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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퍼온이야기 [단편작 3편]

너구리 |2011.11.28 12:53
조회 11,054 |추천 32

안녕하세요 점심 맛나게 드셨나요?

 

펌글 연재가 중단되는경우는 딱 두가지입니다.

 

제가 알고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모두 게시했을 경우와

 

대부분의 읽으시는 분들이 더이상 원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외에는 있는 힘껏 올리겠습니다.

 

비도 주룩주룩오고 날씨는 선선하게 좋네요.

 

그럼 즐거운 감상되시길 빌겠습니다 ^^

 

이번작품은 이해력을 조금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웃대 게시판 hero창정 님이 작성하신 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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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조각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이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누군가와 어떤 장소에서 대화를 했는가는 생생히 떠오르지만 대화 내용이나 시기가 떠오르지않는 기억.
혹은, 분명 어디선가 한번쯤 겪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도대체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는 기억.

내 경험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그게 언제인지 어느 장소인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다만, 붉게 노을이 지는 한적한 공원에서 나 혼자
그네를 타고 있었다는 것정도는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기억속에서의 나는 확실히 어렸던 것 같다. 일단 놀이터의 그네를 타고 있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꼬마야, 안녕? 이름이 뭐니?"

"....."

"꼬마야?"

"....엄마가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하지 말랬어요."

"허허..아저씨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난 엄마 말 잘들어요. 아저씨랑 이야기 안해요."

"흐음..곤란하게 되었네..좋다 꼬마야. 그러면 아저씨가 여기에 서서 혼자 이야기할테니 너는 듣기만 하거라. 어때?"

"..맘대로 하세요."

그렇게 그 아저씨는 나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채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주었던 것 같다.
분명 중요한 내용이었겠지만, 그 당시의 어린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물론 그 이야기가 기억이 나서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안다기보단 어렴풋한 느낌만 남아있었기에..)

가끔씩 멍하니 앉아있을때면 어김없이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곤 했지만
설마 지금에 와서도 이 기억이 내 머릿 속을 맴돌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 지금 내 눈 앞에 트럭의 범퍼가 떡하니 놓여있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







"그...그게 정말인가요..?"

"당연하지. 난 당신같은 망자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면서 등쳐먹을 정도의 위인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당신 말은..내가 트럭에 치여서 즉사를 했고, 지금 여기는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 세계의 영역이고,
당신은 나 처럼 억울하게 한방에 골로간 사람들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 역할을 하는 인도자란 거요?"

"대충 뉘앙스는 그런거지."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고요? 살아갈 수 있는?"

"물론."

"대..대가는?"

"이봐이봐. 이승에서 굴러먹던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논리로 날 몰아세우지마."

"대가가 없다는 겁니까?"

"이사람아.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등골을 빼먹을 만큼 나쁜사람처럼 보이나, 내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트럭에 치여서 한순간 골로 갔다기엔 내 몸상태는 평소와 다름없이 말끔했고,
내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영화에서나 나오는, 구멍난 검은 날개의 악마 혹은 백의의 천사가 아니고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깡마른 노인이라는 것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리있는 그의 설명과 내 아래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지금 이 상황을 알아 챈 이후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당신이 태연하게 하늘 위로 날고 있다면 안 믿을 수 있겠는가?)

"그...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 겁니까?"

"간단해. 당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하게 박혀있는 그때로 내가 당신을 돌려보내줄거야. 그러면 당신은
그 시대에 존재하던 '과거의 당신'을 죽이고 그 세계를 차지하면 되는거지."

".....?!"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런거지.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세상은 수백개 혹은 수천개의 동일 시간대를 가진 여러 세계로 구성되어있어.
예를 들어 지금 이 밑을 걸어다니고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은 수백,수천개의 평행한 자신을 가지고있는거야."

"전..전혀 간단하지 않아요."

"흐음..그래. 도플갱어라고 들어봤지?"

"예.."

"그래, 도플갱어가 바로 그런거지. 나와 똑같은 나."

"흐음..."

"거참 엔간히 이해를 못하는구만..잘 들어봐. 예를 들어 1990년의 자네는 한명이 아니란거야.
수백명, 아니 수천명에 이르는 1990년의 자네가 존재하는거지.
다만 그 수천명의 자네는 시간의 균열 속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거야.
시간의 축이 다르단거지. 결국 같은 시간이지만 다른 세계에서 존재한단거고."

"아..."

"하지만 지금의 자네는 죽어버렸기에 자네가 살던 세계에서는...아 자네 이름이 뭔가?"

"이..종혁..이라고 합니다."

"그래. 이종혁. 지금 자네가 살던 세계에서 '이종혁'이란 존재는 사라져버린거야. 소멸된거지."

"..."

"하지만, 소멸된 건 겨우 하나의 '이종혁'에 불과한거지. 그렇기때문에 자네는 시공간의 축을 비틀어서
다른 세계의 이종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이동하여.."

