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수군은 달을참(達乙斬)에 병영을 두고 수시로 초계선을 띄워 장산곶 일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달을참의 수군은 혹시 있을지 모를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한편, 교역을 위한 안전한 해로를 확보하고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해진압(解津押)이 거느린 고구려 군사들은 동진(東晉)의 상단으로 위장하기 위해 모두 상인과 선원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선박에 동진의 깃발을 달았다. 그들은 백제 군사들로부터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용유도(龍遊島)를 지나 미추홀(彌鄒忽)로 향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미추홀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백제 수군의 초계선들이 그들을 동진의 상선으로 착각하고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통과시켰다는 것이었다.
미추홀은 교역의 중심지로서 막대한 세금이 걷히는 곳이었다. 미추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백제 왕실의 재정에 충당되어 국가 행사 비용의 용도로 사용되었기에 주로 왕족이 군주(郡主)에 임명되었다.
미추홀의 군주는 막대한 이권을 좌우하는 자리여서 책임이 막중했다. 백제 조정에서는 미추홀에서의 교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미추홀의 군주는 휘하에 치안을 담당하는 정예병들을 두어 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언제라도 상인들의 요청이 있으면 편의를 봐주어야 했다. 군주는 상인이 아무리 늦은 시간에 예방했다고 해도 이를 마다할 수 없었다.
동진의 상단을 이끄는 행수(行首)로 위장하면서 백제군 초계병들의 눈을 속이고 무사히 미추홀에 상륙한 해진압은 예물을 들고 미추홀(彌鄒忽)의 군주(郡主)인 부여염(扶餘廉)을 찾아갔다. 부여염은 진사왕(辰斯王)의 종형(從兄)이라는 이유로 미추홀의 군주가 되긴 했지만 중책을 맡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고 또 탐욕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관례로 바치는 예물로도 모자라 상인들의 꼬투리를 잡아 겁을 준 다음 뒷돈을 챙기기도 했다. 그래서 상인들 사이에서 부여염의 평판은 매우 좋지 않았다.
성주가 그 모양이니 부하들 역시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 관리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뇌물을 받거나 힘없는 상인들을 윽박질러 재물을 빼앗았다. 미추홀을 오가는 상인들은 이들을 거머리보다 더 끔찍하게 여겼다.
해진압은 첩자들을 통하여 이러한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여염 휘하의 병력만 제압한자면 손쉽게 성을 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해진압은 부여염에게 많은 금은보화와 함께 고기와 술을 넉넉히 건넸다. 기분이 좋아진 부여염은 해진압을 위해 크게 연회를 베풀고, 부하들에게 고기와 술을 내려 맘껏 먹고 즐기게 했다.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군사가 죽어가고 있는데, 후방에서 이처럼 흥청거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부여염은 북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유흥을 즐겼다. 부여염 같은 부패한 자가 미추홀의 군주라는 것이 해진압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해진압은 부여염과 그 휘하의 장수들이 대취할 때까지 술을 권했다. 병사들도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과 향긋한 술을 대하니 회가 동하여 거침없이 먹고 마셔댔다.
축시(丑時)쯤 되었을 무렵, 부여염과 백제군 장수들은 마침내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상에 머리를 쳐박고 엎어졌다. 군사들이 취해서 부르는 노랫가락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해진압은 품에 숨기고 있었던 비수(匕首)를 꺼내어 먼저 부여염의 목을 베었다. 부여염은 두려움을 느껴볼 새도 없이 깊은 잠 속에서 죽음과 조우했다. 해진압은 계속해서 나머지 장수들의 숨통을 차례로 끊었다. 그의 손놀림은 낫으로 잡초를 베는 농부처럼 능숙했다.
방 안을 피바다로 만든 해진압은 방문을 열고 밖을 향해 나직이 일렀다.
“성과 포구를 장악하라.”
웅크리고 있던 검은 물체가 명령을 받고 뛰어갔다. 구름이 달을 가렸다. 사방이 캄캄해졌다.
해진압의 명령을 전달받은 고구려 군사들은 배 밑창에 숨겨두었던 병장기(兵仗器)를 꺼내 들고 백제군의 초소를 들이쳤다. 백제의 초병들은 어둠속에서 날아든 화살을 맞고 죽어갔다.
순식간에 포구를 장악한 고구려 군사들은 바로 성으로 달려갔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던 미추홀성의 백제 군사들은 소란한 소리에 놀라서 깨어나긴 했지만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몇몇 백제 군사가 간신히 무기를 잡고 나섰을 때는 고구려 군사들이 이미 파수병들을 제압하고 대거 성안으로 진입한 뒤였다.
