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대한 생각 공유
말랑말랑 스투디오
20세기 초,
독일의 라이프찌히에서 글자 디자이너의 아들로 태어난 얀 치홀트(Jan Tschihold).
내가 지향하는 디자인의 멘토이자, 디자인의 모든 지식과 기반이 이분의 글과 작업물들을 통해서
간적접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번 기회에 신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내용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독일의 타이포그래퍼 얀 치홀트가 남긴 [신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내용을 정리.요약해 보았다.
추천 쾅!!
지난 포스팅에서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했다면,
이번 포스팅에서는 얀 치홀트(Jan Tschichold)의 작업물과 그 시대의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신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독일의 타이포그래퍼인 얀 치홀트는 러시아의 엘 리시츠키(El-Lissitzky)에 간적접인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얀 치홀트의 작품들은 러시아의 구성주의 엘 리시츠키의 작품과 비슷한 풍을 느낄 수 있는데,
먼저 엘 리시츠키의 작품 몇가지를 소개하고 이어서 얀 치홀트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 엘 리시츠키(El-Lissitzky) ::
< BeatTheWhites >
< ProunRoom >
< NewMan >
< CatalogueCover >
타이포그래피의 중요 요소
1. 글을 배열하기전에 글에 대한 내용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원고를 전부 읽어보고 배열하면 글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2. 글을 읽기 쉽게 배열하는 것을 말하며 어떻게 독자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3. 기술적으로 완전무결함은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일기 쉽게 만드는것인만큼,
인쇄에 필요한 디자인도 중요하다.
이 세가지 요소 가운데 어느하나 중요하지 않은것이 없다.
보기만 좋고 읽을 수 없는 디자인은 쓸모없는 것이며,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디자인 역시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
배열이 명쾌하고 아름다우며 제작할 때 기술적인 흠이 없는 타이포그래피만이 예술로 불릴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얀 치홀트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 독일의 타이포그래퍼 얀 치홀트(Jan Tschichold) ::
< Poster >
< Die Hose > < Die Frau ohne Namen>
< Schrift Saskia >
< Posters of the Avant-Garde >
< Penguin Books 디자인도안 >
< 얀 치홀트가 개발한 Font Sabon >
:: 얀 치홀트가 말하는 신 타이포그래피(Die Neue Typhography)란?
과거의 타이포그래피는 내용이나 형식으로 볼 때 여러 사람이 함께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읽을 수 있었던 옛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당시 타이포그래피는 글 자체나 장식이 주된 형상이었다.
하지만 신 타이포그래피의 등장이후로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이 명쾌함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신 타이포그래피는 이 명쾌함을 미의 기초로 하여 명쾌함이 결여된 과거 타이포그래피에 의식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신 타이포그래피가 그 이전의 것과 다른 점은 처음으로 외적인 형식을 텍스트에 기초하여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인쇄물의 내용에는 순수하고 직접적인 표현이 주어져야 하며, 활자 크기나 굵기와 관련된 순서,
색채, 사진등을 활용하여 그것에 일관된 내용과 명쾌한 표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신 타이포그래피는 독자의 시선을 하나의 낱말, 그 낱말 무리에서 다음 낱말 무리로 계속 유도할 수 있도록 크기의 차이, 강도, 공간에서의 위치, 색채등에 의해 텍스트를 합리적으로 디자인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 타이포그래피는 과거 '배경'이 주는 효과의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활용하여 흰 지면을 검은
글자나 평명 형태와 마찬가지로 같은 가치를 지닌 조형 요소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여백의 활용한다는 뜻으로 인식된다.)
미국의 그래픽 디자인계에세 가장 권위있는 인물인 폴 랜드(Paul Rand)는 이렇게 말했다.
"신 타이포그래피가 달성한 이상의 것을 이룩한 것은 그 후 아무것도 없었다."
20세기 타이포그래피 역사에서 한 시대를 그은 얀 치홀트의 신 타이포그래피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