"그를 죽이고 그 자리를 자네가 차지하면 되는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휴, 겨우 이해가 끝났나보군."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을 수 없다기보단 기뻤다.
당연하지 않은가? 한번 죽었던 내가 또다른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데..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러한 내 맘을 알았는지, 그가 되물었다.

"자, 자네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력한 기억은 무엇인가?"

기억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원래 살아생전 가장 강했던 기억만이 원념으로 남는다고 했던가?

죽기 바로 직전까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때의 기억은 무엇보다도 빠르게 내 뇌리에 파고들었다.

"호오..꽤나 특별한 기억이구만..보통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순간, 가장 억울했던 순간을 기억해내기 마련인데..."

"그런가요..?"

"뭐 아무렴 어떤가. 좋아, 돌려보내주겠네."

"정..정말인가요?"

"다만."

"다만...?"

"주의할 것이 하나 있지. 아, 뭐 자네가 몰라도 살아가는데에는 지장이 없었겠지만 양심에 찔려서말이지."

"그..그게 뭐죠..?"

"기회는 평등하다."

"...예?"

"이해가 안되도 상관은 없네. 그렇다면 이제 시간을 비틀어볼까?"

순간이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던 파란 하늘과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노인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비틀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내 눈앞은 깜깜해졌다.







#








점멸된 내 시야가 다시 밝아 온 것은 얼마 지나지않아서였다.

내 눈앞에는 내 기억 속에서 그토록 지워지지 않았던 바로 그곳이 펼쳐져 있었다.
바알갛게 노을이 지는 하늘.
한적한 공터
그리고....

"꼬마야, 이름이 뭐니?"

"....."

"꼬마야...?"

"....엄마가 낯선 사람이랑 말하지 말랬어요."

뭔가가 굉장히 익숙한 상황..

왠지모를 찝찝함이 내 등을 훑고 지나갔지만, 살고싶다는 원념만이 남은 나는 그런 감 때문에 기회를
잃고싶지는 않았다.

"하하. 종혁이 이녀석! 정말 똑부러지는구나!"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당연하지. 아저씨가 엄마 친구거든!"

"정말요..?"

"그래. 아니면 아저씨가 종혁이 이름을 어떻게 알겠니!
오늘 엄마가 일때문에 늦으신다고 종혁이 좀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저씨한테 부탁하셨거든."

간단했다. 저 꼬마녀석은 어렸을 때의 나.
어렸을 때 우리집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머니께서 생계를 유지하고 계셨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우리집은 맞벌이가 되었고, 일주일에 한번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와
밤 늦게까지 일을 하셔야만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난 혼자이기 일쑤였다.

어쩌면 지금 이 기억이 내 뇌리에 강하게 박힌 이유는
항상 외로움 속에 노출되어있던 그 때의 나에겐
모르는 아저씨의 그 작은 호의가 따듯하게 느껴져서 였을지도 몰랐다.

"종혁이 이제 아저씨랑 집에 갈까?"

"네! 아저씨는 착한 것 같아요. 헤헤."

...차마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









일을 끝낸 내 얼굴은 온통 젖어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던 걸까?

막연한 미안함..?
아니면
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유년시절의 외로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옴과 동시에 느껴지던 두통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렸다.

뭔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린 느낌이었고,
그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것이 내 기억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행위라서
더욱 아팠다.

"됐어..다시 살았잖아..다시 돌아왔잖아..이제 된거야."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어짜피 내가 날 죽인거잖아? 자살한거나 다름없는거야. 그 것도 꿈 속에서..난 살아있으니까."

그렇게 나를 합리화시켰다.

흐르는 눈물과 멈추지 않는 심장박동이 '넌 살인을 저질렀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이성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기수단으로써 난 나를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살아있으면 된거야..살아있으면..."








#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비유로, 혹은 그 원리 자체로써 우리 주위에 많이 떠도는 뫼비우스의 띠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만들기 시간이었던 것같다.

그날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오던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체육시간이 만들기 시간으로 바뀌어버렸고,
워낙 체육을 좋아하던 천방지축의 나로써는 그 상황이 무척 원망스러웠었다.

"자, 오늘은 이 길쭉한 색종이를 가지고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을 만들어볼거에요!"

뫼비우스의 띠...
무한하게 연결된, 끝이 없는 루프...무한궤도..

아마 어린이들에게는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이 굉장한 재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손을 짚어서, 아니면 눈으로라도
쭈욱 따라가보면 끝이 나올 것 같았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신비의 끈...

물론 호기심이 강했던 나에게 있어서도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무언가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만들기 시간이 하필 체육시간과 바뀌지 않았더라면...

"종혁아~이거봐,이거봐! 막 따라가도 안끝난다! 자 봐봐....어?"

"이딴 종이가 뭐가 재밌다고!"

