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2011-11-27]
아무리 노력하고 단련해도 부수지 못하는 장벽이 있다. 아시아 축구선수에 대한 유럽인의 '단단한 선입견'이 대표적인 예다.
'갈색 폭격기' 차범근이 197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평정해도, '산소탱크'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핵심자원으로 성장해도 동양인에 대한 유럽인의 평균적인 평가는 "기대치 보다 잘 한다", "기본기는 부족하지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뛴다" 정도의 호감에 그친다.
비단 한국선수 뿐만이 아니다. 나카타 히데도시, 알리 다에이, 순지하이 등 지금까지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무대서 족적을 남겼음에도 이들에 대한 서구인의 시각은 "티셔츠 판매원으로 의심했는데 제법 유용한 자원이었다" 정도로 기억할 뿐이다.
동양인과 유럽인은 '출발선'부터 다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축구수준이 낙후됐다'라고 섣불리 단정 지은 채 여전히 불순한 목적(마케팅)으로 영입하기를 원하는 콧대 높은 서구 클럽들이 다수다. 반면 아시아를 제외한 제3세계 출신 선수들에 대한 유럽인의 평가는 매우 후하다. 특히, 축구인재들이 넘치는 중남미, 아프리카엔 항시 빅 클럽 스카우트들이 대기하며 유망주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인의 선입견에 의해 희생된 가장 최근 예는 27일 맨유와 뉴캐슬의 '2011-12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다. 이날 맨유는 뉴캐슬을 전후반 90분 내내 몰아붙였음에도 1-1 무승부에 그쳤다.
원인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애슐리 영의 극심한 컨디션 난조. 영은 후반에만 총 4차례 단독기회를 모두 날렸다. 주중 챔피언스리그 출전 탓에 전반이 끝나고 이미 피로누적, 집중력 결여현상을 노출했다. 그럼에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같은 포지션 멀티 윙어 박지성을 아껴둔 채 영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박지성은 뉴캐슬 수비진보다 더 타이트한 압박과 끈끈한 수비조직력의 첼시, 아스날, 리버풀 등 '축구판 철권'들을 상대로 골을 넣어왔다. 이 사실만으로도 박지성의 공격적인 재능은 충분히 검증됐고, 유럽무대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맨유는 올 시즌에도 상대가 한 수 아래거나 수비 중심적인 팀을 요리할 땐 박지성 대신 영이나 나니를 써왔다. 이는 맨유가 여전히 '아시아 출신 박지성'의 공격력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다.
유럽에서 발자취를 남긴 '맨유 7년차' 박지성에 대한 평가가 이 정도인데 다른 아시아 선수에 대한 인식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박한 게 현실이다. 박주영, 구자철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유럽 축구 전문가들은 아직도 동양인을 평가할 때 "체중이 가볍고 견고하지 못해 버티기 어렵다", "근육 량을 더 늘려야 한다"며 피지컬 업그레이드만 강조한다.
반대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이청용 사례처럼, '작지만 빠르다'는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유럽 감독들은 드물다. 단지 '육식남 유럽인'과 비교해 약골처럼 보이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얕잡아 보거나 깔보기 일쑤다.
박주영의 경우, 출전기회조차 제대로 줘보지도 않은 채 "아스날과 어울리지 않는 선수", "레벨의 차가 현격하다"라고 혹평한다. 지동원은 단지 '어리고 동양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더랜드 코치진은 "아직은 선발로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지동원보다 두 살이나 어린 19살 잉글랜드 핏덩이 유망주 코너 위컴(선더랜드)은 부상 전까지 매 경기 선발 출전할 정도로 기회를 몰아줬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일본은 북유럽 강자 덴마크와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 카메룬을 격파하며 16강에 진출했다. 한국도 '유로 2004' 그리스를 2-0 완파하며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수 십 년간 선진축구 시스템을 전수받지 못한 북한조차도 예선서 브라질과 대등하게 싸운 끝에 1-2 석패했다.
이런 결과물을 놓고 볼 때 콧대 높은 유럽인들은 달라진 현실을 외면한 채 여전히 '큰 착각' 속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중위권 팀 정도는 한국이나 일본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게 현재 아시아 축구 최상위권 수준이다.
'아스날 정규리그 출장 0' 이나모토 준이치의 기록은 분명 같은 동아시아 입장에서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성적표다. 그러나 이나모토의 프리미어리그 부적응을 꼬집기에 앞서 과연 아스날 코치진이 이나모토에게 제대로 기회를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도 계속된다.
차붐에 이어 박지성이 유럽에서 아시아 축구 인식을 바꾸고 있지만, 수 십 년간 굳어진 유럽인의 선입견은 정복하기 어려운 벽이다. 축구전술을 통달한 명장 퍼거슨조차 박지성의 잠재력을 다 활용하지 못할 정도면 말 다했다.
동양인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거스 히딩크, 세뇰 귀네슈, 자케로니, 오언 코일 감독들이 유럽에서 입지가 넓어지고 이들의 철학을 추종하는 유럽 출신 지도자들이 더 많아져야 인식이 바뀔까. 지금도 유럽무대서 편견에 맞서 자기 능력 120%를 발휘하는 동양 축구선수들을 전폭적으로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데일리안 스포츠 이충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