기습을 당한데다가 우두머리조차 잃은 백제 군사들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서해안 최대의 무역항인 미추홀은 어이없게도 단 하룻밤 사이에 함락되었다.
한편 해진압의 부하 장수인 고여준(高呂準)은 1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은밀히 용유도에 상륙하여 곳곳에 위치한 백제 수군의 초소를 격파했다. 고구려군의 기습에 당황한 백제의 초병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해진압과 고여준이 미추홀과 용유도를 장악했다는 전령의 보고를 받은 태왕의 선단은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곧바로 용유도에 상륙했다.
배 위에서의 생활이 익숙치 않은 고구려 군사들은 뱃멀미로 인해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태왕도 심한 뱃멀미를 겪었으나 군사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구토가 올라오면 몰래 선실로 가서 속을 가라앉힌 후 다시 갑판으로 나오곤 했다. 이러한 태왕의 의연한 모습은 고구려군 병사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태왕은 모두루(牟頭婁)와 고여준을 불러 앞으로의 일을 지시했다. 고여준은 바닷가 사람이었으므로 태왕에게 바다에 관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고여준은 2백여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를 점령하라. 그리고 모두루는 아불파연 대인과 함께 혈구도 해안을 장악하고 관미성을 공격하라.”
장수들은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다.
1백여척의 선박에 2백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발한 고여준은 서해안의 요충지로 외부 침입에 대비해 요소요소에 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 요새로 접근했다. 파수병들의 눈을 피해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고여준이 생각해낸 묘안이 뻘로 상륙하는 것이었다.
서해안은 썰물 때가 되면 물이 빠져나가 뻘밭이 드러났다. 그것은 한번 발이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려워 걸어서 이곳을 통과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면 밀물로 물이 다시 차오르고 파수병들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파수병들은 이를 믿고 감시를 소흘히 했다.
고여준은 이들의 방심을 이용해서 뻘을 지나 진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신속한 이동을 위해서 판자로 만든 썰매를 생각해 냈다. 서해안에 사는 백성들은 뻘에서 모시조개나 바지락 등을 채취했는데, 발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널빤지를 이용해 이동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백제군의 허를 찌를 수 있었다.
고여준이 거느린 수백여명의 군사들은 재빨리 판자로 만들어진 썰매를 밀며 앞으로 짓쳐 나아갔다. 초소의 파수병들은 고구려 군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죽음은 어둠속의 살쾡이처럼 조용히 찾아왔다. 그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고여준과 그의 부하들에게 순식간에 살해되었다. 여러 개의 초소를 손쉽게 돌파한 고여준은 고사야홀차성에 가까이 이르자 부하 몇명을 백제군의 전령으로 가장시켜 성으로 보냈다.
“초소에서 긴한 보고가 있어 왔습니다!”
급한 상황에는 봉화를 올려 알리지만 평시에는 이처럼 직접 성으로 달려와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런데 성문을 지키고 있던 고덕(固德) 국진형(國津炯)이라는 수문장은 주도면밀한 인물이었다. 전령을 안으로 들이기 전에 거듭 확인을 했다.
“무슨 급한 일인데 한밤중에 달려왔느냐?”
“고구려 수군이 미추홀로 쳐들어왔으니 급히 경계를 강화하라는 전갈입니다. 한시가 급하니 성주님을 만나뵙게 해주십시오.”
고구려군이 미추홀을 공격하고 있다는 말에 놀란 수문장 국진형은 성문을 열고 전령을 맞아들였다. 성문이 열리자 성 주변에 숨어 있던 고여준의 군사들이 뛰어나와 성문을 점령했다. 놀란 국진형은 황급히 북을 쳐서 적군의 침입을 알렸다. 잠을 자다가 북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백제 군사들은 정신차릴 새도 없이 고구려 군사들의 칼날에 베여 쓰러졌다.
고여준의 군사들이 고사야흘차성을 함락시키는 동안 용유도에 남아 있던 모두루는 아불파연의 함대와 합류하여 혈구도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혈구도는 백제의 도성인 한성(漢城)의 대문이라 불리는 요충지로서 이곳만 통과하면 단 몇시간만에 아리수(阿利水)를 따라 한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만큼 방비가 철통같았다.
혈구도의 군사요새인 관미성(關彌城)에는 진사왕의 사위인 묘멱(苗冪)이 달솔(達率)의 관등을 받고 군사 5천명을 지휘하여 주둔하고 있었다. 유사시에는 가까운 달을참에서 즉시 지원군이 출동할 수 있었다. 중요한 해안마다 초소를 두고 십여명의 파수병을 상주시켜 언제 있을지 모를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선단이 혈구도 해안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지난날 상인으로 위장시켜 섬으로 들여보낸 첩자들이 초소를 공격하여 장악한 후에 신호를 보내자 모두루의 부하들은 즉시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곧이어 아불파연이 이끄는 함선들까지 속속 도착했다. 두 장수는 초소를 장악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부하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관미성은 천혜의 요새다. 전격적인 기습전으로 재빨리 공략해서 함락시켜야 한다. 모두 진격하라!”