호기심에 가득차서 나에게 자랑하러 왔던 친구 녀석의 작품을 나는 그대로 찢어버렸던 것같다.
물론 친구 녀석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채운 채로 선생님에게 쪼르르 달려갔고,
그날 나는 선생님에게 엄청 혼났다.

억울했다.
애초에 잘못한 것은 체육시간을 마음대로 바꿔버린 선생님 잘못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그 딴건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끊어버리면, 잘라버리면..
더이상 이어지지 않을테니까.








#








"너..넌 누구야..? 나한테 왜이러는건데..?"

사필귀정..
모든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아..지금 이 상황에는 그닥 맞는 속담은 아닌 것같지만...그냥 이 단어가 떠올랐다.

주위는 어딘지 알 수없는 커다란 밀실..그리고 내 앞에 칼을 들고 서 있는 남자.

조금전까지만해도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식사를 끝내고 그들을 집으로 보낸 뒤에 회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가벼운 접촉사고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고, 짜증이 날대로 난 나는 차에서 내려 앞 차 쪽으로 다가갔고
순간 정신을 잃었다.

"나..나한테 왜이러는거야?"

"뭐..당신에게 악감정은 없어. 오히려 고맙지."

"돈..돈이 필요한거야?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난 죽으면 안돼. 가족이 있단 말이야."

"그래 그건 고맙게 생각해. '내 가족'을 그렇게 사랑해주는거 말이야."

"..무슨 소리야..?"

"돈?? 크큭..이봐이봐. 돈도 생명이 있어야 좋은거 아니겠어? 그딴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논리로 이제 겨우
새 생명의 기회를 잡은 나를 희롱하는거야?"

분명...어디서 들었던 소린데...자본주의...

"원..원하는 게 뭔데..?"

"니 목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기절상태에서 깨어난 나로서는 나와 닮은, 아니 나와 똑같은 저 사내에게 이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하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였다.
수백 수천개의 평행세계 속에서 내가 또다른 나를 '죽이고' 다시 태어났다면,
죽임을 당한 또다른 나에게 있어 그 죽음은 '억울한 죽음'.

결국 또다른 나 역시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를 만났을테고,
평행이론이니 자본주의니 하는 엿같은 사탕발림에 놀아나서 또다른 세계의 나를 죽이게 되겠지.

그렇게 모두 이어지는 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대가? 빌어먹을 자본주의?

확실히 그 노인에게 대가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 노인의 꾀임에 넘어가서 나를 죽인 바로 그 시점부터
나는 노인에게 '재미'라는 대가를 선물로 주었을 테니...








#







"꼬마야, 안녕? 이름이 뭐니?"

"....."

"꼬마야?"

"....엄마가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하지 말랬어요."

"허허..아저씨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난 엄마 말 잘들어요. 아저씨랑 이야기 안해요."

"흐음..곤란하게 되었네..좋다 꼬마야. 그러면 아저씨가 여기에 서서 혼자 이야기할테니 너는 듣기만 하거라. 어때?"

"..맘대로 하세요."

"꼬마야. 지금 너는 이해 못하겠지만 나중에라도 니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
그 할아버지는 너한테 짜잔!하고 나타나서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해준다면서 너를 유혹할거야. 그래, 마치 슈퍼용사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런 꾀임에는 절대로 속아넘어가서는 안돼. 세상에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기 마련이고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거든."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그냥 듣기만 해. 나중에라도 니가 이 기억을 떠올릴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거니까. 아저씨는 살해당했어.
아저씨 자신에게. 그리고 아저씨를 죽인 그 사람도 자신에게 살해당했고, 그 전에도, 그 전에도 마찬가지야.
뫼비우스의 띠라고 알고 있니? 무한하게 이어지는 궤도..그래. 그저 무턱대고 따라가기만 한다면 절대 끝을 볼 수 없어.
끊어야해. 그래서 아저씨가 너에게로 온거야. 이 아저씨는 나를 마지막으로 이 빌어먹을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버릴거야.
하지만 걱정되는건 이 아저씨가 끈을 끊어버려도 또 다른 곳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지는 거야.
그래서 너한테 온거고."

"뫼비우스의 띠 오늘 학교에서 만들었는데...내가 다 찢어 버렸어요."

"그래 그거야. 뫼비우스의 띠는 절대 따라가서는 안돼. 끊어야해. 알았지? 절대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는 선이 되지마."

"....이상한 아저씨네.."

 

 

 

 

 

 

 

 

 

 

 

 

 

 

 

 

 

 

 

 

 

 

 

 

 

웃대 게시판 hero창정 님이 작성하신 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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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

태양은 지구의 모든 수분을 날려버리기라도 할 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찌는 듯한 더위에

불쾌지수가 올라갈 법한 날씨였지만, 6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시는 상준의 입장에서는 여간 따사로

운 것이 아니었다. 상준은 주위를 한번 휘익 둘러본 후에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

"오랜만이네..."

