장 봐도 나는 웃을 수 있어. 그런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이런 것쯤 견딜 수 있어. 설령 심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나는 견뎌내고 나는 말할 수 있어. 그만두세요. 나는 당신이 함부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의 말 때문에 상쳐받고 있어요. 그러니 제발 그만두세요. 나는 말할수 있다.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나대로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증거이다. 살아있다는 . 제대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위로고하고 또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내어본다. 나는 지금껏 그랬듯 여러분의 곁에서 조롱받으며 멸시받지만 꿋꿋하게 살아 나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