그러나 고구려 군사들이 초소를 에워싸고 초병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있을 때, 주변을 순찰하던 백제의 군관 두명과 초병 넷이 이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고 침입자들의 눈을 피해 수풀을 빠져나가 젖먹던 힘을 다해 관미성으로 내달렸다. 그들은 간신히 관미성에 도착해서 먼저 마주친 수문장에게 고구려군이 동음내의 초소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수문장은 즉시 그 보고를 관미성주 묘멱에게 전달하였다.
성주 묘멱은 예상치 못했던 고구려군의 출현에 당황했지만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그동안 관미성의 군사들은 유사시에 대비해 많은 훈련을 해왔기에 충분히 대처할 자신이 있었다.
묘멱은 먼저 봉화(烽火)를 올려 한성에 고구려군의 침입을 알렸다. 불길은 봉화로를 따라 순식간에 도성까지 이어졌고 달을참에서도 이를 보고 수군을 움직였다. 관미성에서 봉화가 오르면 달을참에서는 혈구도로 배를 띄우게 되어 있었다.
묘멱은 군사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고구려군의 침입에 대비하라고 명령했다. 군사들은 침착하게 성주의 명령을 이행했다. 묘멱은 자신의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부하들을 보며 자신감을 가졌다. 비록 고구려군의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장수나 군사들을 막론하고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싸운다면 충분히 성을 지킬 수 있었다.
관미성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간간이 파수병들만이 성벽 위를 오갈 뿐이었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관미성을 지키는 백제 군사들의 긴장감은 차츰 고조되고 있었다. 그들은 성벽 뒤에 몸을 숨긴 채 눈을 반짝이며 고구려 군사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성 밖에서 수플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끊임없이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는 것을 봐서는 상당한 병력이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미성주 묘멱은 군사들에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관미성의 백제 군사들은 고구려 군사들이 성벽으로 가까이 다가오기를 숨죽이고 기다렸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무수히 많은 검은 그림자가 성벽 아래 도착했다. 칼자루를 잡은 묘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달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순간 묘멱은 칼을 발검(發劒)하면서 일어나 외쳤다.
“지금이다! 공격하라!”
성벽 위에 숨어 있던 백제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성 아래를 향해서 활을 쏘아댔다. 조심스럽게 다가서던 고구려 군사들은 예기치 못했던 공격에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온몸으로 화살을 맞아야 했다. 기습을 위해 입에 매를 물고 있던 고구려 군사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죽음의 회오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많은 전우가 소리 없이 쓰러지자 살아남은 고구려 군사들은 겁을 먹고 물러났다. 차라리 옆에서 쓰러지는 동료가 비명이라도 질렀다면 분노나 복수심이라도 품어보련만 귀신 들린 듯이 푹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니 싸울 의욕이 생기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모멱은 고구려 군사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공격을 중지시켰다. 관미성의 병참 사정을 고려하면 화살 한대라도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다.
기습작전의 실패로 모두루의 부대는 궁지에 몰렸다. 관미성을 함락시키기는커녕 1천여명의 군사를 잃은데다가 달을참의 수군이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가 당도해 있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오히려 고구려군이 백제군에게 포위당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모두루는 노장인 아불파연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다.
“어찌하면 관미성을 일거에 함락시킬 수 있겠습니까? 시간을 지체할수록 아군은 사지로 몰리는 형국입니다.”
아불파연이 말했다.
“전투마다 승리할 수는 없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군이 미추홀과 고사야홀차를 함락시켰다 하오. 이곳의 전황을 알렸으니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오.”
모두루는 아불파연의 말을 듣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모두루가 말했다.
“대인께서는 일단 석모도로 가셔서 달을참에서 이동해올 백제 수군을 저지해 주십시오. 저는 대오를 정비해 관미성을 다시 공격하겠습니다.”
고구려군은 대부분 수상전(水上戰)에 익숙하지 못했으므로 수군의 전력에 있어서는 백제군보다 열세였다. 다만 아불파연이 거느린 군사들은 전문적인 해상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달을참의 백제 수군과 대등한 전력으로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부대였다.
모두루는 군사를 정비하고 병력을 나누어 여러 차례 성을 공략했다. 하지만 관미성의 방비는 물샐틈없었고, 성벽 위를 지키는 백제 군사들의 기세는 조금도 꺾일 줄 몰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