교도소에 수감된지 어언 6년. 그는 모범수로 수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상준은 들뜨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끝맺지 못한 매듭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그는

퇴소하면서 받은 자신의 물품들 중에서 양복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무언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어이~ 이보슈~!"

상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칠십남짓 해보이는 노인이 불편한 다리를 바삐 놀리며 자신을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노인이 손에 이고있는 보따리들과 수척한 얼굴, 깊게 파인 주름들이 그 역시 수감생활을 막

끝마치고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여지없지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어르신?"

상준은 최대한 공손하게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자네도 찾아오는 가족이 없어서 셔틀버스로 서울까지 이동해야 하는 젊은인가?"

노인의 말에 상준의 눈썹이 약간 흔들렸다. 잊고 있었던 사회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상준은 잠시

멍하니 노인을 쳐다본 후에 한숨을 살짝 내쉰 후에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예."

"거 참 잘되었구만 그래. 내가 보다시피 눈이 잘 안보여서 말이야. 셔틀버스까지 같이 가주면 안되겠나?"

처음보는 노인과의 동행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상준이었지만, 찌는 더위와 막막한 현실 앞에서 잠시나마

말동무를 얻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뭐, 나쁠건 없지요."

"고맙네,젊은이."

상준은 이내 노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노인에게로 걸어가면서 자신의 왼 팔뚝을 쓰다듬었다.

노인은 그런 상준을 고맙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고마움의 눈빛이 싫지않은 상준이었다.




셔틀버스는 상당히 작은 크기였다. 교도소라고하면 으레 창살이 박힌 커다란 버스나 이리저리 상처난 을씨년

스러운 버스를 생각하기 쉬웠지만, 왠일인지 시내에 자주 굴러다니는 소형 셔틀버스 한대가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작네요."

"껄껄, 죄다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가다보니 그렇겠지. 우리같은 쓰레기를 모시는데 세금을 쓸수야 없지 않은가?"

"뭐..것도 그렇네요."

못마땅하다는 듯이 버스를 째려보는 상준의 앞을 노인이 지나갔다. 노인은 자신의 두 발을 셔틀버스에 올린 후에

어서 따라들어오라는 듯이 상준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노인을 보며 상준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셔틀버스에

올라 탔다.

셔틀버스의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아까의 불쾌함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상준

이었다. 상준은 으레 그렇듯이 셔틀버스의 맨뒤에서 한두칸 정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도로가 훤히 보이는

앞쪽 자리는 너무나도 뻥 뚫린 듯 했고, 맨 뒤는 사람들의 시선을 어쩔수 없이 받는 곳이기 때문에 상준은

항상 뒤에서 한두칸 정도 앞자리를 선호했다. 그러한 상준의 옆자리에 노인이 털썩 주저 앉았다.

"아..같이 앉으시게요?"

"아, 내키지 않는가? 나한테 늙은이 냄새라도 나는가보이. 껄껄"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라고, 상준은 자신을 향해 웃어보이는 노인을 향해

잇몸을 씨익 드러내보이고는 반대쪽 창가에 시선을 맞추었다. 창문을 향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왠지모르게

슬퍼보이는 듯 하여, 상준은 창문을 소매로 두어번 스윽 닦아내었다. 그러나 닦이는 것은 먼지 뿐이었다.

상준의 얼굴은 여전히 슬퍼 보였다.

"다 탔으면 출발할테니 움직이지 마슈!"

버스기사의 우렁찬 목울대 소리를 들으며 셔틀버스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상준은 아직도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소매로 닦아내고 있었으며, 노인은 그러한 상준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셔틀버스가 출발한 지 삼십분이 지나도록 상준과 노인 사이에는 말이 오가지 않았다. 상준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노인이 멀미를 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저기..참 말하기 미안하네만...내가 멀미가 좀 심해서 말이야..앞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안되겠나?"

"네..?"

상준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노인은 마치 상준을 자신의 보호자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상준은 거절하려고

입을 떼었지만,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있는 노인을 보니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선뜻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거절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노인은 자신의 보따리를 한 쪽 손에 걸친 채로

상준을 잡아 끌었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기는 상준이었다.

"거기들! 차 운전하는데 돌아다니지 마쇼! 거 뒈지면 괜히 나만 복잡하니까."

"거 기사양..."

버스기사에 말에 욱하려던 상준을 말리는 노인. 그러한 노인을 바라보며 상준은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옮기자 멀미가 조금은 가라앉았는지 노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 청년은 이름이 뭔가?"

"예. 심 상준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로구만.껄껄."

"실례가 안된다면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존함이라니, 껄껄. 교도소 나온게 무슨 자랑이라고. 내 이름은 장 준하일세."

"친근한 이름이네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이 늙은이야 고맙지.껄껄"

잠시간의 정적.

