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반 퇴근, 집에 오니, 10시 반.
하루종일 얼굴도 못봤던 아이들 잠든 모습만 보나 했는데,
둘째가 엄마가 온 걸 아는지 칭얼거리면서 깬다.
얼른 다시 재우려고 들쳐 안고 흔들흔들 재워본다.
태어난지 이제 7개월, 꽤나 무거워졌는데, 슬링을 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팔 힘으로 무작정 안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아기가 편해하니까.
아이가 잠들랑 말랑하는데, 눈치도 없는 남편은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면기 물을 쏴아~틀고 푸카푸카 헹구고, 코 풀고 온갖 소리는 다 낸다.
그 바람에 아이가 다시 움찔 깬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
한바탕 퍼붓고 싶지만, 오늘은 도저히 기력이 없다.
아이를 힘겹게 다시 재우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그러고 5살배기 큰 아이는 아무리 잠이 들었다지만 집에 와서 한번도 눈길도 못줬다.
저것도 엄마한테 오늘 할 말 많을텐데...
갑자기 목에서 뜨거운 느낌과 함께 먹먹해진다.
나 왜 이러고 사니....
나는 팀장이다.
부하들이 퇴근해도 난 일이 남는다.
그들이 보기에는 자기들이 일 다하는 거 같겠지.
나도 그 땐 그랬다. 팀장은 노는 거 같고, 그 치닥거리 내가 다하는 듯.
위에 올라와보니, 이 자리에도 업무 이외에 정신 노동이 있다.
타 팀 조율부터 부서 실적 관리, 속썩이는외주사, 그리고 부하들 눈치....
출근할 때 오늘은 칼퇴해야지 되뇌여도, 팀장에게 마이스케쥴이란 사치다.
사장이 소환해서 붙잡고 늘어지면 그만이다.
그렇게 망치는 날들이 부지기수. 애 엄마라고 봐주나?
업무에는 데드라인이라는 게 있다. 망치는 날이라고 해서 그대로 남아있는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
어디에 얘기하면 으례 "무슨 일이 그렇게 많니?, 이해가 안되네..."
그러시겠죠...
저에게 6시 퇴근은 신기루같은 겁니다.
그게 사회고, 직장인인데,
남들을 쉬려고 가는 집, 거기서 저는 엄마라는 직업으로 갈아타야한답니다.
나도 결혼 전에는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웠다.
잠 자다가 화장실 한번 가려고 깬 것이 그게 그렇게 피곤해서
다음날 컨디션이 엉망이네 어쩌네 하고 다녔던 것이 엊그제.
얼레벌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난 하룻밤에도 3~4번은 기본으로 깨어나 뒤척이는 아이를 건사한다.
어쩌다 울면 분유도 타주어야 하고, 큰 아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면 데려가야 하고,
열이라도 오르면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수시로 열을 재며 밤을 꼬박 새운다.
숙면이 뭔지 잊은지 오래다.
무슨 기운으로 버티며 하루하루를 사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늦게까지 야근하며 일하고 돌아와 단 하루 잠도 제대로 못자며 사는 나다.
이런 나에게....
남편이라는 사람은 셋째 아이처럼 군다.
그도 직급이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일도 많은지, 야근을 밥먹듯 한다.
12시는 기본이고, 새벽이 될 때도 드물지 않다.
늦게 오면 밥이라도 먹고 오면 좋으련만,
그는 회사서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집에 와서 주섬주섬 차려 먹는다.
아무리 신경 끄고 있으려 해도 달그락 거리면 뭐 먹는지 들여다보게 되고 신경이 쓰인다.
먹고나면 설겆이도 안하고 담배 피우러 간다.
난 정말 저렇게 지저분한테 싱크대에 쌓여있는게 싫다고 백번천번 말한거 같다 .
그럴 때마다 "할꺼야..할려고 했어"
아침에 같이 나가는 출근길에는 항상 고정 대사 "아~ 피곤해"
따져보자.
당신이 나보다 더 피곤해?
밤에 애들땜에 깬적 있나? 주말엔 내가 밥 해놓고 깨우잖아.
빨래를 하나? 청소기를 돌리나? 아이 씻기나? 재우나? 유치원 과제를 봐주나?
어쩌다 한번 하고 나면 졸졸 따라다니며 칭찬해 달라고 조르는데
그건 근본적으로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다.
돕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지금 우리는 같이 해야한다고. 도대체 몇번을 얘기할까.
직장인이 피곤하지 않고 힘들지 않을 수 없겠지.
안다.
그치만, 개념이 있다면 적어도 나에게 위로받을 생각으로 치대지 말자.
난 이미 한계를 넘어서 어떤 기운으로 살고 있는지조차 아득하니까.
이 생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보이지가 않는다.
제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허물어지는듯한 모습으로 흘러가고 싶지는 않다.
돈 못 버는 내가 되기 싫다.
남편 벌이만을로 어려우니까? 재벌이 아닌 이상 그 말도 맞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흐릿하게 물정 모르고 오로지 남편에게만 기댄 채 의존적으로 살기 싫다.
그래서 이 악물고 버틴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내가 지금 곧 끊어질 듯이 힘들다고 해서 손을 놓을 수 없다.
지금 여기서 놔 버리자고 지금까지 버텨온 거 아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이 뜨끈하고 답답한 느낌을 쳐내지 못하고
이런데다 게다가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는 나도 참....
이제 잔다.
수요일이 지났고, 이제 목요일.
회사 일을 생각하면 목, 금 밖에 없고, 금주 내에 해야할 그 일들, 과연 다 할 수 있을까...
양쪽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이 두통...
언제쯤 이 두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런지....