정적을 깬건 노인의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자칫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노인의

인자한 웃음은 그런 기분마저 달아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자네는..무슨 일로 교도소에 오게 되었는가?"

"아...."

"아, 뭐 말하기 곤란하면 안해도 되네."

"..."

"껄껄. 말하기 부끄러운가 보이. 뭐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 그렇다면 내 이야기라도 들어볼텐가?"

"어르신의 이야기라뇨..?"

"껄껄..난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서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할 운명

이었네만..부끄럽게도 윗 사람들이 모범수로 석방해주었지."

살인이라는 말에 상준의 눈썹이 실룩거렸다. 그러한 상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20년 전쯤 이었을거야. 그 때 당시에는 정말 살기가 어려웠지..나 역시 사업에 여러번 실패하고

막노동을 전전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어. 그때야 모두 살기 어려울 때였으니 특별히 나만 유난 떨

것은 없었지만, 그 때는 세상이 나만 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네. 하루 벌이를 술값으로 날리다

보니, 집에는 가져갈 돈이 없었고, 그러한 나를 사랑해줄 여자는 어디도 없었지. 이혼을 하게 되었다네.

벼락을 맞는 것 같았지..."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상준은 흠칫 놀랐다. 칠십 남짓 되어보이는 외모와 달리 노인은 이제 겨우 50이 넘은

자신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준은 그러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노인을 바라보았고,

그러한 상준을 바라보며 씨익 웃던 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지. 길을 걸어가는데, 왠 술 취한 청년 하나가 자신의 자취방으로 들어가는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술에 많이 취한 탓인지 문을 못열고 있는거야. 처음에는 순수하게 도와줄 요량으로 가서 문을 열어 주었지.

그런데 슬쩍 보이는 거실의 풍경이...그래. 부자였지. 아니 솔직히 부자인지는 모르겠네만, 나보다 부유했던

것은 확실해 보였네. 거실엔 커다란 고흐의 그림도 한 점 걸려있었고,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커다란 대형

테레비까지 있었으니 말일세.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 간사하더군. 도와줄 생각에 접근 한 것이 도리어

악랄한 마음으로 변해버린 거지. 나는 술취한 청년의 머리를 옆에 있던 도자기로 사정없이 내리치고는

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왔다네. 그리고는 여기저기 마구 뒤졌지. 솔직히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다네.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어. 뭘 어떻게 뒤지고 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다음 날 나는 조그마한 월셋방을

마련할 수 있었지. 대단하지 않은가? 몇 년동안 막노동을 전전해도 얻지 못한 내집을...그런 추악한 짓

한번에 마련한 거야..물리칠 수 없었다네..그 더러운 유혹을.."

노인을 말을 끊고 보따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 곳에는 직 사각형의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노인은 연신 그것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 했다. 상준은 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노인이 다시 말을 잇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빈집, 만취자들을 골라가며 강도짓을 했어. 물론 걸리지는 않았지. 벌이도 시원찮았어.

처음의 그 한탕을 다시 맛볼 수 없었지. 사람의 욕심이란 것은 정말 무서우이.. 처음에는 두려워서 만취자,

빈집 만을 털었지만, 다시 한번 그 때의 그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거야.

그래. 강도짓을 제대로 한건 했지. 며칠 간 수색 끝에 집을 물색하고 행동 패턴을 조사했네. 그 곳에는

과부 하나와 꼬마아이가 살고 있었지. 더할나위 없었네. 여자와 꼬마..제압하기엔 가장 손쉬운 조합 아니겠는가?

그리고 문제의 그날 밤. 나는 조용히 그 집의 담을 타고넘어서 현관을 땄지. 조용히 들어갔어. 예상대로

가족들은 자고 있더군. 왠만하면 소동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난 조용히 집을 뒤지고 돈 될만한 것을

챙기기 시작했지. 그런데 문제가 생긴거야. 그 집에 살던 꼬마아이가 화장실을 가던 도중에 나를 발견한거지.

꼬마는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싸고 있더군. 나는 냅다 달려가 가지고있던 칼의 손잡이로 꼬마의 얼굴을

후려쳤네. 꼬마는 나가떨어지면서 소리를 질렀고, 그 기세에 어미가 깨어나고 말았지.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말았던거야.."

노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상준의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었다. 상준은 연신 자신의

왼팔을 쓰다듬으며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꼬마는 어미의 등 뒤로 숨어버렸지. 나는 말했다네. '조용히 안하면 다 죽을 줄 알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네..난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되거든..아마 어미도 그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는지

꽤나 세게 나왔지. 내가 초범이라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어. 용감한 여자였다네. 한 손으로는 자신의 자식을

감싸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연신 바닥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지. 아, 물론 그 당시에는 몰랐다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아. 어쨋든 나와 그 어미는 몇 분간 대치상태로 서있었다네. 그러다 별안간

그 어미가 나를 향해 무언가를 던지더군. 나는 그것을 한 쪽눈에 정통으로 맞아버렸지.

조그마한 은장도였네. 내 눈꺼풀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고, 그러한 피가 내 눈에 들어가자 세상이 온통

붉은 빛깔로 물들더군..흥분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어두운 집안에 붉은 색 피였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어미의 몸은 수백 군데에 구멍이 뚫려 붉은 액체를 콸콸 쏟고 있었지..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어쩔수 없었지..나는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창문으로 도망가던 그때,

시체의 뒤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때 불현 듯 뭔가가 떠올랐지. '애새끼가 있었구나!'

나는 냅다 달려가서 어미의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네. 그 뒤에는 아까 그 꼬마가 바들바들 떨고 있더군.

나는 들고있던 칼을 꼬마에게 휘둘렀다네. 그 기세에 꼬마의 왼팔에는 길다란 상처가 났고 피가 철철 흐르더군.

꼬마는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갔고, 나는 그런 꼬마를 바라보며 칼을 들었지. 그 때였어. 꼬마와 내 눈이 마주쳐

버렸다네. 그 꼬마는 두려움과 공포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눈에는 눈물이 어려있었다네..

나는 어미의 시체를 바라보았지. 그리고는 꼬마를 바라보았다네..한 순간 죄책감이 밀려오더군..

나는 꼬마에게 말했다네. '꼬마야. 미안하게 되었다. 사과의 의미로 죽이진 않을거다. 조용히 살아라. 정말

더러워서 못살겠거든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라.' 그리고는 도망치듯 그 곳을 나왔지..."

노인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노인은 직사각형의 무언가를 쓰다듬고 있었다. 상준 역시

노인을 바라보며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휴게소에 도착했으니 볼일 보고 좀 쉬다 오슈들. 한시간 정도 뒤에 출발할 테니."

기사양반의 노곤한 목소리에 버스 승객들은 제각기 갈 길을 가려고 버스에서 하차했다. 노인처럼 보이던

준하와 상준 역시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은 각자 화장실을 갔다 온 후에, 식품코너로 향했다. 둘은 서로

말을 나누지 않은 채 식품 코너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준하는 자신의 고해성사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연신 바닥만을 보고 있었고, 상준은 그러한 준하를 보며 가슴을 어루만지기에 급급했다.


식품코너에 도착한 후, 그들은 각자 먹을 것을 시키고는 야외 벤치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몇분간 말없이

자신들이 시킨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기 시작했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

그러한 고요를 깬 것은 다름아닌 상준이었다.

"저는 강도 상해로 잡혀왔습니다."

상준의 말에 노인이 흠칫 하는 듯 했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죄질에 놀랐음이 분명하리라..

상준은 그러한 노인을 바라보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제 인생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고 나신 뒤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점점

작아졌고, 옷은 점점 허름해져갔죠. 하지만 어머니는 그 빌어먹을 허세심때문에 집은 항상 삐까뻔쩍하게

꾸며두셨어요. 저는 그러한 어머니가 못마땅했지만 마땅히 의지할 곳도 없었기에 그러려니 했죠.

그러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저는 살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고아원에 보내졌죠. 그 곳에서 적응하지 못했습

니다. 결국 13살이 되던 해, 고아원을 도망쳐 나왔죠. 그렇게 지하철 역을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앵벌이 단체에

잡혀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정말 개처럼 부려지며 돈을 상납했죠. 저에게 떨어지는 몫은 하루치의

양식과 모포가 다였습니다. 그래도 죽이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영감님말대로, 아..죄송합니다.

아저씨 말대로 사람이란 참 간사하더군요. 매일매일 돈은 수 십만원씩 버는데 나한테 떨어지는게 한푼도 없다는

사실이 저를 조금씩 자극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저는 앵벌이한 돈을 다 들도 튀어버렸죠. 그리고 그 돈으로

먼 타향까지 이동해왔습니다. 그리고는 한가지 목표를 이루기위해 개같이 벌어먹고 살았습니다. 강도짓도

서슴지 않았고, 절도, 강간, 사기 안한게 없었죠. 그러면서도 제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해, 단 한가지 물건을

품에 소중히 지니고 다녔습니다."

상준은 품 속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꺼내 준하를 향해 보여주었다. 그 작은 무언가는 비단에 돌돌 말려있어서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단의 고풍스러움과 맞물려 귀해보이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물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그러한 준하를 바라보는 상준의 얼굴을 차갑기만 했다.

"뭐..저도 그렇게 살다가 결국 잡혀왔고, 모범수로 이번에 풀려나게 되었죠. 사실..이 막막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제가 가지고있는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만 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아니 그냥 죽어버릴까 생각 중입니다. 전과자라는 오명에

갈 곳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어떻게 입에 풀칠하고 살겠습니까."

상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한 상준을 바라보는 준하의 표정 역시 좋지는 않았다. 내심 같은 처지를

공감하는 느낌이었다.

"자..이제 시간도 다 된 것 같으니, 어서 돌아가야겠네요."

상준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왼 팔뚝을 쓰다듬으며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고, 준하는 그 뒤를

따랐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뭐든지요."

"그 팔..왜자꾸 쓰다듬는 겐가? 아까부터 자꾸 긁던데.."

"아 이거요? 별거 아니에요. 상처가 하나있는데..오늘 따라 자꾸 따갑네요."

상준은 준하를 향해 씩 웃어보이고는 버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한 상준을 쳐다보는 준하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출발합니다! 거!! 빨리 자리에 앉으슈!"

걸걸한 기사양반의 목소리가 버스를 가득 채운 후, 버스는 서울을 향해 또다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버스가 출발하는 동안, 그리고 서울로 향햐는 내내, 둘은 아무말도 않은 채 차창 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준하와 상준은 내심 거부감이 들기는 했지만 서로 말하기를 꺼려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둘은 몇개의 휴게소를 지나치는 동안에도 화장실을 왕복하고 몇개의 음료거리만을 주고받은 채

아무말도 나누지 않았다. 이따금 팔을 쓰다듬는 상준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준하의 모습이 그 둘의

의사소통의 전부였다.



"자 얼른 내리슈. 거 아저씨! 쳐먹은 건 가져가야 될거 아니유?!"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기사양반의 호통을 뒤로한 채, 둘은 동서울 터미널에 발을 디뎠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화장실로 향했다. 휴게실 마다 화장실을 들르는 게 서로 여간 긴장한게 아닌듯 보였다. 그 날 따라

화장실에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왠만하면 변기 한 두칸 정도는 차있을 법도 한데, 화장실에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화장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준하의 얼굴은 굳어졌고, 반대로 상준의 표정은

한결 가벼운 듯이 풀어졌다. 둘은 아무말 없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준하가 먼저 세면대로 향했다.

그러한 준하의 뒤를 바라보며 상준은 자신의 가슴에 고이 모셔두었던 무언가를 비단에서 풀어헤쳤다.

그 곳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조그마한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상준은 그 것을 꺼내 왼손에 쥔 후, 준하의

뒤로 다가섰다. 그러한 상준의 행동을 모르는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준하는 연신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을

얼굴에 치댈 뿐이었다. 그렇게 상준이 준하의 뒤에서 왼손을 치켜올리던 그때, 준하가 말했다.

"나에겐 딸이 한명 있다네. 내 보따리에는 딸아이의 사진이 들어있지."

순간 상준의 손이 멈칫했다. 상준의 뇌리에 준하의 보따리와 그 안에 쌓여있던 네모난 무언가, 그리고

말을 하는 내내 그 것을 쓰다듬던 준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날 기다리고 있을걸세..20년 동안 혼자서 힘들었겠지..날 받아들여줄지는 의문이네만..그래도.."

준하는 어깨를 들썩였다. 상준은 그러한 준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준의 눈에서 준하의 어깨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보호하려던 어미의 어깨로 겹쳐보이는 듯 했다. 상준은 왼손을 몇번 들락 날락 하더니 이내 아래로 떨구었다.

상준은 휙 뒤돌아서 화장실을 나섰다. 준하는 그런 상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세면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사십시오. 딸과 함께 죽은 듯 사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설사 사는 것이 지옥같고 똥통에 빠지는 치욕을

겪더라도 사십시오. 하루하루 죽을 것 같은 지옥 속에서 천사들이 노니는 천국을 떠올리며, 그렇게 사십시오.

오르지 못할, 설령 죽어서라도 도달하지 못할 그 곳을 상상하며, 하루라도 나아 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죽은 듯이 악착같이 사십시오.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내십시오."

상준은 화장실 문을 나서며 준하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준하의 어깨가 멈추었다. 그러한 준하를 보며

상준을 한숨을 내쉬고는 밖을 나섰다.

상준은 화장실 앞에 있던 휴지통을 향해 자신이 왼손에 쥐고있던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상준의 손에서

떠나간 무언가는 휴지통 외벽을 맞추고는 땅에 떨어져 금속성 마찰음을 내었다. 상준은 그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피가 굳었는지, 물감이 묻었는지 검붉은 얼룩이 덕지덕지 새겨져있는 조그마한

은장도가 떨어져있었다.


상준은 화장실에서 멀어져갔다.

"죽은 듯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가지고 견뎌내십시오."

상준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 발을 디디며 중얼거렸다. 그 것은 준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나약했던 자신을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그것이..그것이 당신을 향한 나의 마지막 복수입니다."

멀어지는 상준의 뒤를 준하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스라히 땅거미가 가라앉고 있었다.

별안간 불어오는 바람에 상준의 셔츠가 펄럭였다. 상준은 바람을 가리려는 듯이 왼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대었다. 그 겨를에 상준의 왼 소매가 펄럭였다. 그 곳에는 칼로 길게 베인 듯한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더이상 그 상처는 쓰라리지 않았다.

 

 

 

 

 

 

 

 

 

 

 

 

 

 

 

 

 

3번째작품은 실화입니다.

 

 

웃대 게시판 saimang 님이 작성하신 실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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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주도에서 공익근무를 했습니다.

근무했던 곳은 난대산림연구소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주도는 고사리가 유명합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고사리를 캐러 사람들이 오곤 하는데, 사람들이 오는 구역이 출입금지 구역이라 산불관리 겸 출입통제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차로 산의 출입금지구역을 순찰했습니다.

제주도는 일 년에 두 번 장마가 옵니다. 봄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고사리가 나기 시작할 때쯤이면 비가 내린다고 고사리 장마라고 합니다. 이 비를 맞고 좋은 고사리들이 자랍니다. 여하튼 그 날도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저와 후임 3명은 차를 타고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무전기에서 잘 가지 않던 **산으로 순찰을 가라는 명령이 내려 졌습니다. 그 산은 서귀포에서 5.16도로 따라가다가 한라산가기 전에 조그마한 산인데,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지만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동하여 한참을 순찰을 돌고 있는데 제 후임이 말했습니다.

"형 저쪽에 사람 있는데요?"

저는 확성기로 "거기 아주머니 다 보여요. 어서 나오세요~" 라며 소리 질렀습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풀숲에 들어가 아주머니를 찾았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이라 아주머니께서 계시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후임은 이상하다면서 분명 봤다면서 투덜거렸습니다. 30분 동안 순찰을 도는데, 할머니 한분이 등에 고사리 한 무더기를 매고 내려 오셨습니다. 할머니께 다시 오시지 말라고 주의를 드리고 차에 태워 산 입구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를 크게 틀고는 후임을 향해 **야 이 노래 좋지 않냐? 하고 말했는데, 뒷 좌석에 계셨던 할머니께서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놈아! 산에선 이름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야!"

순화되게 썼지만 사실 엄청나게 욕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상하신 분이라 생각하곤 대답하지 않고 산 입구까지 할머니를 모셔다 드렸습니다.

점심도 먹고 다시 순찰을 도는 중이었습니다.
후임이 소변이 마렵다면서 차에서 내려 숲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후임이 오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후임이 간 방향으로 갔는데, 후임은 없고 숲이 마구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이름을 부르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본부에 무전연락을 취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없어졌던 후임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저희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었습니다. 후임이 눈이 풀린 채 울면서 온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얼른 후임을 질질 끌어 차에 태우고 도망가다 시피 산에 내려 왔습니다.

한참을 달려 연구소 근처에 멈추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임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임의 말에 따르면 소변으로 보러 갔는데, 아까 봤던 아주머니가 멀리서 자기를 쳐다보더랍니다.

후임은 아주머니에게 주의를 드리려고 바로 쫒아갔는데,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다시 놓쳤다 싶어서 뒤돌아 가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자기 손을 꽉 잡고 질질 끌고 가더랍니다.

발버둥치고 나무를 쥐어 잡아도 힘이 엄청나서 숨도 못 쉴 정도였답니다. 후임은 이대로 넋 놓고 끌려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큰 나무를 부여잡고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둘렀답니다. 그러면서 손을 잡은 사람을 봤는데, 아까 자길 보던 여자였다고 합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마치 영화에서 총을 맞은 것처럼 머리에 큰 구멍이 있고, 온 몸에 칼자국이 있었답니다. 그리곤 자길 향해 욕을 계속 했다는데, 자세히 듣진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는군요.

그 소리를 듣고 저희가 달려간 거고, 저희가 왔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농담도 잘 안 하던 녀석이었고, 지금 상황에서 농담할 분위기도 아니어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후임은 결근을 했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무단결근을 계속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근무지 변경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 날 이후로 저희도 그 산에는 순찰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산 근처로 농원을 하시는 아주머니를 태워다 드리러 간 적이 있는데, 그 분께 그 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혀를 쯧쯧 차시면서 말씀해주시더군요.

예전에 그 산은 4.3사건 당시 군을 피해 숨어 계셨던 분이 많았는데, 산에서 만약 이름을 불려 들어가면 그 이름과 관련된 가족들을 산으로 데려가서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산에서 함부로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미신을 믿고 계신다고 합니다.

저희가 군복은 아니지만 비슷한 옷을 입고 있어서 4.3사건 당시의 군인으로 오해했던 게 아닐까요.
그 후로는 그 산으로는 순찰가지 않았습니다.

추천수32
반대수0
베플너굴님|2011.11.28 16:28
그만올리라는 사람이 머라한다면 그사람이 안보면그만이지만.. 더 보고싶은 사람들은 안올리시면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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